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부모의 삶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7학년과 3학년,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때에 따라 헌아식, 유치부 부모의 삶, 그리고 초등부 부모 세미나를 수강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워 볼까 고민하던 때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큰 아이가 Teenager가 되어서 청소년 부모의 삶을 수강하게 되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이를 양육하며 얼마나 잘해주었고 못 해주었나를 떠나서 이제까지 함께 해왔던 시간보다 엄마, 아빠 품을 떠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애틋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큰 아이가 Junior High School에 들어가고 7학년에 올라 갈 즈음, 질풍노도의 시기, 즉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은 뭐 놀랄만한 질풍노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사춘기가 지속하는 나이가 아이마다 차이가 있고, 대개 12세에서 16세까지 간다고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은 지극히 낙천적인 성격으로, 남자아이지만 엄마 아빠에게 사랑표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끔 한 번씩 이유 없이 짜증도 내고 혼자 말없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나 당황도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저도 사춘기를 경험하고 지나는 봤지만, 사춘기 자녀를 키워본 적이 없고, 자칫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다 상처만 주기 쉬운 이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성경적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지 배워서 적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소년 부모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삶공부를 통해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이 삶공부가 부모의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부부의 삶과도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부부관계 또한 중요하며, 자녀교육의 궁극적 책임은 하나님께서 가정의 대표, 아버지 된 저에게 부여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불편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부부는 서로를 많이 사랑합니다. 17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변치 않고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주려 노력합니다. 아이들도 저희 부부의 애틋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결혼 상대자로 “엄마 같은 사람이면 무조건 오케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아이들도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평소에 엄마, 아빠의 관계가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며 존중해주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좋은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삶공부 첫 수업에서 배우고 제가 생각해왔던 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삶공부가 끝난 지금도 저와 아이를 연결해주는 사랑의 파이프 라인 중에 혹시 새거나 막힌 곳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많은 대화를 통해, 그리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면서 관계 유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삶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자녀 교육 삶공부에서 늘 강조하는 것, 아이들의 감정 탱크를 가득 채워 주는 것입니다. 감정 탱크를 채우려면 아이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 아이의 사랑의 언어는 칭찬과 함께 시간 보내기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저희 속이 터지는 횟수도 함께 많아졌습니다. 지극히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인 제 아들에게 성적이 좀 떨어지면 제가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아들, 양심상 공부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빠 나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고 왔는데”라고 시크하게 대답합니다. “그래도 공부 좀 하지?” 그러면 지금 당장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이어지며 결국 아들 녀석의 승리로 끝나곤 합니다. 사실, 공부 많이 하고 왔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아이와 다른 집 아이를 비교하는 것이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인 줄 알지만 동기 부여와 자존심을 좀 건드릴 요량으로 “다른 집 누구는 이번에 All A 받았다더라.”라고 하면 답은 늘 “Good for him.” 하며 진심으로 그 아이를 축하해 줍니다. 그리고 좀 제대로 규칙적인 공부를 시켜 봐야겠다고 매일 방과 후 집에서 아빠와 함께 몇 시간씩 공부하자고 하면 “You have Asian parent’s mind.”라고 하며 자기 친구 중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다고 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해묵은 한 옵션으로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뭐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도 아이가 제 말에 왜 고무공처럼 튀어 반발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보다 더 나이가 들면 머리가 컸다고 제 말은 듣지도 않으려고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반항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어찌 저렇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톡톡 말대꾸할까?
저의 답은 아이의 관심사를 아이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공감해주며 아이가 진심으로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주고 잘한 것은 잘했고 못 한 것은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저 사랑한다는 막연한 말만 많이 해주면 감정 탱크가 항상 충만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일상의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이것 좀 해라, 앞으로는 내 계획대로 이렇게 하라며 일방통행식 명령보다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율성을 인정해 주고 해야 할 일을 함께 계획하고 일정을 세워 아이가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아이도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지 전과 비교해서 본인의 주장만을 내세워 말대꾸하는 일이 많이 줄었고 엄마, 아빠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청소년 아이들은 잔소리보다는 격려와 훈련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지는 않으려고 해도, 매일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뒤로 미루는 것을 보면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많은 부분 잘해왔고, 잘했을 것인데도 저는 잔소리로 아이 감정을 상하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것 같습니다. 농구를 좋아해서 클럽팀과 학교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제 아이의 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NBA 프로 농구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올 시즌 아이가 정말 열심히 매 게임에 임했고 학교 농구팀이 Katy ISD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요즘은 Track에도 재미를 붙여서 프로 농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바뀌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농구 시즌이 끝나고 처음으로 시작한 Track, 300미터 허들 종목에서 District 최고 기록을 깨고 신기록 보유자가 되었고, 2주 전 끝난 Katy ISD Final Track Meet에서 같은 종목 7학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저는 두고 보면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에게 예선 게임들을 할 때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았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는 등 아이를 가르치는 코치 선생님들도 하지 않았을 잔소리를 퍼부어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잔소리지만, 잔소리보다 격려가 아이의 실력 향상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감정대로 했던 것에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운동에 타고난 신체적 조건의 타 인종의 아이들 사이에서 열세를 극복해가며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아이에게 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실수 하나에 격려와 훈련보다는 잔소리로 사기를 꺾었던 점이 많이 미안했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지금은 아이가 연습할 때도 실전 게임을 할 때도 실수가 나와도 질책보다는 격려의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멋진 플레이에는 전에보다 더 환호를 해주어 아이가 자신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가 굴렁쇠를 굴리는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주어진 넓은 들판을 힘차게 굴러가는 굴렁쇠이며 우리 부모들은 그 굴렁쇠를 일정한 방향으로 잘 굴러가게 잡아주고 유지해 주는 굴렁쇠 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굴렁쇠가 굴렁쇠 채에 의해 조정되고 굴러가는 것 같지만, 그 두 가지를 조정하는 사람의 조정 능력이 없다면 굴렁쇠는 제 기능대로 굴러가지도 못하고 고철로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조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이신 것 같습니다. 굴렁쇠 채인 우리 부모는 굴렁쇠인 아이에게 그저 팔 하나 걸치고 잡아주고 있을 뿐 모든 방향으로의 나아감은 조정자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조정자 하나님께 아이의 아빠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늘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아이를 위한 축복을 간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굴렁쇠를 잘 잡아주는 역할을 제게 부여해 주셨음을 잊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저에게 잠시 맡겨주신 저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잘 성장하도록 양육하고 돕겠다는 다짐을 하며 간증을 마치려고 합니다.
쥬빌레/김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