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아, 네 마음은 왜 이렇게 좁니?”
지난 2월의 예수영접모임에서 성령체험의 기도를 올리다 들은 목소리입니다. 기도를 드리려고 눈을 감았는데 어두컴컴한-아마도 제 마음의 방인 모양입니다-공간의 앞쪽이 스윽 열리며 누군가 몸을 숙이며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제 마음이 좁다고 한 마디 하시곤 그 어두운 공간에 털썩 앉으셨습니다. 그 때까지 영접모임의 방에 사람이 너무 많아 답답하기도 하고, 이제 이 성령체험의 시간만 끝나면 밥 먹으러 가겠다고 속으로 좋아하던 저였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만 폭포수처럼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우는 건 스타일을 구기는 일이라 평소 생각하던 저였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 온데다 작년 12월에 처음으로 주님을 한 번 믿어보겠다고 등록한, 영적생활의 신참자인 저에게 성령님이 목소리를 들려주실 줄이야. 어쩌면 기도를 드리기 전,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 적 있느냐는 목사님의 질문에 영접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중 저만 우렁차게 “네.” 라고 대답해서 성령님이 제게 오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마음이 좁아 죄송하단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작년 9월에 휴스턴으로 이사 오고 4일 후에 말레이시아 목장 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종교 모임이란 것은 알았지만 초대한 사람이 친한 친구였고, 밥도 먹고 친구 얼굴도 볼 겸 그렇게 가정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목장모임에 간 이후로 “안녕하세요, 저는 윤수은입니다.” 하고 시작하는 자기소개를 몇 번을 했는지 모릅니다. 마치 동아리를 가입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던 대학 새내기 기분도 나서 모임에 갈 때마다 흥미진진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모임이란 어떤가, 한 번 체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는 자세, 딱 거기까지. 이후에 교회도 몇 번 왔지만 그건 단지 목장식구들에게 ‘빚’을 진 걸 갚으려는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이 제 생활을 압박할, 무언의 책임감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들의 어머니로, 글을 쓰는 직업인으로, 이미 현실의 제 일이 주는 책임감으로도 매일 허덕이는데, 거기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인 신앙생활은 생각만으로도 귀찮았습니다. 몰라도 이제껏 잘 살아왔는데. 끝까지 하지 않을 바에야 아예 시작을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컸습니다. 혹시 영접을 했는데 나중에 신앙심이 식어 흐지부지하게 되면 사람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미리 걱정하고 말이죠.
목장식구들이 교회에 오라면 오고, 새교우 환영회에 가자면 따라가고 했지만 속으로 영접은 하지 않고 그냥 친교만 쌓자 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교회를 좋아하는 겁니다. 아이가 교회에 오는 걸 즐거워하고, 무엇보다 저보다 더 신앙생활에 심드렁하던 남편이 예배를 몇 번 듣고 나서 느낀 바가 컸던지 아예 생명의 삶 수강까지 하며 열렬하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SPN과 선데이 풋볼 그리고 맥주가 우리 집의 흔한 주말 풍경이었는데, 교회를 다닌 이후로 어느 순간 성경을 읽고 생명의 삶 숙제를 하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처음부터 그랬던 양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저도 예배를 통해 항상 날이 서 있던 제 마음이 편안해짐을 내심 느끼던 참이었는데, 가족의 변화하는 모습을 본 후론 ‘교회에 좀 기대어 볼까’ 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기대지 말고, 그들 또한 내게 기대지 못하게 할 것. 그리고 어떤 ‘연못’이든 항상 발은 하나만 담글 것.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게.
제가 살아왔던 방식입니다. 그래서 등록은 쉬웠습니다. 어차피 목장모임을 자주 가니 교회에 등록은 하는 게 도리인 것 같고, 또 여차 하면 발을 뺄 수 있겠지, 라는 얕은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등록을 하고 나니 그 소속감 덕분인지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성심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기도를 함께 드리는 목장식구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새벽기도도 저는 새해맞이 화합산행의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세겹줄 짝이었던 목녀님들의 정말 진심어린 기도에 마음이 더 녹아내렸습니다. 그래서 등록을 하고도 새벽기도를 할 때나 목장모임에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왠지 죄송하고, 내가 감히 하나님께 아버지라는 말을 붙여가며 불러도 되는 위치인가 라는 생각이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다른 분들의 기도를 듣다가 아멘만 외치고, 주‘님’자도 붙이지 못하고 입을 다무는 일을 반복했죠. 결정적으로, 교회를 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목사님이 당시 제 마음의 불편함을 콕콕 찌르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영접하지 않은 자들은 영접한 신도들의 곁에 있어서 그 분들 몫의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것뿐이라는 말씀 그리고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 라는 말씀에 드디어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남편과 함께 영접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주 전 침례도 받았습니다. 누가 저보고 왜 이제 와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라고 물어보면 여전히 한 마디로 정확히 답을 드리긴 힘듭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영적인 필요를 주변 분들의 사랑으로 느꼈다는 점이죠. 심운기 목자님과 심수진 목녀님 이하 우리 목장식구들의 따뜻한 마음과 주님 아래 평화로운 그들의 모습 그리고 이수관 목사님의 마음에 와 닿는 설교와 서울교회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침례를 통해 예수님의 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선포한 사람입니다만 그렇다고 영접으로 인해 전의 생활습관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밤에 일하는 습관을 좀처럼 버리기 어렵네요. 그래서 주일 예배 시간에도 종종 꾸벅꾸벅 좁니다. 그것도 앞에 앉아서! 예배 내내 졸면서 하나님께 받을 은혜를 기대하고 돌아가는 건 무리라는 목회자 코너 글을 읽고 어찌나 가슴 한 구석이 찔리던지요. 아! 역시, 목사님은 앞에서 다 보시는구나, 이제는 졸릴 것 같으면 혼자 맨 뒤 구석에 앉아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접을 하고 믿는다는 마음, 그 하나만으로 뭔가 생활이 반듯해진 기분을 느낍니다. 전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라 참 신선하고, 좋습니다. 이런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겠지요.
그리고 회개, 섬김, 은혜…이 세 단어는 그동안 제 인생에서 거의 쓰임이 없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제 일상에 자주 등장합니다. 가끔 목장모임에서 나눔을 가지다 감사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저 자신에게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저 단어들을 생활에서 제대로 실천했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 생활태도의 긍정적인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최우선으로 실천할 것은, 식전 기도를 몸에 빨리 익히는 것입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숟가락 보다 감사합니다, 이 한 문장을 앞서 올리는 습관을 만들기가 이리 어려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의 침례간증이 잡힌 날도 점심을 먹다말고 이마를 탁 쳤습니다. “아차, 기도!”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