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믿음이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역시 믿음이 없는 남편을 만나 맞벌이를 하다 2년 반 전에 남편의 주재원 발령을 받고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15년간 백혈병과 골수이식 환자를 간호하였고,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와 예민할 대로 예민한 가족들을 상대하는 것에 지쳐있었습니다. 이는 일상의 지침으로 그대로 이어져 늘 피로한 채, 직장 빼고는 별다른 인간관계도 없이 메마르게 일상을 살아가다 일을 그만하고 오게 되었습니다.
케이티에 집을 얻고 리얼터이셨던 목녀님의 권유로 처음으로 목장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첫 목장에서 나눔을 할 때 목원들의 조건 없는 따뜻한 의사소통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휴스턴 온 지 한 달여 만에 셋째 임신을 알게 된 저로서는 목원들의 섬김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목장에서 하는 나눔이 불편하다며 목장에 나오길 꺼려했고 저는 믿음이 깊은 다른 부부에 비해 우리 부부가 못나고 부족해 보였으며 뭔가를 실패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다 집 근처 미국교회에 영어 공부할 겸 다녀볼까? 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서울교회 대신 미국교회로 옮겨갔습니다. 처음엔 남편과 손잡고 예배를 듣는다는 게 너무 벅차고 좋았지만, 영어가 부족한 저에게 미국교회의 예배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목장을 너무도 좋아하던 딸아이들이 금요일마다 왜 우리만 목장을 안 가냐고 채근할수록 서울교회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목자님댁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다시 서울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심각한 성경 얘기를 하면 핸드폰을 보고 딴청을 부리지만 적어도 매주 목장을 참석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목장에서 늘 말하듯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처음 목장을 방문했을 때는 만삭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한국에서 누가 산후조리하러 와줄 수 없는 저로서는 목장 식구들의 도움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매일 먹을 거 가지고 오셔서 냉장고 청소까지 해주시고 그렇게 섬김을 받으며 서서히 나도 저런 크리스천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어느새 아기였던 셋째도 18개월이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생명의 삶을 미룰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한 6개월 전부터 생명의 삶에 대해 생각은 했으나, 서툰 운전실력. 아이 셋은 어찌하나, 남편이 화요일에 회식이 있으면 어쩌지 등등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 잘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화요일마다 목자목녀님께서 두 딸을 데려다 공부와 숙제까지 봐주셨고, 막내는 교회 아기방에서 귀염받으며 저를 잘 기다려줬고 남편도 ‘왜 이렇게 13주가 길지…’라고 가끔 말했지만, 생각보다 불평이 없었고 무엇보다 제가 아무 사고 없이 운전하고 다닌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수관 목사님의 설교도 좋았습니다. 저는 처음 교회를 다닐 때부터 성경 지식을 습득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이수관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간접 체험했고 또 지식이 깊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크리스천의 말과 행동에 대해 더욱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저에게는 최고의 경험인 성령체험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난번 배우 허준호 씨의 간증집회를 본 제 후기는, 목사님이 손을 대니 뒤로 쾅 넘어졌다든지 너무 드라마틱하고 귀신과 성령님이 같은 건가… 허무맹랑하게 들렸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성령체험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처음엔 남들은 뭐하나 신경을 쓰다가 어느 순간 기도에 집중하고 있으니 제 몸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종일 굶은 터라 기운이 없어서 그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그때랑은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러다 목사님이 오셔서 조용히 기도를 시작하시면서 어깨인지 머리인지 손을 살짝 대셨는데 저는 뒤로 쿵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뒤에 벽이 있어서 벽에 부딪히고 주저앉았습니다. 누가 앞에서 확 미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목사님은 아니셨겠지요. 앉은 채로 계속 기도를 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빠르게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부분의 VIP와 같이 저는 원래 기도를 빨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정말 속사포처럼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놀랍지도 무섭지도 않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구나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구나. 감사하다 이런 생각만 들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영접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실은 삶 공부 중 첫 번째 영접을 하고 싶었는데. 주말에 일이 생겨 미뤘습니다. 그럴 수 있지 다음 달에 하면 되지 라며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로 미뤘는데 이번엔 큰아이 농구 토너먼트가 겹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상하다…. 이건 아닌데. 왠지 이번에도 미루면 다음에도 또 못할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접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큰아이와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6일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제 의지로 된 것은 없고 모두 주님의 이끄심대로 된 것임을 압니다.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저라는 건물을 쌓기 위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주셨다는 것도 알기에 모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솔직히 아직은 크리스천이라고 내세울 만큼 큰 행동과 말의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편안해졌고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엑스레이상 폐에 작은 종양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친정엄마의 폐암 가족력이 있는 저로서는 추가검사를 하고 판독을 듣기까지의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중보기도를 부탁할 때면 더욱 힘이 났습니다. 기도 응답도 받았습니다. 다행히 암은 아니고 정기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일상의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 짜증이 덜 나는 것도 좋은 변화인 거 같습니다. 내가 짜증 내고 전전긍긍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한 거면 알아서 해주실 거야 이런 마음을 먹고 있으면 놀랄 정도로 쉽게 그 일이 해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는 저희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살림을 못 하는 주부입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불쌍한 정도로 요리도 싫어합니다. 남편이 목장 요리를 하는 제가 신기하다고 할 정도이니까요. 그런 제가 누군가가 아프다고 할 때 죽을 끓이고 요리가 자신이 없을 때는 사서라도 건네주는 제 모습은 너무나 신기한 변화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많이 변한 거 같네요. 이제 슬슬 사역도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을 시작으로 저는 점점 성장하고 성숙해 갈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만, 예전과 같은 힘든 환자와 가족들을 간호해야 한다면 이번엔 잘 할 거 같습니다. 여기서 배운 대로 마음으로 섬겨주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줄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므로 걱정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체험하고 영접을 한 바탕에는 생명의 삶 공부가 있었습니다. 혹시 생명의 삶을 듣고는 싶은데 저처럼 고민이 많은 신분이 계신다면 그냥 신청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이니 뒷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함께 수고하신 71기 생명의 삶 동기 여러분께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13주간 인도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격려해주신 목자님, 목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긴 글 들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베트남 /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