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참빛 – 간증모음

e Testimony

목장 간증: 하나님께 잘 보이기

By | e참빛

먼저, 3, 4년에 한 번씩 만 기회가 주어진다는 목장 간증에 그것도 저희 목장에서 무려 10: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자리에 저를 세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는 오늘 간증이 휴스턴에서 근무하는 기간, 마지막 간증일 것이기에 더 의미 있고 감사합니다.

저희 교회와 목장을 만나게 된 다른 많은 분 들처럼, 저 역시 그 만남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모른 채, 3년 전 저희 목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목장은 한국이 아닌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 분들이 포함된 다문화 목장입니다. 목장의 공식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에 사실 저희 부부와는 맞지 않는 목장입니다. 목장 시간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저와 제 아내의 나눔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요점만 짧게 정리하여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막힘없이 이야기하시는 다른 분들과 달리 매주 저희는 저희 분량도 못 채우는 것 같아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아무래도 주로 듣다 보니 뭔가 공허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서야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를 이 목장에 보내주신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한국분들만 모이게 된 목장 날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한국말로 아주 긴 나눔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대판 싸웠습니다. 서로 간의 이유인 즉, 왜 할 말만 하지 목장 식구들 앞에서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알게 되었는데 목장에서 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 친정필세 중 특히, 필부분이 취약하신 분들이 많은 목장은 목장 사용 언어를 바꾸어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지난 3년간 목장 생활을 통하여 저의 어떤 것들이 변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에 반하여 목자님의 기도는 대부분 VIP의 구원과 이웃의 치유 등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들 일색이었는데 처음에 목자님의 그런 기도제목들을 보면서 “목자님도 본인 필요한 것 이야기하시지 목원들 앞에서 홀리한 척하시느라 참 고생이 많으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서야 이야기 드리지만 저희 목자님은 제 고등학교 동문으로 그것도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는 바로 위 한 해 선배인 데다가 학창 시절에는 제가 늘 피해 다녔던 선도부이셨더군요. 물론 목자님이 고등학교 선배라는 것은 목장에 들어와서야 알게 되었는데 여하간 목장생활 초기 매주 목자님의 기도제목을 들으며 목자님 이시니까 뭐 어쩔 수 없겠 지라고 생각하며 이해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목자님의 VIP를 향한 기도제목들이 진짜 목자님의 진심이구나 라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졌고 그럴수록 그런 진심이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씩 그런 마음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이기적이었던 저의 기도에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도가 조금씩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작은 시험에도 참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 쉽게 넘어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기도의 영역에 그나마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비집고 들어오게 된 것은 목장과 목자님의 영향이 컸고 또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원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 아부하는 법을 조금씩 익히게 되었습니다. 저의 필요에 대한 기도제목은 여전히 넘쳐납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께서 저에게 제일 바라실 것 같은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위해 먼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저의 다른 기도 제목들은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이렇듯 아직까지도 저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의 맨 밑바닥에 숨겨진 동기에는 여전히 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특히 많이 생겼을 때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진정 생각하는 마음으로 치환되는 경험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저희 목자님, 목녀님을 조금이라도 닮아 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다음달 한국으로 돌아가 내년 초 베트남 호찌민으로 발령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3년이 조금 넘는 제 목장 생활을 통하여 앞으로 계획하실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영어가 편치 않은 저를 저희 목장에 보내시고 아직도 미리 적어서 해야 하지만 영어로 기도하는 법도 배우게 하시고, 주일 설교를 요약하여 서툰 영어로 목원들 앞에서 이야기하게 하시고, 그다음 성경공부까지 인도하게 하신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유가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금년 성경 일독을 하며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읽다가 보니 창세기로 시작하여 신구약을 왔다 갔다 하다가 2주전 마태복음을 마지막으로 완독하였습니다. 생애 첫 성경일독을 통해 올해 저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가장 마지막에 읽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 마지막 세 구절인 듯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저 개인에게 적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버거운 명령인 것 같지만, 작게 보면 앞으로 한국에서 그리고 특히, 베트남에 있을 기간 동안 너무 나만 생각하지 말고 목장에 서 배운 것들을 가지고 영혼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만남부터 오늘까지, 학교 선배가 아닌 형제의 사랑을 부어 주신 목자님, 그리고 목녀님, 목장 식구들 한 분 한 분 이자리를 빌어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껏 저를 이끌어 주시고 특히, 제 삶의 변곡점마다 주저하는 저를, 강한 손과 편 팔로 잡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잠언 16장9절 말씀을 끝으로 저의 간증을 마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심을 믿습니다.”

타라즈 김근모

생명의 삶 간증: 변화의 공부

By | e참빛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저에게 있어 교회란 무엇이었을까요? 중학생 시절, 교회라는 곳은 착하고 예쁜 누나들을 만날 수 있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군 생활 시절에는 절이나 성당보다 간식을 더 많이 주던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마저도 라면의 유혹에 이기지 못해 절에 갈 때도 있었고, 양념 통닭 한번 먹어보기 위해 성당에 갈 때도 허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저의 교회로 향했던 발걸음은 솔직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첫눈에 반했던 여인과 결혼하여 토끼 같은 딸아이와 함께 풍족하진 않지만 모자라지 않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여전히 교회와 크게 인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때였습니다.

수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9년도 2월, 저는 한국에서 휴스턴지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주에서의 생활은 처음이었던 저였기에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게다가 3개월 뒤에 저만 믿고 올 아내와 딸아이 생각에 내가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부담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회사의 부장님이 그날 본인의 지인 집에서, 가볍고 부담 없는 식사 자리를 제안하셨습니다. 가볍고 부담 없는 식사를 굳이 왜 지인 집에서……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만 그때 8년간 영업 팀에서 다져진 제 촉이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가급적 감사한 모습으로 흔쾌히 받아들여야 하는 타이밍이다 하구요.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그날이 바로 목장이 열리던 날이었고 저와 서울교회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부모님 외에 이렇게 도움을 많이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방적이다 할 정도의 관심과 걱정 그리고 헌신, 이는 피 한 방울 안 섞이고 만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사람간에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저 분들이 저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의 밑바탕에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까? 대관절 그것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마음속에 저렇게 단단히 자리잡고 저런 행동들이 스스럼 없이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지 불과 2주 즈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가족들과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 음식을 포장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때 마침 행색이 남루 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저희 쪽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분이 목적이 제가 포장해온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조금 심란해졌습니다. 사실 투고하기로 마음먹고 맛있는 알짜배기 부분만 남겨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빨리해서 차에 후다닥 타고 괜시리 아내와 딸아이에게 빨리 타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느새 다가오신 할아버지가 제 차 창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짜증이 살짝 났었습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이 약해진 저는 창문을 내리고 남은 음식을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제 입에서 “God bless you.”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알고는 있되 지금까지 써 본 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에 무척이나 뿌듯해 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저희가 밥을 먹었던 식당 종업원이 저희 쪽으로 뛰어오고 있더군요. 한 손에 제 가방을 든 체로요. 제가 깜빡하고 식당에 가방을 놔두고 왔었던 것이었습니다.

가방을 받아 든 저와 제 아내는 순간 서로 기분이 상당히 묘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께서 보답해주신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이건 정말 운이 좋았고 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 생기면 아까워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드리자.”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일 일수도 있습니다만 저희 부부에게 있어선 큰 변화를 위한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생각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그 주의 금요일도 목장이 열렸습니다, 저는 정성 가득한 맛 난 음식들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로 식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쳐다본 목자님의 얼굴은 먼가 평소와 다르게 조금 비장해 보이신 듯했습니다. 목자님은 저희를 굳건히 바라보며 입을 여셨습니다. “이창진 형제…… 생명의 삶…… 새로운 학기…… 다음주 신청……” 그날따라 핵심적인 단어만 귀에 속속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오늘따라 유달리 디저트가 맛있더라니…… 목녀님을 비롯한 목장 식구들은 생명의 삶에 대한 좋았던 기억들을 쏟아 내셨습니다.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금 제 앞에서 당시 은혜로웠던 추억을 잠겨있는 형제님과 자매님이 불과 몇 달 전 지금과 같이 제 앞에서 그랬습니다. 참 쉽지 않았다고. 끝난 지금 너무 홀가분하다고. 제 앞에서 그런 말 했던 건 홀랑 잊어버리고 좋은 말만 하는 두 분이 순간 아주 살짝 얄미웠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군 시절 격언을 되새기며 저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네 당장 수업 신청하겠습니다.’ 라고 대답 했습니다만 지금 고백하자면 그 짧은 순간에 속으로 참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시작된 수업 첫날, 저는 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목녀님이 뿌듯해 하시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도 있었고 스스로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이수관 목사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믿음 생활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 것 같냐 구요. 많은 대답들이 있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 ‘사랑’ 등등 정말 하나같이 그럴듯한 대답이었습니다. 미소를 지으시던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관계’ 입니다.” 매우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우면서 진부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던 와중 ‘관계’ 라는 대답은 순간 저를 벙찌게 만들었습니다. 이어지는 목사님의 말씀은 이러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사랑으로 연결이 되고 그것이 흘러 넘쳐 주변 사람에게 까지 전파가 되고 결국 세상은 얼마든지 사랑으로 넘쳐날 수 있다. 좀 더 단순화해서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아내와의 관계가 좋아졌다면 좋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막연히 성경이란 원래 심오하고 뭔가 말을 꼬아놓은 것이라 생각했던 저였기에 이러한 목사님의 말씀에 ‘탁’ 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오랫동안 오해를 하고 있었음을 깨 닳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별다른 기대없이 반강제로 듣게 된 생명의 삶은 첫날부터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생명의 삶 수료를 위해 필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 영접 모임 참관이었습니다. 이왕 참관하는 거 영접까지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쉬이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이 당시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자격이 있을까?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것으로 인하여 구속 당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그러던 와중 제가 스스로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우치게 된 계기는 수업 중 듣게 된 이 성경 한 구절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요한계시록 3:20).”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보다 예수님께서 구원해주고자 하시는 마음이 훨씬 크셨기에 지금껏 내가 예수님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을 때에도 제가 돌아봐 줄 때까지 계속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을 까요? 더 이상 그분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금월 초 영접 모임에서 오랜 시간 닫혀있던 문을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사님을 따라서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밖에 서 계시지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순간 팔 부분을 중심으로 크진 않았습니다만 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내도 저와 똑 같은 순간에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오묘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편안 하였습니다.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재벌 2세가 이런 기분일까요?

생명의 삶 수업 진행과 함께 자연스레 숙제를 위해 처음으로 요한복음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귀찮은 것을 매주 어떻게 하나 싶었지만 한 챕터 한 챕터 읽어가며 저도 모르게 점점 그 내용에 빠져드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가져간 줄 알고 구슬프게 울던 장면과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녀가 다시 재회하던 장면을 읽었을 때는 감정이 극에 달해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요한복음을 끝까지 읽고 난 저는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침 드라마보다 더한 것이 성경이라더니…

참 신기합니다. 교회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저와 아내였습니다. 지금은 영접을 통해 구원을 얻고 침례를 통해 새로 태어났음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서툴지만 기도도 곧잘 하고 처음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던 목장 식구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귀찮아 했던 삶 공부도 어느새 다음 삶 공부를 훑어보고 있습니다. 언행도 저도 모르게 조심하게 됩니다.

생명의 삶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이 작은 변화들이 저는 너무나도 놀랍고 은혜롭기 그지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하늘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즈벡 이창진

부부의 삶 간증: 사랑의 언어를 기억해준 고마운 아내

By | e참빛

“나 아이들 데리고 한국에 좀 있다가 올게..” “왜?” “서로 대화도 없고 가정에 신경도 안 쓰고 본인 힘들다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 언제 와?” “ 모르겠어, 한 일 년은 있을까 봐…”

방금 대화 내용은 부부의 삶 듣기 딱 2주 전에 했던 우리 부부의 대화였습니다. 서로 너무나도 달랐던 우리 부부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목장에서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부부관계 회복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했을 때 우연히도 아내와 같이 사역하시던 목녀님이 함께 부부의 삶 공부를 듣자고 아내에게 물어보셨습니다. 하지만 삶공부는 화요일이고 저는 이주에 한번씩 월, 화, 수 출장을 나가느라 할 수 없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저희 사정을 삶 공부를 인도하시는 목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목녀님은 다른 세 부부께 양해를 구하고 날짜를 화요일에서 목요일로 옮기셨습니다. 아마 목녀님이 삶공부 날짜를 인도하신 후 처음으로 옮기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제 삶 공부가 모두 끝나고 생각해보니, 이런 빚진 마음이 조금더 수업에 집중하게 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임하는 자세의 수업은 첫째,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먼저 하게 만들었고, 부끄럽지만 6년 전 처음 들었던 부부의 삶 수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 억울함을 고하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보다는 아내의 어려움을 듣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삶 공부를 인도하시는 목녀님께서 인생의 풍랑 속에서 그 한고비 한고비 오는 파도에만 집중하면 평생 자신의 어려움만 볼 수밖에 없고 힘들 수 밖에 없지만, 부부가 서로 협력해서 그 시선을 다른  사람의 필요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목자, 목녀가 되보는 것이 어떠냐고 수업을 듣는 모든 커플에게 권하시는데 그 말씀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다았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제 안에 문제에서 아내의 필요함을 쳐다보게 하는 마음을 주셨고 이제는 거기에서 다른 사람에 필요를 쳐다보게 하시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나의 문제, 우리 부부 문제는 별거 아니라고. 가끔 목자가 되고싶다 아내에게 물어보면 당신은 목자감이 아니라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제는 안 하면 우리 부부가 다시 우리의 문제로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결단의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저번 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엊그제 목장에서 아내가 감사함을 쉐어할 때 “일하는데 열심히 부부의삶 같이 듣느라 수고했다”고 한마디 했을 떄 그 말이 세상 어느 것에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값지고 또 이번 삶 공부를 통해서 배운 저의 사랑의 언어를 기억하고 표현해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그 때에는 그냥 놀라서 무덤덤히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늦게나마 이 자리에서 그때 너무나 기분 좋고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13주 동안 수업을 인도하시면서 부부의 삶 속에서 부모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까지 폭 넓게 인도해주신 목녀님 그리고 이렇게 보내는게 너무 아쉬워 말씀의 삶도 들으라 권하시는데 말씀의 삶을 2번이나 들어본 제가 보증하니 꼭 한번씩 우리 동기들 들어보시고, 또 이것은 삶 공부를 하러 온 것인지 맛집 방문 매주 하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맛있는 음식 준비해주시고 어찌 보면 30대, 40대, 50대 이렇게 함께 있어 어색할 수 있었는데 서로 스스럼 없이 쉐어하고 응원하고 함께한 동기 여러분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또한, 목장에서 저희 부부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시고 매주 삶공부가 어떻냐고 물어보시고 함께 걱정해주신 목자, 목녀님 감사합니다.

에베소서 4장32절 말씀처럼, 

저희 부부 앞으로도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르완다 신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