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참빛 – 간증모음

e Testimony

생명의 삶 간증: 나에게 구원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

By | e참빛

지난주 생명의 삶 강의를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하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저에게 간증을 하라고 하셔서 티는 안냈지만 너무 놀라 없던 심장병이 다 생겼습니다. 걱정되고 떨리는 중에 목사님이 목회하시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 했는데 목회자가 되고 처음 강단에 올라갔는데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기억났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위안하며 간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인생에서 간증할 만한 일이 없는데…. 왜 저를 지목하셨을까, 혹시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서없고 드라마틱한 내용도 없지만 저처럼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항상 함께하심을 고백하며 제 신앙생활 첫 번째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12월 27일 저희 가족은 휴스턴에 도착하였습니다. 남편의 연구년을 계기로 휴스턴에 오기로 결정되고 여기서 ‘결정하고’ 가 아니라 ‘결정되고’라고 한 이유는 저희가 자발적으로 휴스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저희가 보내졌다는 말입니다. 남편은 연구년을 보낼 장소를 물색하며 여러 학교와 컨택하였고, 뉴멕시코주의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로스알라모스는 마트도 중, 고등학교도 하나씩밖에 없는 작은 고산 도시라고 했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좀 걱정도 되었지만, 그곳 아이들의 가장 큰 일탈이 벽에 낙서하는 것이라는 말에 아이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어 위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로스알라모스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아보고 준비하던 중 남편을 초청해 준 박사님이 휴스턴 라이스 대학으로 옮기게 되면서 저희도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생각지도 않던 휴스턴으로 오고 또 이렇게 서울교회로 온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렌트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정숙 목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서울교회와 르완다 목장을 소개받았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체계적인 삶 공부와 자녀교육을 책임진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세 딸의 신앙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고 둘째는 몇 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저희의 신앙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신앙이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미국으로 오는 준비 과정 중에 목녀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착한 날에는 감사하게도 목장 식구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중을 나와 주셔서 편하게 렌트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 집에는 목자, 목녀님이 준비해 주신 일주일은 넉넉히 먹을 음식과 여러 생필품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여행으로 저희를 마중 나오지 못한 목자, 목녀님은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셨지만, 준비해 주신 물건들을 보니 그분들의 수고와 사랑이 보여 정말 감사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목자 목녀님이 너무 심하게 섬겨 주시는 바람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생명의 삶 강의를 듣고 왜 그분들이 그렇게 하시는지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첫 시간에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 그 사랑이 넘쳐서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같다고 하신 말씀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렇게 이웃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공부가 아니라 삶 공부라는 말도 좋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삶 공부는 성경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격려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너무 의심이 많고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막연히 지옥은 가기 싫으니 천국에 가면 좋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고 제가 아는 만큼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하나님이 저를 구원해주실지, 천국에 불러주실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도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도하려면 왠지 쑥스럽고 하나님이 왜 너는 나를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기도하니 할 것 같아 기도하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는데 저는 너무도 부족하고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강의 중에 목사님이 ‘예수님을 닮아 거룩해지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물어보셨는데 저는 당연히 ‘어렵지요.’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답은 ‘쉽다’ 였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우리를 의롭게 보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위안이 되고 저에게 하나님께 다가가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해 보려는 시도도 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고 아침마다 가족과 목장 식구들, 한국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생명의 삶 강의는 늘 재밌었고 목사님 말씀 하나하나가 너무 동의하고 감동도 받고 기분 좋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남편도 너무 좋다고 하였고 함께 은혜받고 이야기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몇 주간은 함께 집에 오는 차 안에서는 정말 그 은혜가 무색하게도 항상 싸웠습니다. 남편은 네가 말만 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였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별것 아닌 한두 마디에 기분이 상해 큰 싸움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싸웠는지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화요일 밤마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안 목녀님은 생명의 삶 공부 중에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사단의 방해라고 하시면서 기도해 주셨고 저희도 기도하며 화요일만은 서로 좀 더 조심하였습니다. 모두의 기도 덕분인지 삶 공부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저희 부부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삶은 남편에게도 많은 은혜를 부어주었습니다. 성령체험을 앞둔 강의에서 목사님은 여러 체험사례를 얘기해 주셨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저는 어떤 은사를 구할까 고민도 하며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꼭 체험해야만 아냐며 체험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던 남편은 제 부푼 기대를 조금씩 바람 빼는 말들을 해서 실상 마음을 다해 성령체험 준비를 못 하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약간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물론이고 참석하고 있는 모든 분이 각자 바라고 기도하는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한분 한분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고 저에게는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근심을 다 없애주시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님과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제 마음속을 이렇게 잘 아시는지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남편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다고요. 아마도 성령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신 것 일 겁니다. 목사님이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뒤로 넘어져서 오열하며 바닥을 닦는다든지, 병이 낫고, 방언한다든지 하는 드라마틱한 체험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금식과 기도로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저를 탓하며 아쉬워하고 남편도 당연히 저처럼 큰 체험을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폭풍 눈물을 흘렸고 성령님이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것을 체험했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얄미웠지만 그렇게 성령님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는 것에 그리고 절대 울지 않는 남편이 폭풍 오열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도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항상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남편은 제가 좀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안 좋은 점을 꼬집어 말하며 저의 은혜를 반감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렇게 말하고 나중에 보면 자기는 은혜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이번 성령체험처럼요. 그런 비판적인 남편도 이렇게 은혜를 받고 남편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또 은혜가 됩니다.

기대하던 생명의 삶 공부에서 죄, 회개, 구원, 믿음,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교회, 등 당연히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내내, 

아~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 공부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온 우주에서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저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저는 구원의 확신과 천국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다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길 것이고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리 없다는 것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이 가기에 너무 먼 당신 이었던 하나님이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제가 뛰어가서 안겨도 되는 하나님이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 또 출장에서 돌아오시자마자 힘드실 텐데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인 남편과 함께 생명의 삶을 졸업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짧지 않은 강의 기간 동안 늘 함께 기도해 주신 르완다 목장의 목자, 목녀님, 목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르완다/조홍철

생명의 삶 간증: 알마티 목장 사호석

By | e참빛

저를 자녀 삼아주시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에서 종합병원 의사로 근무하다가 7개월 전 휴스턴에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연수를 왔습니다. 목장에서 VIP로 지극한 섬김을 받던 중 생명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고, 생명의 삶을 들었던 지난 12주는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과 교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과 크리스천으로서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느끼고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신앙이 없이 살아온 제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내가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곧 법이라는 마음이 얼마나 교만하고 죄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원하던 곳에서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에는 비록 시청률은 0이지만 각자 인생 드라마의 주연으로 열연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선배 교수님들과 어울려 노래방에라도 가면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일어나셔서 Frank Sinatra의 ‘My way’를 부르시거나 약간 덜 지긋하신 분은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듣는 다른 선생님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15도씩 들어서 각자 걸어온 화려한 인생을 묵상하고는 합니다. 물론 그분들이 자기 인생에서 피땀 흘려 일구어온 노력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 또한 교수가 되고 지난 7년간 평일이면 거의 날마다 병원에서 14시간~15시간씩 일하고 연구해왔는데, 그 마음 한가운데는 나도 언젠가 주변의 존경과 높임을 받고 내 인생을 성공되게 만들겠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이력서를 쓰면서 저 자신을 잘 포장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해온 연구, 논문, 상, 강의 등등 영혼까지 긁어서 써 보았지만, 정리가 끝난 이력서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만족감과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허무함이었습니다. 내가 고작 이런 성공을 위해 그 많은 좋은 것들을 희생해왔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요한계시록 3:17)’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성공시키겠다는 교만한 마음이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맞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자기의 성공신화에 도취하여 주변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하고 또는 작은 시련이라도 닥치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아니면 그런 눈에 드러나는 파국까지는 아니어도 겉으로는 겸손해하면서도 속으로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열등감을 놓지 못하는 이중성에 평생 괴로워하는 삶.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하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이고, 나는 그저 하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 역할만 신실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의 자유를 느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부르셨다.”라고 하셨다는 목사님 말씀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곳에서 암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 논문을 어떻게 하면 유명 저널에 실을까 통계분석을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까 고민했을 텐데 이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암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건강해진 눈과 몸으로 하나님을 좀 더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에 좀 더 집중하고, 내가 성실하게 연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제가 귀국하여 다시 환자들을 돌보게 될 때는 저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님의 뜻에 맞게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곳 휴스턴에 와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내와 아이와의 관계를 많이 회복했습니다. 저는 안과 의사고 제 아내는 치과 의사인데, 저는 신혼 초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가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별다른 외부의 시련이 없는 순탄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결혼 생활의 주인이 되고자 서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5년, 10년이 되면서 ‘적’의 성향을 너무 잘 알게 된 탓에 다투는 일은 별로 없어졌지만, 늘 무언가 미안한 가운데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번에 아내와 생명의 삶을 함께 수강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생활을 같이 꿈꾸면서 서로 믿음의 동지로서 어느 때보다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금요일 저녁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목장 나눔이 있다는 것과 제 아내가 ‘Too much talking’의 은사를 받아 ‘Too much’ 진솔한 나눔의 선봉에 있다는 점이 제 인생에 건강한 CCTV 역할을 해주고 있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주변의 이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섬겨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주변의 이웃들도 누구나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사랑하신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실제 눈동자와 그 홍채를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굴곡과 제각기 다른 색깔, 그리고 시시각각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도 제각기 다를 것이지만, 마치 눈동자와 홍채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여 알아보시고 우리에게서 눈을 못 떼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에 대해 모를 때, 저는 비록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편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적극적인 섬김이었다기 보다 나의 평판을 유지하고 내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고백합니다.

환자들을 측은지심으로 돌보고자 하였지만 제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질 때는 남을 불쌍하게 여길 여력도 이유도 잃고는 하였습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저라는 사람의 연장선으로 여겼고, 사회적인 책임이나 약속에 대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까닭에 가족들의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나가서는 엄청나게 잘하면서 집에 오면 안 그렇다고, 오죽하면 아내가 제발 자기와 애들을 남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농담을 자주 했을까요?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는 다른 이웃의 인생에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에 하나님의 성공을 위해 주변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제가 교회 나온 지 3주째에 평신도 세미나에서 사역을 한다고 집을 비운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VIP답지 않은 오지라‘핑’이라며 놀렸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큰 아이가 이마를 크게 부딪혀서 혈종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한 혹처럼 흉을 남겼습니다. 5개월 전부터 저는 매일 아침 아이의 이마를 마사지해주고 있습니다. 힘든 시련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 팔자 좋은 고민이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가 다치던 그 시간에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아이의 흉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이 제 큰 기도 제목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의사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이마의 혹이 확연히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제 시간적으로도 더는 마사지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마사지를 하면서 제 눈에 아이의 혹이 아니라,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길 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의 하나님께서 제게 그 마음을 만져주라고 하시는 한 저는 계속 아이의 이마를 만져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 생명의 삶공부를 하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목장 식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확인하고 또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스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자동차 고장으로 1~2주간 차를 못 쓰는 상황이 있었는데, 선뜻 자기 차를 내어 주셨던 목자님을 보고 그때는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랜 시간 목양을 통해 단련된 크리스천의 모습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알마티 목장의 특징은 서로에게 너무 질척거린다고 놀림 받을 만큼 나눔에 열정적이고 한번 앉으면 도무지 일어날 생각들을 안 하는 무거운 마음의 ‘방뎅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내 안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목장 식구들께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밤늦은 시간에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생명의 삶을 이끌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삶공부하는 많은 분이 저처럼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비유와 예를 들어 말씀을 잘 이해하게 해주시는 목사님 모습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성도들을 위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목사님 생신 때 케이크도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시고, 또 강의 마지막 날 직접 만드신 정성스러운 도시락으로 저희를 섬겨주셨던 이은주 사모님께서, 이 생명의 삶이 이수관 목사님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삶공부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들려주신 목사님 삶의 간증들이 하나님과의 즐거운 동행을 시작하는 저희 형제 자매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알마티/사호석

부활절 간증: 추적하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오늘 여기 이 자리까지 저의 삶을, 여기 한분 한분의 인생길을, 추적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동으로 말씀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2015년 1월에 남편과 함께 목회자 연수를 오게 된 후, 그해 10월부터 서울교회에서 인턴 목사로 섬기고 있는 백성지 목사의 아내, 뜨미아르 목장 최유리 목녀입니다. 오늘, 이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부활의 아침에 제가 드리는 간증은. 철없는 사모의 간증도, 2년차 새내기 목녀의 간증도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위해 빈 무덤으로 달려갔던, 그리고는 부활의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한 여인의 간증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몇 년 전 겨울날, 친정엄마와의 전화 통화 중에 이름도 잘 모르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때 저는 서른여섯, 5년 전이었나 봅니다. 한국에서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학업과 사역을 병행하던 남편과 함께 9살, 6살, 4살 꼬마 아이들과 하루하루 씨름하며 지내던 때였습니다. 저의 외할머니의 이름은 ‘남궁분순’이라 했습니다. 저는 외할머니를 본 적도 없고, 초등학교 즈음에 외할머니를 여의고 일찍 가족을 떠나 독립했던 친정어머니는,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아주 가끔 친정어머니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리야… 외할머니가 노아 방주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단다.” 하고 추억하곤 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악해서 하나님이 심판을 했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신단다’ 하고 할머니가 말하면, ‘방에 들어가서 꼭꼭 숨으면 되지.’ 하고 엄마가 대답했지… 그러면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꼭꼭 숨어도 다 볼 수 있으시단다.’”

전라도 광주 어디쯤 양반집 종가며느리로 살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6남매를 낳아 기르시던 외할머니는 마당에서 일하다, 아이들과 놀아주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집안사람들과 동네 람들은 ‘야수교’를 믿는다고 외할머니를 싫어했다고 했습니다. “아따. 쟈가 야수만 안 믿으면 참 좋은 아인디.” 교회를 다녀오다 외할아버지가 던진 삽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가던 외할머니의 뒷모습. 방 안으로 피해 들어가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밖에서 문을 열려고 휘두른 할아버지의 낫에 손가락이 잘린 외할머니. 그 잘린 손가락을 동생들과 함께 묻어주던 일. 너무 많이 맞아서 나중엔 혼자 하늘을 보며 히죽히죽 웃곤 하던 그 외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전화기 너머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하던 울보 엄마. 너무 견디기 힘들어 서울로 도망간 외할머니가 새벽기도를 갔다가 “너의 어린 자녀들이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몇 년을 더 살다, 외할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아 누운 지 며칠 만에 돌아가셨을 때, 외할머니 나이가 서른여덟이라 했습니다. 돌아가실 만큼 맞기 전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집 밖으로 쫓겨났던 외할머니가, 긴 담벼락 겹쳐진 틈 사이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는 친정엄마. 어린 엄마의 손을 잡고 담을 넘어 새벽기도를 가면서, “영순아(친정엄마 이름), 성령님이 오신단다…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단비처럼 오신단다” 하고 어린 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시곤 했다는, 내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돌아가시던 날. 그냥 예수 안 믿으면 됐을터라며 그렇게 많이 울었다는 친정엄마. 그리고 엄마는 지금 예수님 전하는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손녀딸조차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38년 이 땅에서 예수님 믿고 눈물과 은혜로 조용히 살다간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믿었던, 모든 것을 잃어도, 잃을 수 없었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믿어서 그래서 믿음도 겸손도 헌신도 그리고 뜨거운 마음까지도 너무 가벼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50여 년 전의 평범한 여인은 제가 아직은 모르는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땅의 것을 마지막이라, 이 땅을 종착역이라 여기지 않고, 늘 천국 집을 바라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과 자신을 핍박하는 가족들을 품고 살았던 그 여인의 삶이 오늘 저의 삶을 파고듭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머니가 늘 부르시던 찬송이라 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쯤, 저는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가면서 매 주일, 오늘이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부목사로 섬기고 있지만, 사모가 시험에 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사모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힘든 걸 속일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저는 서른여덟 살 할머니가 목숨 바꿔 소중히 여겼던 예수님의 이름이, 그 하늘나라의 비밀이 별로 소중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지신 희생의 십자가. 참 마음은 아프지만 무의미하다. 나와는 상관이 없구나. 그리고 문득문득 멈추어 서서 제 나이를 계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서른여섯, 서른일곱, 서른여덟… 그리고 마흔하나. 그 이후로도 제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그렇게 2015년 1월에 서울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3년 전 오늘, 부활의 아침에, 마음에 고인 눈물을 쏟아내며, 침례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비둘기를 만났네요.
오늘 이 제한된 시간 안에 제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한 간증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서울교회로 와서 목원으로 지내는 1년간 저는 목장에서 사랑을 회복하고, 예배에서 마음을 쏟고, 삶공부에서 여전히 저를 불편하게 했던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초대교회를 회복해가기를 소원하는 이곳에서 목녀로 여러 목원들을 섬기는 지난 2년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더 가슴 깊이 새겨지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교육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건축업을 하시다가 40의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신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25살에 전도사 사모로 시작해서 목회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모로 15년간 여러 교회를 섬겼습니다. 부모님이 개척하셨으니 개척교회에서부터, 200명 성도에서 4000명 성도의 교회까지 두루 다니며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 목녀하며 행복합니다. 남편도 저도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녹록지 않지만, 그 행복의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저 성경을 통해 제가 평생 들어왔고, 배워왔던, 꿈꾸던 그 교회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기쁨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좀 더 건강한, 좀 더 좋은 교회는 가능하다 여깁니다. 서울교회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내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내고, 구원을 돕는 이도, 구원을 받은 이도 함께 제자가 되어가도록 하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함께 지어지고,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저는 무대 울렁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섬기는 사역부서인 가정 사역부에서, 앞에 나서는 안내방송을 합니다. 저는 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어를 잘 못 합니다. 그런데 석 달 모자라는 지난 3년간 영어와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병원에서 일하였습니다. 순종하면서도 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제가 잘 못하는 것만 시키시나요?” 그러면 주님은 별말 없이 “그래야 말을 잘 듣지….”하고 미소를 보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별다른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또 하루하루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지난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는 중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마지막 날 간증자로 세워졌는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열망이 생겨, 무례를 무릅쓰고 담임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고, 목사님과 남편의 배려로 시간을 쪼개어 두 사람이 함께 간증자로 섰습니다(그 덕분에 남편은 20분짜리 간증을 딱따구리처럼 13분 안에 끝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짧은 간증이었지만 목회자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소원하는 마음이 연결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간증을 모티브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세우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꿈. 부활의 기쁨을 함께 소유한 예배 공동체. 저와 여러분이 함께 모여 한 성령으로 예배하는 이 영광스러운 한 몸 공동체. 서울 교회 공동체에서 받은 은혜와 제가 붙든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기쁨을 조금 더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메콩강 목장에서 목원으로 지내던 2015년, 할머니의 희생의 십자가가 다시 내 안에서 상관되고, 내삶에 교회의 소중함이 다시 선명해지면서 제가 붙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이전 교회에서 받은 여러 가지 상처로 단단해지고 굳어져 버린 마음을 십자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신 하나님.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기로 하고, 내 맘의 상처를 인정하며 주님 앞에 나의 속사람을 내어놓았을때, 크신 주님은 저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얻게 되는 구원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자, 목녀 임명을 받고 뜨미아르 목장을 섬기기 시작한 2016년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순종의 십자가 입니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그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늘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그리고 마음의 소원함을 통해 순종하면서, 어리석어 보이고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사를 하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영혼구원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목장에 식구들이 넘쳐나는 사역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하나님은 저희에게 사역의 열매뿐만 아니라 순종을 통한 삶의 열매도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드러나는 사역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도 철저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인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정직하게 발견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더욱 크리스천답게 살아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 사역 가운데,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생업의 일을 경험하며 순종을 통한 은혜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남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를 기대하던 우리에게 시험의 대로를 화끈하게 열어주셨구나. 사랑한다고 하셔놓고 또 이러시는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있겠구나. 하실 말씀이 있으시구나. 그러면서 그 길을 걸으며 주님과의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때로 시온의 대로는 시험의 대로가 되기도 하고, 또는 시험의 대로가 시온의 대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 치열했던 순종의 시간을 통해 순간순간 저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조그맣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크~은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몸부림치며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했어도 버티고 서서 물살을 쪼개는 경험은 한 것 같습니다.” 많은 싱글 청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고 삶이 변하여 제자가 되어가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순종을 통해 얻게 된 생명들. 그 믿음의 간증들은 더할 수 없는 저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목녀 2년 차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헌신의 십자가입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세상은 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으신다’고 말합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저는 헌신과 낭비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사랑하는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경우가 생기는가? 어떤 경우에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게 여겨지는가? 답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헌신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지만 그 헌신의 때와 헌신의 이유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주님이건, 목원이건, VIP건 혹은 그 누구건 간에, 사랑하지 않는 건 일단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사랑해도 헌신의 때와 이유가 바르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냉소와 거친 자아만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목녀로 섬기기 이전의 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날 위해 지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헌신의 십자가를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남는 시간에, 내 삶의 여러 개 중의 하나를 내가 원할 때 주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베푸는 자선보다도 못한 것이구나…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시간에, 내 삶의 최고의 것을 원하신다면, 그것을 내 소중한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 이것이 헌신이구나

그것이 비록 세상적인 계산과 맞지 않고, 결과를 바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헌신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 헌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삶에 절제가 이루어지고 내가 해야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구별되는 것을 배우면서, 열심과 방향도 중요하지만, 헌신 만큼은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 담에 주님 앞에 서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무게를 달아보실 텐데,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말씀에서 배운 대로 중요한 일에 자신을 소모하게 하는 일은 닳아 없어져도 결코 손해이지 않은 아름답고 힘 있는 가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난절에 저는 사명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지만, 사명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완수하신 예수님. 아 사명이 그런 것이지… 처절한 죽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시고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의 그 사명의 자리. 고통과 유혹이 사명을 흔들었지만 모두 이겨내시고 지켜낸 자리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저희 할머니가 안전한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핍박의 자리. 주님의 부탁이라 여기고 지켰던 침묵의 자리. 그래서 예수님의 흔적을 자녀들에게 남기고 죽어간 자리. 저는 언젠가 서울교회를 떠날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알게 되는 것이 소명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사명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모보다 목녀가 좋지만, 남편과 함께 또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소명의 자리로 가게 되겠지요. 그 선한 로테이션을 두고 기도하면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자리, 하나님의 일을 완수해 낼 사명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사명의 자리에서, 또다시 겹겹의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많은 샘과 이른 비의 은혜를 누리고, 그 길에 수많은 기적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압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그 기적을 일으키셨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보이시는 주님’을 보는 것임을, 그래서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명자의 태도임을 되새겨 봅니다.

이제 저는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 은혜의 순간이며, 그 자리에서 참된 부활의 기쁨이 시작됨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살면서, 그 매력적인 삶의 증거로 믿지 않는 영혼을 믿게 하고 이웃을 섬기며 더 신실한 제자가 되어가는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카디널 수핸드는 ‘증인이 된다는 것은 선전에 몰두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부활의 소식을 듣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기억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무딘가?”하고 예수님께 핀잔을 들은 두 제자. 예수님을 따르다 흩어져버린 허다한 무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그들은, 말씀에 자신을 비추지 않고, 자신에게 말씀을 비추었기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으며 주님이 말씀을 열어주셨을 때 가슴이 뜨거워져서 비로소 증인이 되었던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이곳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서,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행복한 증인들이 넘쳐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28:18~20)

우리 모두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중보하실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어서, 약할 때 강력한 십자가의 신비와 온 땅에 충만한 부활의 영광을 믿음의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뜨미아르/최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