All Posts By

Sochan Jung

2017년 부활절 특별간증: 얼마나 더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By | e참빛

처음 부활절 간증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가 무얼 간증할까? 성도님들은 나에게 무슨 간증을 듣고 싶을까? 저에게 무슨 크나큰 기적이 있어서 기쁨의 간증을 할 것도 아닌데…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현재 암 투병 중입니다. 그것도 말기 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1년 저는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진단 당시 암은 직장과 주위 임파선 그리고 간에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하루아침에 말로만 듣던 말기 암 환자가 된 것입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이 상황을 미쳐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됐는데 의사는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5월에 진단받고 6월 1일에 직장절제와 함께 임파선에 퍼져있는 암을 제거하는 첫 수술을 받고 7월 7일 제 생일에 생애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월에 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수술을 2차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수술로 끝날 줄 알았던 암과의 싸움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2차 수술 후 3개월 후에 간에 또다시 암이 발견되었고 의사는 수술 대신 고주파로 암을 태우는 시술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개복수술은 아니었지만 저는 똑같이 전신마취를 하고 약 6시간에 걸쳐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항암치료를 받고 검진한 결과 더 이상의 암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렇게 편안하게 약 1년가량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만 하며 잘 지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몸도 추슬러진 것 같은 마음에 미국에 온 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여름에 한국방문을 결정하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저로 인해 많이 걱정하고 계셨기에 이참에 가서 하나님이 치유해주신 저의 건강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귀한 복음도 전할 마음이었습니다.

6월 말에 검사가 있었는데 한국방문은 6월 초라서 의사에게 검진을 건너뛰겠다고 했더니 의사는 그러지 말고 아예 미리 검사를 받고 가라고 했습니다. 3월 말에 검사를 받았고, 6월 초이니 두 달 만에 무슨 일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검사를 했는데 실망스럽게도 난소에서 암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거의 10cm 정도 되는 작지 않은 크기의 암이었습니다. 의사는 암이 자라는 속도로 봐서는 치료를 늦출 수가 없다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출국을 3일 앞두고 저는 비행기 타는 대신에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3개월 후 수술을 했고 수술은 잘 됐습니다. 양쪽 난소와 자궁까지 모두 적출하는 대수술… 그러고 보니 수술은 모두 대수술이었습니다. 3년 만에 4번의 수술이라… 저는 기적이 별건가 뭐, 새로운 암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났으니 이게 바로 기적이지 생각하며 용기를 일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게다가 암은 언제나 장, 간, 난소 등 적출이 가능한 부위에 생겼고 그 또한 감사했습니다. 장이야 워낙 기니 3분의 1 정도 잘라낸 후에 생긴 약간의 불편은 감수할 만했고, 간은 절제 후 2주면 제 모양으로 바로 복원된다고 하고, 난소나 자궁도 더는 생육하여 번식할 일이 없으니 뭐 얼마나 다행인가 스스로 위안하며 그저 뼈에만 전이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뼈는 그렇게 쉽게 뚝뚝 잘라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술 후 약 7개월 만에 암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꼬리뼈에요. 이제까지와는 달랐습니다. 뼈로 전이되지 않기만을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드디어 뼈에… 그때 많이 지쳐있던 저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이제 이 긴 싸움이 종착역을 향해가는 것 같은 마음이랄까 저는 그저 의사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에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 역시 많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수술할 필요성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재발성 암이기 때문에 수술해도 또 암이 생길 터이므로 이렇게 계속 수술을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고,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대수술을 받아온 데다 중간중간 쉬지 않고 항암이며 방사선 치료이며 해왔기에 수술을 계속 감당하기엔 몸이 너무 약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전 수술을 원했습니다. 재발성 암은 무슨… 왠지 이번에 수술하면 다시는 암이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몸에 암 덩이를 갖고 있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이번 수술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라 그에 따라 큰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선 수술은 암이 있는 꼬리뼈를 잘라내고 2차로 잘라낸 부위에 방사선과 의사가 무슨 시술을 하고 3차로 성형외과 의사가 꼬리뼈가 없어진 빈자리에 제 배에서 근육을 떼어다가 메꾸고 다시 근육을 뗀 제 배에는 소나 돼지에서 축출한 동물의 근육을 대치하고…등등 복잡했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니고 난 그냥 마취하고 깨어나면 되니까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의사는 마지막으로 제게 이번 수술을 하기 위해 꼬리뼈에 붙어있는 직장을 임시로 잘라낸 후 수술 후 다시 이어붙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제 직장이 이미 한번 수술을 해서 절제를 했기에 너무 짧아서 이어붙일 수가 없으니 인공 항문을 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전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수술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그 오랜 시간 수술이며 항암이며 하며 버텨왔나 그야말로 자괴감에 빠져 수술을 거부하는 저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가족 등 저를 뺀 모든 이와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인공항문이라니 적어도 제게는 끔찍한 그 일을 결국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토록 끔찍하게 여기던 그 일을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수술이 잘 되어 꼬리뼈도 자르지 않고 인공항문도 안 달고 그야말로 제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지력 있던 영험한 의사의 예언대로 수술 후 채 2개월도 안 돼 암이 다시 생겼습니다. 이번엔 왼쪽 골반 깊은 곳에… 이번에 생긴 암은 다른 장기에 너무 가깝고 게다가 제 다리의 신경에 붙어 있어서 도저히 수술은 불가하답니다. 이젠 항암밖에 없다 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2주마다 한 번씩 항암치료 중입니다.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한답니다.

이렇게 긴 시간 투병을 해온 저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힘을 얻는 것은 우선 바로 가족입니다. 이제 가족 자랑을 좀 하겠습니다. 먼저 제 남편입니다. ‘세상에 이런 남편 또 없습니다’라고 할 만큼 정말 제가 봐도 대단한 남편입니다. 항암으로 인해 탈모가 있을 거란 의사 말에 항암 안 한다고 울고불고하던 저를 달래던 남편은 저보다 먼저 머리를 빡빡 밀고 와서는 “봐 별거 아니야! 내가 같이 있잖아”라는 말로 제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인공항문을 달아야 한다는 말에 낙심하고 수술을 거부하던 저를 달래며 남편이 건네준 말,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깨끗이 관리해줄게!’ 그렇게 남편은 언제나 든든히 제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항암으로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울부짖는 절 보며 옆에서 아무 힘이 돼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우는 남편이 정말 고맙고 또 백배는 미안합니다. 그런 남편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제겐 대학 1학년인 딸과 올해 대학에 가는 아들이 있습니다. 처음 제가 암 진단받을 때, 제 아이들은 13살, 12살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엄마 때문에 맘껏 사춘기도 누리지 못하고 절 돌보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암과 싸우는 동안 비어있는 엄마의 자리를 제 딸은 훌륭하게 채워주었고, 제 아들은 누나의 말에 잘 따르며 듬직하고 돈독한 남매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제게 말합니다. ‘엄마 조금만 참아. 하나님이 엄마 꼭 고쳐주실 거야. 절대로 지금은 안 데려가실 거야. 왜냐면 난 엄마가 없다는 게 상상이 안 돼. 그래서 매일매일 기도해. 그러니까 엄마도 아파도 조금만 참아.’라고요. 참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제게 좀 더 시간을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암이라는 병과의 싸움을 하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많이 낙심하고 절망한 적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제 삶이 암이라는 큰 벽 앞에 마주쳤을 때 제게 든 생각은 ‘왜? 도대체 왜?’였습니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가족 중 그 누구도 아닌 저라서 참 다행이고 그래서 더 없이 감사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마치 거친 물살을 거슬러 회귀하는 연어처럼 저의 마음은 종종 ‘왜?’라는 질문 앞에 멈추어 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일으키시고 마치 무빙워크에 옮기시듯 저를 세상 속에 내놓으시고 고비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저는 이젠 더는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제 옆에서 동행해 주셨습니다. 우선 이런저런 이유로 몇 해 동안 미뤄져 왔던 남편의 직장보험이 제가 병원에 가기 직전에 시행된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MD Anderson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저를 치료하시려고 보험을 허락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보험을 유지 못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지속적인 항암치료만 하면 되기에 꼭 MD Anderson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님께서 갑작스럽게 혼자 미국을 오셨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였지만 어머님 덕분에 아이들 걱정 없이 치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정말 기적 같은 일인데요. 그 당시 전 당장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수술 일정이 석 달 정도 기다려야 해서 걱정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밀 검사 이틀 후 새벽 첫 시간에 수술받으려던 환자가 갑자기 수술을 취소해서 제가 이틀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저희에 사정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저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전 저의 병은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게 이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어쩜 제 삶을 미리 이렇게 세팅해 놓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왜일까? 아마도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성숙해가는 저를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얼마나 더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한된 삶 속에서 뭔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가치 있는 삶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제 은사를 생각해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진작에 제게 사역을 맡겨주셔서 마냥 주저앉아있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목녀 사역입니다. 많은 분이 저를 걱정하셔서 먼저 몸부터 챙기라고 하시지만, 솔직히 저는 시간이 매우 아쉽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수술하거나 입원으로 인한 때 말고는 목녀 사역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육신의 제약을 핑계로 하나님 일에 소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겨우 밥이나 해 먹는 최소한의 삶이지만 그래도 목장 식구들과 함께 모두 한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삶을 나눌 때가 제겐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오래오래 갖고 싶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VIP를 보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장 식구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 더없이 행복하고, 또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렇게 목장 식구들의 영적 상태를 지켜보며 갖는 약간의 긴장도 제겐 일어나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아픈 목녀를 대신해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들도 모두 언젠가 목자가 되고 목녀가 되는 그때를 위해 좋은 훈련이 되는 것 같아 그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 씨엠립 목장 식구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지난번 2번의 간 수술 후 난소에 암이 재발하기까지 거의 1년은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암이 재발했을 때 돌아보니 그 1년의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몸 나으면 선교도 가고 사역도 더 열심히 해야지 했지만 정작 다시 못 올 그 귀한 1년의 시간 동안 전 염려와 근심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다음은 없다는 것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부르실 때 순종하며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 선교 헌신을 했고 다행히 은혜로운 선교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무한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나이 듦도 죽음도 저에게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이틀 전 항암을 끝내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기쁜 날 귀한 예배에 저도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기쁨의 간증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저는 이렇게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게 깊은 평화와 풍성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참 좋습니다. 얼마 전 폐와 척추 13번째 뼈에 다시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일단은 그냥 하던 대로 같은 약으로 항암치료 중입니다. 다행히도 폐나 척추의 암으로 인한 통증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골반에 암이 신경을 누르고 있어 그로 인한 통증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너무 아플 때 모르핀으로 잠시 통증을 가라앉히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안 먹으려고 합니다. 멍하니 무기력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기 싫기 때문입니다. 이 통증 또한 평생 갈 거라 합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순간적으로 빠져 툭하면 넘어집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 오는 것 빼고는 웬만해선 혼자 외출을 잘 안 합니다. 그리고 다리도 아픈데 왜 그리 높은 구두를 신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낮은 구두 신고는 몇 발짝도 걷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병이 맘까지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처음 간증 제의를 받은 그 시간 저는 아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생각지 않은 제의에 걱정과 고민이 겹쳐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절 보며 아들이 무슨 일이냐 물었습니다.

“엄마가 간증을 하게 됐는데 어쩌지?”

“왜? 뭐가 걱정이야? 그냥 엄마 얘기하면 되지.”

“글쎄 엄마 얘기 뭐라고 해? 하나님이 고쳐주셨어야 간증이 될 텐데 아직도 엄마는 싸우고 있잖아.”

“No, 엄마 하나님이 100% 고쳐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씩씩하게 잘 있잖아. 그거 얘기하면 아직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생각할 거야. 도대체 what kind of 신이길래 저 아줌마가 하나님 잘 믿지? 되게 궁금하네? 그러면서 하나님 믿게 될 거야. 그럼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간증을 앞두고 걱정하는 제게 아들은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아들은 지금 청소년 목자입니다. 딸도 어린이 목자로 최영기 목사님께 대표로 선서하고 임명장도 받고 대학입학 전까지 청소년 목자였습니다. 네 식구 중 셋이 목자입니다. 이 또한 제겐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혹시 저 아프다고 모두 목자 때려치우고 방황하면 어쩌나 했는데 모두 전보다 더 열심히 사역하고 섬기고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 참 많은 분이 기도해주시고 염려해주시고 가슴 아파해주십니다. 제게 이런 육신의 병이 없었더라면 결코 체험하지 못할 큰 사랑입니다. 우주에 충만한 사랑에 빚진 자로서 더 열심히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가끔 쉬어갈 때는 있겠지만 좌절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일에 많이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게 주신 은사를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목녀 사역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많은 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좌절할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길 힘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들은 이야기지만, 재빠른 달리기 실력을 갖춘 토끼가 어이없이 거북이에게 지는 수모를 당한 것도 토끼가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은사를 겨우 거북이와의 경주에 사용했고 그나마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토끼가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울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또 다른 경쟁자에게 자신을 내보이고 싶었다면 결코 토끼는 중간에 쉬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희에게도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를 별로 중히 여기지 않고 남에게 버릴 때 우리 또한 어리석은 실수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주저앉아 포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끼가 거북이와의 경주에 지긴 했습니다만 토끼는 토끼이고 여전히 재빠른 달리기 실력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그 은사를 최선을 다해서 귀하게 사용하시길 바라고 계실 겁니다. 그 능력의 은사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참 많은 간증을 들었고 감동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간증하는 이들의 하나님이 왜 내게는 보이지 않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간증 속에서만 계신 것 같아서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4장 5절 말씀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느냐?”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삶 속에 간증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제 옆에서 저와 동행하시고 계신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그래서 저의 간절한 소망은 그렇게 하나님과 발맞춰가며 언젠가 제가 천국에 초대받는 그 날까지 마음으로 굳건하게 지내며 씩씩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의 말대로 그러한 저의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궁금해하고 관심 가지다 주의 자녀가 된다면 저 더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엠립 모미진

목장 간증: 사랑

By | e참빛

지난 5년 동안 제가 경험한 목장 생활을 간증하고자 나왔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나서 보니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마 초등학생 일기에도 있는 제목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사랑’이라 붙여 봤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들 둘을 두고 있는 가장으로 메디컬 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5년 전 미국에 직장을 얻게 되어 휴스턴에 오게 되었습니다. 휴스턴에 도착 후 바로 휴스턴 서울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지금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범적인 VIP다 나도 저런 VIP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끄심과 벧엘 목장 식구들의 사랑이없었으면 저희는 오늘 이렇게 목장 발표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부활입니다. 사실 저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꾸준히 다닌 건 아닙니다. 처음 서울 교회에 다니며 맘씨 좋은 목장 식구들을 만나 교회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고 교회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확신은 없었지만, 영접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상황과 분위기에 밀려 영접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저희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너무나 좋으신 목장 식구들이었기에 직접 대면하고 차마 교회를 못 가겠다고 얘기할 수가 없어서 저희는 짧은 전화 통화 몇 마디로 저희의 의사를 밝힌 후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주 전화하시던 목자님도 저희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셨는지 전화도 없으시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일 년 여 가량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가 이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부부는 도움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도움을 주기도 싫어한다고 저희가 그랬습니다. 그 이사 날도 저희는 ‘그래 우리끼리 조금씩 하면 되지!’ 하며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목자 목녀님께서 오셔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금식 주간이라며 같이 식사도 못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저녁 저희 부부는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과 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이사 그다음 주부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목자 목녀님을 통해서 행해졌고 저희에게 전달되어 다시 일어나는 삶을 겪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이사 날이 저희가 진짜로 영접한 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사역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조금 답답했던 부분은 저희의 신앙이 빠르게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느리면 행동으로 시작하자는 생각을 했고 사역이 저희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처음 교회를 떠났던 이유 중 하나가 교회 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거였기에 사역한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역 박람회가 시작되었고 저희는 사역 박람회 마지막 날이 되기까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사역 박람회 마지막 주일날 저희는 아이들을 맡기러 유아 유치부 방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저희 목장의 10년 차 베테랑이신 형제님과 자매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역하시는 선생님들이 아무도 안 계시고 목장 형제님이 5~6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계셨습니다. 10년이란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았고 저희는 어쩔 수 없이 형제님을 도와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저희 부부는 주저 없이 달려가 유아 사역에 사인하였습니다. 그곳에 목장 형제님과 자매님이 계셨기에 그리고 평소에 그들이 보여 준 신실한 모습이 있었기에 저희가 사역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는 나의 시간을 쪼개서 나가는 곳이 아닌 저희 삶의 그리고 가정의 일부분이 되었고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강한 연대감을 느꼈고 또 저희 신앙도 서서히 자랐습니다.

 

목장 및 교회 생활을 하면서 차마 풀어내지 못한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런 에피소드들로 저희 부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 시켜 주셨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단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의 영육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저희를 붙잡아 주실 것을 알고 그곳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희 목장 식구들이 함께 있어 줄 거란 것도 압니다. 지금까지 저희를 섬겨 주신 목자, 목녀님 그리고 벧엘목장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저희 목장에 이제 막 VIP 딱지를 뗀 형제님 가정이 있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목장의 막내 가정으로서 사랑만 받았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받았던 그 사랑을 VIP 형제님 가정에게 전해 주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목장 식구들이 저희에게 주었던 사랑을 기억하며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전하려 직접 오셨던 것처럼 실천하는 사랑을 보여 줄 예정입니다. 많은 분이 그렇듯 저도 성경 구절로 소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 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 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한일서 4장 20~21절).”

벧엘 목장 식구들 사랑합니다.

벧엘 도학원

구원 간증: 예배와 삶공부로 나를 변화시키시는 주님

By | e참빛

에콰도르 목장에서 성경 공부 교사로 신앙생활 잘 하는 형제님에게 목사님, 부흥 강사님들의 설교 CD, 책들을 종종 선물 받고 교회에 나오라는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저에게는 교회에 가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고, 또한 교회에 깊이 속해있지 않고 그냥 가벼운 형식적인 교회 생활,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이기적인 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니고 싶은 교회를 선택하기 전에 휴스턴에 있는 교회 들을 살짝살짝 쭉 둘러본 후에 선택하자고 형제님에게 의견을 제시했고, 형제님은 그러면 우선 에콰도르 목자, 목녀님께 나의 의사를 전달한 후에 제 뜻대로 따라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얘기할 준비를 하고 목자, 목녀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저의 자신 있던 확고한 의지는 그분들의 솔직함, 너그러운 이해심, 그리고 대단한 두 분의 설득력으로 저도 모르게 그분들의 의견에 따라 일단 몇 개월 나가보는 것으로 즐겁게 만남을 나누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마치 뭐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렇게 될 줄 예상하고 형제님은 그렇게 흔쾌히 승낙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목자, 목녀님과 만남 후 바로 며칠 뒤에 교회에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으로는 일종의 test가 되는 첫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첫 예배의 첫 찬양, 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목사님의 마지막 축도 기도까지 너무나 귀에 쏙쏙 들어오고 마음이 울컥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설교까지 기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너무 좋았다고 목녀님에게 예배후에 느낌을 말하자 그렇게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고 너무 기뻐하시며 그 말에 힘을 얻어 바로 저를 맛있는 죽을 먹게 하시고, 목사님과 인사 하게 하시고, 또 바로 생명의 삶 수강을 신청하셨습니다. 정말로 빠른 속도로 매 주일 제가 뭔가를 하여야만 했습니다.

오직 제 의지로만이 아니게 시작된 생명의 삶 공부에서 저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몇 가지를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은 제가 회개한 죄에 대해 용서하시고 그 후로는 기억조차 아니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명의 삶 공부 중에 목사님이 질문하셨습니다. 반복되는 죄를 짓고 또 잘못했습니다. 너무 죄송해요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그래 이번 한 번만 용서할께, 다음에 또 죄짓지 않게 조심해 “등등의…. 그런데 목사님이 정답을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또, 라니?”라고 말씀하시며 그 전의 죄를 전혀 기억 안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라서 그 “또, 라니?”라는 말이 집으로 가는 내내 제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2. 하나님은 제가 마음의 문 열기를 바라시며 계속 문밖에서 기다리시며 아주 아주 조금만 문을 열어도 그 틈을 비집고 라도 하나님은 들어 오신다는 목사님의 그 귀여운 행동 묘사에 처음에는 너무나 웃기고 한편으로는 놀랐고 그다음 계속 생각하니 하나님을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했고 계속 인내심 있게 저를 기다려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삶 공부 내내 눈물이 핑 돌며 울컥울컥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가 한번 되면 내가 하나님의 손을 놓아도 하나님은 나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잡고 계시므로 영원히 자녀가 된다는 점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4. 천국 가는 것에 우리가 해야 할 그 어떠한 대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구원받았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아주 쉬운 일에 감동하고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전에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을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알게 되고, 예수 영접을 하게 되고 또한 예수 영접할 때 기도 중에는 너무나 기쁘면서 머리와 얼굴이 뜨거워짐이 느껴지고 기쁜 눈물이 뚝뚝 사정없이 떨어졌습니다.

기쁜 마음을 이어 그렇게 하나님이 제 아버지 인 것이 든든한 기분으로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을 하였습니다. 옮긴지 얼마 되지 않는 직장에는 정말로 저와 맞지 않는, 말로써 항상 저에게 화살을 꽂아 제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그 사람이 변화되는 기적을 오늘 저에게 보여주세요.” 기대를 하고 직장에 도착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은 그 사람은 여전히 말로 저에게 화살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에 저는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방패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며 제마음에 그 화살들이 하나도 박히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저에게 기적을 이루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침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침례 받을 때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마치 느린 속도로 video 보는 것처럼 그 순간이 매우 느리게 그리고 선명히 느껴집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의 목사님의 천사 같은 눈웃음, 물에 들어갔을 때 굉장히 오랫동안 따뜻한 물에, 편안히, 마치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정말 포근한 평화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체험에 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자세히 말하지 않았던 나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다 맡기며 고쳐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체험 때에 뒤로 나가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셔서 저는 안전하게 구석 벽에 등을 대고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저 지금 걸음마 하는 아주 아기 같은 신앙 가진 하나님 딸이에요 절대로 심하게 그런 체험 안 하시게 하셔도 저 충분히 괜찮아요.”라고 기도드리며 하나님이 이런 기도라도 들어주시고 계시 다는 것이, 그냥 기쁜 감사의 눈물만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런 새로운 많은 경험을 하게 이끌어주시며 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희생해주시고 기도해주신 형제님, 목자, 목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에 나온 지 아직 3개월도 채 안 되고 아직 성경 말씀도 제대로 읽지도 알지도 또 기도도 자신 있게 남들 앞에서 못하는 어린 신앙의 저이지만 저는 이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제 손 놓지 않고 저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또 제가 커가는 것을 흐뭇하게 인내심 있게 바라보실 것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하는 기도가 아니고 그냥 편하게 아빠에게 말하듯, 또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기도조차도 항상 귀 기울여 주실꺼라는것을…. 이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는 요즘 너~무 기쁘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진심으로 심하게 사랑합니다.

에콰도르 김한영

감사절 간증: 주님의 손을 잡고 광야를 지나갑니다

By | e참빛

많은 성도님이 아시다시피 2006 년에 저의 가정은 남편이 신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단 2개월이라는 짧은 투병 끝에 소천하는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당시 저의 큰아이는 대학생이었지만 작은 아이는 아직 15살로 그야말로 저는 하루아침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싱글 마더가 된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보다 더 큰 충격으로 아무것도 실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 또 하나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제 인생에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휴스턴 서울교회의 후임 전도사로 오라는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담임목사님이셨던 최영기 목사님의 제안을 받은 후, 곧 제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가 그렸던 인생의 밑그림에선 예상치 못했던, 저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긴 출장을 끝내고 웃으며 현관문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던 남편은 영영 안 돌아왔고, 교회 청소년부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둘째 아이는 ‘Father and Son Camping’에 아빠가 없어서 참가를 못 한다는 사실이 금세 아픈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저는 곧 신학교에 입학했고, Southwestern 신학교 오리엔테이션 날 저는 1994년 남편과 함께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던 날 그랬던 것처럼,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지는 하염없는 눈물로 은혜롭고 아름다웠던 늦깎이 신학생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육학 수업을 위해 읽는 책들에는 당연히 미국 가정의 수십 퍼센트의 자녀들이 싱글 부모 가정에서 크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양쪽 부모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교를 중퇴할 가능성, 혼전임신의 가능성등 온갖 부정적인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렇죠. 제가 알던 가정의 그림은 분명 ‘아빠, 엄마, 자녀 1, 자녀 2’ 였고 행복한 여자는 든든한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저는 어느새 어두움으로 내달을 수밖에 없는 결손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광야’(wilderness) 하면 어떤 상상이 되십니까? 제가 중동의 광야를 가보니 그곳은 푸른 나무가 없는 바위산과 흙먼지 날리는 모래언덕, 먹을만한 열매는 보이지 않는 곳, 목이 타서 헤매거나, 동물들에 물려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광야는 고난이 약속된 곳입니다. 저의 삶도 그래 보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그리 신날 것 없는, 모든 것이 남편의 죽음이라는 검은색 그림자로 퇴색된 인생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 게 ‘내가 이전에도 너와 함께 하였듯이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완전한 삶이 있는 곳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두워진 광야에서 광야의 지도를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만 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이끌어 광야에 숨겨진 비밀스럽고 놀라운 축복을 굽이굽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의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동안 제가 아빠의 몫까지 부모 역할을 잘해주었어야 했는데 신학교와 full time 사역을 병행하면서 저는 다른 부모님들처럼 아이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엄마가 될 능력도 체력도 없었습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를 혼자 두고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와 밤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청소년부 전도사님, 선배들, 친구들과 함께 찬양하고 친교하고 배우며 아이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열정의 삶을 익혀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항상 집에 없는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천사를 보내주셨었는데 바로 옆집에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우리 아들과 같은 종목의 운동을 했고,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든든히 자리를 잡은 이웃 어른을 보내주셔서, 늘 아들은 drive way에서 이웃분으로부터 전문적인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아이가 대학에 갈 무렵엔 가만히 보니 엄마는 해줄 것 같지 않아 보였는지 본인이 일부러 직장 휴가를 내어 저 대신 college tour를 시켜줘도 되겠냐고 물어보기에 “Of course, thank you! 라고 제가 대답을 하여 본인이 운전해서 데려갔다 온 일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대학에 진학하여 즐겁게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목장에서 성장한 두 아들은 하나님의 인도로 알맞은 시기에 교회 안에서 믿음 좋은 자매들을 만나 각각 목자목녀로 섬기는 가정도 이루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유아유치부와 사랑부엔 어린 자녀들을 위해 항상 많은 사역자의 손길이 필요한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역부서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저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많은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그분들의 도움과 기도로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게 도전과 가르침을 주시는 목회자님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스태프들, 목장, 사랑과 이해심 많은 성도님이 계셨기에 자칫 외롭고 소외될 수 있는 저의 삶에는 즐거운 교제들이 풍성했고, 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또 새로운 사역을 꿈꾸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감사절 아침, 어떤 고난도 우리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자리에는 여러 모습의 고난으로 인해 광야와 같은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으신 줄 압니다. 갑자기 찾아온 질병, 경제적 어려움, 신분, 자녀 문제, 풀리지 않는 관계의 아픔들로 황량한 광야를 걸어가는 것처럼 하루하루 걸어가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걸어가면 고난의 길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황량한 광야에서 바위에서 나는 물을 마시고, 불기둥, 구름 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남모르는 기쁨들을 체험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묵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찬 로마서 8장 35절에서 39장 말씀을 나누고 마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백혜원 전도사

목자 임명 간증: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지난 2년간 뜨미아르 목장에서 목장 오빠로 지내다가, 이번에 살라띠가 목장으로 분가해서 목장 아빠로 섬기게 된 문재만 입니다. 많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저에게 위로의 빛으로 찾아와 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지금 이 자리에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6장 9절 말씀입니다. 저는 계획하는 걸 좋아합니다. 준비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순서대로 계획했던 일들을 이루어 나가면서 짜릿한 행복을 느끼지만, 반대로 단 하나라도 잘 풀리지 않으면 수많은 근심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서 있는 것 입니다. 저는 못하는 게 많습니다. 어렸을 때 유치원을 다녀와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 “재만이 오늘 유치원 어땠니?” 하루에 일과에 관해서 물으시면, 저는 “괜찮았어요.” 그 대답을 듣고 당황하셨는지 어머니께서 그때 제가 맛있게 먹고 있던 된장찌개가 어떤지 물으시면, 저는 “괜찮은 거 같아요.” 어렸을 때 저는 감정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드라마를 봐도, 다들 ‘송중기, 송혜교’ 주인공이 된 거처럼 눈물을 훌쩍일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목장 나눔 시간에는 다들 공감해주며 기도해줄 때 저는 ‘영혼 없는 리엑션’으로 국어책 읽는 거처럼 응원해주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눈에 땀’을 주셨습니다.

목장 식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했을 때 ‘기쁨의 눈물’을, 목장 식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간다고 느껴질 때 ‘아픔의 눈물’을 주셨습니다.

저는 음악을 못 합니다. 악보도 읽지 못하고, 고음불가, 박치인 제가 목장에서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천천히4/4 박자, 기타 치면서 가장 처음으로 배운다는 G 코드, 그리고 그 두 개로 할 수 있었던 ‘옛날 찬양들,’ 그런 저만 아는 찬양을 하면서 매주 목장 시간에 혼자 땀을 흘리며 독창을 했었고. 그나마 그 찬양들이 익숙해질 때 어떤 목장 동생이 그러더군요, “오빠… 우리 새로운 찬양 하면 안 돼요?” 매주 목요일 밤 찬양 준비하는 게 부담이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찬양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매주 목장 식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찬양이 많아서 고민입니다. 저는 요리를 못합니다. 항상 라면을 요리라고 생각하던 저는, 요리재료가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습니다. 마트에 가보니 간장이 하나가 아니에요…. ‘양조간장, 진간장, 국간장, 조선간장…’ 또 고추장 더 많아요…. ‘태양초 고추장, 찹쌀고추장, 현미 고추장, 순창 고추장…’ 그리고 ‘순한 맛, 보통 매운맛, 매운맛, 매우 매운 맛 많이 안 해본 저는 매주 금요일 목장을 준비하면서 요리 공부를 합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어주는 배고픈 목장 식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가장 못하는 건 순종이였습니다. 누군가 하라 하면, 절대 안 하고, 하지 마라 하면 한번 해볼까? 고민하는 이런 뺀질거리는 성격 때문에 그동안 목자 목녀님께 큰 근심을 드렸었고. 또 그런 고집과 욕심 때문에 바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멀리 돌아와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막 분가한 4개월 차 새내기 싱글 목자입니다. 지금 앞에 계신 여러분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목자님’이라는 호칭은 저에게는 많이 부담이고 도전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저의 능력과 계획이 아닌 항상 부족하지만, 그때마다 능력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연출에 목장 드라마를 기대해봅니다.

드라마 제목: “부르신 곳에서”

연출: 하나님

출연: 문재만과 살라띠가 목장 식구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

내용: 목자로 헌신하면서 기대 반 걱정이 많아진 나, 매주 도전이지만 내 삶을 이끌어 주시는 따스한 성령님을 만나서, 달콤 반전 있는 아름다운 목장에 모습을, 코미디 풍으로 그린 드라마.

살라띠가/문재만

부부의 삶 간증: 삶공부를 통해 생긴 부부의 소망

By | e참빛

저희 부부는 가정교회를 하는 울산의 다운공동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2017년 8월부터 이번 달까지 남편의 연구년으로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가족입니다. 이곳에서 생명의 삶을 들은 뒤 다음 삶 공부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부부의 삶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저희 교회에는 아직 부부의 삶이 없으니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우리끼리 싸운 뒤 해결이 안 되어 목장 모임에서 오픈하여 도움받고 수습을 했던 것도 생각이 나면서, 앞으로 목자 목녀의 길을 가게 될 수 있는데 이 곳에서 우리 부부 사이를 말씀 앞에서 점검받아보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 수강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13주 동안 진행된 부부의 삶은 마치 또 하나의 특화된 목장 모임과 같았습니다. 부부 관계에 기틀이 되는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 매일 큐티와 기도가 숙제로 주어지고 수업시간에 만나면 매주 감사한 내용 및 큐티 묵상을 나누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매주 주제와 관련된 말씀과 질문들에 대한 각자 부부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배워가고 점검하는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부부의 삶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숙제 중 하나는 카우치 타임이라고 있는데 일주일에 5번, 30분씩 카우치에게 앉아서 다른 모든 이야기를 배제하고 오롯이 두 사람의 이야기만 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우리 부부가 주로 하는 아이들 이야기마저도 하면 안 되는 이 숙제가 있음을 보고 남편은 당황해했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참 기뻤습니다. 늘 결혼 뒤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귀결되어 버리는 듯한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던 터라 이 카우치 타임을 통해 나의 갈증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카우치 타임에 대한 인식 차이는 결국 첫날부터 투덕거리며 우리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저는 혼자 울면서 이야기하고 남편은 듣고 있는 카우치 타임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카우치 타임을 마치고 나니 뭔가 남편에게 불만이 생기면 부풀어 오르는 불만 주머니에 바람을 빼내어 버린 듯한 편안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일 년에 한두 번 이 불만 주머니가 꽉 차오를 때 어떠한 일이 계기가 되어 빵하고 터져 싸우고 맘이 상하게 되는데 그 에너지를 미리 맘 상하지 않고 빼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남편과 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들과 좋았던 것들을 적절히 조합한 저의 이야기를 남편이 주로 들어주며 그야말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좋은 시기도 몇 주…. 용서의 훈련이라는 과를 배우며 제 안에 이미 그때 일은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용서하지 못한 제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남편의 필요를 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사는 제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불편한 마음은 그때 그 정도 한 것도 충분한 것 아니냐는 마음속 항변이 되어 결국 카우치 타임 때 불평으로 튀어 나와버렸고 몇 주간 꾸준히 저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실천하였던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부부의 삶을 하는 동안 부부의 싸움을 평상시보다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별일도 없는데 매일같이 30분씩 붙어 앉아 오롯이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소하게 투닥거리는 시간을 반복하면서 결국 우리가 싸움에 이르는 패턴을 벗어나는 지혜를 배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듣는데 얼마나 느리고 무딘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 멋대로 화내는 데에는 어찌나 빠른지 보게 하셨습니다.

삶 공부 기간 동안 참 좋았던 것은 이렇게 투닥거리다 삶 공부로 만나면 

매주 주제에 맞추어 관련된 말씀들을 묵상하며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법을 부부가 같이 동의하며 배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임에도 이기적인지라 혼자만 그런 말씀 배웠으면 억울하다고 나만 이렇게 해야 하냐며 항변하며 흘려버렸을 말씀들을 부부가 같이 배우니 서로 부족한 존재임을 보며 이제 같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도 불특정 다수에게 두루뭉술하게 적용하여 대충 주님 뜻대로 살고 있는 착각이 들었던 말씀들을 정확하게 내 배우자를 가리키며 “너 이렇게 하고 있니?”라고 물으시는데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기에 결국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저와 남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정확하게 지칭하며 아내 된 이들에게 향하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마저도 페미니즘적이 생각이 강하였던 저는 사도 바울이 결혼을 안 해 보셔서 저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고“남편이 주님 뜻과 다른 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어쩌란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스~을쩍 비껴가려고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제게 부부의 삶을 하면서 주님께 하듯 하라고 말씀이 제 수준에서 이해가 되는 일은 정말 감사하였고 우리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해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여러 가지 경험들을 통해 제 삶에 원치 않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결국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이끄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제 남편이 간혹 실수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정을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는 믿음과 신뢰를 버리지 않는 것, 남편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나와 아이들의 유익과 행복을 정말 원한다는 믿음과 신뢰를 지키며 그때를 기다리는 것. 이것이 제 수준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삶에서 적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돌아보니 부부의 삶을 하는 동안 둘이서 작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합니다. 좋다가 힘들다가 또다시 애틋해지는 짧은 기간을 돌아보니 가장 좋았던 시기는 남편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삶에서 실천해 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시기는 뭔가 갈등이 있는데 그 갈등의 뿌리 깊은 나의 원인이 보이질 않고 상대방이 부족함만 보였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가장 애틋했던 시기는 내가 나의 부족함을 보게 되었는데 그 부족함은 이미 남편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 허물을 덮어주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결혼 10년 차에서 15년 차에 권태기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런 권태기가 오기 전에 우리의 애정을 지켜가는 지혜를 부부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음이 참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부부의 삶을 하면서 필수적으로 암송해야 하는 구절이 6구절 있는데 이 구절들을 외우기도 하였고 이를 삶 공부 동안 계속 묵상하며 적용하는 훈련을 해서인지 적절한 시기에 생각이 나서 우리 삶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고 있음도 참 감사합니다. 부부의 삶을 마치고 나니 부부 생활의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늘 불편하다고만 느꼈던 상대방의 모난 부분과 나의 모난 부분이 서로를 다듬어 주는 다듬잇돌이 되어서 살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세상 그 누구도 공유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시절을 함께 한 반려자로서 남게 되리라는 소망…. 이 귀한 소망을 주님과 함께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저의 남편과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마그레브/송정선

부부의 삶 간증: 삶공부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지난 13주의 부부의 삶 과정은 지난 12년간의 부부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 보다 더 낫은 부부의 삶을 그려갈 수 있었던,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제가 35세, 그리고 아내가 30세 되던 2006년에 결혼하여 올해 12년 차 된 부부입니다. 아내를 만날 당시, 저의 나이는 34세, 직장은 울산에 있었고, 아내는 전주에 직장이 있어 전화로 주로 대화하고 주말과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데이트하고, 만난 지 1년 정도 교제 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아내가 울산으로 발령을 받아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울산에 정착하게 되었고, 울산다운 공동체교회에 출석하여 목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가정, 직장 그리고 믿음 생활에 균형을 이루며 아내와 저 모두 주어진 생활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것 같습니다. 2017년에는 두 번째 연구년을 휴스턴으로 오게 되어, 가정교회의 본산인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많은 섬김과 은혜로운 예배, 좋으신 분들과의 교제 등 많은 것을 누리고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12년의 부부의 삶을 되돌아보면, 매년 1년에 한두 번 정도, 작은 부부 싸움을 했던 것 같고,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싸움도 두 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부의 싸움 패턴은 이렇습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및 대화 기술의 부족으로 오는 의사전달의 미숙으로 말다툼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한계가 이르면, “알았으니 이제 그만해….”, “시끄러워“, 라며 화를 내며 대화를 중단시켜 버립니다. 한 번은 싸움 중 제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난폭한 행동을 표출하여 싸움 상황을 종료시킨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일단 물러섰다가 상황이 진정되면 다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저는 화를 낸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조금 누그러져, 다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한 후, 서로 사과하고 부부 싸움은 정리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거치지 않아도 될 한 단계가 항상 있었고, 이번 부부의 삶 과정은 이 단계의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카우치(Couch) 타임을 통해, 나는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아내는 단지 덮어 두었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것들이 아내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쓴 뿌리로 자리 잡아서 지금의 우리 부부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카우치 time은 매일 20~30분 정도 카우치나 테이블에 편안하게 앉아 오직 부부만의 얘기를 하는 시간으로 “부부의 삶” 내내 해야 하는 제일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묵혀두었던 얘기를 꺼내어 정리하고, 나중에는 일상의 일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 등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말씀처럼,

카우치타임을 통해 부부만의 대화를 함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후, “4과 용서의 훈련”과를 통해, 지난날 서로 상처를 준 것들에 대해 다시 짚어보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가져, 과거의 일들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되었고, 저희 부부가 더 친밀하게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큰 숙제 중의 하나는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잘 참다가도 어느 한계치에 도달하면, 격하게 화를 분출하기 때문입니다. 

“감정 다스리기”와 “분노 다스리기”과를 통해, 자기에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화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성경적인가를 배웠습니다.

특히 잠언 29장 11절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 “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분노에 휩쓸러 분노 때문에 난폭한 행동이나 심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갑질 및 분노를 잘못 다스려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많은데, 나 또한 가정에서 ”가끔“ 갑질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회계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부부의 삶 강사이신 김은미 목녀님의 말씀처럼 화를 알람처럼 활용하여, 화가 났음을 인정하고 나의 감정을 주변 사람에게 솔직하게 표현해야 하지만, 분노의 노예가 되어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특히 요쯤은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저의 반응이 나의 상한 감정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아닌, 자녀들의 잘못을 효율적으로 지적하고 향후 그 행동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지혜롭게 지도하는 것이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이주 전, “부부의 삶” 강사이신 김은미 목녀님의 집에 모여 부부간 사랑의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의 반성문 같은 편지를 아내에게 읽어 주며, 쉽지는 않았지만 유익했던 부부의 삶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젠 “부부의 삶” 과정은 끝났지만, 하나님이 부쳐준 한 팀으로, 한 몸이 되어 서로서로 이해하고, 같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부부의 삶”과 정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과제로 남습니다. 기억의 남은 실천 과제는 카우치 시간의 지속적 활용, 대화식 기도법 활용, 아이들을 독립시키는 연습, “12과 만족스러운 부부생활”에서 약속했던 아내가 원하는 3가지 과제 실천 그리고 주요 기념일 챙기기 등입니다.

마그레브/구인수

집사 안수 소감 간증: 라몰리나 최성규

By | e참빛

이번 간증소감문을 준비하면서 제가 휴스턴 서울교회를 다닌 지 벌써 17년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강산도 변한다 하는데 변화된 저의 삶을 돌아보며 저와 동행하시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저는 휴스턴 서울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 저의 삶의 목표와 방향이 정해지면서, 저의 인생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저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알게 되면서, 이젠 저의 삶이 조금은 단순해져 가고, 조금은 여유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생명의 삶 공부를 들었던 그 첫 수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삶 공부 첫 시간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온 우주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랑이 나와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은 그 하나님의사랑이 뜨겁게 제 마음속 깊이 다가왔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던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잔잔히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저는 안 믿는 가정의 권위적이고도 엄하신 부모님 밑에서 제법 말 잘 듣는 모범적인 둘째 딸로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자는 남편 잘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것이 제일이라 늘 말씀하셨고,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저에게는 특별한 미래에 대한 꿈도, 별다른 목표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생활 기록부에 장래의 희망을 적는 란에는 그 흔한 선생님, 간호사 대신에 저는 늘 ‘현모양처’라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 후에도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소극적인 성격에 걸맞게 특별히 뭘 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남편이 돈 잘 벌어 올 수 있도록 뒷바라지 잘하고, 딸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이고, 삶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왔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 관심도 없었고, 저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목녀의 자리로 불러 주셨고, 목장 식구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게 하셨습니다.

VIP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망도 생기게 하시고, 섬김에서 오는 기쁨도 알게 하셨으며, 기대를 가지고 기도했을 때,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변하고, 아슬아슬하여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았던 위기의 가정이 극적으로 회복이 되는, 크고 작은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게 하셨습니다. 항상 평탄한 장미꽃 길만은 아니었지만, 어렵고 힘든 일, 갈등과 좌절을 겪을 때에도 인내하며 하나님을 믿고, 더욱 신뢰해야 함을 깨닫게 하셨고 부족하고, 제 삶 속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목녀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특권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집사 아내라는 새로운 사역으로 불러주시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처음 남편이 집사 후보로 선출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거운 부담감으로 인해 잠시 망설이며 갈등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실 때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순종하기로 결정하였고

저희를 어떻게 다듬어가시며 사용하실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도 있습니다.사실 집사 아내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보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하신 목녀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따라 하고, 하나씩 배워가며,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몰리나/최성규

집사 안수 소감 간증: 라몰리나 목장 최철호

By | e참빛

어릴 적에 곱게 색칠된 부활절 달걀 두 개를 양손에 받아들고, 조심스레 집으로 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마 그때부터 교회라는 곳은 참 좋은 곳, 풍요로운 곳이라는 인식이 제 어린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어 왔던 것 같습니다. 그 달걀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날부터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으리라 생각하니, 오늘 이렇게, 안수집사가 되는 자리에서 제 마음이 벅찬 감동과 감사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먼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작년 10월 중순, 이수관목사님으로 부터 집사 후보 축하 이메일을 받고, 시취식, 교인투표를 거쳐 오늘 안수식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경험하고 느꼈던 부분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취식은 저에게 참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우선 시취식라는 낯선 단어가 주는 짐작할 수 없는 생소함과 난해함. 시취인지 숙취인지 어감상으로 모호하여 난처한 생각도 해보았고, 어찌 보면 무슨 중국 무술영화의 뜻모를 한자 제목 같기도 하여 결코 친근해질 수 없는 이만저만 불편한 단어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시취란 “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무과를 위한 시험과정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시취식이 마치 무슨 장원급제과정은 아니더라도 입사할 때 면접시험 보는 과정은 되겠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신선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뿐. 시취식이라는 것이 강단에 올라가 눈부신 조명 아래 성도님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목사님들과 집사님들의 구두 질문에 바로 대답해야 하는 방식이고, 게다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예상문제도 전혀 없다 보니 무엇을 질문하는지 짐작할 수도 없고, 혹시라도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쩔쩔매게 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시취식 3주 전 시험 준비를 위한 책 한 권을 목사님께서 선물로 주셨는데, “영적리더쉽”라는 신앙 서적이었습니다. 최근에 내용이 보충되어 더욱 두툼해진 개정판이라 조금은 더 부담스러웠지만, 시취식날에 대한 그 염려나 두려움에는 비길 바가 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가며 만나는 집사님들이 넌지시 건네오는 인사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준비 잘 되어 가십니까?”라고 점잖게 물어봐 주시던 집사님. “아직 한 번도 다 못 보셨어요. 한 세 번은 반복해서 그 책을 읽으셔야 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시질 모르겠네요.” 하며 걱정까지 해주시던 집사님.

“여태껏 시취식에서 떨어진 집사 후보는 한 분도 없었습니다. ”라며 위로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멘트로 저를 더 긴장하게 만드셨던 집사님.

“작년에 되신 분들은 다 백 점 맞았는데……. 더욱 분발하세요”라며 응원해주시던 집사님 내외분.

“번역본보다 원본이 정리하기도 쉽고 이해가 빨리 되니, 영문본을 구해서 공부해보세요”라고 조언해주시던 학구적인 집사님.

“아니 지금 이 시간에 공부 안 하시고 결혼 축하파티에 와계시면 어떻하세요?” 얼굴은 심각한데, 목소리에는 장난기 가득하던 집사님도 계셨습니다.

집사님들의 여러 가지 말씀과 팁들이 앞으로 동고동락할 식구를 맞아주기 위한 환영의 인사로 제게는 들려왔습니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관심 가져주시고 웃음으로 대해주신 집사님들의 친근함이 제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와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특히 시취식에서 보여주신 목사님들의 배려 깊은 마음과 집사님들과의 질의응답과정을 통해, 함께 웃기도 하고 어떤 질문에서는 진지하게 소통하는 가운데, 우리 서울교회 리더들의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만 해도, 사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영적리더쉽과 관련한 주옥같은 내용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기 시작하였고, “ 리더의 준비”라는 3장에 이르러서는 제 마음에 뭔가가 쿵 하고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영적 리더쉽이란 인간 쪽에서 지원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시고 맡기실 일을 정하시며, 하나님께서 영적 리더를 손수 키우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부담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었던 것을 회개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자세를 낮추어 다시 읽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가볍게 책을 읽으려 했던 마음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다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히 집사 시취식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말씀을 기대하며 바르게 듣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시취식 준비과정이 저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사로서 순종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며,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선임 집사님들을 따라, 보고 배운 대로 겸손하게 실천하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라몰리나/최철호

 

청소년 부모의 삶 간증: 쥬빌레 목장 김미영

By | e참빛

유치부 부모의 삶을 졸업하고 이 자리에서 간증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년이 지나 다시 청소년 부모의 삶을 졸업하며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7학년인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때랑은 달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어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마음에 삶공부를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만 제대로 태어나게 해주세요’했던 아이였는데 아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제 욕심도 같이 키웠습니다. 공부도 잘하면 좋겠고 운동도 잘하면 좋겠고 하나님도 누구보다 잘 믿었으면 좋겠고 성격도 쿨하고 예의 바르며 외모도 멋지게 커가기를 계속 욕심을 부렸습니다. 40년을 살아도 매일 실수투성이에 하나님 앞에 크고 작은 죄들로 회개를 하는 제가 고작 13살한테 참 바라는 게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엄마로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지만 아이는 어쩌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저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 한숨 쉬고 야단치고 잔소리하고 질책했던 것도 저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테지요. 저의 감정만 중요하고 아이 감정은 헤아리지 못한 적이 많았고 제 감정대로 아이를 대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같은 실수를 해도 제가 기분 좋은 날에는 그냥 넘어가고 별일 아닌데도 제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피곤하면 아이한테 함부로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운동을 좋아해서 많이 다치는 편입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저희 집에는 발가락부터 손가락까지 온몸에 보호대가 종류별로 있습니다. 학교 농구팀에 소속되어 있어 결승전을 앞둔 어느 날 농구 연습을 하다가 아이가 손가락을 다쳤다며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데리고 왔습니다. 집 근처 Urgent Care를 갔고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손가락 중간 마디가 부러진 거 같다며 어쩌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다음날 전문의를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순간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실 결승전을 앞두고 누구보다 우승하고 싶었을텐데, 그래서 더 속상한 건 저보다는 아이일 텐데 그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하고 조심 좀 하지 왜 너만 맨날 다치냐며 언쟁을 하다가 아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고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지만, 엄마한테 함부로 말한 아이가 미워서 사과도 안 했습니다. 다음 날 사과는 했지만 이번 삶공부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그때 일이 생각이 났고 아이한테 다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아니라고 자기가 말을 너무 밉게 했다고 오히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미안합니다. 아마도 손가락 다친것보다 엄마 때문에 더 속상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제 마음속에 평생 상처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세상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우리 아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고 세상에 너무 험한 일이 많다 보니 혹시라도 친구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는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질까 걱정이 돼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아이를 놓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라서 나중에도 그 사랑이 주변 사람한테 흘러넘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때문인지 7학년인데 벌써 여자친구가 6번째입니다. 솔직히 아이가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근데 여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상대방 부모랑 인사도 해야 하고 어떤 아이인지도 살펴봐야 하고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물론 따로 둘이 만나고 하는 건 아니지만, 문자 하는걸 보면 내 아들이 맞나 싶게 가관입니다. 이 문제로 아이와 많이 다투었고 아이는 그냥 친구일 뿐이라며 오히려 걱정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아빠한테 상담했습니다. “아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벌써 여자 친구가 있다”라고 누굴 닮았나 모른다며 속상하다고 했더니 아빠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첫 아이랑 똑같은 나이에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서 아빠가 밖에서 자물쇠로 문 잠근 거 기억 안 나냐고 하셨습니다. 그 때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니 그냥 친구일 뿐이라는 아이의 말이 이해가 되었고 사춘기 아이들이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는 삶공부 강의를 들은 후 이제는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자친구의 첫 번째 조건은 크리스천이어야 한다고 말해주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아이 나이에 어땠는지 생각해보니 과거의 저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더 이해가 가고 그 나이가 얼마나 좋은 나이인지 아이에게 종종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공부보다는 운동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기에 운동 쪽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후원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운동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그래서 학교 공부 따라가기 버거운 우리 아이를 삶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돈 관리, 시간 관리, 인간관계 관리, 책임감, 성적 관리,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아이와 얘기를 하고 같이 계획을 짜고 그동안의 가족 규칙들을 수정했습니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를 더는 애가 아닌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바로 서 나갈 수 있도록 후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되 부모의 권위 안에서 자율권을 줘야 한다는 것도 잘 적용해서 아이와 같이 세운 계획들을 실천해 갈 생각입니다.

삶공부를 하면서 아이와 성적인 것과 마약, 알코올 등의 문제도 함께 이야기하며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아이는 “엄마,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걱정 안 해도 돼”라고 얘기해 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저희 아이는 핸드폰 비밀번호를 저에게 알려 주기 때문에 제가 가끔 체크를 합니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렇게 하기로 아이와 동의한 사항입니다. 어느 날 아이 친구들과 한 문자를 봤는데 그중 한 아이가 제 아이에게 다 같은 나이인데 왜 아이들이 너를 ‘Respect’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라구요. 아이는 고맙다고 하면서 자기가 크리스천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제 눈에는 아직 아이 같고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 보였지만 아이도 나름대로 이 세상에 적응해가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삶공부에서 아이를 바라볼 때 나의 욕심인지 하나님 기준의 욕심인지를 살펴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의 욕심을 뺀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 이쁜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참 축복받은 아이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나가고 하나님을 믿게 된 후 처음으로 내놓은 기도 제목이 임신이었고, 그 기도 응답으로 받은 아이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축복받은 이 아이를 제 욕심 때문에 상처 주거나 다치지 않도록 삻공부에서 배운 대로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삶공부 교재에 지하실 사람들과 발코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한테 나쁜 영향만 주는 사람이 지하실 사람들이고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발코니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는 수없이 많은 발코니 사람들을 봅니다. 저희 아이도 멋진 발코니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삶공부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기도라고 배웠습니다.

이제 겨우 13년째 살고 있는 아이한테 세상은 앞으로도 참 많은 걸 알려 줄 겁니다. 그때마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랑하고 기도해 주려고 합니다.

멀리 미국에 와서 살면서 항상 든든한 건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계시는 시어머님이 계셔서라는걸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어머님께 기도 부탁을 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런 엄마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저의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죄송한 생각이 들어 더 자주 연락 드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쥬빌레/김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