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수해 극복 간증: 허리케인 하비와 우리교회

By April 22, 2018e참빛

다행히 우리 집은 이번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이 허리케인은 내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세 번째 물난리가 된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경험하신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다. 당시 이재민이 37만 명이었는데,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아버지는 그다음 해에 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라호 태풍으로 집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여덟 식구가 겨우 남은 소 한 마리만을 끌고 경북 영덕 지풍면에서 나의 고향이 된 강구면으로 피난 왔다고 한다. 이 사라호 태풍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렸고 그래서 아버지는 그렇게 평생 매일 일을 마친 뒤 저녁에 술을 드시면서 넋두리를 하셨다. 두 번째 물난리는 내가 중학교 때였던 1980년대 중반에 왔었던 태풍이다. 태풍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우리 동네 저수지의 둑이 무너지면서 우리 집 아래채가 물에 잠겨서 동네에 있는 태권도 학원 2층으로 피난 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우리 집 위채는 잠기지 않았고 동네 어른들이 힘을 합하여 무너진 둑을 빨리 복구를 해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지만, 많은 동네의 집들이 물에 잠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번 2017년 8월 말에 휴스턴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하비이다. 하비는 앞의 두 태풍과는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멕시코만에서 하루가 다르게 에너지를 얻고 커지고 있던 허리케인 하비였지만 이렇게까지 직접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그동안 휴스턴에서 몇 번의 큰 허리케인을 맞았고, 허리케인 리타가 왔을 때는 샌안토니오까지 대피하기도 했고, 아이크 때는 휴스턴에 남아서 온전히 허리케인의 위력을 보기도 했지만, 우리 집에 피해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가 좀 많이 오는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자 수련회를 잘 마친 토요일부터 내리는 비가 그칠 기미가 없고, 이사 와서 7년 만에 처음으로 집 주변의 호수가 넘치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넘친 물이 우리 집이 있는 동네로 들어오지 않고 큰길로 빠져나가서 비가 그친 후 주변 도로가 잠겨서 며칠 동안 집안에만 갇혀 있기는 했지만, 덕분에 일주일 동안 회사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수 있었다. 휴스턴 전역의 홍수 피해는 뉴스로 계속 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허리케인 하비도 그냥 지나가는 휴스턴의 연례행사 중 하나에 불과했고, 2005년에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만큼 위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했다. 우리 교회에서 조직된 복구팀에 참여해서 직접 청소하러 가기 전까지는…

허리케인 하비가 지나간 이후 첫 일 주일 동안 간헐적으로 청소가 필요하다고 교회 수해 복구 카톡방에 요청의 글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우리 집과는 멀고 많은 사람이 자원해서 그냥 지켜 보고만 있었다. Labor day 아침, 일면식도 없는 어떤 형제님 집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지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집에서 30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고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나도 참여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출발해서 갔는데, 실제로 보니 그 피해 정도가 TV로 보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아주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에 몇몇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휴일을 즐기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았는데, 그 다리를 넘으니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길가에는 벌써 건물 잔해와 카펫들이 산더미처럼 나와 있는 집도 있었고, 물이 얼마나 찼었는지 보여주는 자국도 있었고, 그냥 물에 잠겼던 자기 집을 밖에서 망연자실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청소할 집에 도착했을 때 벌써 몇몇 형제, 자매님들이 와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집사님 한 분과 더불어 교회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기도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내 기억으로 한 3~4시간 정도 청소작업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그 폐허와 같은 집을 봤을 때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는데, 몇몇 형제님들이 이미 다른 집 복구작업 경험이 있어서 그분들을 중심으로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게 금세 청소가 끝나갔다. 그리고 피해를 본 당사자인 부부도 함께 청소하는데 정말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날 함께 작업했던 한 형제님은 아직 자기 집은 물에 잠겨 있지만, 물이 빠지기 전에 먼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왔다고 했다.

참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신의 집은 아직 물속에 잠겨있는데 어떻게 다른 집을 먼저 돕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까?

목요일 오전에 우연히 그 형제님 집에 가서 청소하였다. 일 층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있었다. 또, 집사님 한 분은 내가 가는 곳마다 만났다. 목요일에 회사 휴가를 내서 갔던 곳에서도 만났다. 그 집사님은 허리가 아프지만, 집에 있을 수만은 없어서 거의 매일 나와서 복구 현장에 나오고 있다고 했다. 만약 이 물이 잠긴 집이 자신의 집이라면 허리가 아파도 뭐라도 했을 거라고 하시면서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매일 이곳저곳 복구현장을 바쁘게 다니시는 다른 집사님 한 분은 복구팀 작업에 집중하라고 요즘 사업이 좀 더디다고 하셨다. 사업이 더딘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복구팀에 참여할 수 있어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정상 출근을 하는 평일에는 일손이 부족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소한 내가 참여했었던 곳에는 사람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넘쳐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원자들이 많은 만큼 복구, 청소도 빨리 끝났다. 정말 많은 분이 내 집인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기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왜 6.25 전쟁 때 중국군의 인해 전술에 국군이 밀렸는지 이번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낼까 했는데, 20~30명이 함께 일을 하니까 시작하기가 무섭게 작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복구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척척 자기가 할 일들을 찾아서 쉬지도 않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감독관이 필요가 없었다. 또 하나 더, 복구 작업 나가서 평소보다 점심을 더 잘 먹었던 것 같다. 점심때가 되면 수해 입은 분이 속해 있는 목장의 목녀님이 점심을 준비해 주셨고, 아니면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점심 준비 지원팀에서 배달해 주어서, 점심 걱정이 없었다. 역시 우리 교회는 뭘 하더라도 잘 먹이는 것 같다.

천여 명 출석하는 교회에서 그렇게 많은 수해헌금을 드리는 것을 보고 또 놀랐었다. 그리고 그 헌금을 아무런 잡음 없이 잘 집행하는 교회가 우리 교회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이번 허리케인 하비를 통해 도움을 주고받았던 감사의 글들을 교회 게시판에서 읽으면서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보았다. 아내는 이번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처음으로 ‘우리 교회’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교회라고는 휴스턴 서울교회가 처음인 우리 부부가 다른 교회들과는 비교는 할 수는 없지만, 휴스턴 서울교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확실히 우리 교회가 특별한 것일까? 모든 교회가 이렇게 투명하고 섬김과 헌신이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뉴델리/김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