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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간증: 알마티 목장 사호석

By | e참빛

저를 자녀 삼아주시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에서 종합병원 의사로 근무하다가 7개월 전 휴스턴에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연수를 왔습니다. 목장에서 VIP로 지극한 섬김을 받던 중 생명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고, 생명의 삶을 들었던 지난 12주는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과 교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과 크리스천으로서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느끼고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신앙이 없이 살아온 제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내가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곧 법이라는 마음이 얼마나 교만하고 죄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원하던 곳에서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에는 비록 시청률은 0이지만 각자 인생 드라마의 주연으로 열연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선배 교수님들과 어울려 노래방에라도 가면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일어나셔서 Frank Sinatra의 ‘My way’를 부르시거나 약간 덜 지긋하신 분은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듣는 다른 선생님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15도씩 들어서 각자 걸어온 화려한 인생을 묵상하고는 합니다. 물론 그분들이 자기 인생에서 피땀 흘려 일구어온 노력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 또한 교수가 되고 지난 7년간 평일이면 거의 날마다 병원에서 14시간~15시간씩 일하고 연구해왔는데, 그 마음 한가운데는 나도 언젠가 주변의 존경과 높임을 받고 내 인생을 성공되게 만들겠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이력서를 쓰면서 저 자신을 잘 포장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해온 연구, 논문, 상, 강의 등등 영혼까지 긁어서 써 보았지만, 정리가 끝난 이력서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만족감과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허무함이었습니다. 내가 고작 이런 성공을 위해 그 많은 좋은 것들을 희생해왔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요한계시록 3:17)’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성공시키겠다는 교만한 마음이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맞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자기의 성공신화에 도취하여 주변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하고 또는 작은 시련이라도 닥치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아니면 그런 눈에 드러나는 파국까지는 아니어도 겉으로는 겸손해하면서도 속으로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열등감을 놓지 못하는 이중성에 평생 괴로워하는 삶.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하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이고, 나는 그저 하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 역할만 신실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의 자유를 느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부르셨다.”라고 하셨다는 목사님 말씀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곳에서 암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 논문을 어떻게 하면 유명 저널에 실을까 통계분석을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까 고민했을 텐데 이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암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건강해진 눈과 몸으로 하나님을 좀 더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에 좀 더 집중하고, 내가 성실하게 연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제가 귀국하여 다시 환자들을 돌보게 될 때는 저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님의 뜻에 맞게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곳 휴스턴에 와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내와 아이와의 관계를 많이 회복했습니다. 저는 안과 의사고 제 아내는 치과 의사인데, 저는 신혼 초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가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별다른 외부의 시련이 없는 순탄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결혼 생활의 주인이 되고자 서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5년, 10년이 되면서 ‘적’의 성향을 너무 잘 알게 된 탓에 다투는 일은 별로 없어졌지만, 늘 무언가 미안한 가운데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번에 아내와 생명의 삶을 함께 수강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생활을 같이 꿈꾸면서 서로 믿음의 동지로서 어느 때보다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금요일 저녁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목장 나눔이 있다는 것과 제 아내가 ‘Too much talking’의 은사를 받아 ‘Too much’ 진솔한 나눔의 선봉에 있다는 점이 제 인생에 건강한 CCTV 역할을 해주고 있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주변의 이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섬겨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주변의 이웃들도 누구나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사랑하신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실제 눈동자와 그 홍채를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굴곡과 제각기 다른 색깔, 그리고 시시각각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도 제각기 다를 것이지만, 마치 눈동자와 홍채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여 알아보시고 우리에게서 눈을 못 떼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에 대해 모를 때, 저는 비록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편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적극적인 섬김이었다기 보다 나의 평판을 유지하고 내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고백합니다.

환자들을 측은지심으로 돌보고자 하였지만 제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질 때는 남을 불쌍하게 여길 여력도 이유도 잃고는 하였습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저라는 사람의 연장선으로 여겼고, 사회적인 책임이나 약속에 대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까닭에 가족들의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나가서는 엄청나게 잘하면서 집에 오면 안 그렇다고, 오죽하면 아내가 제발 자기와 애들을 남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농담을 자주 했을까요?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는 다른 이웃의 인생에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에 하나님의 성공을 위해 주변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제가 교회 나온 지 3주째에 평신도 세미나에서 사역을 한다고 집을 비운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VIP답지 않은 오지라‘핑’이라며 놀렸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큰 아이가 이마를 크게 부딪혀서 혈종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한 혹처럼 흉을 남겼습니다. 5개월 전부터 저는 매일 아침 아이의 이마를 마사지해주고 있습니다. 힘든 시련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 팔자 좋은 고민이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가 다치던 그 시간에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아이의 흉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이 제 큰 기도 제목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의사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이마의 혹이 확연히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제 시간적으로도 더는 마사지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마사지를 하면서 제 눈에 아이의 혹이 아니라,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길 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의 하나님께서 제게 그 마음을 만져주라고 하시는 한 저는 계속 아이의 이마를 만져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 생명의 삶공부를 하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목장 식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확인하고 또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스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자동차 고장으로 1~2주간 차를 못 쓰는 상황이 있었는데, 선뜻 자기 차를 내어 주셨던 목자님을 보고 그때는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랜 시간 목양을 통해 단련된 크리스천의 모습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알마티 목장의 특징은 서로에게 너무 질척거린다고 놀림 받을 만큼 나눔에 열정적이고 한번 앉으면 도무지 일어날 생각들을 안 하는 무거운 마음의 ‘방뎅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내 안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목장 식구들께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밤늦은 시간에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생명의 삶을 이끌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삶공부하는 많은 분이 저처럼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비유와 예를 들어 말씀을 잘 이해하게 해주시는 목사님 모습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성도들을 위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목사님 생신 때 케이크도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시고, 또 강의 마지막 날 직접 만드신 정성스러운 도시락으로 저희를 섬겨주셨던 이은주 사모님께서, 이 생명의 삶이 이수관 목사님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삶공부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들려주신 목사님 삶의 간증들이 하나님과의 즐거운 동행을 시작하는 저희 형제 자매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알마티/사호석

부활절 간증: 추적하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오늘 여기 이 자리까지 저의 삶을, 여기 한분 한분의 인생길을, 추적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동으로 말씀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2015년 1월에 남편과 함께 목회자 연수를 오게 된 후, 그해 10월부터 서울교회에서 인턴 목사로 섬기고 있는 백성지 목사의 아내, 뜨미아르 목장 최유리 목녀입니다. 오늘, 이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부활의 아침에 제가 드리는 간증은. 철없는 사모의 간증도, 2년차 새내기 목녀의 간증도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위해 빈 무덤으로 달려갔던, 그리고는 부활의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한 여인의 간증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몇 년 전 겨울날, 친정엄마와의 전화 통화 중에 이름도 잘 모르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때 저는 서른여섯, 5년 전이었나 봅니다. 한국에서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학업과 사역을 병행하던 남편과 함께 9살, 6살, 4살 꼬마 아이들과 하루하루 씨름하며 지내던 때였습니다. 저의 외할머니의 이름은 ‘남궁분순’이라 했습니다. 저는 외할머니를 본 적도 없고, 초등학교 즈음에 외할머니를 여의고 일찍 가족을 떠나 독립했던 친정어머니는,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아주 가끔 친정어머니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리야… 외할머니가 노아 방주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단다.” 하고 추억하곤 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악해서 하나님이 심판을 했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신단다’ 하고 할머니가 말하면, ‘방에 들어가서 꼭꼭 숨으면 되지.’ 하고 엄마가 대답했지… 그러면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꼭꼭 숨어도 다 볼 수 있으시단다.’”

전라도 광주 어디쯤 양반집 종가며느리로 살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6남매를 낳아 기르시던 외할머니는 마당에서 일하다, 아이들과 놀아주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집안사람들과 동네 람들은 ‘야수교’를 믿는다고 외할머니를 싫어했다고 했습니다. “아따. 쟈가 야수만 안 믿으면 참 좋은 아인디.” 교회를 다녀오다 외할아버지가 던진 삽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가던 외할머니의 뒷모습. 방 안으로 피해 들어가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밖에서 문을 열려고 휘두른 할아버지의 낫에 손가락이 잘린 외할머니. 그 잘린 손가락을 동생들과 함께 묻어주던 일. 너무 많이 맞아서 나중엔 혼자 하늘을 보며 히죽히죽 웃곤 하던 그 외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전화기 너머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하던 울보 엄마. 너무 견디기 힘들어 서울로 도망간 외할머니가 새벽기도를 갔다가 “너의 어린 자녀들이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몇 년을 더 살다, 외할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아 누운 지 며칠 만에 돌아가셨을 때, 외할머니 나이가 서른여덟이라 했습니다. 돌아가실 만큼 맞기 전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집 밖으로 쫓겨났던 외할머니가, 긴 담벼락 겹쳐진 틈 사이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는 친정엄마. 어린 엄마의 손을 잡고 담을 넘어 새벽기도를 가면서, “영순아(친정엄마 이름), 성령님이 오신단다…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단비처럼 오신단다” 하고 어린 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시곤 했다는, 내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돌아가시던 날. 그냥 예수 안 믿으면 됐을터라며 그렇게 많이 울었다는 친정엄마. 그리고 엄마는 지금 예수님 전하는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손녀딸조차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38년 이 땅에서 예수님 믿고 눈물과 은혜로 조용히 살다간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믿었던, 모든 것을 잃어도, 잃을 수 없었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믿어서 그래서 믿음도 겸손도 헌신도 그리고 뜨거운 마음까지도 너무 가벼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50여 년 전의 평범한 여인은 제가 아직은 모르는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땅의 것을 마지막이라, 이 땅을 종착역이라 여기지 않고, 늘 천국 집을 바라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과 자신을 핍박하는 가족들을 품고 살았던 그 여인의 삶이 오늘 저의 삶을 파고듭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머니가 늘 부르시던 찬송이라 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쯤, 저는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가면서 매 주일, 오늘이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부목사로 섬기고 있지만, 사모가 시험에 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사모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힘든 걸 속일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저는 서른여덟 살 할머니가 목숨 바꿔 소중히 여겼던 예수님의 이름이, 그 하늘나라의 비밀이 별로 소중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지신 희생의 십자가. 참 마음은 아프지만 무의미하다. 나와는 상관이 없구나. 그리고 문득문득 멈추어 서서 제 나이를 계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서른여섯, 서른일곱, 서른여덟… 그리고 마흔하나. 그 이후로도 제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그렇게 2015년 1월에 서울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3년 전 오늘, 부활의 아침에, 마음에 고인 눈물을 쏟아내며, 침례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비둘기를 만났네요.
오늘 이 제한된 시간 안에 제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한 간증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서울교회로 와서 목원으로 지내는 1년간 저는 목장에서 사랑을 회복하고, 예배에서 마음을 쏟고, 삶공부에서 여전히 저를 불편하게 했던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초대교회를 회복해가기를 소원하는 이곳에서 목녀로 여러 목원들을 섬기는 지난 2년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더 가슴 깊이 새겨지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교육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건축업을 하시다가 40의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신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25살에 전도사 사모로 시작해서 목회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모로 15년간 여러 교회를 섬겼습니다. 부모님이 개척하셨으니 개척교회에서부터, 200명 성도에서 4000명 성도의 교회까지 두루 다니며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 목녀하며 행복합니다. 남편도 저도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녹록지 않지만, 그 행복의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저 성경을 통해 제가 평생 들어왔고, 배워왔던, 꿈꾸던 그 교회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기쁨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좀 더 건강한, 좀 더 좋은 교회는 가능하다 여깁니다. 서울교회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내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내고, 구원을 돕는 이도, 구원을 받은 이도 함께 제자가 되어가도록 하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함께 지어지고,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저는 무대 울렁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섬기는 사역부서인 가정 사역부에서, 앞에 나서는 안내방송을 합니다. 저는 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어를 잘 못 합니다. 그런데 석 달 모자라는 지난 3년간 영어와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병원에서 일하였습니다. 순종하면서도 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제가 잘 못하는 것만 시키시나요?” 그러면 주님은 별말 없이 “그래야 말을 잘 듣지….”하고 미소를 보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별다른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또 하루하루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지난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는 중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마지막 날 간증자로 세워졌는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열망이 생겨, 무례를 무릅쓰고 담임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고, 목사님과 남편의 배려로 시간을 쪼개어 두 사람이 함께 간증자로 섰습니다(그 덕분에 남편은 20분짜리 간증을 딱따구리처럼 13분 안에 끝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짧은 간증이었지만 목회자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소원하는 마음이 연결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간증을 모티브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세우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꿈. 부활의 기쁨을 함께 소유한 예배 공동체. 저와 여러분이 함께 모여 한 성령으로 예배하는 이 영광스러운 한 몸 공동체. 서울 교회 공동체에서 받은 은혜와 제가 붙든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기쁨을 조금 더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메콩강 목장에서 목원으로 지내던 2015년, 할머니의 희생의 십자가가 다시 내 안에서 상관되고, 내삶에 교회의 소중함이 다시 선명해지면서 제가 붙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이전 교회에서 받은 여러 가지 상처로 단단해지고 굳어져 버린 마음을 십자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신 하나님.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기로 하고, 내 맘의 상처를 인정하며 주님 앞에 나의 속사람을 내어놓았을때, 크신 주님은 저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얻게 되는 구원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자, 목녀 임명을 받고 뜨미아르 목장을 섬기기 시작한 2016년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순종의 십자가 입니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그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늘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그리고 마음의 소원함을 통해 순종하면서, 어리석어 보이고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사를 하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영혼구원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목장에 식구들이 넘쳐나는 사역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하나님은 저희에게 사역의 열매뿐만 아니라 순종을 통한 삶의 열매도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드러나는 사역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도 철저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인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정직하게 발견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더욱 크리스천답게 살아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 사역 가운데,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생업의 일을 경험하며 순종을 통한 은혜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남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를 기대하던 우리에게 시험의 대로를 화끈하게 열어주셨구나. 사랑한다고 하셔놓고 또 이러시는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있겠구나. 하실 말씀이 있으시구나. 그러면서 그 길을 걸으며 주님과의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때로 시온의 대로는 시험의 대로가 되기도 하고, 또는 시험의 대로가 시온의 대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 치열했던 순종의 시간을 통해 순간순간 저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조그맣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크~은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몸부림치며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했어도 버티고 서서 물살을 쪼개는 경험은 한 것 같습니다.” 많은 싱글 청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고 삶이 변하여 제자가 되어가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순종을 통해 얻게 된 생명들. 그 믿음의 간증들은 더할 수 없는 저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목녀 2년 차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헌신의 십자가입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세상은 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으신다’고 말합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저는 헌신과 낭비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사랑하는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경우가 생기는가? 어떤 경우에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게 여겨지는가? 답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헌신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지만 그 헌신의 때와 헌신의 이유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주님이건, 목원이건, VIP건 혹은 그 누구건 간에, 사랑하지 않는 건 일단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사랑해도 헌신의 때와 이유가 바르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냉소와 거친 자아만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목녀로 섬기기 이전의 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날 위해 지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헌신의 십자가를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남는 시간에, 내 삶의 여러 개 중의 하나를 내가 원할 때 주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베푸는 자선보다도 못한 것이구나…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시간에, 내 삶의 최고의 것을 원하신다면, 그것을 내 소중한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 이것이 헌신이구나

그것이 비록 세상적인 계산과 맞지 않고, 결과를 바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헌신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 헌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삶에 절제가 이루어지고 내가 해야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구별되는 것을 배우면서, 열심과 방향도 중요하지만, 헌신 만큼은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 담에 주님 앞에 서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무게를 달아보실 텐데,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말씀에서 배운 대로 중요한 일에 자신을 소모하게 하는 일은 닳아 없어져도 결코 손해이지 않은 아름답고 힘 있는 가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난절에 저는 사명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지만, 사명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완수하신 예수님. 아 사명이 그런 것이지… 처절한 죽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시고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의 그 사명의 자리. 고통과 유혹이 사명을 흔들었지만 모두 이겨내시고 지켜낸 자리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저희 할머니가 안전한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핍박의 자리. 주님의 부탁이라 여기고 지켰던 침묵의 자리. 그래서 예수님의 흔적을 자녀들에게 남기고 죽어간 자리. 저는 언젠가 서울교회를 떠날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알게 되는 것이 소명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사명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모보다 목녀가 좋지만, 남편과 함께 또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소명의 자리로 가게 되겠지요. 그 선한 로테이션을 두고 기도하면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자리, 하나님의 일을 완수해 낼 사명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사명의 자리에서, 또다시 겹겹의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많은 샘과 이른 비의 은혜를 누리고, 그 길에 수많은 기적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압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그 기적을 일으키셨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보이시는 주님’을 보는 것임을, 그래서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명자의 태도임을 되새겨 봅니다.

이제 저는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 은혜의 순간이며, 그 자리에서 참된 부활의 기쁨이 시작됨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살면서, 그 매력적인 삶의 증거로 믿지 않는 영혼을 믿게 하고 이웃을 섬기며 더 신실한 제자가 되어가는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카디널 수핸드는 ‘증인이 된다는 것은 선전에 몰두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부활의 소식을 듣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기억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무딘가?”하고 예수님께 핀잔을 들은 두 제자. 예수님을 따르다 흩어져버린 허다한 무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그들은, 말씀에 자신을 비추지 않고, 자신에게 말씀을 비추었기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으며 주님이 말씀을 열어주셨을 때 가슴이 뜨거워져서 비로소 증인이 되었던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이곳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서,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행복한 증인들이 넘쳐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28:18~20)

우리 모두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중보하실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어서, 약할 때 강력한 십자가의 신비와 온 땅에 충만한 부활의 영광을 믿음의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뜨미아르/최유리

목녀 임명 간증: 김석우 목장 김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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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에서는 전혀 믿음이 있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저를 기다리고 계시고 만나시려고 하셨지만 전 하나님과 가까워지려 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채플이 있는 대학교에 다녔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채플 시간이 되면 전 친구들에게 대리 출석을 하게 하며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치며 참석하지 않는 일이 많았고, 더 나아가서는 학교 총학생회 회장이 되어서도 한 해를 잘 부탁한다며 학교의 반대를 무릅쓰고 돼지머리를 올리며 고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에게 크나큰 반항을 하였던 것이지요.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시고 이곳 서울 교회 목장에 보내셨고 싱글목장 생활 속에서 다른 목장에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결혼 후 부부목장에서 목장 생활을 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목자님 목녀님들의 기도로 지금 이곳에서 목녀 임명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얼마 전 저희 친정엄마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통해 그동안 꿈쩍도 안 했던 친정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그 계기로 친정 부모님 두 분 모두 영접과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만 알고 있었던 엄마의 병명을 우연한 기회에 백내장 검사를 통해 우울증이 아닌 뇌종양이라는 정확한 병명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으시고 뇌종양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그다음 날 바로 입원과 수술을 하게 하셨습니다. 처음 예상했던 수술 시간은 8시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의 수술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11시간이 넘으면서 불안감과 공포가 엄습해왔습니다. 저는 바로 목장 식구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렸고 저도 울면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렸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수술이 끝이 났고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엄마의 모습은 어제까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엄마가 아닌 퉁퉁 부은 얼굴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은 아주 아팠지만,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도 엄마는 중환자실과 일반실을 번갈아 가면서 병원 생활을 하셨고 한 번은 수술 후유증으로 머리에 물이 차 바로 머릿속에 관을 연결해 물을 빼내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수술을 또 해야겠다며 몸속으로 관을 삽입하여 수술하자고 하였습니다. 수술은 간단한 수술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엄마의 상태로서는 만약 2차 감염이 되면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손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종양 수술만 하고 회복만 하면 되겠다 하였는데 또다시 수술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해지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목장 모임에서 목장 식구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해준 우리 목장 식구들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정확히 일주일 후 목장 나눔 시간에 더는 물이 차지 않아 엄마의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사의 기도 응답을 목장 모임에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자님, 목녀님 그리고 목장 식구들의 기도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엄마를 통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엄마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수술 후 아직 혼자 스스로 하실 수 있는 일이 없는 엄마이시지만 전 믿습니다. 회복시켜 주시며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걸요.

엄마를 통하여 다시 한번 저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 앞으로 목녀로서 목장 식구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드리는 제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하셔서 일 하실수 있도록 감사하며 섬기겠습니다.

싱글 목장에서 섬김의 본이 되어 주신 김홍근 목자님, 김은미 목녀님, 원치성 목자님, 지금은 목녀님이신 정효정 목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부 목장에서 섬김의 본이 되어주신 김영일 목자님, 김우영 목녀님, 엄남용 목자님, 엄현지 목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섬김을 그리고 보고 배운 섬김을 사랑스러운 저희 목장 식구들에게 나누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김석우/김유나

목자 임명 간증: 김석우 목장 김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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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이 많은 저를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끄신 하나님 은혜에 영광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을 여러분 앞에 자랑하려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시절까지 태권도를 해 왔던 태권도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수님 추천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미국 생활은 한국 생활과는 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땀을 흘리고 노력하면 그 땀은 거짓이 없이 보답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열심히 해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지칠 무렵 친구가 연극 보러 가자고 해서 ‘Why not?’ 하면서 갔던 곳이 송년 잔치였습니다. 그땐 정말 연극배우들을 초청해서 하는 연극인 줄 알았습니다. 그 후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간 곳이 이수관, 이은주 두 분이 섬기시는 그루터기 목장이었습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이 무한 리필되는 그곳은 저에게는 꿈의 식당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후 나눔의 시간을 가졌을 땐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꼭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지내왔던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과 말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 범사에 감사’라는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말을 하고 삶에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소리 지르는 행동, 무슨 결혼 정보업체도 아니고 매주 20여 명이 넘는 처녀, 총각들이 모여서 빙빙 돌아가며 “사랑합니다” 하면서 하는 허그는 우리가 하는 허그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은주 사모님의 맛있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에 매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목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목장을 나가던 어느 날 제가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할지 몰라서 전 무작정 기도를 해보자 하고 매주 토요일 새벽기도를 2년 넘게 다닌 것 같습니다. 그 후 가르친 학생이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었고 저는 십일 세겹줄 기도 제목으로 등수 안에만 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은메달을 땄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후 저는 변호사에 이 사실을 알렸고 변호사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2년 후에 노동허가서가 나오고 그 후 3년 후에는 영주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해서 영주권 신청을 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한번 불체자로 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2년이 걸린다는 노동허가서는 2개월 만에, 3년이 걸린다는 영주권은 3개월 안에 주셨습니다. 불체자에서 영주권이 나오는데 총 6개월이 걸렸습니다. 제 변호사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전 목장도 빠지지 않고 사역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싱글이었던 저는 배우자를 위해 40일 새벽기도를 하였고 기도응답으로 지금의 목녀를 만났고 그 후 자녀를 갖고 싶어 10일 세겹줄 기도 제목으로  내놓고 기도해서 그 다음 해 10일 세겹줄 기도 첫쨋 날 지금의 하은이가 태어났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기도를 통해 들어주셨습니다.

교회 생활 17년 4개월 만에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은주 사모님께서 싱글 때 말씀해 주신 것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라. 그럼 열매가 맺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동안 제가 특별히 교회나 목장을 위해 한 일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교회와 목장에 붙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던 저에게 그 작은 일들까지 많은 크레딧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 목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이수관 목사님, 이은주 사모님, 네 분의 목자님, 세 분의 목녀님의 섬김과 헌신을 본받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장을 하다 보면 어려움도 있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신앙생활은 즐겁게 해야 한다는 이수관 목사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즐거운 목장과 교회 생활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목녀로 헌신한 아내, 섬김을 받기보다는 목자, 목녀를 섬기는 목장 식구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7년 4개월 이란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처럼 기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많은 눈물 흘리신 이은주 사모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김석우

 

구원 간증: 바기오 목장 류성진

By | e참빛

안녕하세요 바기오 목장 류성진입니다. 서울교회에 대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간증 거리가 많은 교회이다”였습니다. 이 말을 들었던 저는 교인이 일이백 명도 아니고 천 명이 넘는 교회에서 내가 간증을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간증을 하게 되었네요. 간증을 요청하신 목사님의 이메일을 받고 “어떡하지? 확인 못 한 척 할까?” 라고 제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목자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성진 형제 이메일 봤어요?”라는 목자님의 한마디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유교 집안의 아버지와 기독교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교회를 가신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추석이나 설날에 큰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외가에 가면 목사님이셨던 큰외삼촌과 가족 예배를 드렸는데 어머니도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모시고 사시던 크리스천이던 외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아버지 또한 제가 교회를 다니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갈 무렵 어머니의 영향인지 친가 쪽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친가쪽에서도 제사나 차례 대신 가족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릴적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던 저는 이 무렵 반대로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고 대학진학 후 집에서 나와 자취 생활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놀면서 교회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같이 놀던 그 친구 중 한 명이 서울교회에 온 이후 새사람이 되어 저를 목장으로 인도하였고, 그 친구는 저희 목장 내에서는 예비 목자로 내정 되어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학 연수차 캘리포니아에 있는 누나 가족과 1년 정도 지내기 위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누나도 교회를 잘 다니고 있었고 매형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교회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part time 전도사로 있었기에 저는 매주 누나와 매형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갔었지만, 신앙심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와이프 또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크게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 저에게 한가지가 매우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었을 때 자신은 천국으로 가는데 지옥으로 떨어지는 저를 볼까봐 두렵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릴 적에 교회를 다닌 적이 있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았기에 이때 마음이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쩌다 교회를 가지 않을 기회만 생기면  좋아하곤 했습니다.

가족 손에 이끌려 교회에 그냥 나가기만 하는 생활을 하던 중 4년 전에 대학 친구 소개로 직장을 휴스턴으로 옮기게 되면서 친구가 다니고 있던 휴스턴 서울교회에 오게 되었고 지금의 목자/목녀님을 만났습니다. VIP로 지낸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예수 영접 모임을 들어갔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분은 손을 들으라고 하는 목사님의 말씀에도 결국 손을 들지 않고 나왔습니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예수 영접을 하고 나온지 알고 웃으면서 저를 맞이하던 목장 식구들에게 영접하지 않았다고 하니 잠깐의 정적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목자님께서는 “아직 잘 몰라서 그러니 생명의삶 공부를  들어보고 다시 생각해보자”하시며 생명의 삶 공부를 권유하셨고, 목녀님은 VIP인 저에게 주일 설교 요약을 시키셨고 매주 목장에서 전 주에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목장 식구들에게 다시 들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여러 사람의 손에 이끌려 나와서 졸다 가거나 그냥 앉아있다 가는 곳이었는데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시작은 억지로였지만 생명의 삶과 설교 요약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영접은 웬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시절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잘때마다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을 끓여주시던 친구 어머니께서 2015년도에 휴스턴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셨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내가 언젠가 다시 휴스턴에 왔는데 그때까지 네가 예수 영접을 하지 않았으면 너는 나랑 같이 예수 영접에 들어갈 줄 알아”라는 말을 남기시고 떠나셨습니다. 그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러갔고 그때까지 저는 침례는커녕 예수 영접도 하지 않은 장기 VIP로 지내고 있었는데 목자님이 목사님께서 12월에 저희 목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예수 영접을 하지 않은 저에게는 마치 교장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러 교실로 찾아오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목사님이 목장을 방문하기 두 달 전인 10월에 친구 어머니가 휴스턴에 다시 오시게 되었고 저를 처음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잘 지냈냐는 인사대신 “너 아직도 예수영접 안했다며? 넌 나랑 같이 들어가자” 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12월에 예수 영접을 다시 들어가게 되어, 재수 끝에 예수 영접을 했고 목장의 모든 식구들이 축하해주며 기뻐하셨습니다. 특히 목녀님은 이때 많이 아프셨음에도 손수 집밥을 해주셨습니다. 목장 식구가 이 정도로 기뻐하시는데 예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에 저에게 이상하게 들렸던 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나쁜일이 있어도 잘 된 일이 있어도 하나같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였는데 저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일어난 일인데 이런 의미를 붙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작지만 이런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일이 생겼습니다. 때는 침례를 받으러 교회에 오는 날 아침, 저는 미국 생활11년동안 단 한번도 걸리지 않았던 속도위반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경찰에게 잡히지 않았기에 습관적으로 규정 속도보다는 빨리 운전을 해왔었습니다. 이전에도 충분히 경찰에 잡힐 수도 있었겠지만 절묘하게도 다른 날도 아닌 새 사람이 되겠다고 침례를 받으러 오는 날 아침에 속도위반 티켓을 받게 하여 미국생활에선 일상적이여서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운전에 대해 나쁜 습관을 고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침례 이 후 새 사람이 되라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이후 부터는 지금까지도 절대로 속도위반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침례를 받고 과거를 돌이켜 봤는데 제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지 저를 미국으로 오게 하시고 캘리포니아에 있던 저를 휴스턴으로 옮겨와 서울교회에서 지금의 목장 식구를 만나게 하신 것, 그리고 허리케인 하비 전 후의 상황을 절묘하게 조절하여서 홍수 피해를 전혀 입지 않게 하신 일 등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었지 않았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는데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저를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한명 한명 제 옆으로 보내주셨던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신 외할머니, 매일같이 한가지의 성경구절을 보내주시는 지금은 권사님이신 어머니, 제가 지옥에 갈까 걱정해주는 와이프, 저를 서울 교회로 인도한 대학 친구, 그리고 4년이라는 대학도 졸업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고 기도해주신 목자님과 목녀님 그리고 목장 식구들, 긴 시간 동안 VIP이던 제 사진을 보시고 이름을 불러 기도하시다 보니 가끔씩 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던 이수관 목사님 , 그리고 예수 영접 모임에 같이 들어가주신 친구 어머니 특히 이분은 교회의 집사님이나 권사님도 아니시고 권사님을 친구로 두신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분입니다.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어머님께서도 이은주 사모님이 알려주신 가정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한국으로 가시기 전에 한마디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다음번에 오면 너는 나랑 세겹줄 기도에 갈 줄 알아!”

바기오/류성진

구원간증: 상파울로 목장 김태규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상파울로 목장의 임태규라고 합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어머니께서 절에 다니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신상관련 기록이 필요할 때 종교란에는 무심코 불교란에 체크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차츰 무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릴적부터 죽은 후 시-공간이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었고 이럴 때면 숨이 막힐 듯한 두려움이 생기곤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크리스천인 친구는 죽음에 대해서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갈 거니까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그 친구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때 다른 친구로부터 성경책을 한 권 받았고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성경책을 한 번 읽어 볼까 하고 시도하다가 창세기 몇 장 읽다가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낳고 낳고 낳고 하면서 사람 이름이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지쳐서 그냥 덮고 고이 모셔 놓았었습니다. 그때가지 저에게 성격책은 그저 누군가의 권유로 억지로 라도 한번 읽어보아야하는 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작년 8월에 연수 올 기회가 생겼고, 아는 선배님의 추천으로 휴스턴에 오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이 심운기 목자님을 소개해 주셨고, 목장 식구분들의 큰 도움으로 휴스턴에 무사히 정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심운기 목자님이 목장을 하신다는 말을 듣고, 목자님이 의사라는 일도 하시면서 말그대로 목장도 가지고 있어서 주말에는 목장에서 소나 말을 키우시는 일을 하시는 줄 알고,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엄청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라 댁에서 하시는 목장 모임에 오라고 하셔서 어떤 모임인지 궁금한 마음으로 목장 모임에 처음 참석하게 되었고, 다음에는 교회에 한번 나와 보라고 하시길래 이 때까지그저 큰 도움을 받았기에 거절하기 힘들어 마지못해서 교회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첫 교회 온 날, 음치이기도 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저였지만,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얼떨결에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사가 편안하고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침례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건 정말 제게는 큰 충격이었고, ‘내가 못 올 곳에 온 것이 아닌가, 게다가 우리 식구 모두 이곳에 데려왔는데’…라는 생각으로 머릿 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침례식의 충격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고, 교회에 처음 온 저를 위한 듯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목자님이 선물로 주신 성경책을 뒤척이다가 창세기 6장 3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 이십년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20년 전부터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사람이 세포의 정상적인 노화 과정으로 인해서 무병하게 산다면 120살까지 살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 성경 구절은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내용을 적을 수 있었지? 성경은 정말 예사로운 책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무조건적인 믿음의 대상, 그냥 믿기로 했습니다. 그주에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서 생명의 삶에 출석 못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 빈자리에 재등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비록 무교이지만 신의 존재는 믿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한 번 제대로 공부해 보자는 마음으로 생명의 삶 수업 등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아내가 “생명의 삶 수업을 듣는게 어떻겠냐?”고 물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수업을 듣게 되었고, 목사님의 은혜로운 따뜻한 강의가 마음에 와 닿았고 특히 예수님이 닫힌 문을 노크하시는 사진을 보여주실 때에는 마치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서 제가 죄인이고 미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중에 사랑, 봉사, 헌신, 순종과 같은 단어를 처음 듣게 되었고, “저희 목자 목녀님 목장 식구분들이 진실로 이런 단어를 가식 없이 행하고 계시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때 예배당 십자가를 보면서 든 생각이 이런 섬김과 사랑의 힘이 불붙어서 폭죽과 같이 하늘로 솟아올라 축복의 불꽃과 메마른 땅의 단비가 되어 저와 같은 메마른 땅을 보듬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어서 메마른 땅에서 숨죽이고 있던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싹이 조금씩 트고 있음을 느낍니다. 목장과 교회 생활의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까지 저의 마음에 있던 과거의 집착, 현재,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 불안, 죽음의 두려움 같은 것들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고, ‘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일상의 죄악에 빠져들려고 할 때마다 한 번씩 밟아주는 브레이크와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식사 시간이면 항상 기도하게 되었고, 식사하는 중간에도 깜빡하고 기도를 안 한 걸 알면 수저를 놓고 기도 후에 다시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살면서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지 않았고 그저 저의 노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알았는데, 감사함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하니까 다른 모든 분,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목사님 설교를 따라 해보자고 마음 먹고 설교하시는 내용을 중얼중얼 따라 해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주님’ ,,, 이 단어가 무한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몇 번 정도 하실까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세어보았는데 40번 정도 지나면서는 그냥 포기했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은 ‘그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라는 말만이라도 하루에 몇십번 씩 해보자고 마음먹고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기도하는 것이 편해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의 삶 수업도 마치고, 영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여행을 가서 호텔 아침 조식 시간에 사람들이 분비고 좌석이 몇 안되는 자리가 만석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마음속으로 ‘저희에게 앉아서 식사할 자리가 생기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했고, 2분 정도 지나서 보니까 제가 탐내하던 테이블 하나가 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냥 그 테이블을 보고 지나칠 뿐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구석에서 우유랑 빵을 먹고 있는 식구들을 데리고 테이블로 가서 편하게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사막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는데 약 300킬로미터를 지나도 주유소가 보이지 않았고, 주유등에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고속도로에서 정말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고 손에 진땀이 났습니다. 물론 저는 운전대를 잡고 하나님께 ‘저희에게 도움을 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약 20킬로미터 정도 갈 수 있는 기름이 남아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는데, 그 때 10 킬로미터 전방에 주유소가 있다고 네비게이션이 알려 주었습니다. 또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 한 번은 브라이스 캐년에 가는 길이었는데 차에 기름이 많았는데도 싼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고 무심코 들러서 약 10달러 치 기름을 넣고 다시 가려고 했는데 네비게이션이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초행길이라 제가 네비게이션을 잘못 봤나하고 다시 되돌아 가다가 갈래길에서 지나쳐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는 ‘좀 전에는 이 길을 안가르쳐 줬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했습니다. 이제는 엔진오일 등이 켜졌습니다. 이 때가 오후 4시가 지났고 주변에 카센터를 찾을 곳은 눈 씻고 봐도 없는 것 같고 브라이스 캐년까지는 40분 정도 남은 상태이고, 밤에 숙소까지는 약 300-400 킬로 미터는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순식간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이때에도 ‘또 도와주시겠지’라고 생각하고 운전대를 잡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약 5분이 지났는데 카센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수리를 받는 차가 한 대도 없었고, 20분만에 수리가 되어서 부랴부랴 해지기 전에 브라이스 캐년을 둘러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생명의 삶 수업에서 하나님은 대기업 컴퓨터에도 손을 대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은 네비게이션에도 손을 대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기도 드렸던 일을 저희 아이들에게 해 주었더니 이제는 무슨 일이 생기면 빨리 기도하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제 조카가 댈러스에 있는 대학에 약 한 달간 온다기에 애들 책이랑 부드러운 모로 된 한국 칫솔을 좀 사오라고 부탁을 했었습니다. 댈러스에서 토요일에 버스를 타고 휴스턴 정류장에 도착 후 내려서 짐칸에 실었던 가방을 찾으려고 했는데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그 안에는 여권과 노트북, 책, 칫솔.. 모두 분실된 상태고 경찰에 신고했고 찾기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참 친절한 휴스턴 경찰과 얘기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카는 낙담한 상태였고, 다음 날 노트북과 가방 등을 사고 달라스에 가서 여권을 다시 발급받기로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제 아들이 빨리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이건 기도해도 어떻게 도와주실 방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여권만 날라오든가 가방이 통째로 다시 오든가… 하지만 기도는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터미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군가 가방을 문 앞에 두고 갔으니 빨리 찾아가라고..조카와 부랴부랴 가면서 ‘노트북은 가져갔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여권만 있기를 바랬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조카가 하는 말이 여권, 노트북, 애들 책은 그대로 있고, 칫솔을 열개 넘어 한 뭉치를 가져왔는데 4개만 남기고 가져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 식구는 저, 아내, 아들, 딸 4명 입니다. 소름이 조금 돋았습니다. 지난 번 목사님 설교에서 기도와 간구는 어떤 것이든 어떤식으로 하든 끈질기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14절에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내용을 보고서, 무한한 노력으로 올바르게 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교훈서보다는 ‘성경책을 꼭 잡고 살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침례를 받고도 아직 제 믿음은 밑바닥을 기고 있지만 점차 우상향의 곡선을 그리며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이전의 온갖 더러운 악령은 물러가고 새로운 이로 태어났음에 감사하며, 이제 더 이상 죽음 저편의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상파울로/김태규

목장 간증: 성도 목장 송혜정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성도 목장의 송혜정입니다. 저희 목장은 중국 성도에서 오랫동안 사역하시던 이재근, 조은영 선교사님 부부를 후원하고 있는데요, 현재 이재근 선교사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올해 한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 중에 계시는데, 치유와 빠른 회복을 위해서 모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다섯 가정이 매주 금요일마다 돌아가면서 목장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녁 8시에 모여서 먼저 식사를 감사하게 하고, 목자님의 교회 소식 안내를 시작으로 찬양과 매주 선교비 헌금, 은혜로운 예배를 위한 합심 기도, 목원들이 돌아아가면서 하는 시작 기도, 성경 공부 그리고 설교 요약 다음엔 준비된 다과를 먹으면서 생활 나누기. 전도 대상자와 기도 제목을 놓고 다 같이 통성 기도, 마지막엔 목자님의 마침 기도로 밤 열두 시 반쯤 목장 예배를 마치고 아쉽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주일엔 예배 후 친교실에서 각자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면서 예배 시간에 받은 은혜나 목장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교제를 나눕니다. 주중에는 목장 카톡방을 통해서 서로 소통을 하는데, 목자님께서 매일 좋은 글과 영상을 올려 주셔서 은혜롭게 하루를 시작한답니다.

헌금 계수 위원으로 사역하시는 목녀님은 친교실에 잘 못 나오시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가끔 저희 목장 박근우 목자님을 제 남편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아니구요. 당연 목녀도 아닙니다. 저를 목녀인줄 아시고 “목녀님” 하고 부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에는 ‘저 목녀 아니에요.’라며 일일이 정정을 해드렸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웃고 지나가게 되더라구요. 자주 듣는 말이라서 민망하기도 해서요.

목장과 신앙생활을 통해서 받은 은혜로는 제 삶의 가치관과 일상생활 속 태도의 변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의 변화 등등 많은데요. 그중 가장 큰 변화라면 저에게는 남편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집안에 불상을 모시고 정화수를 매일 갈아가며 그 앞에서 예를 갖추던 뼛속까지 불교인이었던 남편. 이웃으로부터 염불 소리가 너무 은혜롭다는 칭찬까지 들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과 모태신앙으로 자라 온 저의 결혼생활이 평탄할 수 없었죠. 불같은 성격의 남편과 그에 못지않은 자아가 강한 제 성격이 부딪히면 대단했습니다. 그래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하나님, 남편을 변화시켜 주세요’라며 간절하게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기독교 방송에서 저희 부부의 상황과 비슷한 어느 자매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먼저 변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목장의 사정으로 지금의 목장에 오게 되면서 남편과 저에게 조금씩 구체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목자님은 목녀님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목녀님을 여왕처럼 받들고 아끼며 사랑하시거든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10년 넘게 목장 생활을 하다 보니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이,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제 남편도 목자님 비슷하게 닮아 가더라고요 참 감사하죠. 10년 전만 해도 모든 게 못마땅하고 싫던 남편이 이젠 나에게 자식보다 더 소중한 존재임을, 세상 떠난 뒤가 아니고 아직 둘 다 살아 있을 때 깨달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선배 자매님의 충고대로 있을 때 잘하려구요. 이제 남편은 성실한 목장 성경 교사로 그리고 제가 어려운 일로 힘들어하고 걱정하면 기도로써 지원해주는 든든한 영적 동역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변화된 건 아니구요. 가끔 피곤한 일요일 아침이면 일어나면서 일반 성도들에게도 안식년이 있어야 한다며 투덜거리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예배드리고 나서 목장 식구들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한답니다.

저희 목자, 목녀님, 본인들의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헌신과 섬김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두 분의 삶을 보면서 저희 부부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변화된 삶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주 큰 위기와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묵묵히 신앙을 지키고 감사함으로 승화시키며 잘 견디어 내시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저렇게 다르다고 생각하며 도전을 받았었습니다

목자, 목녀님 사랑합니다.

아직도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자아, 못된 성질… 바울 사도님께서 탄식하며 하신 말씀처럼 저는 참으로 곤고한 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 하지만 그래도 믿음의 동역자들인 목장 식구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쉬엄쉬엄 주시는 환경과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세밀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어려운일이 생기면 더욱더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사랑의 끈으로 묶어진 우리 성도 목장 식구들 사랑합니다.

성도/송혜정

구원간증: 무알라제 목장 윤기원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저는 최진영 목자님이 인도하시는 무알라제 목장의 윤기원입니다. 먼저 신앙 배경을 말씀드리면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불교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교회는 초등학교 때 짜장 떡볶이를 준다고 해서 친구 따라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의 3대 종교를 다 경험해본 셈이죠. 저는 솔직히 이 휴스턴 서울 교회에 오기 전까지는 개신교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소리 지르고 조용히 하라 하면 시비 붙어서 싸우고… 먹을 거로 유인해서 교회 나오게 하는 것 같고… 이런 상황들을 보며 개신교,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저는 미국 샘 휴스턴 대학교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고 선배 언니를 통해 최진영 목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만난 지도 얼마 안 된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잘 해주실까 할 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만 모든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간절히 기도하면 모두 응답해 주신다는 목자님의 반복된 말씀에 개신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며 불신했고 계속 하나님에 대해 듣는 것이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목자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개신교도 천주교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생각으로 교회도 나가보고 목장이라는 곳도 나가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목장에 갔던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생각 없이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나갔던 첫 목장에서 저는 sharing을 하며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앞에서 제 속마음을 얘기하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첫 목장 안에서 많은 힐링을 받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매주 교회에 나와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허리케인 하비로 입은 피해를 내 일인 양 힘써 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합동 목장을 하며 제가 전에 가지고 있던 개신교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은 어느샌가 없어졌었고 이런 분들을 닮고 싶어하는 제가 보였습니다.

10월 초에 목자님은 저에게 영접모임에 들어가 보기를 권유하셨지만 저는 그 날 영접하지 않고 나왔었습니다. 저에게 10월은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겹쳐 저한테는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시간에 찬양을 부르고, 들으며 자주 울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찬양을 들으면 힘든 마음이 위로되었고 잠시나마 평온해지는 것 같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울고 싶을 때마다 집에서 찬양을 듣곤 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한 달이 지나고 큰 폭풍이 지나간 후 11월에 교회와 목장을 갈 때는 그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그 시간이 좋았고 교회를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12월 영접모임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보기로 다짐했고 12월 17일 침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들어간 영접모임에서 목사님의 말씀은 같았지만 저는 그 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고 다른 자세로 그 시간을 맞았습니다.

침례를 받기 바로 전 목장 땐 다른 목원들이 한국에 들어가게 되어 저와 목자님 단둘이서 목장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날의 sharing 시간은 영접 후 하나님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단둘이다 보니 제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많은 진솔한 이야기를 하며 저의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자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하나님을 언급하시는 것이 마냥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씀들이 거슬리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간증으로 들렸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제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고 목자님이 권유해 주신 확신의 삶을 통해 더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싶어 2주 전부터 확신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침례를 받은 후 잠시 한국에 갔을 때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항상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루는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문뜩 울컥하며 하나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이렇게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한국에 와서 친척분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사소할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일에 힘들어하고 지쳐있던 나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접하고 침례를 받기 전에 간증을 들을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 무슨… 말도 안 돼’ 이렇게 생각하곤 했는데 직접 내가 경험하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하나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변 친구들이 걱정, 고민이 많아 힘들다고 할 때,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가 기도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마!.’라고 말하는 저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전에는 크리스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 말하려 하지도 않고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기도’라는 단어가 제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또 저의 기도의 응답으로 친구의 걱정, 고민이 해결되어 ‘네가 기도해준 덕분에 좋은 결과 있었던 것 같아’라는 말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했고 제가 크리스챤이라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최진영 목자님, 수호 오빠 그리고 많은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드리고 우리 목장의 VIP인 민규 오빠도 어서 빨리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무알라제/윤기원

집사 안수 소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

By | e참빛

이번 남편의 집사로의 부르심을 받고 소감문을 준비하며, 저의 인생을 보호하시고 인도해오신 주님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먼저 사춘기 어려운 가정환경일 때, 혹시나 밖으로 돌다가 안좋은 길로 빠졌을 수도 있었을 저를 친구를 통해 교회로 인도하셔서 그 안에서 사춘기 동안 보호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고 음악과 술이 좋아 수업은 가끔 빠져도 서클룸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리던 대학 시절, 안티 크리스천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교회에서 멀어진 적도 있었지만, 10년 후에 남편과 함께 교회로 함께 돌아오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둘째 아이 종연이가 자폐 진단을 받기 두어 달 전 남편이 예수님을 알게 된 것도 주님의 간섭하심이라 믿습니다. 아들의 자폐 진단으로 미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 많은 도시 중에 휴스턴으로 오게 된 것도 주님의 은혜 아니면 설명이 안되네요. 목장 식구였던 유재상 목자님이 남편이 다니게 될 휴스턴 대학원 1년 선배였는데, 학교에서 더 많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많이 써주셨고, 엄재웅 목자님께서도 저희 아파트를 미리 구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받게 하심에 감사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땅을 밟은 건 아니지만, 아들 종연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리고 큰아이에게 장애인 동생을 갖고 있어서 겪는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어서 이주를 결정했지만, 막상 정착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영주권을 받고, 경제적으로 정착하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고, 그러는 가운데 아이들 또한 희생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에서의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종연이의 상태는 그리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2년 전 어느 날, 아이는 방학이 되자 누나와 매일 영화관과 아이스 스케이팅 등 엑티버티 하기를 원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는 그릇을 하나씩 깨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목장사역 열심히 한 것밖에 없는데, 저희는 아이로 인해 왜 이리 힘들어해야 하나요?” 질문하는 시간이 있었고, 이제까지 한 모든 것에 대한 회의가 왔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너 모든 짐 맡기고 나 따라올래?” 하시며 마음을 정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좀 더 아이들과 가정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역을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우리에겐 사역도 사치라는 생각을 가지며 한 발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던 저이기에 집사 부인으로의 부르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습니다 이수관 목사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그리고 저조차도 목장 식구들에게 강조해왔던

“하늘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말씀을 의지하며, 이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한편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주님의 주권 아래 저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저에게 감히 예수님이 받으셨던 잔이 올리는 만무하지만,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며, 목장 식구들과 사역으로 묶어주시는 성도님들의 영적 필요를 도와주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습니다. 나밖에 모르던 제가 목녀를 하면서 섬김과 희생이 뭔지 배워가고, 작은 사랑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교회의 구석구석을애정 어린 눈으로 보고, 교인들과 목회자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최근에 친정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한국에 다녀왔는데, 부모님 다니시는 교회에서 장례일정을 여러모로 도와주심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늘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할 때면 그곳에 천사를 붙여 주시길 기도하곤 했는데, 저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목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듯 저는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저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섬김을 다함이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누군가에게 기쁨이고 감사임을 믿습니다.

깜뽀찌아/유양숙

집사 안수 소감: 주님이 원하시는 완벽한 사랑공동체를 꿈꾸며

By | e참빛

집사로 부름을 받고, 제가 교회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떤영향을 받았는지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기억 속에 첫 교회 경험은 초등학교 때 성탄절, 친구 따라 교회에 가 본 것입니다. 그 날 제가 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아기 예수, 동방에서 온 손님 등등’은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꿈 같은 얘기, 부잣집 아이들이나 받는 혜택으로 들렸고, 저는 주변에서 거지 취급당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교회는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날은 안돼, 내일은 교회에 가야 해, 술-담배는 안 해….’ 등 이들은 이유가 참 많았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이들이 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교회를 배척하였지요.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입니다. 헤어지면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미 좋아져 버렸거든요. 그래서 그녀를 포기하기보다는 교묘하게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기까지는 10년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되는 세상 속에 빠져, 투쟁과 좌절을 반복하며, 30대 중반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제야 제 삶과 가족을 뒤돌아보며, 의미 없는 것을 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교회를 찾았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교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 광고가 문제였습니다 어디엔가 사 놓은 땅에 무슨 건물을 짓는다며, 각 가정당 은행 계좌를 개설하라고 합니다. 제 반응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이었습니다. ‘역시 교회와 목사는 순진한 사람을 꾀어내는 곳이야!’이었습니다.

시작한 김에 한 번 더 다른 교회를 시도했습니다. 다 좋았습니다. 광고 시간에 돈 얘기도 없었고, 무슨 거룩한 말만 듣고 본당을 나오는 데 문 앞에 목사님이 서 계시면서 떠나는 성도들 하나하나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흠, 목사가 저 정도는 공손해야지’하는 데, 그 건너편에서 목사 아내라고 하는 사람도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평생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저는, ‘아낙네가 왜 나서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거의 없고, 여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교회로 보였지요. 당연히 뱃속이 뒤틀려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자매님들! 저 참 한심했죠! 믿지 않던 시절의 예를 들은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에서 지금은 여러분 사랑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향한 VIP들의 태도와 반응은 당연합니다. 평생의 가치관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데, 방어하게 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교회 쇼핑을 포기하고 있던 차에, 어떤 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분이 얘기하는 교회의 모습은 제가 아는 교회와 전혀 달랐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참으로 신선하고 근사해 보였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당시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렇게 저는 교회를 무슨 사회개혁 운동가, 세련된 전문가이라 생각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근사하고 세련된 신앙인인 줄 알았던 저는, 우리 교회를 오면서 박살이 났습니다. 바로 목장 때문이지요.

내가 가진 영향력을 행사하여 세상이 우리를 쫓아 오는 하는, 그런 거대한 꿈보다는,… 이번 주에는 부부가 어떻게 갈등했고, 직장에서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고, 아이들의 시험 결과 등등 사소한 얘기가 내 삶의 전부라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섬세하게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 그래서 다음 주도 목장 식구의 기도로 잘 지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 내가 서서히 변화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러나 이때부터 새로운 내적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옛속성이지요. 여러분 아세요? ‘아메리칸 드림’
시카고 불스의 구단주가 그랬다고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전혀 안 해도 되는 것”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 거라고요. 어떤 이유에서건 미국에 온 것은 더 편하고 풍요로움을 쫓은 것이었는데, 잘 먹고 잘사는 이곳에서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낄 때, 삶이 힘들어집니다. 저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 쉽게 좌절하고 분노하며, 나의 환경과 상황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옛속성이 새로운 속사람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늘 쉬워 보이고, 편하며, 열매도 빨리 맺을 수 있어 보였지만,
예수님의 방법은 시간이 걸리고, 자존심 상하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 이 ‘고통의 자리로 나 자신을 옮길 준비가 되었느냐?’ 라는 질문은 늘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실했습니다.

철저히 성령님에 의지하지 않으면 실수투성이였고, 사랑이 없는 충고는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목장 사역이었습니다. ‘지저분한’ 영적 상태를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쓰레기는 그 자체가 더러운 것도 있지만, 제자리에 있지 않아서 쓰레기가 되어 버릴 수 있듯이, 영적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영적 게으름’에서 오는 것도 경험합니다. 주어진 말씀을 따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타협하려 들 때, 이 쓰레기가 쌓여 갑니다.
힘들어서, 기분 나빠서, 시간이 없어서,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시작되는 그 어떤 노력도 관계를 깨뜨리게 됩니다.

제가 방문했던 교회들을 다시 뒤돌아봅니다.
초등학교 때 방문했던 그 날,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시키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눈을 감고 있다가 1분이 지났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라고 하시었데, 결과는 90% 이상의 아이들이 30초도 되기 전에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속에 속해 있었고요. 그러시면서 1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니 소중히 생각하라 하시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저는 ‘아! 교회에서는 이런 것도 가르치는구나!…’ 마음속에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니던 시절, 아내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조용히 저를 따라왔습니다. 절대자에게 이미 남편이 붙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파트 단지 상가의 그 허름한 교회에서는, 선교관/ 교육관을 지어 선교사님이나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또 다른 교회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내들이 나서서 섬김을 실천함으로써, 가정이 변하기를 꿈꾸었던 그런 공동체는 아니었을까요!

지난 1월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아내가 다녔던 모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연수 오셨던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알아보시고 성도들에게 인사해 달라고 하시어, 강단에 올라가서 ‘음…저는 이 교회를 잘 다니던 한 성도를 꾀어내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장본인입니다’라고 사죄하였습니다.
아내는 자신보다 남편이 먼저 모교회에 방문한 것이 감동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많은 교회가 우리 교회를 닮으려 합니다.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내며, 선배 목자님/ 집사님들이 쌓아 놓은 대로 따라 하면 된다. 그래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된다……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할 건 뻔합니다. 저의 자아를 쳐서 죽이지 않으면, 옛속성이 다시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최선의’ 교회가 아닌, ‘완벽한’ 교회를 꿈꾸어 봅니다.

주님이 그렇게도 원하시는 완벽한 사랑 공동체를 꿈꾸며,
철저히 성령님에 의지하여, 교회 리더십을 도와, 소외받은 자/ 어둠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포근한 자리를 내어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깜뽀지아/유윤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