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참빛 – 간증모음

e Testimony

청소년 부모의 삶 간증: 쥬빌레 목장 김경선

By | e참빛

청소년 부모의 삶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7학년과 3학년,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때에 따라 헌아식, 유치부 부모의 삶, 그리고 초등부 부모 세미나를 수강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워 볼까 고민하던 때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큰 아이가 Teenager가 되어서 청소년 부모의 삶을 수강하게 되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이를 양육하며 얼마나 잘해주었고 못 해주었나를 떠나서 이제까지 함께 해왔던 시간보다 엄마, 아빠 품을 떠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애틋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큰 아이가 Junior High School에 들어가고 7학년에 올라 갈 즈음, 질풍노도의 시기, 즉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은 뭐 놀랄만한 질풍노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사춘기가 지속하는 나이가 아이마다 차이가 있고, 대개 12세에서 16세까지 간다고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은 지극히 낙천적인 성격으로, 남자아이지만 엄마 아빠에게 사랑표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끔 한 번씩 이유 없이 짜증도 내고 혼자 말없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나 당황도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저도 사춘기를 경험하고 지나는 봤지만, 사춘기 자녀를 키워본 적이 없고, 자칫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다 상처만 주기 쉬운 이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성경적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지 배워서 적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소년 부모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삶공부를 통해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이 삶공부가 부모의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부부의 삶과도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부부관계 또한 중요하며, 자녀교육의 궁극적 책임은 하나님께서 가정의 대표, 아버지 된 저에게 부여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불편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부부는 서로를 많이 사랑합니다. 17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변치 않고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주려 노력합니다. 아이들도 저희 부부의 애틋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결혼 상대자로 “엄마 같은 사람이면 무조건 오케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아이들도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평소에 엄마, 아빠의 관계가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며 존중해주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좋은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삶공부 첫 수업에서 배우고 제가 생각해왔던 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삶공부가 끝난 지금도 저와 아이를 연결해주는 사랑의 파이프 라인 중에 혹시 새거나 막힌 곳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많은 대화를 통해, 그리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면서 관계 유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삶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자녀 교육 삶공부에서 늘 강조하는 것, 아이들의 감정 탱크를 가득 채워 주는 것입니다. 감정 탱크를 채우려면 아이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 아이의 사랑의 언어는 칭찬과 함께 시간 보내기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저희 속이 터지는 횟수도 함께 많아졌습니다. 지극히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인 제 아들에게 성적이 좀 떨어지면 제가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아들, 양심상 공부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빠 나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고 왔는데”라고 시크하게 대답합니다. “그래도 공부 좀 하지?” 그러면 지금 당장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이어지며 결국 아들 녀석의 승리로 끝나곤 합니다. 사실, 공부 많이 하고 왔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아이와 다른 집 아이를 비교하는 것이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인 줄 알지만 동기 부여와 자존심을 좀 건드릴 요량으로 “다른 집 누구는 이번에 All A 받았다더라.”라고 하면 답은 늘 “Good for him.” 하며 진심으로 그 아이를 축하해 줍니다. 그리고 좀 제대로 규칙적인 공부를 시켜 봐야겠다고 매일 방과 후 집에서 아빠와 함께 몇 시간씩 공부하자고 하면 “You have Asian parent’s mind.”라고 하며 자기 친구 중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다고 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해묵은 한 옵션으로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뭐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도 아이가 제 말에 왜 고무공처럼 튀어 반발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보다 더 나이가 들면 머리가 컸다고 제 말은 듣지도 않으려고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반항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어찌 저렇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톡톡 말대꾸할까?

저의 답은 아이의 관심사를 아이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공감해주며 아이가 진심으로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주고 잘한 것은 잘했고 못 한 것은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저 사랑한다는 막연한 말만 많이 해주면 감정 탱크가 항상 충만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일상의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이것 좀 해라, 앞으로는 내 계획대로 이렇게 하라며 일방통행식 명령보다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율성을 인정해 주고 해야 할 일을 함께 계획하고 일정을 세워 아이가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아이도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지 전과 비교해서 본인의 주장만을 내세워 말대꾸하는 일이 많이 줄었고 엄마, 아빠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청소년 아이들은 잔소리보다는 격려와 훈련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지는 않으려고 해도, 매일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뒤로 미루는 것을 보면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많은 부분 잘해왔고, 잘했을 것인데도 저는 잔소리로 아이 감정을 상하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것 같습니다. 농구를 좋아해서 클럽팀과 학교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제 아이의 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NBA 프로 농구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올 시즌 아이가 정말 열심히 매 게임에 임했고 학교 농구팀이 Katy ISD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요즘은 Track에도 재미를 붙여서 프로 농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바뀌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농구 시즌이 끝나고 처음으로 시작한 Track, 300미터 허들 종목에서 District 최고 기록을 깨고 신기록 보유자가 되었고, 2주 전 끝난 Katy ISD Final Track Meet에서 같은 종목 7학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저는 두고 보면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에게 예선 게임들을 할 때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았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는 등 아이를 가르치는 코치 선생님들도 하지 않았을 잔소리를 퍼부어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잔소리지만, 잔소리보다 격려가 아이의 실력 향상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감정대로 했던 것에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운동에 타고난 신체적 조건의 타 인종의 아이들 사이에서 열세를 극복해가며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아이에게 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실수 하나에 격려와 훈련보다는 잔소리로 사기를 꺾었던 점이 많이 미안했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지금은 아이가 연습할 때도 실전 게임을 할 때도 실수가 나와도 질책보다는 격려의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멋진 플레이에는 전에보다 더 환호를 해주어 아이가 자신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가 굴렁쇠를 굴리는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주어진 넓은 들판을 힘차게 굴러가는 굴렁쇠이며 우리 부모들은 그 굴렁쇠를 일정한 방향으로 잘 굴러가게 잡아주고 유지해 주는 굴렁쇠 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굴렁쇠가 굴렁쇠 채에 의해 조정되고 굴러가는 것 같지만, 그 두 가지를 조정하는 사람의 조정 능력이 없다면 굴렁쇠는 제 기능대로 굴러가지도 못하고 고철로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조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이신 것 같습니다. 굴렁쇠 채인 우리 부모는 굴렁쇠인 아이에게 그저 팔 하나 걸치고 잡아주고 있을 뿐 모든 방향으로의 나아감은 조정자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조정자 하나님께 아이의 아빠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늘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아이를 위한 축복을 간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굴렁쇠를 잘 잡아주는 역할을 제게 부여해 주셨음을 잊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저에게 잠시 맡겨주신 저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잘 성장하도록 양육하고 돕겠다는 다짐을 하며 간증을 마치려고 합니다.

쥬빌레/김경선

생명의 삶 간증: 나에게 구원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

By | e참빛

지난주 생명의 삶 강의를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하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저에게 간증을 하라고 하셔서 티는 안냈지만 너무 놀라 없던 심장병이 다 생겼습니다. 걱정되고 떨리는 중에 목사님이 목회하시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 했는데 목회자가 되고 처음 강단에 올라갔는데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기억났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위안하며 간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인생에서 간증할 만한 일이 없는데…. 왜 저를 지목하셨을까, 혹시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서없고 드라마틱한 내용도 없지만 저처럼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항상 함께하심을 고백하며 제 신앙생활 첫 번째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12월 27일 저희 가족은 휴스턴에 도착하였습니다. 남편의 연구년을 계기로 휴스턴에 오기로 결정되고 여기서 ‘결정하고’ 가 아니라 ‘결정되고’라고 한 이유는 저희가 자발적으로 휴스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저희가 보내졌다는 말입니다. 남편은 연구년을 보낼 장소를 물색하며 여러 학교와 컨택하였고, 뉴멕시코주의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로스알라모스는 마트도 중, 고등학교도 하나씩밖에 없는 작은 고산 도시라고 했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좀 걱정도 되었지만, 그곳 아이들의 가장 큰 일탈이 벽에 낙서하는 것이라는 말에 아이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어 위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로스알라모스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아보고 준비하던 중 남편을 초청해 준 박사님이 휴스턴 라이스 대학으로 옮기게 되면서 저희도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생각지도 않던 휴스턴으로 오고 또 이렇게 서울교회로 온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렌트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정숙 목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서울교회와 르완다 목장을 소개받았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체계적인 삶 공부와 자녀교육을 책임진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세 딸의 신앙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고 둘째는 몇 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저희의 신앙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신앙이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미국으로 오는 준비 과정 중에 목녀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착한 날에는 감사하게도 목장 식구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중을 나와 주셔서 편하게 렌트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 집에는 목자, 목녀님이 준비해 주신 일주일은 넉넉히 먹을 음식과 여러 생필품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여행으로 저희를 마중 나오지 못한 목자, 목녀님은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셨지만, 준비해 주신 물건들을 보니 그분들의 수고와 사랑이 보여 정말 감사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목자 목녀님이 너무 심하게 섬겨 주시는 바람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생명의 삶 강의를 듣고 왜 그분들이 그렇게 하시는지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첫 시간에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 그 사랑이 넘쳐서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같다고 하신 말씀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렇게 이웃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공부가 아니라 삶 공부라는 말도 좋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삶 공부는 성경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격려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너무 의심이 많고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막연히 지옥은 가기 싫으니 천국에 가면 좋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고 제가 아는 만큼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하나님이 저를 구원해주실지, 천국에 불러주실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도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도하려면 왠지 쑥스럽고 하나님이 왜 너는 나를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기도하니 할 것 같아 기도하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는데 저는 너무도 부족하고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강의 중에 목사님이 ‘예수님을 닮아 거룩해지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물어보셨는데 저는 당연히 ‘어렵지요.’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답은 ‘쉽다’ 였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우리를 의롭게 보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위안이 되고 저에게 하나님께 다가가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해 보려는 시도도 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고 아침마다 가족과 목장 식구들, 한국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생명의 삶 강의는 늘 재밌었고 목사님 말씀 하나하나가 너무 동의하고 감동도 받고 기분 좋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남편도 너무 좋다고 하였고 함께 은혜받고 이야기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몇 주간은 함께 집에 오는 차 안에서는 정말 그 은혜가 무색하게도 항상 싸웠습니다. 남편은 네가 말만 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였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별것 아닌 한두 마디에 기분이 상해 큰 싸움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싸웠는지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화요일 밤마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안 목녀님은 생명의 삶 공부 중에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사단의 방해라고 하시면서 기도해 주셨고 저희도 기도하며 화요일만은 서로 좀 더 조심하였습니다. 모두의 기도 덕분인지 삶 공부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저희 부부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삶은 남편에게도 많은 은혜를 부어주었습니다. 성령체험을 앞둔 강의에서 목사님은 여러 체험사례를 얘기해 주셨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저는 어떤 은사를 구할까 고민도 하며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꼭 체험해야만 아냐며 체험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던 남편은 제 부푼 기대를 조금씩 바람 빼는 말들을 해서 실상 마음을 다해 성령체험 준비를 못 하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약간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물론이고 참석하고 있는 모든 분이 각자 바라고 기도하는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한분 한분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고 저에게는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근심을 다 없애주시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님과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제 마음속을 이렇게 잘 아시는지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남편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다고요. 아마도 성령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신 것 일 겁니다. 목사님이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뒤로 넘어져서 오열하며 바닥을 닦는다든지, 병이 낫고, 방언한다든지 하는 드라마틱한 체험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금식과 기도로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저를 탓하며 아쉬워하고 남편도 당연히 저처럼 큰 체험을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폭풍 눈물을 흘렸고 성령님이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것을 체험했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얄미웠지만 그렇게 성령님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는 것에 그리고 절대 울지 않는 남편이 폭풍 오열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도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항상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남편은 제가 좀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안 좋은 점을 꼬집어 말하며 저의 은혜를 반감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렇게 말하고 나중에 보면 자기는 은혜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이번 성령체험처럼요. 그런 비판적인 남편도 이렇게 은혜를 받고 남편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또 은혜가 됩니다.

기대하던 생명의 삶 공부에서 죄, 회개, 구원, 믿음,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교회, 등 당연히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내내, 

아~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 공부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온 우주에서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저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저는 구원의 확신과 천국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다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길 것이고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리 없다는 것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이 가기에 너무 먼 당신 이었던 하나님이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제가 뛰어가서 안겨도 되는 하나님이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 또 출장에서 돌아오시자마자 힘드실 텐데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인 남편과 함께 생명의 삶을 졸업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짧지 않은 강의 기간 동안 늘 함께 기도해 주신 르완다 목장의 목자, 목녀님, 목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르완다/조홍철

생명의 삶 간증: 알마티 목장 사호석

By | e참빛

저를 자녀 삼아주시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에서 종합병원 의사로 근무하다가 7개월 전 휴스턴에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연수를 왔습니다. 목장에서 VIP로 지극한 섬김을 받던 중 생명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고, 생명의 삶을 들었던 지난 12주는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과 교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과 크리스천으로서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느끼고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신앙이 없이 살아온 제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내가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곧 법이라는 마음이 얼마나 교만하고 죄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원하던 곳에서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에는 비록 시청률은 0이지만 각자 인생 드라마의 주연으로 열연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선배 교수님들과 어울려 노래방에라도 가면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일어나셔서 Frank Sinatra의 ‘My way’를 부르시거나 약간 덜 지긋하신 분은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듣는 다른 선생님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15도씩 들어서 각자 걸어온 화려한 인생을 묵상하고는 합니다. 물론 그분들이 자기 인생에서 피땀 흘려 일구어온 노력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 또한 교수가 되고 지난 7년간 평일이면 거의 날마다 병원에서 14시간~15시간씩 일하고 연구해왔는데, 그 마음 한가운데는 나도 언젠가 주변의 존경과 높임을 받고 내 인생을 성공되게 만들겠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이력서를 쓰면서 저 자신을 잘 포장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해온 연구, 논문, 상, 강의 등등 영혼까지 긁어서 써 보았지만, 정리가 끝난 이력서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만족감과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허무함이었습니다. 내가 고작 이런 성공을 위해 그 많은 좋은 것들을 희생해왔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요한계시록 3:17)’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성공시키겠다는 교만한 마음이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맞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자기의 성공신화에 도취하여 주변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하고 또는 작은 시련이라도 닥치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아니면 그런 눈에 드러나는 파국까지는 아니어도 겉으로는 겸손해하면서도 속으로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열등감을 놓지 못하는 이중성에 평생 괴로워하는 삶.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하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이고, 나는 그저 하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 역할만 신실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의 자유를 느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부르셨다.”라고 하셨다는 목사님 말씀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곳에서 암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 논문을 어떻게 하면 유명 저널에 실을까 통계분석을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까 고민했을 텐데 이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암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건강해진 눈과 몸으로 하나님을 좀 더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에 좀 더 집중하고, 내가 성실하게 연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제가 귀국하여 다시 환자들을 돌보게 될 때는 저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님의 뜻에 맞게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곳 휴스턴에 와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내와 아이와의 관계를 많이 회복했습니다. 저는 안과 의사고 제 아내는 치과 의사인데, 저는 신혼 초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가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별다른 외부의 시련이 없는 순탄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결혼 생활의 주인이 되고자 서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5년, 10년이 되면서 ‘적’의 성향을 너무 잘 알게 된 탓에 다투는 일은 별로 없어졌지만, 늘 무언가 미안한 가운데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번에 아내와 생명의 삶을 함께 수강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생활을 같이 꿈꾸면서 서로 믿음의 동지로서 어느 때보다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금요일 저녁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목장 나눔이 있다는 것과 제 아내가 ‘Too much talking’의 은사를 받아 ‘Too much’ 진솔한 나눔의 선봉에 있다는 점이 제 인생에 건강한 CCTV 역할을 해주고 있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주변의 이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섬겨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주변의 이웃들도 누구나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사랑하신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실제 눈동자와 그 홍채를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굴곡과 제각기 다른 색깔, 그리고 시시각각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도 제각기 다를 것이지만, 마치 눈동자와 홍채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여 알아보시고 우리에게서 눈을 못 떼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에 대해 모를 때, 저는 비록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편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적극적인 섬김이었다기 보다 나의 평판을 유지하고 내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고백합니다.

환자들을 측은지심으로 돌보고자 하였지만 제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질 때는 남을 불쌍하게 여길 여력도 이유도 잃고는 하였습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저라는 사람의 연장선으로 여겼고, 사회적인 책임이나 약속에 대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까닭에 가족들의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나가서는 엄청나게 잘하면서 집에 오면 안 그렇다고, 오죽하면 아내가 제발 자기와 애들을 남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농담을 자주 했을까요?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는 다른 이웃의 인생에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에 하나님의 성공을 위해 주변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제가 교회 나온 지 3주째에 평신도 세미나에서 사역을 한다고 집을 비운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VIP답지 않은 오지라‘핑’이라며 놀렸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큰 아이가 이마를 크게 부딪혀서 혈종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한 혹처럼 흉을 남겼습니다. 5개월 전부터 저는 매일 아침 아이의 이마를 마사지해주고 있습니다. 힘든 시련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 팔자 좋은 고민이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가 다치던 그 시간에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아이의 흉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이 제 큰 기도 제목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의사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이마의 혹이 확연히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제 시간적으로도 더는 마사지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마사지를 하면서 제 눈에 아이의 혹이 아니라,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길 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의 하나님께서 제게 그 마음을 만져주라고 하시는 한 저는 계속 아이의 이마를 만져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 생명의 삶공부를 하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목장 식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확인하고 또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스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자동차 고장으로 1~2주간 차를 못 쓰는 상황이 있었는데, 선뜻 자기 차를 내어 주셨던 목자님을 보고 그때는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랜 시간 목양을 통해 단련된 크리스천의 모습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알마티 목장의 특징은 서로에게 너무 질척거린다고 놀림 받을 만큼 나눔에 열정적이고 한번 앉으면 도무지 일어날 생각들을 안 하는 무거운 마음의 ‘방뎅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내 안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목장 식구들께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밤늦은 시간에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생명의 삶을 이끌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삶공부하는 많은 분이 저처럼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비유와 예를 들어 말씀을 잘 이해하게 해주시는 목사님 모습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성도들을 위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목사님 생신 때 케이크도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시고, 또 강의 마지막 날 직접 만드신 정성스러운 도시락으로 저희를 섬겨주셨던 이은주 사모님께서, 이 생명의 삶이 이수관 목사님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삶공부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들려주신 목사님 삶의 간증들이 하나님과의 즐거운 동행을 시작하는 저희 형제 자매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알마티/사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