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참빛 – 간증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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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수해 극복 간증: 허리케인 하비와 우리교회

By | e참빛

다행히 우리 집은 이번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피해는 없었지만, 이 허리케인은 내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세 번째 물난리가 된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경험하신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다. 당시 이재민이 37만 명이었는데,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아버지는 그다음 해에 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라호 태풍으로 집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여덟 식구가 겨우 남은 소 한 마리만을 끌고 경북 영덕 지풍면에서 나의 고향이 된 강구면으로 피난 왔다고 한다. 이 사라호 태풍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렸고 그래서 아버지는 그렇게 평생 매일 일을 마친 뒤 저녁에 술을 드시면서 넋두리를 하셨다. 두 번째 물난리는 내가 중학교 때였던 1980년대 중반에 왔었던 태풍이다. 태풍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우리 동네 저수지의 둑이 무너지면서 우리 집 아래채가 물에 잠겨서 동네에 있는 태권도 학원 2층으로 피난 갔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우리 집 위채는 잠기지 않았고 동네 어른들이 힘을 합하여 무너진 둑을 빨리 복구를 해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지만, 많은 동네의 집들이 물에 잠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번 2017년 8월 말에 휴스턴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하비이다. 하비는 앞의 두 태풍과는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멕시코만에서 하루가 다르게 에너지를 얻고 커지고 있던 허리케인 하비였지만 이렇게까지 직접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그동안 휴스턴에서 몇 번의 큰 허리케인을 맞았고, 허리케인 리타가 왔을 때는 샌안토니오까지 대피하기도 했고, 아이크 때는 휴스턴에 남아서 온전히 허리케인의 위력을 보기도 했지만, 우리 집에 피해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가 좀 많이 오는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자 수련회를 잘 마친 토요일부터 내리는 비가 그칠 기미가 없고, 이사 와서 7년 만에 처음으로 집 주변의 호수가 넘치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넘친 물이 우리 집이 있는 동네로 들어오지 않고 큰길로 빠져나가서 비가 그친 후 주변 도로가 잠겨서 며칠 동안 집안에만 갇혀 있기는 했지만, 덕분에 일주일 동안 회사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수 있었다. 휴스턴 전역의 홍수 피해는 뉴스로 계속 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허리케인 하비도 그냥 지나가는 휴스턴의 연례행사 중 하나에 불과했고, 2005년에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만큼 위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했다. 우리 교회에서 조직된 복구팀에 참여해서 직접 청소하러 가기 전까지는…

허리케인 하비가 지나간 이후 첫 일 주일 동안 간헐적으로 청소가 필요하다고 교회 수해 복구 카톡방에 요청의 글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우리 집과는 멀고 많은 사람이 자원해서 그냥 지켜 보고만 있었다. Labor day 아침, 일면식도 없는 어떤 형제님 집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지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집에서 30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고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나도 참여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출발해서 갔는데, 실제로 보니 그 피해 정도가 TV로 보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아주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에 몇몇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휴일을 즐기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았는데, 그 다리를 넘으니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길가에는 벌써 건물 잔해와 카펫들이 산더미처럼 나와 있는 집도 있었고, 물이 얼마나 찼었는지 보여주는 자국도 있었고, 그냥 물에 잠겼던 자기 집을 밖에서 망연자실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청소할 집에 도착했을 때 벌써 몇몇 형제, 자매님들이 와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집사님 한 분과 더불어 교회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기도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내 기억으로 한 3~4시간 정도 청소작업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그 폐허와 같은 집을 봤을 때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는데, 몇몇 형제님들이 이미 다른 집 복구작업 경험이 있어서 그분들을 중심으로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게 금세 청소가 끝나갔다. 그리고 피해를 본 당사자인 부부도 함께 청소하는데 정말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날 함께 작업했던 한 형제님은 아직 자기 집은 물에 잠겨 있지만, 물이 빠지기 전에 먼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왔다고 했다.

참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신의 집은 아직 물속에 잠겨있는데 어떻게 다른 집을 먼저 돕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까?

목요일 오전에 우연히 그 형제님 집에 가서 청소하였다. 일 층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있었다. 또, 집사님 한 분은 내가 가는 곳마다 만났다. 목요일에 회사 휴가를 내서 갔던 곳에서도 만났다. 그 집사님은 허리가 아프지만, 집에 있을 수만은 없어서 거의 매일 나와서 복구 현장에 나오고 있다고 했다. 만약 이 물이 잠긴 집이 자신의 집이라면 허리가 아파도 뭐라도 했을 거라고 하시면서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매일 이곳저곳 복구현장을 바쁘게 다니시는 다른 집사님 한 분은 복구팀 작업에 집중하라고 요즘 사업이 좀 더디다고 하셨다. 사업이 더딘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복구팀에 참여할 수 있어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정상 출근을 하는 평일에는 일손이 부족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소한 내가 참여했었던 곳에는 사람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넘쳐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원자들이 많은 만큼 복구, 청소도 빨리 끝났다. 정말 많은 분이 내 집인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기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다. 왜 6.25 전쟁 때 중국군의 인해 전술에 국군이 밀렸는지 이번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낼까 했는데, 20~30명이 함께 일을 하니까 시작하기가 무섭게 작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복구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척척 자기가 할 일들을 찾아서 쉬지도 않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감독관이 필요가 없었다. 또 하나 더, 복구 작업 나가서 평소보다 점심을 더 잘 먹었던 것 같다. 점심때가 되면 수해 입은 분이 속해 있는 목장의 목녀님이 점심을 준비해 주셨고, 아니면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점심 준비 지원팀에서 배달해 주어서, 점심 걱정이 없었다. 역시 우리 교회는 뭘 하더라도 잘 먹이는 것 같다.

천여 명 출석하는 교회에서 그렇게 많은 수해헌금을 드리는 것을 보고 또 놀랐었다. 그리고 그 헌금을 아무런 잡음 없이 잘 집행하는 교회가 우리 교회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이번 허리케인 하비를 통해 도움을 주고받았던 감사의 글들을 교회 게시판에서 읽으면서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보았다. 아내는 이번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처음으로 ‘우리 교회’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교회라고는 휴스턴 서울교회가 처음인 우리 부부가 다른 교회들과는 비교는 할 수는 없지만, 휴스턴 서울교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확실히 우리 교회가 특별한 것일까? 모든 교회가 이렇게 투명하고 섬김과 헌신이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뉴델리/김태범

하비 수해 극복 간증: 하비는 현재 진행 중

By | e참빛

9월에 가족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었습니다. 집 떠나는 여행이 달갑지만은 않은 연세의 부모님께도 떼쓰듯이 하여 승낙을 받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9월이면 날씨도 좋아질 테니까요. 하지만 12월이 된 지금까지도 가족 여행을 못 가고 있습니다. 여행은 고사하고 일 년의 4분의 1 이상을 집 복구 작업에 매달려 있습니다. 집이 예전과 비슷하게라도 되려면 앞으로도 한참 더 걸릴 것 같습니다.

-Beltway 8 & Boheme- Beltway 8 턱 밑까지 차오른 물

지난 8월 25일 금요일,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온종일 끊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우지끈거리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휴스턴에서 폭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별일 없을 거죠?”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날 밤새 기상 채널을 켜 놓고 자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26일 토요일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근처 Creek과 Bayou에서 넘친 엄청난 양의 물이 동네 길을 수로 삼아 빠르게 흘렀습니다. 자고 나니 물이 무릎까지 차 있더라는 집, 뒷마당에 물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는 집 등 무거운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오후가 되자 몇몇 이웃들이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엄마와 아이들만 빠져나가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우비를 입고, 물 덜 찬 곳을 골라 밟으며 한 줄로 걸어가는 낯선 광경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중요한 서류며 아끼던 물건들 몇 가지를 선반 위로 올려놓았습니다. 27일, 동네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호수로 변했습니다. 집에는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길이 막혔으니 갇힐 수도 있겠다 싶어 가까이 사는 자매들 집으로 피했습니다. 짐은 간단하게 쌌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 물이 빠지면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집에 물 안 들어오게 해 주세요.”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비가 그치고 수위가 안정되자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게다가 연이틀 저수지를 개방했는데도 집이 괜찮았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날 밤 며칠 만에 처음 편안한 마음으로 단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이웃들에게서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습니다. 막바지까지 잘 버티고 있던 집들인데 결국 물이 들었답니다. 우리 집 역시 문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온 물이 순식간에 집안을 꽉 채웠습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젯밤 감사 기도도 드렸는데…”

9월이 되었습니다. 비도 그쳤고 저수지 문도 더는 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네는 아직도 호수인 채로 고립되어 있었고 16피트가 넘는 Beltway 8에는 턱 밑까지 올라온 물이 출렁거렸습니다. 집에 들어왔던 물은 하루 만에 빠져나갔지만, 곰팡이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동네에 못 들어오니 곰팡이가 피기 전에 물건들을 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쓰레기 봉지에 물건을 넣고 양손에 들었더니 봉지가 물에 닿았습니다. 어깨에 메었더니 더 무거웠습니다. 머리에 이니 좀 나았습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첨벙거리며 물을 건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동생들과 배가 당기도록 웃었습니다. “울지 않고 웃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밤이면 몸살로 끙끙 앓았습니다. 주일날 저희 목장 박덕규 목자님과 원광우 형제님이 가슴까지 wader를 입고 물을 건너 들어오셨습니다. 참으로 든든하고 반가운 지원군이었습니다. 곧이어 홍성제 목자님이 오셔서 큰 짐들을 번쩍 들어 옮겨 주셨고, 석태인 집사님과 석영이 목녀님께서 짐 옮길 가방을 바람의 속도로 가져다주셨습니다. 대충 짐을 옮긴 후 호수 한가운데에 빈집을 덩그러니 놓고 오는 마음이 매우 쓸쓸했습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이분들이 오늘 흘린 땀과 수고 꼭 기억해 주세요.” 코가 석 자인 제가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휴스턴서울교회 Harvey 수해복구팀-

대망의 9월 9일 오전 9시, 목장 식구들, 초원 식구들, 분가 전 목장 식구들, 다른 목장 식구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마스크, 장갑, 커터는 물론이고 화려한 장비들이 마구 등장했습니다. 벽 뜯기 달인들과 뒤처리 달인들의 환상적인 조합, 먼지를 함빡 쓰시고도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주시던 하호부 집사님, 하인덕 목녀님과 김희숙 목자님, 엊그제 무거운 짐 옮기면서 허리에 무리가 갔는데도 꿋꿋이 짐을 나르시던 박덕규 목자님, 매처럼 정확한 눈으로 벽 제거 작업을 이끄신 원광우 형제님, drywall cutting 솜씨가 프로의 경지에 이른 집사님들과 형제님들, 꼬맹이 막내를 업고라도 오겠다는 유다운 목녀님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달려와 준 황길동 목자님, 30인분 점심 식사를 정갈하게 만들어 보내준 조혜승 목녀님,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싱긋 웃던 중학생 김원희, 제일 일찍 도착해서 땀범벅으로 묵묵히 일하시던 박찬규 목자님, 채화정 목녀님. 회사 출근하는 날 외에는 매일 피해 가구 순회 서비스를 하신 소준영 목자님, 오승민 목녀님. 얼굴도 모르는 사람 집에 와서 노동 제대로 하고 가신 장미숙 자매님, 이신 형제님 등 VIP분들, 목자님들, 목녀님들, 형제, 자매님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분의 도움으로 벽과 바닥을 일사천리로 뜯어내고 젖은 가구와 물건들을 집 밖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4피트 높이로 벽을 뜯어낸 집은 날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시원하게 뻥 뚫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감사와 미안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집 앞마당에는 물에 젖어 색이 번지고 찢어진 사진들, 낡았지만 익숙한 물건들, 고마운 사람들이 준 선물들, 아껴서 장만하고 행복해하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쓰레기 수거 차의 커다란 집게 끝에 매달려 가족의 품을 떠나는 물건들을 보면서 마치 지나온 세월과 추억이 깨지고 던져지는 듯한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필 같은 날 에어컨까지 고장이 났습니다. 수리하러 오신 분이 요즘 수해 입은 집들 에어컨 수리를 많이 하는데 본인 집은 괜찮다고, 그래서 “I feel guilty.”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 마디에 꾹 참아온 눈물이 이때라며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 만난 분이지만 고마웠습니다. 힘든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을 실감한 날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잘 안다.” 하시면 아마 저는 엉엉 울 것 같습니다. 슬퍼서가 아니라 알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허리케인 하비가 다녀간 지 석 달이 훌쩍 넘어 어느새 12월이 되었습니다. 그간 벽과 바닥 공사를 끝냈습니다. Astros의 승리에 환호도 했고, 높아진 하늘도 가끔 올려다봅니다. 그렇다고 낯설고 불편한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에게 허리케인 하비는 현재 진행 중이고 아직도 그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은 줄을 이었고, 떠올리면 마음 아픈 기억들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고 신기한 일은 하비가 저에게는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통로를 통해 매일 현재 진행으로 느끼는 감사함이 녹록지 않은 상황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이제는 하비 때문에 속상하다고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수해로 잃은 것보다 남겨주신 것이 훨씬 많고, 새로 주시는 것은 더 많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시간과 물질을 잃었지만, 그보다 무한대로 더 중요한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남겨 주셨고, 예배 때마다 빠지지 않는 하비 피해자를 위한 기도와 격려, 소중한 목장 식구들의 사랑, 복구팀을 비롯한 성도님들의 헌신을 거저 받게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감사 거리를 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산로렌조/구희경

 

하비 수해 극복 간증: 그 날…

By | e참빛

<그 날>

“우리 집에 물 들어와!!”

2017년 8월 27일 주일 새벽. 낮고 다급한 남편의 목소리가 집 안에 퍼지던 그 순간, 평화롭던 우리 세 식구의 삶은 완전히 깨어졌다.

창 밖은 어스름했고 현관과 뒷뜰로 나가는 문 사이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숨을 멈추고 이불을 꺼내 물을 막기 시작했다. 두꺼운 이불들이 바닥에 닿자마자 흥건해졌다. 잠에서 깨어 두리번거리는 아이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쥐어주며 크립에 가두고, 나는 바스켓으로 남편은 펌프로 물을 퍼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우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집 안의 적막감은 깨어지지 않았다. 간혹 아이가 내뱉는 “엄마! 물! 배!”만 울려 퍼질 뿐 우리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남편이 다시 한번 선언했다. “자기, 물 퍼지마. 소용없어”

물은 참으로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카펫을 겨우 적시던 물은 사방에서 밀어닥치며 순식간에 발등을 덮었고, 어느새 발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창밖의 도로, 길 건너편 집과의 사이의 도로, 잔디밭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동네를 잠식한 흙탕물과 보트를 꺼내는 몇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집을 떠나던 날 아침. 이 길 끝에서 이경태 형제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남편이 아이를 안고 우산을 쓰고 걸어오고 있다.

‘도로가 다 물에 잠겼나보다. 우리 집이 고립이 되었나보다. 집 안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오늘 밤은 지붕에 매달려서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25개월 된 아들이 배고픔과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만이라도 내보내야 했다.

이경태/김소형 가정에 구조 요청을 했다. 다행히 잠기지 않은 길을 찾아 와주시겠다 했고, 혼자 남아 집과 운명을 같이 하겠노라는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나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는 뒷문 앞에 섰다. 문밖은 어떤 모습일까, 이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그야말로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것은 아닐까.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하고 뒤돌아 집을 바라보았다.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우리의 삶을 이어가게 했던 그 공간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너무나 찹찹했지만 설마 물이 천장까지 차지는 않겠지. 이 비만 그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빈집을 노리고 도둑이 들지만 않는다면 아주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은 아들을 등에 업고, 나는 배낭 하나 멘 채로 집을 나섰다. 물에 잠겨가는 집과 차를 등 뒤에 둔 채, 우산을 바치고 저 멀리 마른 도로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이 점점 얕아지는 길 끝에 이경태 형제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집, 책>

우리가 두고 떠난 그 집은 아이가 태어나 평생(25개월)을 보낸 곳이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났으며, 온종일 활개를 치며 구석구석 뒤엎고 다녔다. 집안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아빠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온통 ‘하민이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아이에게는 자신이 목을 가누고, 앉고, 서고, 처음으로 엄마를 불렀던 아주 익숙한 그곳만이 자신의 집이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이는 물이 들어 온 그 집을 ‘하민이 집’, 현재 임시로 거주하는 곳을 ‘새 집’이라 부른다.)

많은 사람에게 그렇듯이 우리 부부에게도 그 집은 ‘평생’ 혹은 ‘전부’를 의미했다. 우리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일종의 결과물이었으며, 우리의 남은 여생 대부분을 그 집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 집에는 많은 추억이 있었으며, 많은 물건이 있었다. 큰 돈을 지불했던 물건부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장품들이 있었다. 그 어떤 작은 것도 우리의 과거와 연결되어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홍수 후, 무너져 내린 책장

홍수 전, 우리가 특별히 사랑했던 책들

특별히 그 집에는 대략 1,500권 정도의 책이 있었다. 나는 성경과 더불어 그 책들을 통해 구원의 깊은 은혜를 깨달았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나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 책들에는 하나님 앞에서 내 머리가 뚫리고 가슴이 울렸던 뜨거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책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남편의 책을 바라보는 것이 잔잔한 행복이었는데, 남편의 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만나기 전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그려졌다. 우리는 그 책들을 평생 곁에 두고 싶었고, 우리 아이에게도 이 책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집은 지붕과 뼈대만 남았고,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물건이 내버려 졌다.

<어려움>

텅 빈 집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과 허탈함을 몰고 왔다. 남편은 지금까지 직장 생활해온 것이 다 날아간 것 같다고 했다. 왜 아닐까.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던 책을 다 잃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줄을 이었다. 차 두대를 새로 사고, 임시 거처 렌트비를 내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새로 마련하고, 집을 치우고 수리하는 이 모든 것이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차치하고서라도,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들의 반복이었으며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의 규칙적이던 일상은 사라졌고 하루하루가 다른 불안정한 생활이 이어졌다. 종일 엄마한테만 매달리는 두 살배기를 데리고 이사를 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러 다니고, 정보를 알아보고 신청하는 일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산적했고, 세 식구가 오붓이 보내는 시간이 사라지며 우리의 마음도 말라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회사 일과 복구 일을 병행해야 했고, 나는 집안의 필요와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아이는 계속되는 환경의 변화에 힘들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비’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단 하루도 ‘하비’로부터 파생된 일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상황이 답답했다.

집에 물이 차오르던 그 순간, 나는 살려달라고 기도했었다. 가족 모두 안전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지만, 살아남은 이후의 생활은 버거웠다.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감사 할 것이 많지만, 그것이 온전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피한 더 큰 어려움을 누군가는 직면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감사의 이유로 삼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절대적인 감사가 필요했다.

<감사의 이유>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한 지 딱 일주일 되던 날, 주일예배 시간이었다.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히 12:27)” 설교 본문 말씀을 읽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와르르 무너진 우리 집 책장이 떠오르고, 그 위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광스럽게 겹쳐졌다.

나의 진짜 소유는 홍수에 쓸린 이 땅의 집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께서 거하시는 그곳이라는 사실이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 예배는 내가 휴스턴에 살면서 드린 최고의 예배였고, 그 이후, 내 몸은 비록 이 거대 도시를 휩쓴 풍파 가운데 있지만 내 영혼은 안전하다는 안정감이 나를 지배했다. 비록 나의 책들은 사라졌지만, 그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던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과 견고하심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강한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셨다.

서울침례교회 복구팀.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틀에 걸쳐 청소와 demolition을 해주셨다

교회와 목장에서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제공해주었다. 피난을 준비하던 그 순간부터 목장과 초원을 통한 현황 파악이 이어졌고, 설교와 기도에 힘이 더해졌고, 음식과 옷가지 등 급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주셨다. 마치 온 교회가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처럼, 그 어느 국가의 재난 컨트럴 타워보다도 더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교회가 없었다면 우리 세 식구는 ‘그 날’ 어디로 가야했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하러 와 주시고, 임시 거처를 찾을 때까지 집을 오픈하여 섬겨주시고, 자동차를 빌려주시고,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챙겨주시고, 얼굴도 몰랐던 분들이 시간을 내어 집 복구를 해주시고, 갖가지 물건을 기부받아 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특별 헌금으로까지 지원해주시고.. 온교회가 하나가 되어 자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서 준 것은 감사를 넘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함께 아파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계셔 우리는 큰 일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끊임없는 도움과 위로 받게 하심으로 주저앉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한 번의 친절은 선의만 있다면 베풀 수 있지만, 이렇게 지속적이고 한계를 뛰어넘는 섬김은 오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해 직후 시작 되었던 삶 공부(부모 세미나)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말씀을 붙들고 대화와 기도를 할 수 있었고, 당황스러웠던 아이와의 관계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복구 작업 후 집 내부

복구 작업 후 집 외부

내 평생 이런 일을 당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지만, 그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있음 또한 감사하다. 결혼 전 나의 이상형은 ‘위기대처능력이 뛰어난 남자’였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위기대처능력이란 순발력이 뛰어나고 뻔뻔한 구석도 좀 있는 그런 이미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꾀는 부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는 남편과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단 한번도 의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이 위기를 잘 대처해가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환경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짜 나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 그럴 수 있을까 했는데,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 그 중에서도 나에게도 나눌 것이 있게 하시고, 그것을 기꺼이 나눌 때 내 안에 새로운 힘과 기쁨이 생기는 신비를 알게하심 역시 감사하는 부분이다.

<현재>

‘그 날’ 이후로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주변의 도움과 기도로 재난 중에 감사했던 첫번째 달이 지나고, 힘들어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보냈던 두번째 달이 지나고, 지친 몸과 마음이 극에 달했던 세번째 달도 지나갔다. 집 복구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고, 공사가 겨우 시작되기는 했지만 제거작업에서 머물러 있고 언제쯤 끝이 날지 기약도 없다. 이제 피난민의 생활은 익숙해졌지만, 원래 보금자리로 돌아가 삶이 안정되기까지는 아직 긴 여정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쁠 때 웃고, 힘들 때 울며 한 사이클을 보내고 보니, 그 어떤 굴곡에도 사라지지 않는,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한 분이 보인다.

비록 육신은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내 영혼에 햇빛 되어주시는 나의 예수님, 어두움 속에서 더욱 환하게 빛나는 그 빛은, 미풍에도 쉽게 요동치는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바얀아울 목장/이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