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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삶 간증: 사랑의 언어를 기억해준 고마운 아내

By | e참빛

“나 아이들 데리고 한국에 좀 있다가 올게..” “왜?” “서로 대화도 없고 가정에 신경도 안 쓰고 본인 힘들다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 언제 와?” “ 모르겠어, 한 일 년은 있을까 봐…”

방금 대화 내용은 부부의 삶 듣기 딱 2주 전에 했던 우리 부부의 대화였습니다. 서로 너무나도 달랐던 우리 부부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목장에서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부부관계 회복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했을 때 우연히도 아내와 같이 사역하시던 목녀님이 함께 부부의 삶 공부를 듣자고 아내에게 물어보셨습니다. 하지만 삶공부는 화요일이고 저는 이주에 한번씩 월, 화, 수 출장을 나가느라 할 수 없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저희 사정을 삶 공부를 인도하시는 목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목녀님은 다른 세 부부께 양해를 구하고 날짜를 화요일에서 목요일로 옮기셨습니다. 아마 목녀님이 삶공부 날짜를 인도하신 후 처음으로 옮기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제 삶 공부가 모두 끝나고 생각해보니, 이런 빚진 마음이 조금더 수업에 집중하게 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임하는 자세의 수업은 첫째,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먼저 하게 만들었고, 부끄럽지만 6년 전 처음 들었던 부부의 삶 수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 억울함을 고하는 자리였다면 이번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보다는 아내의 어려움을 듣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삶 공부를 인도하시는 목녀님께서 인생의 풍랑 속에서 그 한고비 한고비 오는 파도에만 집중하면 평생 자신의 어려움만 볼 수밖에 없고 힘들 수 밖에 없지만, 부부가 서로 협력해서 그 시선을 다른  사람의 필요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목자, 목녀가 되보는 것이 어떠냐고 수업을 듣는 모든 커플에게 권하시는데 그 말씀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다았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제 안에 문제에서 아내의 필요함을 쳐다보게 하는 마음을 주셨고 이제는 거기에서 다른 사람에 필요를 쳐다보게 하시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나의 문제, 우리 부부 문제는 별거 아니라고. 가끔 목자가 되고싶다 아내에게 물어보면 당신은 목자감이 아니라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제는 안 하면 우리 부부가 다시 우리의 문제로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결단의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저번 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엊그제 목장에서 아내가 감사함을 쉐어할 때 “일하는데 열심히 부부의삶 같이 듣느라 수고했다”고 한마디 했을 떄 그 말이 세상 어느 것에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값지고 또 이번 삶 공부를 통해서 배운 저의 사랑의 언어를 기억하고 표현해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그 때에는 그냥 놀라서 무덤덤히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늦게나마 이 자리에서 그때 너무나 기분 좋고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13주 동안 수업을 인도하시면서 부부의 삶 속에서 부모의 삶, 그리스도인의 삶까지 폭 넓게 인도해주신 목녀님 그리고 이렇게 보내는게 너무 아쉬워 말씀의 삶도 들으라 권하시는데 말씀의 삶을 2번이나 들어본 제가 보증하니 꼭 한번씩 우리 동기들 들어보시고, 또 이것은 삶 공부를 하러 온 것인지 맛집 방문 매주 하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맛있는 음식 준비해주시고 어찌 보면 30대, 40대, 50대 이렇게 함께 있어 어색할 수 있었는데 서로 스스럼 없이 쉐어하고 응원하고 함께한 동기 여러분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또한, 목장에서 저희 부부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시고 매주 삶공부가 어떻냐고 물어보시고 함께 걱정해주신 목자, 목녀님 감사합니다.

에베소서 4장32절 말씀처럼, 

저희 부부 앞으로도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르완다 신효일

부부의 삶 간증: 순수하고 착한 남편을 위한 격려

By | e참빛

이번 44기 부부의 삶 공부를 하며 좋았던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매주 3일 정도 말씀 읽고 묵상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고 남편으로 인해 마음속에 불만이 많았고 화도 자주 냈었는데, 그런 부정적 마음이 누그러 드는 것을 경험하며 참 말씀이 중요하구나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알려면 말씀을 읽어야 되겠구나” 라며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큐티 시간을 가지며 감사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을 쫓으려 하면 할수록 무지개 같이 허무한 것이고 진정한 행복이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때 맛볼 수 있다시며, 성경 읽고 말씀에 순종 하려하고 기도하며 아뢰고 작은 것부터 주님께 감사하려고 하다 보면 우린 행복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정말 작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해 주시고 제가 혼자는 가질 수 없는 인격과 용서할 수 있는 긍정적 생각을 하게 하시며 남편과의 관계 가운데 슬퍼하던 저를 건져 주셨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놀랐던 건 남편의 성향입니다. 남편은 사교형에 안정형이고 5가지 사람의 언어 중에 터치와 칭찬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상주의라는 낯선 성향이 있다라는 것을 알고 조금 많이 놀랐습니다. 왜 그렇게 부부가 대화가 안 되고 관심 포인트가 달랐는지 같은 사과를 보고도 남편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하는 반면 저는 어느 마트에서 샀을까라고 생각하는 정말 다른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만나 서로를 이해못하며 힘들어만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이해하기 전까지 전 많이 답답했습니다. 혼자 놀고 혼자 밥 먹고 남편의 근황은 목장에서 듣고 아내가 아파서 3일을 몸살로 앓아 누워도 괜찮냐고 위로 한마디 할 줄 몰랐던 남편을 하나님께 원망도 몇 번 했던 것 같습니다.

왜 전 이런 남편 만나게 해주셨나요? 왜 제가 이렇게 외로운 결혼 생활을 하게 하시나요?

전 제 연민에 빠져 있었고 오랜 시간 우울했습니다.

11년 차 결혼 생활이 되었고 쌍둥이가 8살 되도록 육아한다는 핑계로 서로를 알려 노력하지 않고 배려해 주려는 노력없이 다르다고 이해 안 된다고 상대 탓만 하며 지적만 하다 보니 부부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공동 양육자의 역활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그 끝에는 좀 떨어져 지내며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겠다. 애들도 한국말 너무 많이 까먹었고 남편은 따로 놀고 내 맘 알아주는 식구들과 맘 편히 즐겁게 지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조금씩 불려가며 계획이 점점 구체적으로 되어가고 이윽고 아파트 단기 임대 부동산 에이전트랑 통화해 보며, 한국에 가겠다는 마음을 접었다가 폈다가 꽤 오랜 시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겁나고 막막했습니다. 그럴 때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사탄에 휩쓸려 죄짓지 않게 해주세요. 감정에 눈이 가려 그릇된 생각을 하면서도 목장과 교회에 붙어있으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저버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삶 공부를 인도하시는 목녀님은 마치 저희 부부의 행복의 사도처럼 발 벗고 나서주셨습니다.

부부가 서로 함께 시간을 가지며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살피며 뜻과 생각을 합하여 같은 마음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왜 서로 용서해야 하는지 용서하기 위해 부부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남편에게 아내가 왜 순종해져 지게의 지겟대 역활을 해야 하고 남편은 가정의 머리로 영적 가장으로서의 비전을 품어야 하는지 화났을 때 서로에게 지혜롭게 화내는 방법도 알려주시며 사랑이란 서로의 낯빛을 살피며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라는 것도 강조하시며 초등생에게 반복 학습하듯 세뇌시켜 주셨습니다.

아내는 관계 중심적이니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며 복잡미묘하고 때때로 바뀌는 여자의 마음을 여자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니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늘 잘 해주라셔서 정말 손이 닫지 않아 못 긁고 있었던 등허리가 시원히 긁히는 듯하였습니다. 아내들은 과업중심적인 남편에게 잘한다, 고맙다, 최고다 남편밖에 없다고 남편에게 늘 기쁘다고 메세지를 계속 보내면 정말 둘이 기쁜 일이 많이 생길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드셨기 떄문에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 하지 말고 주신 배우자에게 항복하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 주도권 잡아봤자 행복한 결혼생활로 이어지진 않는다. 배우자는 나의 보석인데 지닌 사람의 애착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고 내가 잘 닦아 줘야 빛을 발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시선을 남에게 돌려 둘이 한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회복한다시며 내 인생 안개 속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남의 필요에 눈을 돌리는 것이며 그러한 자들에 기도에 하나님은 귀 기울여 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이런 삶 공부 내용들은 한주 한주 너무 감사했고 마음에 와 닿았고 생각하고 노력하니 관계가 좀 더 부드러워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고 매트리스가 서로 안 맞다며 각방 쓰고 룸메이트 처럼 지냈는데 둘에게 잘 맞는 매트리스도 새로 구매해 침대도 같이 쓰고 눈을 맞추고 마주보며 식사를 합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한테 우리 남편은 로또라고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이제 더 이상 비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원망도 하지 않고 계산할 줄 모르는 순수하고 착한 남편을 위해 늘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남편에게도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출장 다니며 일하느라 수고 많다고 격려합니다.

삶 공부를 인도하셨던 목녀님께서 성경구절 몇개를 달달 외워서 화가 나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마다 기도하듯 읊으라고 하셨는데 저도 이 말씀으로 힘들 때 이겨내려 합니다. 빌립보서 4장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13주 동안 아프셨는대도 거르지 않으시고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주신 목녀님 감사드립니다. 44기 동기분들 드러내기 어려운 부분까지 쉐어하며 위로해주며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참 소중했습니다.

늘 기도로써 저희를 염려하고 격려해주시는 목장 목자, 목녀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르완다 이정미

안수목녀간증: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By | e참빛

불교신자로 태어나 하나님을 모르던 제가, 이곳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주님의 자녀가 된 지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렇게 안수목녀로 임명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휴스턴에 오기 전에는 지갑에 부적과 오른손에는 염주를 차고 미신을 맹신하여 꿈자리가 안 좋으면 몸을 사리며 약속도 취소하고 밖에도 잘 안 나가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후 저는 늘 주님이 저와 동행하시며 지켜주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난이 있을 때도 있지만 늘 그때마다 저보다 더 아파하시며 주변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게 하시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조금씩 믿음이 성장해 온 것 같습니다.

각자의 성격과 모양에 맞게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던데, 저는 싫어도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예수영접모임에 들어가서도, 다들 영접하겠다고 손을 드는데 저만 안 하겠다고 할 수 없어서 저도 영접하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정이 넘치시던 목자님의 권유로 수요예배, 토요 새벽기도, 삶 공부 등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도 반은 억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교회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슬비 맞듯이 젖어 들게 되었습니다.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제 성격 때문에 처음엔 수동적으로 믿음 생활을 시작했지만, 하나님을 그런 제 모습도 순종이라 생각하시고 예쁘게 보셨는지 지금까지 많은 축복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그 많은 축복 가운데 첫 번째는 가족입니다. 가족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시던 아버지 때문에 늘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영향으로 저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 거라는 기대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7년 전에 하나님을 만나고 180도로 삶이 달라져 하나님께 직진하는 교회 오빠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임신만 하면 남편이 해고되어 물질적인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하였습니다. 쌍둥이 태아 가운데 하나가 뱃속에서 사산되는 슬픔도 겪었고, 남은 태아가 혹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을까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주님이 저희 가정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고 함께 두 손 잡고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둘째 아이는 많은 분의 기도 응답으로 정상적으로 태어나 지금은 유치부 토끼반에서 제일 튼실하고 똘똘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세겹줄 애니어그램에 따르면 저는 ‘화해자’의 성향을, 남편은 ‘모험가’의 성향으로 두 사람이 성격이 너무 다릅니다. 만일 저희가 믿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분명 현실에 불평하며 서로 미워하고, 세상 속에서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쉽게 깨어질 가정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남편이라, 다툼이 있어도 그날을 넘기지 않고 열 번이면 열 번 먼저 사과해주고 저의 모습을 이해해 주며 보듬어 줍니다. 지난 7년간 주님 안에서 훈련하면서 살다 보니 서로의 다른 성격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뚝심 있게 나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주변을 살피며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주님 안에만 잘 붙어 있으면,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갈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서로 더 사랑하고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가리라 확신합니다.

두 번째 축복은 목장과 교회입니다. 누군가를 섬기고 살아간다는 것이 복되고 기쁨이라는 것을 모르던 제가 목장을 만나고, 여러 목자님의 섬김과 사랑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피도 안 섞인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 울고 웃으며 믿음의 울타리 안에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어느덧 받은 그 사랑을 나누는 목녀의 자리로 초청해 주셔서, 아직도 좌충우돌하지만 7년째 목장을 섬기고 있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저희 목장을 지나간 많은 식구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받은 만큼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던 식구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미성숙한 목녀인 저를 잘 따라주고 섬겨주던 식구들에게 제가 해준 게 많이 없어 미안했고, 오히려 목녀라는 타이틀로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목장 식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목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훌륭하신 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삶 공부가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했습니다. 제가 길을 몰라 방황할 때 믿음의 선배들과 동역자들을 보며 따라갈 수 있었고, ‘생명의 삶’을 통해 믿음의 확신을 하고, ‘새로운 삶’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태교를 위해 들었던 ‘경건의 삶’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통해 나의 상황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맡기는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들은 ‘목자목녀의 삶’을 통해 저에게 맡겨주신 양 떼들을 주님께 잘 붙어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역할임을 알고 주님보다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섬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 번째 축복은 성품을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저는 친절하려고 노력하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믿기 전에는 적당히 착한 척하며, 다른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 안에 있는 시기, 미움 등은 적당히 감추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와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장이라는 곳이 저를 포장한다고 포장되나요? 나랑 안 맞는다고 무시할 수 있는 곳인가요? 처음에는 조금 포장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고 안 보고 싶은데도 용서하고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목녀이기에 인내하고 들어주고, 자존심 내려놓고 사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착한 척하는 위선적인 제 모습을 버리고, 진짜 착하고 선한 주님의 종으로 살기 원하시고 계속해서 변화시켜주심을 압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교회와 목장을 통해 사역을 통해 알게 하십니다.

아직은 제가 여전히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지난 9년간 변화 시켜 주신 주님께서 앞으로 저를 또 어떻게 변화 시켜 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말랑 이영희

안수목자간증: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

By | e참빛

누가 저에게 “네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니?”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네, 저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일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약 9년 전 2010년 11월 7일 예수영접 모임에 들어가기 전에 목녀님이 저에게 “성은아! 오늘 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 날이 아마도 세상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그것이 정말 제가 가장 잘한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고 남에게 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보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성격이었지만 의외로 저 자신에게는 관대해서 공부 빼고는 웬만큼 다 잘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나만의 착각 속에 살았기에 남을 업신여기며 교만하고 무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에는 나쁜 짓을 누구 보다 앞장서서 해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사람들 보기에 폼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누군가를 무시하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세상 사람들, 간혹 믿는 사람들로부터까지 “왜 그런 일을 하면서 사느냐?”고 한심해하며 외면당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요?” 세상에서 원하는 돈, 권력, 명예가 행복의 조건인 줄 알고 그것만 쫓아 살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누군가의 기도와 사랑을 통해 남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며 섬김의 기쁨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손해 보고 억울한 감정이 들 때도 나의 부족함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유로움을, 어렵고 부족한 상황 가운데도 실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 기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또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항상 감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시기에 걱정과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을 조금이라도 닮아가기 위해 산다는 것이, 그래서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 지금 너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 간증문을 쓰면서 7년이라는 짧은 목자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저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고, 중보기도를 통해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일보다는 어려웠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이 납니다. “여자 한 번 만나봐야지”하는 마음으로 목장에 참석했는데 금방 주지 않았습니다. 학생 신분이라 주말에 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해고되면서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말에 일을 안 하니, 자연스럽게 목장에 늦지 않게 참석할 수 있었고, 일찍 가서 목녀님을 도와 같이 음식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주일날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또 목장 식구들 눈치가 보여서 예배에 참석했을 뿐인데, 그 전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셨고, 특별하게 믿음을 가지는 축복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단지 믿음을 잘 지키려 마음을 다했을 뿐인데 저에게 세상적으로 보기에 너무나 과분한 배우자를 주셨습니다. 저의 그 작은 믿음 하나 보고 선뜻 결혼하겠다고 결단한 아내 때문에 처음엔 결혼을 반대하던 처가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기도의 힘으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사랑받는(?) 사위가 되게 하시고, 불교 신앙이 너무 깊던 가족을 한 명씩 구원해 가시는 기적 또한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기뻐하기도 전에 해고당한 일, 아이가 태어났는데 데이케어에 맞길 돈이 없어 밤에 일하고 돌아와 아내가 번갈아 교대하여 일하며 아이를 돌보야만 해서 부부간에 서로 대화할 시간도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오히려 대화 부족이 얼마나 부부관계를 어렵게 만드는지 깨닫게 하셨고, 부부관계를 회복하게 하셔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 갈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로 집을 장만하게 되었는데, 집문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해고를 당했습니다. 집 모기지 페이먼트를 걱정을 해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저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VIP를 보내주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목자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고, 돈이 없어 목장 음식을 못 하거나 섬김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주님이 주신 양들을 상처받게 하고 때로는 떠나게까지 했던 일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이라면 더 사랑으로 인내하며 기다렸을 텐데 후회가 되고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을 통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고 하면서도 매일 무너지는 나의 모습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힘주시는 주님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 감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앞으로의 또 다른 1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이 목자 안수를 계기로 부족한 저를 사용하셔서 더 많은 일을 하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길 소망합니다. 신앙연수가 조금씩 더 늘어난다고 선한 사람인 척 행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항상 새기길 다짐합니다.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옛 목자, 목녀님이셨던 이수관 목사님과 사모님, 분가 전 목장 목자님, 초원 식구들, 목장 식구들, 한 분 한 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구절로 이 간증을 마칩니다. 에베소서 6장 5-9 말씀입니다.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스도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각각 그 갚음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됨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주인 된 이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 위협을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감사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말랑 김성은

구원 간증: 나를 위해 기도하고 응답하시는 주님

By | e참빛

우선 남들 앞에 나서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제 이야기를 남들과 쉐어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저라서 이런 자리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고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용돈을 받기 위해 새벽기도도 나가곤 했고 매일 성경을 세장씩 쓰기도 했습니다. 오랜기간 교회 생활은 하였지만, 저에게 하나님은 부모님이 믿는 분, 나랑은 상관없는 분, 그 정도였습니다. 오랜 생활 교회하러 다니던 습관 때문에 미국에 오고 나서도 일요일엔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저는 예배 시간에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고 교우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즐겁지 않았습니다. 사람과의 교제가 없으니 당연히 교회 가기 꺼려졌고 가끔 가던 교회도 예배만 드리고 바로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일이 바쁘다는 핑계, 주말엔 좀 쉬고 싶다는 핑계로 저는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주 교회 잘 갔다 왔냐는 어머니의 전화에도 처음엔 거짓말하기가 어려웠지만, 나중에 너무나도 쉽게 거짓말이 나오면서 나중에는 거짓말을 해도 별다른 죄책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렇게 교회 안 나가다가 하나님이 벌주시는 거 아니야? 라는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 한순간이었고 일요일엔 여행 다니고 놀러 나가는 게 더 즐거웠습니다. 저의 마음속엔 그런 생각들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보며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기도도 열심히 하시는데 그런 신앙심이 좋은 분들께 왜 힘든 일은 생기는 걸까? 돈도 많이 벌고 항상 좋은 일만 있어야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안 좋은 일들도 생기고 그러는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이 잘 이해 가지 않았고 나중에는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었습니다.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현실적인 조언이 나는 필요한 건데 라며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회와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저는 휴스턴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처음 한 달 정도는 목장과 교회를 같이 가자는 남자 친구의 말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목장을 가서 열두 시 넘게 끝난다는 소리를 듣고 남들이랑 뭐 저렇게 할 말이 많은 걸까 불금인데 나랑 데이트 안 하고 목장 가서 시간 보내는 남자 친구한테 싫은 소리도 하곤 했습니다. 가정교회라는 말이 익숙지 않은 저는 이상한 교회가 아닌지 어머니한테 조언을 얻기도 했습니다. 남자 친구의 설득 끝에 저는, 그래 한번 나가보고 이상하면 다음엔 안 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목장에 나가서 한 명씩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 한 주 동안 감사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한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이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사생활이 공개된다는 게 너무나 부담되고 불편했고, ‘나는 내가 기도할 생각도 안 하는데 남을 위해 기도를 왜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휴스턴으로 이사 와서 쉽게 취직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어서 심적으로 힘들었던 저는 취직이라는 저의 기도 제목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몇 달 전에만 해도 모르는 사이였던 목장 식구들은 제 기도 제목을 놓고 자기 기도 제목인 양 열심히 기도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곳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주 목장에 갔는데 목장 식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신앙적인 조언과 위로를 해주시는 목자, 목녀님의 마음에 감동하였고 그러는 중 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떠신 분이길래 다들 저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걸까? 멀게만 느껴 졌던 분, 나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목녀님의 권유로 영접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영접 모임을 시작하시면서 목사님께서 저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민지 자매는 천국에 갈 것 같아요? 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저는 약간 머뭇거렸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짧은 시간에 교차하였는데 “그래도 교회는 다녀본 적이 있으니 지옥은 아닐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을 하는 저의 마음엔 천국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교회와 멀어지고 나서는 천국, 지옥, 기도, 성경 이런 것들은 아예 제 마음속에서 벗어나 있는 주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시작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접 모임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온 죄인이고 조금만 나의 마음의 문을 연다면 하나님께선 들어오시려 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을 갈 수 있다.” 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마음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영접을 하게 되었고 침례도 받게 되었습니다.

침례를 받고 난 후 저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예배 시간 목사님 말씀에 집중하게 되었고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기도하라는 말이 제일 싫었던 제가 오늘 하루 잘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 가족을 위해 또 목장 식구들, 남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친구가 일이 있어 목장에 참석을 못 하는 일이 생겨도 예배가 좋고 목장 식구들과 쉐어하고 싶어서 혼자서라도 나가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목장 가는 시간, 주일 예배 드리러 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천국에 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지만 점점 커지기를 소망하고 예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항상 사랑해주시고 붙잡아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은 교회로 인도해준 남자 친구와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고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목자, 목녀님과 목장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말랑 김민지

구원 간증: 목장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By | e참빛

저는 샘 휴스턴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지 4개월이 되어가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는못했지만 가끔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교회에 자주 갔는데, 당시에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보다는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보내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성인이 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교회와 멀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신을 믿는다는 것 자체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여러 이성적인 의심을 통해서 ‘신은 아무래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그나마 편했기 때문입니다. 괜히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면 지옥의 불 구덩이에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만 들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삶 속에서 제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어서 그러한 자유를 제한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막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여러 가지 지켜야 할 규율이나 원칙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술 취하면 안 되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고, 원수에게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어주어야 하고, 심지어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등…

저로서는 착하고 의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굳이 제 인생에 새로운 원칙과 규칙을 추가하면서까지 번거롭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미국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와서 적응하는 데 애를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교수님이신 지금의 목자님을 만나게 되면서 목장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집에 초대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얘기 나누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시간이 즐겁고 나름의 힐링이 되었기 때문에 목장에 나갔습니다. 그때도 하나님보다는 그냥 그 시간이 저에게 즐겁고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목자님이 “교회에 한 번 가보겠느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목자님은 기다려 주셨고, 계속 저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해 주셨습니다. 한 시간이 되는 거리를 금요일마다 오가며 태워 주시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저를 위해 그리움에 사무치던 한국 음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금요일 목장 하는 날에는 매번 정말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시며, 나눔시간에는 목원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귀 기울여 주셨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도 목자님과 자주 만나 교회, 목장, 삶 그리고 진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목자님의 진심 어린 모습을 보며 “이분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교회에 가본 적은 있지만, 그동안 사랑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안 해봤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갔던 교회에 정말 사랑이 없었다기보다는, 저 스스로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도, 중요하게도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미국에 와서 목자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목장이라는 시스템을 만든 교회에 대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에 나가는 것을 결심했고 매주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하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어색한 저에게도 반가운 얼굴로 인사해 주시고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목자님에게서만 보던 하나님의 사랑을 성도분들을 통해서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느껴가던 중 목자님께서 “영접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아직은 믿음도 없고 이제 막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굉장히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믿음이 충분히 쌓인 후에야 영접을 결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님의 1차 제안을 거절하며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짧은 기간이지만 목장과 교회에서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이 사랑 안에 살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은 제 마음을 열게 하셨고, 한 달 뒤에 영접과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믿음이 예수님을 영접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고 결정한 것은 아니며, 그냥 하나님 사랑 안에서 살고 싶고 일단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이후에 느낀 것이지만 우리가 준비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단, 우선 결단을 하면 하나님께서 제가 영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는 것, 그래서 결국에는 결단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침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 삶인지, 어떻게 살아야 의로운 삶인지, 행복한 삶인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우리 목자님처럼, 이 교회 성도님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그 안에서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믿음의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사랑과 평화를 누리며 실천하며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 채워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할 때까지 영적으로 이끌어 주신 목자님, 영접 모임에서 소중한 말씀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수관 목사님, 하나님의 안에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저에게 그 사랑을 체험하게 해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렇게 소중한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용기 주시고, 인내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며 마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무알라제 최형근

2017년 부활절 특별간증: 얼마나 더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By | e참빛

처음 부활절 간증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가 무얼 간증할까? 성도님들은 나에게 무슨 간증을 듣고 싶을까? 저에게 무슨 크나큰 기적이 있어서 기쁨의 간증을 할 것도 아닌데…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현재 암 투병 중입니다. 그것도 말기 암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1년 저는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진단 당시 암은 직장과 주위 임파선 그리고 간에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하루아침에 말로만 듣던 말기 암 환자가 된 것입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이 상황을 미쳐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됐는데 의사는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5월에 진단받고 6월 1일에 직장절제와 함께 임파선에 퍼져있는 암을 제거하는 첫 수술을 받고 7월 7일 제 생일에 생애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월에 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수술을 2차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의 수술로 끝날 줄 알았던 암과의 싸움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2차 수술 후 3개월 후에 간에 또다시 암이 발견되었고 의사는 수술 대신 고주파로 암을 태우는 시술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개복수술은 아니었지만 저는 똑같이 전신마취를 하고 약 6시간에 걸쳐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항암치료를 받고 검진한 결과 더 이상의 암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렇게 편안하게 약 1년가량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만 하며 잘 지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몸도 추슬러진 것 같은 마음에 미국에 온 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여름에 한국방문을 결정하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저로 인해 많이 걱정하고 계셨기에 이참에 가서 하나님이 치유해주신 저의 건강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귀한 복음도 전할 마음이었습니다.

6월 말에 검사가 있었는데 한국방문은 6월 초라서 의사에게 검진을 건너뛰겠다고 했더니 의사는 그러지 말고 아예 미리 검사를 받고 가라고 했습니다. 3월 말에 검사를 받았고, 6월 초이니 두 달 만에 무슨 일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검사를 했는데 실망스럽게도 난소에서 암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거의 10cm 정도 되는 작지 않은 크기의 암이었습니다. 의사는 암이 자라는 속도로 봐서는 치료를 늦출 수가 없다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출국을 3일 앞두고 저는 비행기 타는 대신에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3개월 후 수술을 했고 수술은 잘 됐습니다. 양쪽 난소와 자궁까지 모두 적출하는 대수술… 그러고 보니 수술은 모두 대수술이었습니다. 3년 만에 4번의 수술이라… 저는 기적이 별건가 뭐, 새로운 암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났으니 이게 바로 기적이지 생각하며 용기를 일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게다가 암은 언제나 장, 간, 난소 등 적출이 가능한 부위에 생겼고 그 또한 감사했습니다. 장이야 워낙 기니 3분의 1 정도 잘라낸 후에 생긴 약간의 불편은 감수할 만했고, 간은 절제 후 2주면 제 모양으로 바로 복원된다고 하고, 난소나 자궁도 더는 생육하여 번식할 일이 없으니 뭐 얼마나 다행인가 스스로 위안하며 그저 뼈에만 전이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뼈는 그렇게 쉽게 뚝뚝 잘라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술 후 약 7개월 만에 암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꼬리뼈에요. 이제까지와는 달랐습니다. 뼈로 전이되지 않기만을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드디어 뼈에… 그때 많이 지쳐있던 저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이제 이 긴 싸움이 종착역을 향해가는 것 같은 마음이랄까 저는 그저 의사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에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 역시 많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우선은 수술할 필요성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재발성 암이기 때문에 수술해도 또 암이 생길 터이므로 이렇게 계속 수술을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고,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대수술을 받아온 데다 중간중간 쉬지 않고 항암이며 방사선 치료이며 해왔기에 수술을 계속 감당하기엔 몸이 너무 약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전 수술을 원했습니다. 재발성 암은 무슨… 왠지 이번에 수술하면 다시는 암이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몸에 암 덩이를 갖고 있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이번 수술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라 그에 따라 큰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선 수술은 암이 있는 꼬리뼈를 잘라내고 2차로 잘라낸 부위에 방사선과 의사가 무슨 시술을 하고 3차로 성형외과 의사가 꼬리뼈가 없어진 빈자리에 제 배에서 근육을 떼어다가 메꾸고 다시 근육을 뗀 제 배에는 소나 돼지에서 축출한 동물의 근육을 대치하고…등등 복잡했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니고 난 그냥 마취하고 깨어나면 되니까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의사는 마지막으로 제게 이번 수술을 하기 위해 꼬리뼈에 붙어있는 직장을 임시로 잘라낸 후 수술 후 다시 이어붙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제 직장이 이미 한번 수술을 해서 절제를 했기에 너무 짧아서 이어붙일 수가 없으니 인공 항문을 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전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수술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그 오랜 시간 수술이며 항암이며 하며 버텨왔나 그야말로 자괴감에 빠져 수술을 거부하는 저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가족 등 저를 뺀 모든 이와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인공항문이라니 적어도 제게는 끔찍한 그 일을 결국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토록 끔찍하게 여기던 그 일을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수술이 잘 되어 꼬리뼈도 자르지 않고 인공항문도 안 달고 그야말로 제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지력 있던 영험한 의사의 예언대로 수술 후 채 2개월도 안 돼 암이 다시 생겼습니다. 이번엔 왼쪽 골반 깊은 곳에… 이번에 생긴 암은 다른 장기에 너무 가깝고 게다가 제 다리의 신경에 붙어 있어서 도저히 수술은 불가하답니다. 이젠 항암밖에 없다 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2주마다 한 번씩 항암치료 중입니다.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한답니다.

이렇게 긴 시간 투병을 해온 저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힘을 얻는 것은 우선 바로 가족입니다. 이제 가족 자랑을 좀 하겠습니다. 먼저 제 남편입니다. ‘세상에 이런 남편 또 없습니다’라고 할 만큼 정말 제가 봐도 대단한 남편입니다. 항암으로 인해 탈모가 있을 거란 의사 말에 항암 안 한다고 울고불고하던 저를 달래던 남편은 저보다 먼저 머리를 빡빡 밀고 와서는 “봐 별거 아니야! 내가 같이 있잖아”라는 말로 제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인공항문을 달아야 한다는 말에 낙심하고 수술을 거부하던 저를 달래며 남편이 건네준 말,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깨끗이 관리해줄게!’ 그렇게 남편은 언제나 든든히 제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항암으로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울부짖는 절 보며 옆에서 아무 힘이 돼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우는 남편이 정말 고맙고 또 백배는 미안합니다. 그런 남편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제겐 대학 1학년인 딸과 올해 대학에 가는 아들이 있습니다. 처음 제가 암 진단받을 때, 제 아이들은 13살, 12살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엄마 때문에 맘껏 사춘기도 누리지 못하고 절 돌보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암과 싸우는 동안 비어있는 엄마의 자리를 제 딸은 훌륭하게 채워주었고, 제 아들은 누나의 말에 잘 따르며 듬직하고 돈독한 남매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제게 말합니다. ‘엄마 조금만 참아. 하나님이 엄마 꼭 고쳐주실 거야. 절대로 지금은 안 데려가실 거야. 왜냐면 난 엄마가 없다는 게 상상이 안 돼. 그래서 매일매일 기도해. 그러니까 엄마도 아파도 조금만 참아.’라고요. 참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제게 좀 더 시간을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암이라는 병과의 싸움을 하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많이 낙심하고 절망한 적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제 삶이 암이라는 큰 벽 앞에 마주쳤을 때 제게 든 생각은 ‘왜? 도대체 왜?’였습니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가족 중 그 누구도 아닌 저라서 참 다행이고 그래서 더 없이 감사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마치 거친 물살을 거슬러 회귀하는 연어처럼 저의 마음은 종종 ‘왜?’라는 질문 앞에 멈추어 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일으키시고 마치 무빙워크에 옮기시듯 저를 세상 속에 내놓으시고 고비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저는 이젠 더는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제 옆에서 동행해 주셨습니다. 우선 이런저런 이유로 몇 해 동안 미뤄져 왔던 남편의 직장보험이 제가 병원에 가기 직전에 시행된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MD Anderson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저를 치료하시려고 보험을 허락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보험을 유지 못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지속적인 항암치료만 하면 되기에 꼭 MD Anderson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님께서 갑작스럽게 혼자 미국을 오셨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이유였지만 어머님 덕분에 아이들 걱정 없이 치료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정말 기적 같은 일인데요. 그 당시 전 당장 수술을 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수술 일정이 석 달 정도 기다려야 해서 걱정하는 상황이었는데, 정밀 검사 이틀 후 새벽 첫 시간에 수술받으려던 환자가 갑자기 수술을 취소해서 제가 이틀 만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저희에 사정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저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전 저의 병은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게 이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어쩜 제 삶을 미리 이렇게 세팅해 놓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왜일까? 아마도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성숙해가는 저를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얼마나 더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한된 삶 속에서 뭔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가치 있는 삶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제 은사를 생각해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진작에 제게 사역을 맡겨주셔서 마냥 주저앉아있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목녀 사역입니다. 많은 분이 저를 걱정하셔서 먼저 몸부터 챙기라고 하시지만, 솔직히 저는 시간이 매우 아쉽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수술하거나 입원으로 인한 때 말고는 목녀 사역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육신의 제약을 핑계로 하나님 일에 소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겨우 밥이나 해 먹는 최소한의 삶이지만 그래도 목장 식구들과 함께 모두 한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삶을 나눌 때가 제겐 참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오래오래 갖고 싶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VIP를 보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장 식구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 더없이 행복하고, 또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렇게 목장 식구들의 영적 상태를 지켜보며 갖는 약간의 긴장도 제겐 일어나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아픈 목녀를 대신해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들도 모두 언젠가 목자가 되고 목녀가 되는 그때를 위해 좋은 훈련이 되는 것 같아 그 또한 감사합니다. 우리 씨엠립 목장 식구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지난번 2번의 간 수술 후 난소에 암이 재발하기까지 거의 1년은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암이 재발했을 때 돌아보니 그 1년의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몸 나으면 선교도 가고 사역도 더 열심히 해야지 했지만 정작 다시 못 올 그 귀한 1년의 시간 동안 전 염려와 근심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다음은 없다는 것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부르실 때 순종하며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 선교 헌신을 했고 다행히 은혜로운 선교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무한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나이 듦도 죽음도 저에게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이틀 전 항암을 끝내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기쁜 날 귀한 예배에 저도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기쁨의 간증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저는 이렇게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게 깊은 평화와 풍성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참 좋습니다. 얼마 전 폐와 척추 13번째 뼈에 다시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일단은 그냥 하던 대로 같은 약으로 항암치료 중입니다. 다행히도 폐나 척추의 암으로 인한 통증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골반에 암이 신경을 누르고 있어 그로 인한 통증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너무 아플 때 모르핀으로 잠시 통증을 가라앉히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안 먹으려고 합니다. 멍하니 무기력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기 싫기 때문입니다. 이 통증 또한 평생 갈 거라 합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순간적으로 빠져 툭하면 넘어집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 오는 것 빼고는 웬만해선 혼자 외출을 잘 안 합니다. 그리고 다리도 아픈데 왜 그리 높은 구두를 신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낮은 구두 신고는 몇 발짝도 걷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병이 맘까지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습니다.

처음 간증 제의를 받은 그 시간 저는 아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생각지 않은 제의에 걱정과 고민이 겹쳐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절 보며 아들이 무슨 일이냐 물었습니다.

“엄마가 간증을 하게 됐는데 어쩌지?”

“왜? 뭐가 걱정이야? 그냥 엄마 얘기하면 되지.”

“글쎄 엄마 얘기 뭐라고 해? 하나님이 고쳐주셨어야 간증이 될 텐데 아직도 엄마는 싸우고 있잖아.”

“No, 엄마 하나님이 100% 고쳐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씩씩하게 잘 있잖아. 그거 얘기하면 아직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 생각할 거야. 도대체 what kind of 신이길래 저 아줌마가 하나님 잘 믿지? 되게 궁금하네? 그러면서 하나님 믿게 될 거야. 그럼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간증을 앞두고 걱정하는 제게 아들은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아들은 지금 청소년 목자입니다. 딸도 어린이 목자로 최영기 목사님께 대표로 선서하고 임명장도 받고 대학입학 전까지 청소년 목자였습니다. 네 식구 중 셋이 목자입니다. 이 또한 제겐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혹시 저 아프다고 모두 목자 때려치우고 방황하면 어쩌나 했는데 모두 전보다 더 열심히 사역하고 섬기고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 참 많은 분이 기도해주시고 염려해주시고 가슴 아파해주십니다. 제게 이런 육신의 병이 없었더라면 결코 체험하지 못할 큰 사랑입니다. 우주에 충만한 사랑에 빚진 자로서 더 열심히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가끔 쉬어갈 때는 있겠지만 좌절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일에 많이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게 주신 은사를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목녀 사역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많은 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좌절할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길 힘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들은 이야기지만, 재빠른 달리기 실력을 갖춘 토끼가 어이없이 거북이에게 지는 수모를 당한 것도 토끼가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은사를 겨우 거북이와의 경주에 사용했고 그나마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토끼가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울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또 다른 경쟁자에게 자신을 내보이고 싶었다면 결코 토끼는 중간에 쉬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희에게도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를 별로 중히 여기지 않고 남에게 버릴 때 우리 또한 어리석은 실수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주저앉아 포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끼가 거북이와의 경주에 지긴 했습니다만 토끼는 토끼이고 여전히 재빠른 달리기 실력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그 은사를 최선을 다해서 귀하게 사용하시길 바라고 계실 겁니다. 그 능력의 은사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참 많은 간증을 들었고 감동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간증하는 이들의 하나님이 왜 내게는 보이지 않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간증 속에서만 계신 것 같아서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4장 5절 말씀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느냐?”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삶 속에 간증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제 옆에서 저와 동행하시고 계신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든든합니다. 그래서 저의 간절한 소망은 그렇게 하나님과 발맞춰가며 언젠가 제가 천국에 초대받는 그 날까지 마음으로 굳건하게 지내며 씩씩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의 말대로 그러한 저의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궁금해하고 관심 가지다 주의 자녀가 된다면 저 더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엠립 모미진

목장 간증: 사랑

By | e참빛

지난 5년 동안 제가 경험한 목장 생활을 간증하고자 나왔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나서 보니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마 초등학생 일기에도 있는 제목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사랑’이라 붙여 봤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들 둘을 두고 있는 가장으로 메디컬 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5년 전 미국에 직장을 얻게 되어 휴스턴에 오게 되었습니다. 휴스턴에 도착 후 바로 휴스턴 서울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지금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범적인 VIP다 나도 저런 VIP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끄심과 벧엘 목장 식구들의 사랑이없었으면 저희는 오늘 이렇게 목장 발표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부활입니다. 사실 저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꾸준히 다닌 건 아닙니다. 처음 서울 교회에 다니며 맘씨 좋은 목장 식구들을 만나 교회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고 교회 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확신은 없었지만, 영접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 상황과 분위기에 밀려 영접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저희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너무나 좋으신 목장 식구들이었기에 직접 대면하고 차마 교회를 못 가겠다고 얘기할 수가 없어서 저희는 짧은 전화 통화 몇 마디로 저희의 의사를 밝힌 후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주 전화하시던 목자님도 저희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셨는지 전화도 없으시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일 년 여 가량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가 이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부부는 도움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도움을 주기도 싫어한다고 저희가 그랬습니다. 그 이사 날도 저희는 ‘그래 우리끼리 조금씩 하면 되지!’ 하며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목자 목녀님께서 오셔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일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금식 주간이라며 같이 식사도 못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저녁 저희 부부는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과 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이사 그다음 주부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목자 목녀님을 통해서 행해졌고 저희에게 전달되어 다시 일어나는 삶을 겪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이사 날이 저희가 진짜로 영접한 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두 번째 사건은 사역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조금 답답했던 부분은 저희의 신앙이 빠르게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느리면 행동으로 시작하자는 생각을 했고 사역이 저희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처음 교회를 떠났던 이유 중 하나가 교회 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거였기에 사역한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었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역 박람회가 시작되었고 저희는 사역 박람회 마지막 날이 되기까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사역 박람회 마지막 주일날 저희는 아이들을 맡기러 유아 유치부 방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저희 목장의 10년 차 베테랑이신 형제님과 자매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역하시는 선생님들이 아무도 안 계시고 목장 형제님이 5~6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계셨습니다. 10년이란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았고 저희는 어쩔 수 없이 형제님을 도와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저희 부부는 주저 없이 달려가 유아 사역에 사인하였습니다. 그곳에 목장 형제님과 자매님이 계셨기에 그리고 평소에 그들이 보여 준 신실한 모습이 있었기에 저희가 사역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는 나의 시간을 쪼개서 나가는 곳이 아닌 저희 삶의 그리고 가정의 일부분이 되었고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강한 연대감을 느꼈고 또 저희 신앙도 서서히 자랐습니다.

 

목장 및 교회 생활을 하면서 차마 풀어내지 못한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런 에피소드들로 저희 부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 시켜 주셨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단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의 영육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저희를 붙잡아 주실 것을 알고 그곳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저희 목장 식구들이 함께 있어 줄 거란 것도 압니다. 지금까지 저희를 섬겨 주신 목자, 목녀님 그리고 벧엘목장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저희 목장에 이제 막 VIP 딱지를 뗀 형제님 가정이 있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목장의 막내 가정으로서 사랑만 받았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받았던 그 사랑을 VIP 형제님 가정에게 전해 주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목장 식구들이 저희에게 주었던 사랑을 기억하며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전하려 직접 오셨던 것처럼 실천하는 사랑을 보여 줄 예정입니다. 많은 분이 그렇듯 저도 성경 구절로 소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 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 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한일서 4장 20~21절).”

벧엘 목장 식구들 사랑합니다.

벧엘 도학원

구원 간증: 예배와 삶공부로 나를 변화시키시는 주님

By | e참빛

에콰도르 목장에서 성경 공부 교사로 신앙생활 잘 하는 형제님에게 목사님, 부흥 강사님들의 설교 CD, 책들을 종종 선물 받고 교회에 나오라는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저에게는 교회에 가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고, 또한 교회에 깊이 속해있지 않고 그냥 가벼운 형식적인 교회 생활,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이기적인 제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니고 싶은 교회를 선택하기 전에 휴스턴에 있는 교회 들을 살짝살짝 쭉 둘러본 후에 선택하자고 형제님에게 의견을 제시했고, 형제님은 그러면 우선 에콰도르 목자, 목녀님께 나의 의사를 전달한 후에 제 뜻대로 따라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얘기할 준비를 하고 목자, 목녀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저의 자신 있던 확고한 의지는 그분들의 솔직함, 너그러운 이해심, 그리고 대단한 두 분의 설득력으로 저도 모르게 그분들의 의견에 따라 일단 몇 개월 나가보는 것으로 즐겁게 만남을 나누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마치 뭐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렇게 될 줄 예상하고 형제님은 그렇게 흔쾌히 승낙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목자, 목녀님과 만남 후 바로 며칠 뒤에 교회에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으로는 일종의 test가 되는 첫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첫 예배의 첫 찬양, 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목사님의 마지막 축도 기도까지 너무나 귀에 쏙쏙 들어오고 마음이 울컥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설교까지 기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너무 좋았다고 목녀님에게 예배후에 느낌을 말하자 그렇게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고 너무 기뻐하시며 그 말에 힘을 얻어 바로 저를 맛있는 죽을 먹게 하시고, 목사님과 인사 하게 하시고, 또 바로 생명의 삶 수강을 신청하셨습니다. 정말로 빠른 속도로 매 주일 제가 뭔가를 하여야만 했습니다.

오직 제 의지로만이 아니게 시작된 생명의 삶 공부에서 저는 정말 깜짝 놀랄만한 몇 가지를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은 제가 회개한 죄에 대해 용서하시고 그 후로는 기억조차 아니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명의 삶 공부 중에 목사님이 질문하셨습니다. 반복되는 죄를 짓고 또 잘못했습니다. 너무 죄송해요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그래 이번 한 번만 용서할께, 다음에 또 죄짓지 않게 조심해 “등등의…. 그런데 목사님이 정답을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또, 라니?”라고 말씀하시며 그 전의 죄를 전혀 기억 안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라서 그 “또, 라니?”라는 말이 집으로 가는 내내 제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2. 하나님은 제가 마음의 문 열기를 바라시며 계속 문밖에서 기다리시며 아주 아주 조금만 문을 열어도 그 틈을 비집고 라도 하나님은 들어 오신다는 목사님의 그 귀여운 행동 묘사에 처음에는 너무나 웃기고 한편으로는 놀랐고 그다음 계속 생각하니 하나님을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했고 계속 인내심 있게 저를 기다려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삶 공부 내내 눈물이 핑 돌며 울컥울컥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가 한번 되면 내가 하나님의 손을 놓아도 하나님은 나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잡고 계시므로 영원히 자녀가 된다는 점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4. 천국 가는 것에 우리가 해야 할 그 어떠한 대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구원받았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아주 쉬운 일에 감동하고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전에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을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알게 되고, 예수 영접을 하게 되고 또한 예수 영접할 때 기도 중에는 너무나 기쁘면서 머리와 얼굴이 뜨거워짐이 느껴지고 기쁜 눈물이 뚝뚝 사정없이 떨어졌습니다.

기쁜 마음을 이어 그렇게 하나님이 제 아버지 인 것이 든든한 기분으로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을 하였습니다. 옮긴지 얼마 되지 않는 직장에는 정말로 저와 맞지 않는, 말로써 항상 저에게 화살을 꽂아 제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그 사람이 변화되는 기적을 오늘 저에게 보여주세요.” 기대를 하고 직장에 도착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변하지 않은 그 사람은 여전히 말로 저에게 화살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에 저는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방패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며 제마음에 그 화살들이 하나도 박히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저에게 기적을 이루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침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침례 받을 때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마치 느린 속도로 video 보는 것처럼 그 순간이 매우 느리게 그리고 선명히 느껴집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의 목사님의 천사 같은 눈웃음, 물에 들어갔을 때 굉장히 오랫동안 따뜻한 물에, 편안히, 마치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정말 포근한 평화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체험에 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자세히 말하지 않았던 나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다 맡기며 고쳐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체험 때에 뒤로 나가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셔서 저는 안전하게 구석 벽에 등을 대고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저 지금 걸음마 하는 아주 아기 같은 신앙 가진 하나님 딸이에요 절대로 심하게 그런 체험 안 하시게 하셔도 저 충분히 괜찮아요.”라고 기도드리며 하나님이 이런 기도라도 들어주시고 계시 다는 것이, 그냥 기쁜 감사의 눈물만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런 새로운 많은 경험을 하게 이끌어주시며 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희생해주시고 기도해주신 형제님, 목자, 목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에 나온 지 아직 3개월도 채 안 되고 아직 성경 말씀도 제대로 읽지도 알지도 또 기도도 자신 있게 남들 앞에서 못하는 어린 신앙의 저이지만 저는 이제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제 손 놓지 않고 저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또 제가 커가는 것을 흐뭇하게 인내심 있게 바라보실 것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하는 기도가 아니고 그냥 편하게 아빠에게 말하듯, 또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기도조차도 항상 귀 기울여 주실꺼라는것을…. 이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는 요즘 너~무 기쁘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진심으로 심하게 사랑합니다.

에콰도르 김한영

감사절 간증: 주님의 손을 잡고 광야를 지나갑니다

By | e참빛

많은 성도님이 아시다시피 2006 년에 저의 가정은 남편이 신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단 2개월이라는 짧은 투병 끝에 소천하는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당시 저의 큰아이는 대학생이었지만 작은 아이는 아직 15살로 그야말로 저는 하루아침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싱글 마더가 된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보다 더 큰 충격으로 아무것도 실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 또 하나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제 인생에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휴스턴 서울교회의 후임 전도사로 오라는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담임목사님이셨던 최영기 목사님의 제안을 받은 후, 곧 제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가 그렸던 인생의 밑그림에선 예상치 못했던, 저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긴 출장을 끝내고 웃으며 현관문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던 남편은 영영 안 돌아왔고, 교회 청소년부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둘째 아이는 ‘Father and Son Camping’에 아빠가 없어서 참가를 못 한다는 사실이 금세 아픈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저는 곧 신학교에 입학했고, Southwestern 신학교 오리엔테이션 날 저는 1994년 남편과 함께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던 날 그랬던 것처럼,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지는 하염없는 눈물로 은혜롭고 아름다웠던 늦깎이 신학생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육학 수업을 위해 읽는 책들에는 당연히 미국 가정의 수십 퍼센트의 자녀들이 싱글 부모 가정에서 크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양쪽 부모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교를 중퇴할 가능성, 혼전임신의 가능성등 온갖 부정적인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렇죠. 제가 알던 가정의 그림은 분명 ‘아빠, 엄마, 자녀 1, 자녀 2’ 였고 행복한 여자는 든든한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저는 어느새 어두움으로 내달을 수밖에 없는 결손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광야’(wilderness) 하면 어떤 상상이 되십니까? 제가 중동의 광야를 가보니 그곳은 푸른 나무가 없는 바위산과 흙먼지 날리는 모래언덕, 먹을만한 열매는 보이지 않는 곳, 목이 타서 헤매거나, 동물들에 물려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광야는 고난이 약속된 곳입니다. 저의 삶도 그래 보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그리 신날 것 없는, 모든 것이 남편의 죽음이라는 검은색 그림자로 퇴색된 인생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 게 ‘내가 이전에도 너와 함께 하였듯이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곧 완전한 삶이 있는 곳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두워진 광야에서 광야의 지도를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만 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이끌어 광야에 숨겨진 비밀스럽고 놀라운 축복을 굽이굽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의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동안 제가 아빠의 몫까지 부모 역할을 잘해주었어야 했는데 신학교와 full time 사역을 병행하면서 저는 다른 부모님들처럼 아이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엄마가 될 능력도 체력도 없었습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를 혼자 두고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와 밤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청소년부 전도사님, 선배들, 친구들과 함께 찬양하고 친교하고 배우며 아이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열정의 삶을 익혀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항상 집에 없는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천사를 보내주셨었는데 바로 옆집에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우리 아들과 같은 종목의 운동을 했고,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든든히 자리를 잡은 이웃 어른을 보내주셔서, 늘 아들은 drive way에서 이웃분으로부터 전문적인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아이가 대학에 갈 무렵엔 가만히 보니 엄마는 해줄 것 같지 않아 보였는지 본인이 일부러 직장 휴가를 내어 저 대신 college tour를 시켜줘도 되겠냐고 물어보기에 “Of course, thank you! 라고 제가 대답을 하여 본인이 운전해서 데려갔다 온 일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대학에 진학하여 즐겁게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목장에서 성장한 두 아들은 하나님의 인도로 알맞은 시기에 교회 안에서 믿음 좋은 자매들을 만나 각각 목자목녀로 섬기는 가정도 이루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유아유치부와 사랑부엔 어린 자녀들을 위해 항상 많은 사역자의 손길이 필요한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역부서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저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많은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그분들의 도움과 기도로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게 도전과 가르침을 주시는 목회자님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스태프들, 목장, 사랑과 이해심 많은 성도님이 계셨기에 자칫 외롭고 소외될 수 있는 저의 삶에는 즐거운 교제들이 풍성했고, 저는 지금 은퇴를 앞두고 또 새로운 사역을 꿈꾸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감사절 아침, 어떤 고난도 우리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자리에는 여러 모습의 고난으로 인해 광야와 같은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으신 줄 압니다. 갑자기 찾아온 질병, 경제적 어려움, 신분, 자녀 문제, 풀리지 않는 관계의 아픔들로 황량한 광야를 걸어가는 것처럼 하루하루 걸어가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걸어가면 고난의 길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황량한 광야에서 바위에서 나는 물을 마시고, 불기둥, 구름 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남모르는 기쁨들을 체험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묵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찬 로마서 8장 35절에서 39장 말씀을 나누고 마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백혜원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