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같이 작은 사람을 이런 영광된 자리로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에 영광 돌리면서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부모님 양가 모두 독실한 불교 집안에 모태 불교, 종갓집 장손으로 태어나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믿는 사람들과 접촉 없이 불교와 각종 동양 철학, 명상에 심취하여 살았습니다. 일찍이 부모님과 독립하여 살았으며, 내 뜻한 바대로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생각하며 2006년 미국에 와서, 만 25살에 식당 비즈니스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교만해져 내 능력과 생각으로 모든 일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의 꿈도 서서히 잃어버리고, 이곳에 온 목적도 잃어 가며 돈과 성공을 좇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불교 와 동양 철학에 심취했던 저는 성경 한 권짜리 책이 너무나 우스워 보였지만 겉으로 예의 바른 종교인으로 포옹해주는 척하였고 속으로는 주님을 믿는 영혼을 불쌍하게 여기였으며, 어느 순간에는 난 아마 세상에서 기독교와 가장 멀리 있는 사람, 세상의 마지막에도 믿지 않을 사람으로 철옹성을 단단히 쌓아놓고 30살이 되도록 살았습니다.
그렇게 자~알 살고 있었는데, 2012년 초 갑작스레 아내가 목장이라는데 전도되어 저보고 같이 나가자고, 급기야 생명의 삶을 듣더니 예수 영접 모임에는 부부가 같이 참석해야 하니 같이 나가자는 겁니다. 저는 천주교 배경의 아내가 이미 불교에 거의 전도가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어이없다가도, 맘이 넓은 종교인으로서 또 자상한 남편으로 같이 들어갔고, 그것이 최영기 목사님의 마지막 예수 영접 모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분이 전한 주님의 사랑/구원보다는 ‘축복’이란 단어에만 생각하며 하나님을 감히 또 하나의 좋은 신쯤으로 생각하고, 당시 비즈니스를 여러 개 마구 늘려 가는 찰라. ‘하나님이란 신에게까지 축복받으면 와! 내 인생 정말 대박이겠구나 ‘하는 정말 어의 어처구니없는 생각으로 2012년 4월 1일 예수 영접 하였습니다. 처음 믿으면 기도도 더 잘 이루어지고 축복도 더 받는다던데……전 축복은커녕.
모든 것을 아시는 살아계신 주님은 저의 이런 비루한 생각을 아시고 저를 진정한 당신의 종으로 부르시기 위해서, 그 고집스러운 나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내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주님의 땅으로 부르시기 위해 정말이지 제 인생에서 전에는 겪어 보지 못하는 각종 재앙과 고난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한 사업 확장들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한국 등에 투자한 것들이 손해를 보고, 돈줄이 막히기 시작하여 손해가 걷잡을 수 없이 되어 백만불에 가까운 빚이 생기고 급기야 몇 개월 만에 파산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부모님 건강, 경제 문제가 생겼고, 친척들 또한 건강이 문제가 생겼고, 비즈니스, 인간관계에서 배신을 경험하고, 건강을 무기로 평균 매일 12~18시간 일하며 정력적으로 비즈니스를 해왔던 건강이 급격하게 무너져서 코에서 입에서 소변에서 피가 나오고 심한 두통으로 쓰러지기 일쑤였고, 식도부터 장까지 전부 염증이 생겼고, 몸무게도 불규칙한 생활로 280파운드까지 늘어 온몸이 힘들어졌으며, 무엇보다 전 우리 가족은 단단하며, 행복한 한 줄만 알았는데, 아내는 저의 사랑과 관심이 부족하여 조울증이 심해져, 이것을 쇼핑으로 푸는 심한 쇼핑 중독에 빠져있었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일 년에 반은 침대에서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또한 저에게 차가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시간 관계상 다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일 새로운 고난이 절 괴롭혔습니다.
이 모든 고난이 예수 영접 후 몇 개월 동안에 생긴 문제였고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며, 내일은 또 무슨 재앙이 올까? 아침에 잠에서 깨는 것이 극도로 두려웠고, 잠들기 전에 내일은 또 어떤 문제 생길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기도에 나갔고, 마음이 힘든 순간에 나갔고, 자다가도 주님이 부르면 갔고, 이때 저를 보시는 어떤 분들은 초심자가 믿음 잘 큰다고 했지만, 이때 저에게 이 휴스턴 서울교회는 죄인을 숨겨주는 ‘도피성’ 이였습니다. 그저 두려움에 이 성에 숨었습니다. 이 주님의 성 막에서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순간마다 위로해주시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과 함께하는 순간은 너무나 즐거운데, 이 성 막을 나가는 순간이, 세상을 그리도 자신만만하게 살았던 저에게 세상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니 그럼 예수를 믿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저는 대답합니다. 그 고난이 내가 극복할 수 있을 정도라면 “뭐야 이거!” 하고 그만뒀을 거라고,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제 능력을 훨씬 초월한 상황이고 저에겐 오직 이 모든 상황을 회복시켜주실 절대자를 갈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에게 울 부 짖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님을 붙잡고,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할 뿐이었습니다. 주님이 성경을 읽으라면 읽고, 교회 오라면 오고, 삶 공부하라 하시면 하고, 금식하라고 하시면 하고, 그 부족한 상황에서도 헌금과 십일조 내라시면 내고, 어려운 사람 도우라면 돕고. 세상의 방법으로 풀어가지 않는 절, 아내는 너무나 답답해하고 타박했지만 전 주님이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예배, 목장, 이 수관 목사님의 설교 말씀,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음성으로 환상으로 징표로 갖가지 방법으로 주시는 주님의 위로가 아니었으면 정말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제 고난의 절정으로 다가가며 이미 내 삶은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며 나의 삶은 다 뒤집혀 갔으며, 매일 지속하는 고난과 재앙에 지쳐간 저는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가족 장기선교 얘길 꺼냈습니다, 하필이면 그 순간 아내가 임신 소식을 전했고 그래! 이건 하나님이 주신 제 결정에 대한 축복이라 생각하고. 태명을 단단이라고 정해주고 아내와 조금의 마음을 위로하며, 당시 이혜영 선교사님이 선교잔치 하던 날에 모든 걸 내려놓고 선교 헌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마지막 한 점까지 내려놓으라는 주심의 가르침이셨습니다. 헌신 다음 날 단단이는 유산되어 우리 곁을 떠났고, 전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이 주님 전에서 울 기운도 없어 하염없이 이 십자가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제가 더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내가 뭘 이리 잘못했을까? 난 내려놓은 것조차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소연하는 마음이 크게 들 때,
주님이 크게 내 앞에 임재하심을 느끼는 순간 전 그저 주님 앞에 움직일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이 엎드려 “거기 그 자리에 계십니까? 주님이십니까?”라고 외쳤고, 제가 주님을 뵈옵니다. 이 큰 죄인을 용서하옵소서”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주 동안 그렇게 주님 앞에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회개의 눈물이 나오고, 어떤 날은 내 죄에 몸서리가 쳐져 참을 수가 없어 이 성전 땅바닥에 머릴 내려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주님의 말씀이 명확히 들렸습니다. “내 선물은 어디 있느냐?”라는 물으심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삶도, 미국에 온 것도, 이곳에서 정착하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처음부터 다 주님이 준비해주신 선물이란 것을요. 그래서 다른 비즈니스들은 매니저 혹은 직원에게 모든 걸 다 맡기고 주님의 선물로 처음 시작한 지금 하는 식당 비즈니스로 2012년 12월 돌아갔습니다. 그 돌아간 달부터 놀랍게도 매출과 이윤이 2~3배로 뛰며 제가 책임져야 할 금액들이 정리 되어갔고, 주님의 이끄심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한 끼 굶는 것도 힘들어한 제가 밤낮으로 40일 금식을 하게 하시었고, 금식이 끝나는 날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 제가 더 해야 할까요?” 주님이 “감사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만큼 하여라“ 말씀하셨는데 저는 당시 초심자라 몰랐는데 그다음 주가 고난 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 절까지 금식을 하여 10일 더 금식하였는데, 그 금식이 끝나는 순간 마치 홍해를 가르시듯 정말 몇 달 동안저에게 생겼던 수백 가지 고난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풀려가는 것이 놀랍게도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방법으로요. 저와 아내는 홍해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이 모든 일이 풀려나가는 걸 보며 그저 감탄하면서 주께 영광 돌리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지나고 나서 모든 건강/경제문제/가족/인간관계가 다시 다 채워졌고 회복되었으며, 아니 훨씬 더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 가진 이 모든 삶을 모두 주님 것으로 바꾸어 주셔서 더는 내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일 중독이었던 저에게 시간 또한 선물해주셔서 교회/목장/사역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가족과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작년 2014/ 11월 광고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에게 ‘단단이’ 우리 세아까지 다시 주셨습니다. 다시는 임신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말이죠.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고백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이 고난들은 나의 욕심 때문에 난 것이지만, 그 고난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 주심에 감사한다고, 정말 주님의 정수는 그 끔찍한 고난 속에서 주님과 더 가까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나, 내면적으로나 날마다 기적 같은 삶 속에서 살게 하심은, 이 간증문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25절 “예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어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요한의 고백에 정말 공감합니다. 교회 나온 지 정확히 3년만에 이 자리에 서게 하시어, 마치 3년의 공생애처럼 가르치시며 동행해 주신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제 내 양 떼를 먹이고 쳐라” 하는 말씀에 순종하여 목자에 헌신합니다.
주님 저와 영원히 함께하여 주시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두마게티 목장의 출발을 위해 기도하여 주세요. 마지막으로 목자, 목녀님 과 남은 짠메이주 목장식구들 그리고 저희를 따라와 준 우리 목장 식구들께 감사하며, 저보다 4살 많지만, 제 눈엔 항상 애 같았는데, 이렇게 잘 따라와 준 나의 아내 김은선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두마게티 / 박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