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저에게 있어 교회란 무엇이었을까요? 중학생 시절, 교회라는 곳은 착하고 예쁜 누나들을 만날 수 있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군 생활 시절에는 절이나 성당보다 간식을 더 많이 주던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마저도 라면의 유혹에 이기지 못해 절에 갈 때도 있었고, 양념 통닭 한번 먹어보기 위해 성당에 갈 때도 허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저의 교회로 향했던 발걸음은 솔직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첫눈에 반했던 여인과 결혼하여 토끼 같은 딸아이와 함께 풍족하진 않지만 모자라지 않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여전히 교회와 크게 인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9년도 2월, 저는 한국에서 휴스턴지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주에서의 생활은 처음이었던 저였기에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게다가 3개월 뒤에 저만 믿고 올 아내와 딸아이 생각에 내가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부담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회사의 부장님이 그날 본인의 지인 집에서, 가볍고 부담 없는 식사 자리를 제안하셨습니다. 가볍고 부담 없는 식사를 굳이 왜 지인 집에서……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만 그때 8년간 영업 팀에서 다져진 제 촉이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가급적 감사한 모습으로 흔쾌히 받아들여야 하는 타이밍이다 하구요.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그날이 바로 목장이 열리던 날이었고 저와 서울교회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부모님 외에 이렇게 도움을 많이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방적이다 할 정도의 관심과 걱정 그리고 헌신, 이는 피 한 방울 안 섞이고 만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사람간에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저 분들이 저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의 밑바탕에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까? 대관절 그것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마음속에 저렇게 단단히 자리잡고 저런 행동들이 스스럼 없이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지 불과 2주 즈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가족들과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 음식을 포장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때 마침 행색이 남루 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저희 쪽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분이 목적이 제가 포장해온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조금 심란해졌습니다. 사실 투고하기로 마음먹고 맛있는 알짜배기 부분만 남겨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빨리해서 차에 후다닥 타고 괜시리 아내와 딸아이에게 빨리 타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느새 다가오신 할아버지가 제 차 창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짜증이 살짝 났었습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이 약해진 저는 창문을 내리고 남은 음식을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제 입에서 “God bless you.”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알고는 있되 지금까지 써 본 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에 무척이나 뿌듯해 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저희가 밥을 먹었던 식당 종업원이 저희 쪽으로 뛰어오고 있더군요. 한 손에 제 가방을 든 체로요. 제가 깜빡하고 식당에 가방을 놔두고 왔었던 것이었습니다.
가방을 받아 든 저와 제 아내는 순간 서로 기분이 상당히 묘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께서 보답해주신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이건 정말 운이 좋았고 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 생기면 아까워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드리자.”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일 일수도 있습니다만 저희 부부에게 있어선 큰 변화를 위한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생각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그 주의 금요일도 목장이 열렸습니다, 저는 정성 가득한 맛 난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로 식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쳐다본 목자님의 얼굴은 먼가 평소와 다르게 조금 비장해 보이신 듯했습니다. 목자님은 저희를 굳건히 바라보며 입을 여셨습니다. “이창진 형제…… 생명의 삶…… 새로운 학기…… 다음주 신청……” 그날따라 핵심적인 단어만 귀에 속속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오늘따라 유달리 디저트가 맛있더라니…… 목녀님을 비롯한 목장 식구들은 생명의 삶에 대한 좋았던 기억들을 쏟아 내셨습니다.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금 제 앞에서 당시 은혜로웠던 추억을 잠겨있는 형제님과 자매님이 불과 몇 달 전 지금과 같이 제 앞에서 그랬습니다. 참 쉽지 않았다고. 끝난 지금 너무 홀가분하다고. 제 앞에서 그런 말 했던 건 홀랑 잊어버리고 좋은 말만 하는 두 분이 순간 아주 살짝 얄미웠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군 시절 격언을 되새기며 저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네 당장 수업 신청하겠습니다.’ 라고 대답 했습니다만 지금 고백하자면 그 짧은 순간에 속으로 참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시작된 수업 첫날, 저는 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목녀님이 뿌듯해 하시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도 있었고 스스로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이수관 목사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믿음 생활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 것 같냐 구요. 많은 대답들이 있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 ‘사랑’ 등등 정말 하나같이 그럴듯한 대답이었습니다. 미소를 지으시던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관계’ 입니다.” 매우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우면서 진부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던 와중 ‘관계’ 라는 대답은 순간 저를 벙찌게 만들었습니다. 이어지는 목사님의 말씀은 이러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사랑으로 연결이 되고 그것이 흘러 넘쳐 주변 사람에게 까지 전파가 되고 결국 세상은 얼마든지 사랑으로 넘쳐날 수 있다. 좀 더 단순화해서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아내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면 좋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막연히 성경이란 원래 심오하고 뭔가 말을 꼬아놓은 것이라 생각했던 저였기에 이러한 목사님의 말씀에 ‘탁’ 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오랫동안 오해를 하고 있었음을 깨 닳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별다른 기대없이 반강제로 듣게 된 생명의 삶은 첫날부터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생명의 삶 수료를 위해 필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 영접 모임 참관이었습니다. 이왕 참관하는 거 영접까지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쉬이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이 당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자격이 있을까?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것으로 인하여 구속 당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그러던 와중 제가 스스로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우치게 된 계기는 수업 중 듣게 된 이 성경 한 구절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요한계시록 3:20).”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보다 예수님께서 구원해주고자 하시는 마음이 훨씬 크셨기에 지금껏 내가 예수님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을 때에도 제가 돌아봐 줄 때까지 계속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을 까요? 더 이상 그분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금월 초 영접 모임에서 오랜 시간 닫혀있던 문을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사님을 따라서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밖에 서 계시지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순간 팔 부분을 중심으로 크진 않았습니다만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도 저와 똑 같은 순간에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오묘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편안 하였습니다.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재벌 2세가 이런 기분일까요?
생명의 삶 수업 진행과 함께 자연스레 숙제를 위해 처음으로 요한복음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귀찮은 것을 매주 어떻게 하나 싶었지만 한 챕터 한 챕터 읽어가며 저도 모르게 점점 그 내용에 빠져드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가져간 줄 알고 구슬프게 울던 장면과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녀가 다시 재회하던 장면을 읽었을 때는 감정이 극에 달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요한복음을 끝까지 읽고 난 저는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침 드라마보다 더한 것이 성경이라더니…
참 신기합니다. 교회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저와 아내였습니다. 지금은 영접을 통해 구원을 얻고 침례를 통해 새로 태어났음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서툴지만 기도도 곧잘 하고 처음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던 목장 식구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귀찮아 했던 삶 공부도 어느새 다음 삶 공부를 훑어보고 있습니다. 언행도 저도 모르게 조심하게 됩니다.
생명의 삶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이 작은 변화들이 저는 너무나도 놀랍고 은혜롭기 그지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하늘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즈벡 이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