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힘든 시간을 지나 너무 행복한 요즘입니다. 그러나 행복이 사라질까 봐 늘 불안합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 안에서 진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달 전 영접모임에서 제가 했던 기도입니다. 불안이 정말 사라지고,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하나님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언니 집이 있는 휴스턴을 한 달간 머무를 예정으로 한국에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온 것은 아니고, 저의 개구쟁이 2살 아들과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을 오기 전 한국에서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무엇 하나 어려운 점 없이 ‘행복하다’라는 마음이 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늘 행복 속에는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개구쟁이 아들이 태어나서 겪었던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남편을 만나 결혼생활도 행복했고, 금방 찾아온 아이 덕분에 더 감사하게 지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이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너무 작게 태어나 일주일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고 퇴원 후에는 맹장염으로 제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맹장 수술 후 후유증이 커서 좀 고생했지만,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 맹장 수술을 했더라면 우리 아기는 어땠을까 하며 안도했습니다. 그 안도가 식기도 전에 아기가 심장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한순간에 모든 것이 저에게 폭풍처럼 몰아쳤습니다. 다른 건 다 괜찮았고 이겨낼 만했지만,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무언가가 무너짐을 느꼈습니다. 그땐 그냥 울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게 “괜찮아. 고칠 수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우리 힘내자.”하고 용기를 전하던 우리 남편이 있었습니다. 먼 미국땅에서 용기를 주며 기도해주시는 언니와 형부, 주변의 감사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엄마인 저보다 더 가슴 아파하고 눈물지으셨던 저의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가슴 아프고 힘들었지만 제 곁의 모든 사람들 덕분에 힘이 났고, 그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조금 더 잘 돌보면 아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숨을 쉬는 데 어려움이 많아 백일도 되기 전에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좋은 병원과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술할 환자들이 많음에도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아 우리 아이가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취로 인하여 잠에 빠진 아이를 수술실에 홀로 들여보낼 때, 8시간의 수술 동안 밖에서 가슴 졸이며 아이를 기다릴 때, 신이 계신다면 제 기도를 들어달라고, 우리 아기 꼭 수술 잘 마치고 제 품으로 보내달라고 하염없이 기도했습니다. 수술을 마친 후 중환자실에서 퉁퉁 부은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남편과 둘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말 우리 아기 잘 키우자. 우리 정말 잘 키우자.” 그 얘기를 몇 번을 했는지…. 저는 그 이후 아기를 키우다 힘이 들 때면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면 마치 비타민을 백 개쯤 먹은 것처럼 힘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수술 자국만 보면 가슴 아파 울었는데 지금은 아이에게 그 상처를 ‘영광의 상처’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뎌지고, 다시 행복한 일상을 찾아 지내고 있을 즈음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만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잘 이겨냈고 잘할 수 있다는 자만감에 빠져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언니와 형부께서 영접모임 이야기를 하시며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주신다고 하셔서 스스럼없이 영접모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아팠을 때,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도 떠올랐고, 하나님의 존재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던 영접모임에서 왜 울컥울컥 눈물이 나는지, 다른 사람들이 울면 왜 따라 우는지… ‘원래 잘 우는 사람이라 그런 걸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신앙생활을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영접을 안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영접할 사람들만 드리라는 기도를 자연스럽게 따라 하고 있었고, 결국 저는 영접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리며 영접을 받았습니다. 갈팡질팡하며 고민 끝에 영접을 받았지만, 그 이후 저의 마음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팠을 때, 내가 너무 힘들어할 때 나와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과 하나님이 계셨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접을 받은 후 하루에 두 번 일상적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는 아이와 건강하고 즐겁게 노는 것과 밤에는 하나님께 오늘 하루도 지켜주심에 감사함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가족들과 여행 갈 때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등의 작은 기도들도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기도처럼 정말 그렇게 닮아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예배시간에 접하게 된 찬송가들이 너무 좋아서 집에 와서 찾아서 듣기도 하고, 예배 때 목사님께서 해주셨던 좋은 말씀을 기억하고 싶을 때는 성경책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공부하는 것도 책 보는 것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경책을 찾아보는 제 모습에 혼자 기특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시간이 흐를 무렵 침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과 침례 받는 날이 같은 날이라 어렵겠구나… 포기하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거야’ 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비행기티켓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고 조금 넉넉해진 날짜 덕분에 침례뿐 아니라 간증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달 하고도 2주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몰랐던 제게 영접과 침례를 할 수 있게 해주신 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분들과 하나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침례를 받을 때 목사님께서 저를 쳐다보시며 침례를 주시는데 저는 목사님의 눈빛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그렇게 인자하고 신기한 눈빛이 처음이라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저에게 다가오신 거 같아 가족들한테 ‘하나님의 눈’을 보았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행복이 사라질까 불안할 때면 ‘하나님이 날 지켜 주실 거야. 모두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되뇌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늘 가지고 있던 행복 속의 불안감도 이젠 많이 떨쳐 버린 것 같습니다. 침례를 받은 후 가장 처음,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알렸고 남편은 제게 “당신 덕분에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아”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남편은 언제나 부족한 제게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먼저 만난 제가 남편이 기댈 수 있는 어깨도 내어주고 따뜻한 응원도 해주는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편도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우리 아이가 믿음이 있는 가정 안에서 자라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 겹줄 기도를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좋은 분들과 서로의 기도를 나누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마음을 나누고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느낀 건 ‘기쁨’이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하나님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아팠을 때 기도해주셨던 분들께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저 또한 그분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말랑 / 이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