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성도님이 아시다시피 2006 년에 저의 가정은 남편이 신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단 2개월이라는 짧은 투병 끝에 소천하는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당시 저의 큰아이는 대학생이었지만 작은 아이는 아직 15살로 그야말로 저는 하루아침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싱글 마더가 된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보다 더 큰 충격으로 아무것도 실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 또 하나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제 인생에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휴스턴 서울교회의 후임 전도사로 오라는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담임목사님이셨던 최영기 목사님의 제안을 받은 후, 곧 제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가 그렸던 인생의 밑그림에선 예상치 못했던, 저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긴 출장을 끝내고 웃으며 현관문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던 남편은 영영 안 돌아왔고, 교회 청소년부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둘째 아이는 ‘Father and Son Camping’에 아빠가 없어서 참가를 못 한다는 사실이 금세 아픈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저는 곧 신학교에 입학했고, Southwestern 신학교 오리엔테이션 날 저는 1994년 남편과 함께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던 날 그랬던 것처럼,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지는 하염없는 눈물로 은혜롭고 아름다웠던 늦깎이 신학생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육학 수업을 위해 읽는 책들에는 당연히 미국 가정의 수십 퍼센트의 자녀들이 싱글 부모 가정에서 크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양쪽 부모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교를 중퇴할 가능성, 혼전임신의 가능성등 온갖 부정적인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렇죠. 제가 알던 가정의 그림은 분명 ‘아빠, 엄마, 자녀 1, 자녀 2’ 였고 행복한 여자는 든든한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저는 어느새 어두움으로 내달을 수밖에 없는 결손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광야’(wilderness) 하면 어떤 상상이 되십니까? 제가 중동의 광야를 가보니 그곳은 푸른 나무가 없는 바위산과 흙먼지 날리는 모래언덕, 먹을만한 열매는 보이지 않는 곳, 목이 타서 헤매거나, 동물들에 물려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광야는 고난이 약속된 곳입니다. 저의 삶도 그래 보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그리 신날 것 없는, 모든 것이 남편의 죽음이라는 검은색 그림자로 퇴색된 인생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 게 ‘내가 이전에도 너와 함께 하였듯이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완전한 삶이 있는 곳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두워진 광야에서 광야의 지도를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만 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이끌어 광야에 숨겨진 비밀스럽고 놀라운 축복을 굽이굽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의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동안 제가 아빠의 몫까지 부모 역할을 잘해주었어야 했는데 신학교와 full time 사역을 병행하면서 저는 다른 부모님들처럼 아이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엄마가 될 능력도 체력도 없었습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를 혼자 두고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와 밤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청소년부 전도사님, 선배들, 친구들과 함께 찬양하고 친교하고 배우며 아이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열정의 삶을 익혀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항상 집에 없는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천사를 보내주셨었는데 바로 옆집에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우리 아들과 같은 종목의 운동을 했고,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든든히 자리를 잡은 이웃 어른을 보내주셔서, 늘 아들은 drive way에서 이웃분으로부터 전문적인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아이가 대학에 갈 무렵엔 가만히 보니 엄마는 해줄 것 같지 않아 보였는지 본인이 일부러 직장 휴가를 내어 저 대신 college tour를 시켜줘도 되겠냐고 물어보기에 “Of course, thank you! 라고 제가 대답을 하여 본인이 운전해서 데려갔다 온 일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대학에 진학하여 즐겁게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목장에서 성장한 두 아들은 하나님의 인도로 알맞은 시기에 교회 안에서 믿음 좋은 자매들을 만나 각각 목자목녀로 섬기는 가정도 이루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유아유치부와 사랑부엔 어린 자녀들을 위해 항상 많은 사역자의 손길이 필요한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역부서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저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많은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그분들의 도움과 기도로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게 도전과 가르침을 주시는 목회자님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스태프들, 목장, 사랑과 이해심 많은 성도님이 계셨기에 자칫 외롭고 소외될 수 있는 저의 삶에는 즐거운 교제들이 풍성했고, 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또 새로운 사역을 꿈꾸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감사절 아침, 어떤 고난도 우리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자리에는 여러 모습의 고난으로 인해 광야와 같은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으신 줄 압니다. 갑자기 찾아온 질병, 경제적 어려움, 신분, 자녀 문제, 풀리지 않는 관계의 아픔들로 황량한 광야를 걸어가는 것처럼 하루하루 걸어가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걸어가면 고난의 길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황량한 광야에서 바위에서 나는 물을 마시고, 불기둥, 구름 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남모르는 기쁨들을 체험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묵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찬 로마서 8장 35절에서 39장 말씀을 나누고 마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백혜원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