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자리에 올라와서 간증하시는 분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가 이렇게 간증을 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간증은 예배 전 잠깐 졸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다른 분들의 간증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게 해주셨고, 이제는 제 간증도 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최근에 목자 목녀님이 되신 제 부모님과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 이렇게 저희 세 가족은 미국 오기 전까지만 해도 종교가 없었고, 조부모님께서는 천주교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에게 주말이란 여행을 가거나 아침에 일어나 브런치를 챙겨 먹는 여유로운 날이었죠. 그러다가 2005년, 유독 교육열이 강하신 제 부모님께서는 하나뿐인 외동아들을 위해 하시던 사업도 다 정리하시고 미국에 이민을 결정하셨습니다. 조지아로 맨 처음 미국에 온 저는 친구들을 통하여 교회를 처음 갔지만 어려서인지 교회는 제게 그냥 밥 먹고 친구들이랑 농구하고 탁구 하는 재밌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며 약 1년 후, 2006년, 저희 아버지 직장으로 인해 저희 가족은 휴스턴으로 Relocation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휴스턴으로 와서 어떻게 서울교회를 나가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인 2세 친구들의 목장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조지아의 교회에선 이런 가정교회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 저랑 잘 맞고 어울리고 싶은 친구들이랑만 어울렸지만 여기 목장이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가 없기에 그 부분부터 제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영어가 base였던 목장은 그 당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겐 한국 학원에서 다니던 원어민 영어클래스 느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그 불편함에 목장을 한번 두번 빠지다 보니 서서히 목장에 대한 마음이 멀어지면서 연락을 피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저는 완전히 목장을 떠났고 몇년 동안은 한국말이 편한 친구들만을 골라 사귀며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A&M으로 대학을 갔습니다.
휴스턴과는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저는 방학 때마다 내려왔는데 어느 한 여름방학을 앞두고 어머니께서 이번 방학엔 무슨 계획이 있냐는 낯선 질문에 저는 당연히 한결같이 놀 거라고 당당히 말씀드렸고 어머니께서는 아주 좋은 게 있다며 함께 하자는 말씀에 저는 생명의 삶이란 것도 모른 채, 어디 크루즈 여행이라도 가는 거라 생각하며 신이 나서 여름방학때 놀자는 친구들에게 바쁠 것이라며 자랑 섞인 거절을 했습니다. 훗날 생명의 삶인 걸 알고 첫 수업에 들어간 저는 비로소 제 무덤을 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싫어도 제대로 하자는 저의 신조 덕분인지 때문인지 개근으로 무사히 생명의 삶은 마쳤지만, 한동안 어머니께서 좋은 거라고 하시면 무조건 교회 먼저 의심 안 할 수가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교회 얘기를 꺼내시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습관이 생겨버렸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께서 교회 행사에 다녀오시더니 어느 한 자매가 앞에 나와서 “자매들밖에 없는 자신의 목장에 형제분들 좀 오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저에게 전하셨는데 전 도저히 이 말만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전 교회를 멀리하고 있었기에 좀 꺼렸지만, 옆에서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제 친구가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말에 몇 주 뒤에 친구를 데리고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첫 목장 방문을 했습니다. 제가 상상하던 핑크 핑크 함과는 전혀 반대로 털털하신 누님들이었지만 곧 친형제처럼 가까워지고 목자님과 누나들의 섬김에 무한감동을 받으며 매주 목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불가피한 문제로 갑자기 목장 해체를 통보받게 되어 믿음보단 의리로 다녔던 저는 다른 목장을 추천해주신 것도 뿌리치고 다시 한번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고 주위 사람의 소개로 일본 고베 목장의 목자님을 만났지만 저는 또 언제 목장이 해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음을 쉽게 주지 않아 매주 목장을 가기까지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중에서야 서울교회가 문을 닫지 않는 이상 목자님께서는 이곳에 뼈를 묻으실 분이라는 말을 듣고 조금 안심은 되었던 거 같습니다. 다행히도 점차 예전처럼 목장 식구들이 좋아서 목장은 다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주일예배는 멀고 귀찮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자님은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와 꾸준히 교회와 목장에 붙어있을 수 있도록 섬겨주셨으며 2015년에 처음 간 후 다신 안 가려 했던 싱싱야를 다시 한번 목자님의 권유로 작년에 또 다녀왔습니다. 유독 팀 단합이 좋았던 저희 작년 싱싱야팀으로 인해 점차 교회에 대한 제 생각이 조금씩 나아짐을 느끼던 찰나, 싱싱야에서 친해진 형의 부탁으로 구경 한번 가보지 않은 첫 서울교회 송년 잔치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일요일에 교회가 멀다는 이유로 안 나가던 제가 송년 잔치 준비를 위해 교회로 매일매일 간 덕분에 오히려 그 거리가 부담이 없어졌고 교회에서 많은 좋은 분들을 새롭게 알게 해주신 감사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송년 잔치가 끝나고 교회에 별다른 계획이 없던 저에게 송년 잔치 멤버 형들이 해주신 세겹줄 기도 제안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한 분이 추가되어, 네 명으로 구성된 저희 네겹줄은 정말 가족들처럼 진심으로 기도 제목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주셨고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께서 세겹줄기도 기간이 채 끝나기 전에 저의 세 가지 기도 응답을 모두 들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할 만큼 놀라고 감사했으며 처음으로 크리스천으로서의 눈물도 흘려보았습니다.
예전부터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처음 접하고 감사한 마음에 다른 많은 분들께 나눠 드리고 싶어 저만의 중보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여러 좋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저는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자연스럽게 북미선교 얘기가 나와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나름 긍정적인 방향이었지만 저는 선교비 금액 대략 500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적지 않은 돈이기에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그 당시에 저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습사원이라 12월에 있는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HR 매니저의 도움으로 겨우 승인이 떨어져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녁도 먹고 춤도 추고 모든 이벤트가 끝나고 마지막에 직원들에게 연말 보너스를 주는 시간이 있었지만 저는 초대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기에 아무런 기대 없이 올라가신 분들에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끝 무렵에 앞에서 보너스를 나눠주시던 분께서 저에게 슬쩍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아니라 생각하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데 저를 가리키며 계속 나오라고 하시자, 영문도 모른 채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간 저는 박수를 받으며 봉투 한 장을 건네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자리로 돌아와 봉투 안을 보니 거기엔 누구랑 짜기라도 한 듯 제 이름 앞으로 500불의 체크가 들어있었습니다. 전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바로 든 생각이, “이건 없던 돈이다고 생각하고 선교비로 쓰자” 였습니다. 그렇게 전 단숨에 선교비와 비록 무급이지만 회사의 흔쾌한 1주 휴가 승인을 받아 감사하게도 선교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제가 교회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수 있다는 사람인 걸 아시는지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싱싱야를 시작으로 바로 송년 잔치, 생명의 삶, 선교 순으로 끊임없이 교회 행사와 삶공부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에, 재수강신청을 한 72기의 생명의 삶도 이번에 잘 마쳤고, 생명의 삶 숙제로 들어간 영접 모임에서 감사하게도 전 이수관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고민 중이던 침례 헌신도 하게 되었습니다.
“성훈형제는 지금 피지 않은 꽃봉오리와 같아요. 교회의 대부분 성도들이 은혜나 기적을 체험하고 침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침례를 드려요. 침례를 미루고 미루다 보면 꽃봉오리는 언젠간 떨어져 버릴 거에요. 하지만 먼저 침례를 드리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린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꽃봉오리를 피워주실 거에요.”
이 말씀에 저는 망설이고 있던 침례 결단을 내렸고 비로소 서울교회에 처음 나온 지 약 11년 만에 영접 3번을 끝으로 그 돌아오는 주일, 2017년 4월 9일에 침례를 받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간증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는 예전의 저처럼 분명 “에이 너무 짜 맞추는 거 아니야?” “뭐 겨우 저 정도로 울어?” 라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가 그냥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 교회와 목장을 멀리하진 마시고 끝까지 붙잡고 있으시라고 권유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 자리에 서서 간증을 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요
. 끝으로 제가 먼 길을 돌아돌아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기다려주시고 앞으로도 더욱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게 기도해주시는 목자, 목녀님이신 저희 부모님, 목장 목자님, 목부님, 일본 고베목장 식구들 그리고 송년 잔치 준비팀과 세겹줄 멤버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끝으로 이 모든 인연을 허락하시고 계획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일본 고베 목장 / 김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