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집사람이 연수 기회가 생겨 6살 된 딸과 한국을 떠나 이곳 휴스턴에 왔습니다. 저는 불교 집안에서 자라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여느 VIP분들처럼 저희 가족을 지극정성으로 섬겨주신 목자, 목녀님의 권유로 생명의 삶을 듣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삶 공부가 있는 화요일에는 집사람이 일찍 퇴근하여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잠재우기로 선뜻 동의하였기에 저는 “야~ 혼자 운전하고 가면서 홀가분히 바람도 좀 쐬고 저녁도 먹고 좀 쉬다 오자, 좋겠는데” 하며 맘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제1과 제목은 바로 “죄” 였습니다. ‘내가 뭐 큰 죄 지은 것이 있나? 소소한 잘못이야 누구나 하는 것이고, 별다른 죄는 없는데’ 하며, 목사님께서는 분명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런 말씀 하시겠지 하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큰 죄를 지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웅본색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제가 중학교 때 개봉했던 영화인데, 총싸움과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던지는 사나이들의 의리는 저를 이 영화의 열렬한 팬으로 만들었고, 주인공 주윤발이 했던 대사 한마디는 한창 사춘기였던 저를 사로잡아서 대사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사는 “내가 신이다.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 ”였습니다.
저는 그 대사처럼 “내 인생은 내 생각대로, 의지대로 결정하니 내가 나 자신의 신이다” 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본인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죄며, 삶과 나의 미래가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며,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죄라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도 깜짝 놀랐습니다. 좌우명으로 삼아왔던 그 구절이 죄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란 말인가? 내 인생을 지탱해왔던 그 구절이 죄라면 나는 거대한 죄 덩어리란 말인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면 내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허탈하여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또 목사님께서는 죄를 짓게 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깨어지게 되고, 곧 이웃과도 그 관계가 틀어진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수업 끝나고 오는 길에 죄의 결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목사님 말씀이 맞더군요.
저와 가족, 이웃과의 관계는 많이 틀어져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 신이며,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틀리고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아내와 딸아이의 생각이 틀린 것이요 직장에서는 직장동료와 고객의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집사람과의 일상대화 때도 기본 전제가 “내 생각이 맞고 당신 생각은 틀려” 였기에 대부분의 대화는 좋게 끝나기 힘들었습니다. “아, 내 생각이 맞는데, 왜 틀린 소리를 저렇게 자신 있게 할까”하며 화도 내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딸아이에게도 저의 방식, 저의 가치관을 고집하였기에 오로지 한가지 방향만을 제시하며, 토끼 몰 듯 몰아갔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소리치기도 하고, 은근히 협박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하늘이 벌주신다고 말하며 저의 방식을 강요했습니다. 저를 잘 따르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잘 듣지 않고, “좋아”보다는 “싫어” 가 많아졌을 땐 미운 다섯 살? 미운 여섯 살이 되었군 하며 가볍게 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사람과도 아이와도 가까워지기보다 벽만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제가 미국으로 떠나올 때 저의 계획은 사람과 관계를 완벽히 끊고 사람들로부터 탈출 하자였습니다. 한국에서 10년 동안 개인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저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 만남들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지겹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본인 뜻대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던 저의 죄 때문에 가족과 이웃과 틀어진 관계를 죄의 결과로 얻게 되었음을 첫 강의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저에게 약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실 저는 변화를 잘 못 느꼈습니다만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화를 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오래전부터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참아가며 좋은 인격의 사람으로 보이고자 포장하였었고, 그나마 집안 가족에게는 그만한 배려도 용납하지 않았기에 화를 참지 않고 그냥 뱉어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치밀어 오르는 화가 줄어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없는데,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데 가족을, 남을 탓할 수 없었습니다. 화를 만들어 낼 이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화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집사람과 사소한 일로 시작해서 언쟁을 벌였는데 예전 같으면 저는 제 화를 이기지 못해 수일간 냉전이 지속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화는 없어지고 제가 집사람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다시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실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멋쩍고 웃음이 나고 해서 홱 돌아서 버리기도 했습니다. 머리 털 나고 처음 느꼈던 기분이었습니다.
딸아이와의 관계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싫어” 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학업에 관한 것, 친구에 관한 것, 식사에 관한 것 등등, 수많던 강요들이 줄어들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더욱 제가 놀란 것은 요즈음은 딸아이의 노력하는 모습들이 저의 눈에 들어오고, 가만히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모습을 알기 전에도 딸아이는 그 자리에서 그렇게 노력했었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저의 고집과 편견 때문에 아이의 진심을 봐주지 못한 것이겠지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희망을 보았습니다. 특히 목자님, 목녀님, 목장 식구들의 섬김은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을 확신시켜주었습니다.
이렇게 죄와 죄의 결과를 배우게 되면서 가족, 인간 관계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조금씩 다른 편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삶의 기준을 잃어버렸기에 저의 생활은 조금씩 불안해지고 자신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후배에게 맡겨놓은 한국에서의 사업, 한국에 계신 부모님, 가족들의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번번이 그 결정에 확신할 수 없게 되고 결정을 미루거나 하여 골든 타임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무기력함이 더해지면서 저에게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예전의 나로 돌아가서 내가 맘대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면 어떨까? 조금만 보완해서 다시 시작하면 잘 될 것 같았기에 저는 살짝 다시금 죄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걸리지도 않더군요. 죄의 결과는 다시금 관계의 뒤틀림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집사람과 딸아이와의 관계, 사업 동료 사이에도 잡음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때 쯤, 목사님께서 말씀 해주시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문이 아주 조금만 열려있으면 그 틈으로 발부터 들이민 후 낑낑거리시며 애써 우리에게 들어와 주실 터이니 그분 이름만 부르면 된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너무 거룩하여 어려운 분으로 느껴졌던 하나님, 그분이 너무 푸근하고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또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면 저의 자존심과 에고가 자연히 사라지고 성령께서 명하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 저는 다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죄와 죄의 결과는 알았지만 내가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문을 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서서히 무기력함은 사라져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마음속 성령님께서 전부 알려주실 것이고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마음먹자 다시금 자신감도 생기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해야 할 일들을 부드럽고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생명의 삶 공부는 제 인생을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에 머나먼 이곳 휴스턴까지 부르셔서 깨닫게 하심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고 깊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13주 동안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주신 이수관 목사님, 알마티 목장 목자님, 목녀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알마티 / 김남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