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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목녀간증: 인도하고 경험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우선, 임명 소감을 발표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던 저는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막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을 저의 믿음이라 자랑처럼 여기며 그냥 가만히 앉아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길 소원하던 저는, 제 삶을 스스로 정체되고 비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었고, 하나님 주변을 서성이며 한탄하고 원망만 하였습니다. 그러한 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주도하셔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인도하셨는지 제가 경험한 하나님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게 된 사업을 통해서입니다. 2011년 다른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신 분에게 사업을 인수하였습니다. 사업은 3개월 만에 여러 조건이 사실과는 조금씩 다르게 현실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급기야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텅 빈 예배당을 찾아와 하나님께 원망하고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사업은 점차 납입하지 못하는 물건값에 빚이 쌓여만 갔고, 가족들에게는 매일매일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남편과 아빠의 모습으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현실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로 기나긴 시간을 채워 나가던 어느 날, 늦은 밤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강단 뒤편 교회 주차장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찬양 한 곡을 통해서 위로를 주셨습니다. 결국, 첫 사업은 실패했지만, 또 다른 사업으로 생업을 열어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사람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목자님께서 강권하시던 삶공부를 통해서입니다. 신분과 생업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대면하면서 일상생활 중 믿지 않는 악한 마음으로 툭툭 던지는 말들이 하나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저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나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많을 시기에 목자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희에게 삶공부를 안내해 주셨고, 당시 감정적으로 하는 회개와 반복적인 후회의 삶을 삶공부를 통해 바꿔보고자 했던 첫 결단이, 되풀이되는 죄에서 벗어나 전환점이 되는 변화의 첫걸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삶공부를 통해 삶 속에서 진정한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을 경험하였고, 자녀와 배우자의 관계는 점차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지 않아도 될 오해를 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던 자신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고,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벗어나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선교를 통해서입니다. 어려웠던 시간은 거짓말처럼 지나갔고, 가족과 함께 드리기 소원했던 주일 예배가 일상으로 자연스러워질 무렵에 북미 원주민 선교 장년팀이 생겨났습니다. 목장에서 선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속으로만 원해오다가 목자님과 목녀님의 동참으로 용기를 얻어 세 번의 북미선교를 해마다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받는 은혜는 참으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선교에 동참한 팀원들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해는 기도의 좌절감 그리고 거절당하는 기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 주신 목녀님, 둘째 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집사님, 셋째 해는 경건의 능력이 곧 예수님의 공감 능력이라며 권면해주신 전도사님을 통하여 해마다 선교지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저에게 필요한 말씀들을 꼭 함께 한 팀원들을 통해서 들려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도전이 되었던 주방사역을 통하여 만난 하나님을 나누고 간증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 바뀌지 않은 상황과 환경을 보며 답답해하던 저에게 친교사역부 목녀님께서 주방장 사역을 권하여 주셨습니다. 물론, 단칼에 할 수 없다며 사역을 거절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로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합니다. 미각도 둔감하여 음식을 하는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시간입니다. 사역하지 않더라도 이미 주일 예배를 참석하고자 주일 새벽잠을 깨우던 참이라 사역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역에 부적합한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세 번 거듭 질문하는 목녀님의 권고가 마음속에서 울렸고, 결국 사역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새벽은 토요일 밤잠을 줄여서 새벽 2시 반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새벽에 가게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1부 예배를 참석하고,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주방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로의식이다. 잘못된 믿음 생활이다. 정말 소화하기 힘든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방에서 사역하는 시간 동안에는 많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라면 이외에는 음식을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이렇듯 아무런 방법이나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매주 주방사역 가운데 부엌 봉사로 참여하신 목녀님 한 분 한 분을 통하여 모든 일을 가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협력해서 이루어 내는 주방을 보면서 형편과 처지로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하셨고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 알도록 하셨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에 온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많은 목자/목녀님, 집사님/목사님, 여기 계신 모든 분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해주신 초원 식구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목자가 되길 소망하며 간증을 마칩니다.

여수현 

 

먼저 이 자리에서 소감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 남편과는 달리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저의 믿음 생활은 시작되었고, 신앙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나 배경이 없었던 저에겐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휴스턴으로 오면서 목장과 서울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많은 섬김을 받아 온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세 번의 분가를 하면서 제가 알게 된 하나님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007년 12월 어느 금요일 저녁, 한 시간이 넘는 운전을 해서 도착을 하게 된 목장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과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함께 성탄절을 축하하며 선물도 나누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꾸밈없이 마음 문을 밝게 열고 다가오는 목장 식구들을 보면서 목장이라는 곳에 의문이 생겨났고, 매주 빠짐없이 목장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문화로만 여기던 목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조금씩 당신을 알도록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가는 길이 멀었던 목장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나누는 가족과 나눔의 시간으로 은혜가 되었고, 주일예배 참석과 목사님의 설교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 상황을 이토록 잘 알고 계실까? 의문이 들 정도로 삶 속에서 적용이 되는 은혜가 컸습니다. 그렇게 한 목자님이 섬기는 곳에서 짧은 목장 생활을 하고, 첫 분가를 했습니다. 분가 후 교회와 가까운 곳에서 사업체를 열기 원했던 남편의 기도 제목은 거짓말처럼 응답을 받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이 생각되던 그해부터 저희 가정은 가장 큰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분노를 통하여 마귀가 역사하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던 남편은 좋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본인에게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지 모르겠다며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시작해서 주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렇게 경제적인 어려움은 삶의 모든 부분을 비참하게 몰아갔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시간 속에서 목자님의 권유로 삶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목자님이 섬기는 목장에서 분가하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 목장과 교회 그리고 삶공부를 붙잡았고, 하나님을 오해해서 생겨났던 불필요한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하나씩 지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 역시 삶공부가 더하여 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어려울 때 하나님과 더 깊어지는 친밀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목자 목녀님 그리고 많은 분이 3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기도로 함께 그 시간을 채워 주셨고, 인수 3개월 만에 무너졌던 사업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어려운 시간이 지나갔고, 이곳 저곳에서 변화된 가족의 모습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허락하신 그 시간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우리의 상황과 형편이 바뀌고 변화될지 모르지만,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도록 하셨습니다. 목자님이 섬기는 목장에서 분가하기 전까지 목장에서 단기봉사 선교와 사역에 도전을 받았고, 순종에 따른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지만 맡겨 주신 목녀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붙들기 원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처럼 목장 가운데 열심히 기도하며 섬기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목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격려와 기도 부탁드리면서 간증을 마칩니다.

천옥순

 

 

목자, 목녀 간증: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By | e참빛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 자리에서 대행 목자 임명 간증을 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1986년 한강에 제 이름으로 다리 하나를 설계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야무진 꿈도 잠깐,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아 장삿길로 저의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간판도 달지 않고 1만 불의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장사는 4년후에는 그 분야에서는 잘 나간다는 소릴 들을 정도를 재미를 보았습니다.
미국이 좁다 할 정도로 잦은 출장과, 남자는 집보단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로 가진 저에게, 찾아온 것은 가정의 불씨였습니다
엄마 없는 어린 두 딸과의 생활은 자신감만큼 잘되어가지 않았습니다.
다행한 것은 할머니와 두 딸이 함께 휴스턴 서울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아이들은 믿음 안에서 잘 자라 주었고, 자녀교육에 힘쓰는 휴스턴 서울교회가 엄마 없이 크는 우리 두 딸을 목장 안에서 잘 키워 주셔서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저 역시 우연히 큰 누나 목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1999년부터 교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삶이 너무 힘든 저에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 하나님은 너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는 말씀을 가슴으로 듣게 해 주셔서, 바로 등록, 영접, 침례까지 받았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미션스쿨을 다녔지만,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저에게, 그때 당시 매주 주일 말씀과 찬양으로 많은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믿음에 뿌리가 약한 저는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어서, 목장을 다섯 번이나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9년 현재 목장에 조인하면서 다시 삶 공부를 듣고, 목사님과 목장 식구들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와 재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 빌어 다시 한번 이수관 목사님과 이은주 사모님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음식과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마련해 주신 목장 식구분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독할 정도의 목자 목녀님의 강한 카리스마에 자신을 조금씩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고, 주방장의 사역에 순종하면서. 힘들었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사역을 하면서, 지체로서의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이 될 것이라는 예비 목자의 임명이, 저에게는 방광암이라는 가슴이 철렁하는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쉴 틈을 주지 않는 저희 목장의 특성상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 생업과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고, 6개월 후에는 암에서 free 하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항상 함께하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분에게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하비 허리케인으로 목자 임명을 앞두고 먼저 목원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물에 잠긴 도로를 위험하지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목원들 가게를 다녀야 했고, 함께 우리 집에 모여야 안전할 것 같아서 사흘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면서 하나님께 엎드린 저 자신을 보면서 놀라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양들을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준비하면서 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어른이 그러면 그런 줄 알고 시키면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목자사역에 헌신과 순종하겠습니다
저를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이수관 목사님, 목장 식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을 사모하게 해 주신 최영기 목사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자신이지만 집사님과 목녀님의 삶을 보고 배운 대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목적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고구려 / 오진구

 

어린 시절 저에게는 두 가지의 큰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신유의 은사가 있으신 할머니가 계셔서 두 분이 같이 전국을 다니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 저는 늘 엄마의 사랑이 그립기만 했었습니다. 어느 날 잠결에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엄마가 나를 붙잡고 기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옆에 늘 안 계셔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너무나 포근하게 안아주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엄마가 곁에 없어도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친구 집에서 늘 숙제를 하곤 했는데 친구 아버지는 암에 걸려 많이 아프셨고, 어느 날 숙제하는 제 옆에서, 친구 아버지는 너무나 무서워하시면서 소리소리 지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친구 아버지의 얼굴은 어린 제가 보기에도 두려움과 무서움이 가득한 얼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평소 할머니를 돕겠다며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시던 암으로 만삭이 되신 아줌마가 같은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또 한 번의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데 이 아주머니는 친구 아버지와는 너무 다른 정말 천사의 모습처럼 평온해 보였습니다.
하루 사이에 천국에 간 얼굴과 지옥의 간 얼굴들을 보게 된 저는 그때부터 임종하신 분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84년에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와서 30년을 넘게 사는 동안, 한국 기업과 파트너 쉽으로 체인 사업을 하던 것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휴스톤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12년에 휴스턴 서울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듣는 말씀이 제 가슴을 두드렸고, 다시금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결단이 설 때면 저는 헌신대에 나가서 기도 받고 싶었지만, 목장에 나가질 않는 상태여서 헌신대에서 목사님에게 기도 한번 받아 보질 못했습니다.
목장이 매주 모인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기에 차라리 다른 교회를 옮기려고 해 보았지만, 교회와 목장을 절대 옮길 수 없다는 지금 남편의 고집과 제가 목장에 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는 배려 아닌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다는 남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믿음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만났는데, 그 꿈은 금방 깨어지고 어떤 종교를 믿어도 다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이상한 이론을 가진 것에 너무 놀라서 목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목자님,
그럼 그 위는 누구냐고 하니 초원 지기가 있다고 해서 누구냐고 하니, 같은 목자님,
그럼 그 위는 누구냐고 하니 목사님,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하니, 자신있게 이수관 목사님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 설득을 하여도 남편의 잘못된 믿음은 변화지 않기에, 제가 어디 가서 서울교회 다닌다는 소리와 이수관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사님 저 잘 했지요.!!! 휴스턴 서울 교회는 VIP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신자들을 위한 삶공부가 있었고, 이런 삶공부를 하려면 목장에 나가야 해서 결국은 제가 3년의 도둑 예배를 마치고 목장에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간 목장은 목자님, 목녀님 그리고 목장식구들의 사랑과 섬김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삶 공부를 남편과 함께 들으며, 남편의 신앙관이 바로 세워지게 되었고, 목장에서는 평생을 두고도 갚을 수 없는 저희의 결혼식을 위한 귀한 섬김을 받게 되었고, 눈물의 축복송을 들으며 이수관 목사님의 주례로 재작년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저는 목녀로서 너무나 부족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 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저에게 가르쳐 주신 순종, 그것은 교회와 목사님에게 무조건 순종하면,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순종하려 합니다. 

목자님 목녀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가득 담은 헌신의 모습을 뒤따라 가겠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떤 시기에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해 본 적 없었고 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늘 제 안에 계신 분이시고, 제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늘 이끌어 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사랑과 헌신을 몸소 보여주신 집사님, 목녀님, 부족한 저희를 믿고 함께 분가하는 목장 식구,
그리고 늘 기도로 후원해 주시는 엄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고구려 / 오영은

목자, 목녀 간증: 섬세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함.

By | e참빛

임명 소감을 준비하면서, 캐나다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한마디가 생각났습니다. 휴스턴에 가면, 서울교회라고 있는데, 그 교회가 좀 특별나다고 말이죠. 서울 교회를 가보라고 권유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잘 몰랐지만, 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목장 식구들에 둘러싸여, 다른 곳엔 눈을 돌릴 틈이 없었으니,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를 목장과 교회를 통한 저의 삶과 주님의 인도 하심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 교회라곤 아주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갔다가 연필 한 자루 받아 온 기억 이외에는, 교회를 다녀본 적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학교생활과 직장 생활, 그리고 결혼을 하여 세 아이를 가진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1999년 밀레니엄을 몇 달 앞두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 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캐나다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2011년, 휴스턴으로 근무지를 따라오게 되었고, 오늘 여러분 앞에서, 목자 서약과 소감을 나누게 되었으니, 제게는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섬세하신 하나님은 오랜 시간 동안 계획하신 대로 저를 인도하셨고, 제가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 주신 것은 물론, 구원받고 제자 되게 하셨는데, 그 과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지는 듯 합니다.

첫째,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저는 휴스턴에 본사가 있는 미국계 한국 회사에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몇 개월의 연수차, 휴스턴을 방문합니다. 처음 미국에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총각에 혈기 왕성했던 저는 그야말로 아쉬운 게 별로 없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생활하던 중, 교회에 다니신다는 두 분이 저를 찾아 옵니다. 믿음에 관심이나 필요도 느끼지 못하던 저는, 찾아와 주신 성의에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겠답니다. 그런데, 한 분은 도대체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하시고, 다른 한 분은 그걸 제게 해석을 해주십니다. 그런 어색한 시간이 흘러갔는데, 그중 기억나는 것은, 제가 언젠가는 휴스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될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그 말에 별 관심이 없었고,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는, 연수 후 한국으로 돌아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작은 일로 직장을 옮기게 됩니다. 옮기고 석 달 후, 늦게까지 일을 마친 후 저녁 식사 및 이어지는 술자리 이후 같이 동석했던 여직원을 늦은 시간에 집에 바래다주면서, 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여직원을 집 근처 전봇대 뒤에 세워놓고, 앞뒤 생각 없이 그냥 결혼하자고, 구혼합니다.

저야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 여직원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데이트 신청도 아니고, 그냥 결혼하자고 하니 말입니다. 그 후 그 여직원은 지금까지 26년 동안 저를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하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우연일까요? 그 당시, 늦게까지 근무를 하다가 저녁 자리를 만들었던 직장 선배는 저보다 1년 먼저 캐나다로 와서, 저를 교회로 인도 하였고, 이를 통하여 2000년에 예수 영접과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저를 목장과 서울 교회로 인도하여 주신 목자님과의 만남입니다. 캐나다에서 Oil & Gas, 일하였던 저는, 당시 캘거리에서 일하고 계신 목자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이 먼저 휴스턴으로 오시면서 목자가 되셨고, 제가 휴스턴으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목장과 서울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접과 세례는 받았었지만, 무늬만 크리스천이었던 저를 변화시켜 주셨으며, 서울 교회를 통하여 새로이 예수님을 다시 영접하게 하시고 침례 받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각의 상황과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섬세하고 세밀하게 저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셨으며, 지금 이 자리도 인도하심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실지 잘 모르지만, 과거에는 제가 인지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어느 정도 그 과정 하나하나를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순종하면서 나아가고자 합니다.

현재 저의 믿음의 깊이는, 아직 “믿음은 결단이다”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부정할 만한 근거나 논리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방향은 바로 잡힌 듯 합니다. 이런 가운데,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더 늦기 전에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를 구원코자 하였으나, 휴스턴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날이 되어 급한 마음에 두 분께 예수 영접을 권했습니다. 언젠가는 두 분이 하늘나라에 가시고, 그리고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다시 만날 방법이 있다고 말문을 여니, 그렇기만 하면 오죽 좋겠냐고, 반신반의하십니다. 그래서 4영리를 설명해 드렸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강권을 하였더니, 영접하시겠다 하시며, 제 기도를 따라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제 주변의 가족들을 조금씩 변하게 하시는데, 지난 6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온 가족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뜻밖에도 식사 기도를 해달라고 형님이 요청합니다.

아무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그 자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희 집안에 주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온 가족의 구원을 간구하게 하셨습니다.

기도 후 아멘으로 화답하며 변화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저를 조금씩 변화시켜 주시더니, 이제 우리 가족을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제게 주어진 믿음과 은사의 분량대로 주님의 능력 안에서 순종을 다짐해 봅니다.

끝으로, 많은 사랑과 섬김으로 인도하여 주신 목자/목녀님, 초원 집사님과 목녀님, 그리고, 부족한 저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는 믿음의 선배들이신 이사말 목장 형제님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이사말 / 박찬규

 

우여곡절 끝에 목장이 분가되면서 남편은 어렵사리 목자가 되었고 저는 저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분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 년에 반은 세 아이가 있는 캐나다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계속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우리가 목자, 목녀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섬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면서 저를 계속 설득을 하였고 저는 언제든지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 되면 캐나다행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남편과 하고 결국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가끔, 지금의 남편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분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기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십 년을 훨씬 넘게 저와 제 가족들이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때론, 절실하다기보다 그저 형식적으로 입술로만 기도할 때도 솔직히 가끔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마저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오늘날의 남편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는 부모님들과 형제들 그리고 지금은 엘에이에서 사역하는 동생까지 둔 그리고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은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반면, 남편은 비록 무교이지만 시부모님 모두 절에 다니시고 또 절에서 제사도 지내는 그런 환경에서 나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남편의 믿음은 이제 저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저는 가끔은 간첩인가 아니, 외계인 인가할 정도로 우리가 흔히 아는 아주 유명한 연예인 이름조차도 모르면서 오직 정치와 하늘에 떠 있는 별에만 관심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휴대전화와 아이패드에는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각종 앱이 깔렸는데 늘 그것들을 들고 다니면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제게 이것저것 설명하기도 하고 또 물어보기도 합니다. 지금도 가끔은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도 그 앱을 켜고, 아! 지금 내 머리 위에는 이 별이 떠 있고 저기에는 저 별이 떠 있고 그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독교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런 그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목장 예배를 인도하고 제가 이곳 휴스턴에서 산 지 겨우 3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너무나도 변해버린 남편의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도 때때로 어안이 벙벙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저는 남편에게 있었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인도하심을 나누고자 합니다. 88 올림픽이 한창이던 그 해 가을, 남편이 업무차 휴스턴에 근무하면서, 우연히 만난 두 분 자매님으로부터 남편이 언젠가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그런 방언 기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남편은 그 내용을 잊고 생활을 하였고 믿는 저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저희는 태국으로 지사 발령을 받아 방콕에서 생활하였는데 남편은 그곳에서 지내는 내내 늘 교회 앞까지 저를 데려다주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같이 예배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캐나다 토론토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부터 알던 지인의 소개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날 바로 등록을 하고 매주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세례도 받고 그렇게 지냈지요. 그러나, 그저 저희는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무늬만 크리스천인 그런 부부로 참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은 일 관계로 이곳 휴스턴에 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바로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침례도 받고 삶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바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선 확신을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 때문에 처음 3년은 떨어져 살았는데 그때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좀 보여주시라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믿으려 하는데 잘 안 믿어 진다고. 그러나, 믿으려 노력은 한다고. 그러던 어느 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는데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빛들이 방안에 가득했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88년 그해 가을, 어느 한국 분들의 기도가 이십 몇 년 만에 같은 이곳 휴스턴에서 응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또 얼마 전 그렇게 찾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던 남편이 다녔다던 그 회사와 아파트를 교회 근처에서 찾아 방문도 했습니다.

지금 남편의 핸드폰에는 여러 복음 성가곡들이 다운로드 돼 있어 운전하면서 그 곡들을 듣고 또 때때로 그 성가곡들을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고 늘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 놀랍기도 하면서 저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우리가 천국에서 다 같이 만나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어야 한다는 남편의 그 한마디에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저희 시부모님들께서도 예수님의 그늘 아래 사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그렇게 변한 남편의 모습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목녀자리를 피했던 제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식으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당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방콕, 서울, 토론토 그리고 이곳 휴스턴까지 단 한 번도 제 손 놓지 않고 함께 와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또 깊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 제 옆에 있는 남편을 최선을 다해 도우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의 눈높이에 맞출 수가 없습니다. 키가 큰 사람이 그 몸을 낮추고 키가 작은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또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그 눈높이를 맞추며, 많이 가진 자는 또 적게 가진 자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 높고 높으신 영광의 자리에서 낮고 낮은 우리에게 그분의 눈높이를 맞추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지요. 그런 마음과 눈높이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희를 섬겨 주신 목자/목녀님, 그리고 이사말 목장의 언니들과 형제님께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사말 / 채화정

선교 간증: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사실 이번 선교를 다녀와서 목자님으로부터 간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첫째는, 저보다 많은 은혜를 받은 싱글 형제, 자매들이 있는데 제가 그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 미안했고, 둘째는 2년 6개월 전 박사 후 연수를 위해 미국에 와서 신앙이 있는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신앙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목자의 남편이 되어, 한국을 떠나 올 때 전혀 예상치 않은 삶을 사는, 그런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짧은 간증문으로 담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는 항상 단기선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제 안에 어떤 갈급함도 있었겠지만, 재작년, 작년 북미 원주민선교를 다녀온 형제, 자매들이 이상하게도 선교만 다녀오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이 제 눈에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태도, 그들의 평온해진 표정에서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기에 그곳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고 싶어 선교를 다녀오신 분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통일되게 “좋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뭐가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말도 안 해 주고 “직접 가보셔야 한다”라는 답답한 답변만 돌아오더군요. 아내한테도 몇 번 물어도 봤지만 이미 선교 다녀온 지 8년이 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거 같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내와 함께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 선교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선교를 다녀온 후 비로소 저는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좋았다”, “직접 가보셔야 한다”라는 막연한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이유도 알게 됐습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리고 그동안 그토록 간절히 경험해보고 싶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그 은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 역사하심을 증명하시지는 않았지만 같이 간 50명의 형제, 자매, 목자, 목녀님들 그리고 나바호 원주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존재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과 환경을 통해 역사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희의 하루는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빡빡한 스케줄로 시작이 됐습니다. 온전히 하루를 예배로 시작해서 온종일 선교활동을 한 후 다시 예배로 끝내다 보니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예배시간에 이유 없이 주르륵 흐르는 눈물은 그동안의 죄를 씻어줌과 동시에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자리 잡으시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아침 예배 후 1시간 가량  5명씩 10개 조가 함께하는 QT 시간은 제게 큰 은혜가 됐습니다. 특히나 이번 선교에서 저에게 QT를 인도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 많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형제, 자매들의 진솔한 쉐어링를 통해 그들을 더욱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진솔한 쉐어링만으로도 충분히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에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아침을 먹고 선교센터에서 약 1시간이 소요되는 선교지로 이동한 후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됐습니다. VBS를 위해 아이들을 픽업하러 여러 가정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선교 첫날 만났던 10살, 7살, 2살 3남매가 특별히 생각이 많이 납니다. 매일 집 앞 흙바닥에서 온종일 맨발로 노는 이 3남매는 저희를 처음 본 날 무척이나 불안한 눈빛으로 경계하며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교회에서 VBS가 있는 데 가지 않겠냐고 물으니 모두 집 안으로 몸을 숨기기 바빴습니다. 잠시 후 그들의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와서 재차 가겠느냐고 다시 물었지만,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교회에 내려주고  3~4차례 그 집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결국, 10살짜리 큰 오빠가 간다고 하니 2살짜리 기저귀도 때지 않은 여자아이가 따라나서고, 그 모습을 본 7살짜리 작은 오빠도 마지못해 따라나섰습니다. 2살짜리 여자아이는 얼굴에 땟물이 줄줄 흐르고 엄마가 머리를 얼마 동안이나 감기지 않은 것인지 머리가 엉겨 붙어있었지만 처음과는 달리 저를 보면 방긋방긋 웃으며 달려와 안기는 모습에 그만 저도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안았을 때 순간 시큼한 냄새가 나서 효진 목녀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편안하게 눕혀서 기저귀도 잘 갈아주셨습니다. 다음 날 부터는  저희를 경계하던 그 녀석들은 아침에 미리 나와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한 명의 어린 영혼이라도 놓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은 저를 자기들 동족으로 생각하는지 무척이나 저를 잘 따랐습니다. 실제로 나바호족들에게 나바호족이 아니냐고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일과를 모두 마치고, 다시 선교센터로 돌아오면 거의 11시가 다 되어갑니다. 하지만 저희는 도착 후 바로 예배당으로 가서 다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피곤할 텐데 어찌나 모두 찬양을 쩌렁쩌렁하게 부르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예배당 안에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번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도 새삼 다시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어찌 보면 저는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에 와서 신앙이 있는 아내와 결혼해서 신앙의 첫발을 내디디고,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당당히 제 이름으로 논문도 발표하고 공부도 잘 마쳤습니다. 지금은 제가 해왔던 전공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좋은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며,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여정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번 선교를 통해 확실히 느낀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저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목자인 아내,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가족, 장모님, 우리 일본 고베 목장 식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평소 저희 목장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초원 지기 목자님, 목녀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간증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선교지에서 느낀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운전을 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제가 오래전 핸드폰에 무심코 저장해 놓고 한 번도 듣지 않은 찬양곡을 때마침 들려주셨습니다. 이 찬양곡을 듣는 순간 선교를 다녀와서 느낀 감정이 가사에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찬양곡의 가사를 읽어 드리고 저의 간증을 마칩니다.

난 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받고 갑니다.

눈물 닦아주러 왔을 뿐인데

내 눈물만 흘리고 갑니다.

 

씻어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씻겨졌습니다.

고쳐주려고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치료되어 갑니다.

 

전하러 왔는데

이미 이곳에 계신 예수를 보고 갑니다.

꿈을 가지고 와

꿈을 보고 돌아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다함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러 왔는데 더 큰 사랑을 받고 돌아갑니다.

 

죽은 영혼 살리러 와 내가 살아서 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더 주를 사랑하지 못함이 미안합니다.

일본고베 / 김광찬

 

 

선교 간증: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해 주심.

By | e참빛

50명이 넘는 이 큰 선교팀에서 감히 제가 간증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제가 이 간증을 통해 기존의 저를 돌아보고 마무리 짓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가 하는 간증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에 북미팀에 조인하게 된 것은 저희 목녀님의 권유, 플러스 제가 조인하지 않으면 목녀님 역시 가시지 않겠다는 부담을 주셔서 1주일을 고민하다가 결국 조인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멀리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가야 더 큰 감동이 있을 것 같았는데 바로 옆의 뉴멕시코라니 왠지 그렇게 기대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준비를 하기엔 마음이 항상 바빴고 삶 공부에, 일에, 앞으로의 진로 고민에 힘들어하는 날이 있었지만, 막상 선교가 시작되니 내가 맡은 VBS 팀 일과 오겹줄 조장으로서의 일을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그 일을 일로 행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맡은 VBS팀은 비교적 나이가 많았는데, 대략 중2 정도 나이 정도 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이었는데 처음에는 이런 아이들을 과연 잘 리드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이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난 이런 거 시시해”라는 얘기를 말은 안 해도 온몸으로 표현하던 아이들이 결국 같이하자는 찬양과 율동을 못 이기는 척 소심하게 따라 하는 걸 보며 어느새 그들이 귀엽게 보이고 고마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가 끝날 때쯤에는 아이들을 향해 기도를 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문득 그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조금쯤, 갑자기 울컥 느껴지면서 어느새 내가 그 아이들에게 눈물로 기도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참 부족하기만 한 저인데도, 이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역할 때 필요한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나에게 없는 것들이라도 은사라는 이름으로 부어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선교를 통해 느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우리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이었습니다. 서울 교회를 이미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 들어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목장에서 목장 식구와 관계의 어려움으로 저에게는 교회와 목장에 대한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던 같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라는 것은 잘 알면서도, 부끄럽지만 막상 저 자신의 신앙은 크게 자라지 못했던 것 같고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이 결국 어떻게 보면 오랜 기간 목장 생활을 하면서도, 목장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을 정작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선교기간 중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하나는 사역 셋째 날 티니안 교회팀이 오 헨시노 교회로 돌아와야 하는데 폭우가 쏟아지면서 빗길에 비포장도로를 차로 달리다 결국 차들이 진흙탕에 빠져 형제고 자매고 할 것 없이 처박힌 차를 꺼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 헨시노 교회 팀이어서 티니안 팀을 기다리다가 그런 연락을 받고 나서는 모두 다 같이 티니안 팀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손을 잡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혹시 늦으면 우리의 장년팀 예배 사역은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목사님도 같이 못 오셨는데 저녁밥 준비는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하며 이것이 바로 영적 공격인 걸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은 모두 무사히 돌아왔고, 옷과 신발이 진흙에 젖어 엉망이 되어 과연 다시 입거나 신을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온몸에 머드팩을 하고 나타난 티니안 팀은 자랑스럽게 머드와 싸운 이야기를 하며, 씻고 좀 쉬라는 그렇게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열심히 서로서로 사역을 도와 무사히 저녁 식사와 예배 준비를 해서, 예상시간보다는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곧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역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작은 고난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을 보며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가로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웃으며 그것을 넘기는 공동체, 또한 이런 일을 지나며 서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가는 경험을 함께해나갈 수 있는 공동체, 이런 공동체가 세상에는 정말 없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선교팀 뿐 아니라, 우리 목장이 생각났고 서로를 향한 기도와 영적 싸움을 함께 해나가는 우리 목장이 또한 정말 소중한 곳이고 이 세상에는 없는 공동체라는 깨달음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주시며, 더욱 제가 목장에 깊숙이 들어가 서로를 사랑하고 더 헌신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은 깨닫게 하셨습니다.

선교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저에게는 소각식이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경건의 삶을 졸업했는데 경건의 삶을 통틀어 단 한 번 빠지게 되었는데 하필 그 하이라이트라는 소각식을 빠지게 되어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교팀이 소각식을 준비해 주셔서 어떻게 보면 나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의 작은 신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소각식을 통해 하나님과 나의 사이를 가로막았던 문제와 이제는 완전한 작별을 했고, 전에 느끼지 못한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소각식이 끝나고 서로에 기도를 해주며 서로를 안아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교팀에서 만난 51명의 서로 다른 우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도 주님 안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 일정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기도와 손길로 이 선교를 준비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각 팀장님은 빡센 선교 일정에도 아무도 시키지 않은 저녁 금식기도로 섬겼고, 또한 목자/ 목녀/ 목부님들의 큐티 준비, 예배와 찬양, 은혜로운 간증, 목사님의 말씀과 식사 준비 등 우리 팀을 향한 그런 귀한 보이지 않는 손길과 기도들이 있음을 느끼며, 제가 누리게 된 은혜는 사실 이미 다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얹는 것임에도, 우리 모두에게 함께 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기에 흘러넘쳐 모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여 흐르게 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귀한 선교팀을 만들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해준 여러 팀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혹시라도 저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는 청년들이 있다면 해외로 멀리 가지 않더라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북미 선교팀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이 간증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페낭 / 김미래

선교 간증: 선교를 통하여 부어주신 은혜와 사랑

By | e참빛

이번 선교를 통하여 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이 시간 함께 나눌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2014년 처음 북미 원주민 선교를 다녀온 이후, 저에게는 이번 선교가 세 번째 선교였습니다. 2015년 두 번째 선교 때, 원주민 아이들과 현지 분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주셔서 내년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작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 그리고 아내의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를 기억해주고 안부를 물으며 기도해준 아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올해 선교잔치 때 헌신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간증의 시간을 통하여, 1)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신 나바호 원주민들을 향한 사랑과 회복의 계획, 그리고 2) 그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때 공동체를 통하여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저는 이번 선교 VBS 기간 중 아이들과 직접 그룹이 되어 옆에서 교제하며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어느 팀원분과 함께 여러 현지 가정을 방문하며 아이들을 픽업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VBS로 보내주시고, 아이들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차량에 올라타지만, 많은 경우 부모님들의 반대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반감으로 텅 빈 차를 운전하여 다른 가정을 향해 돌아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운이 빠지고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오늘 한 번만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면 제가 다시 집으로 태워주겠다고 부모님들께 수없이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건 오늘은 무슨 일이 있고, 오늘은 또다시 어디를 가야 하고, 오늘은 기분이 아니고 등의 단호한 거절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번 선교 기간 중 두 교회에서의 VBS를 통하여 170명 이상의 아이들을 보내주셔 너무나도 감사하고 벅찼지만, 저에게는 VBS 기간인 사흘 동안 매일 방문하였지만, 마지막 날까지 단호히 거절하였던 어느 한 가정의 부모님과 아이들이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나님, 그 많은 아이의 마음은 열어주셨는데 이렇게 힘든 가정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이 아이들과 부모님의 마음은 열어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VBS 마지막 날, 저는 Runako라는 4살짜리 꼬마 남자아이 옆에서 Craft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의 기도와 준비는 지금 이 순간 Runako를 위하여 옆에 앉아서 Craft를 도와주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웃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요. 이렇게 세상에서 버려진 것만 같은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서 태어나 하나님을 모르고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자라나는 이 Runako라는 아이 한 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희를 보내셨다는 마음이 밀려오면서 저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시는구나.

그만큼 이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이 크시다는 마음이 들면서 주체할 수 벅찬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수요일 저녁의 장년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현지 원주민분들과 저희 팀원분들이 오겹줄 기도 및 소그룹을 이루어 나눔의 시간이 한창일 때, 저는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을 식당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6살 남짓 보이는 꼬마 아이 하나가 제 옆으로 왔습니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Trevor 라고 합니다. 그러며 저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왜 매년 이곳에 오나요? 뭔가 재미를 위해서 오나요? 아니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 오나요?” 6살 나이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당돌하게 저에게 물어 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뭐라고 해야 하나요. 알려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짧게 기도한 후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도 아니고,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도 아니라고. 우리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이곳에 온 것이라고. 우리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하나님이 Trevor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사랑을 함께 나누고 너희를 위해서 기도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요. Trevor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생각합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 꼬마 아이에게 저의 간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한, 두 명씩 몰려들어 함께 간증을 들었습니다. 간증이 끝난 후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이 아이들을 통해서 이 땅을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 흐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예배당 의자에 앉아있는데 Trevor가 옆에 와서 앉더니 저를 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년에도 꼭 와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려왔습니다. 그리고 Trevor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일 년을 너희들을 위해서, 그리고 너희들의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그러니 너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겠냐고 물으니 같이 기도하겠다고 합니다. 선교사님과 팀장님께서는 이 아이들을 향한 많은 단기 선교팀들의 사랑이 차곡차곡 쌓인다고 하셨는데, Trevor의 마음에는 그러한 사랑이 많이 쌓였었나 봅니다. 저의 짧은 생각과 시선으로 우리의 초대에 거절하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보고 실망하며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보지 못했음을 회개하며,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통하여 역사하실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계획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이번에는 51명이라는 많은 분이 선교에 함께하였습니다. 정말 많은 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어려운 마음과 상황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신하여 나아왔습니다. 그런 저희의 작은 희생과 헌신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기뻐하셨나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저희 팀원분들을 보며 더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시작과 끝을 항상 손을 잡고 기도하는 스킷팀을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나도 피곤한 몸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해맑게 웃으며 아이들 앞에서 즐겁게 율동을 인도하는 율동 팀을 바라보며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좋은 기억을 새겨 주기 위하여 성경공부와 크레프트를 준비하는 팀원들을 옆에서 바라보며 은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형제님들이 조금씩 변화되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미소로 아이들과 뛰어노는 모습의 감동이었습니다. 찬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에도 눈물과 마음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찬양팀 분들의 모습과 그 찬양 가운데 크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걱정이 앞섰지만 현지분들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며 쉐어링 시간을 인도하고, 함께 오겹줄 기도 짝으로 눈물로 중보하셨던 소그룹 리더분들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매일의 예배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의 은혜를 놓고 무릎 꿇고 중보하는 예배팀 분들을 보고 온전한 예배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문전박대를 무릅쓰고 사람의 사랑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기도해 주신 가정방문 팀원들의 열정에 도전이 되었습니다. 다른 팀원분들이 모두 은혜받고 눈물을 흘릴 때, 잠잠히 뒤에서 하나님의 시선을 품고 사진과 영상으로 사역하시고, 현지 분들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사진 사역을 통하여 보여주신 미디어팀 분들의 섬김과 희생을 보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시던 오랜 VIP 분들께서 이번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음에 감동이었습니다.

“선교에 있어서 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나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 선교 전 저희 50명의 팀원들께 하신 팀장님의 당부 말씀입니다. 이번 선교를 돌아보니 51명의 우리 북미 선교팀 모두가 그 말씀을 잘 지켰나 봅니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섬겨주신 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최고가 아니라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고요. 또한,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변화된 모습으로 증명하고 행동하고, 성령으로 심었으니 낙심하지 말며, 기다림을 통하여 꽃을 피울 때까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바호 땅과 영혼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만큼 내년 선교를 위하여 일 년을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고자 합니다. 저의 작은 헌신과 짧은 기도도 크게 들어 쓰시며,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초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이제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저희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바호 땅을 위하여 그리고 저희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얀쥐벡 / 주명재

 

목자 간증: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시려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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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1년 전쯤 목자님과 목녀님이 섬기시는 르완다 목장에서 분가하였습니다. 목자 임명 소감을 통해서 주님께서 저에게 부어주신 많은 은혜와 사랑을 나눌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이 없었던 제가 목장으로 인도되어 등록, 영접, 침례를 받고 믿음 생활을 시작하여 목자로 임명 소감을 나누기 위해 여기에 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목자 임명 소감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목자로 헌신하기까지의 시간을 뒤돌아보았습니다. 13년의 신앙생활 동안 걸어온 걸음걸음마다 주님께서 항상 동행하여 주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VIP로 목장만 나가다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첫 예배 가운데 딱딱하고 메말라 있었던 저의 마음을 만져 주셨고 예배 후 목자님의 손길에 얼떨결에 헌신대로 끌려나가서 등록/영접/침례란에 표시하라고 하셔서 표시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저를 처음으로 목장에 인도해주신 형제님과 헌신대로 저를 끌고 나가셨던 목자님의 손길이 주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주님께서는 유학 생활과 직장생활과 믿음 생활과 가정생활 가운데 아주 세밀하게 저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특별히 직장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직장이 되어 휴스턴으로 왔습니다. 첫 직장은 열약한 직장환경, 낮은 연봉, 대하기 힘든 사장님, 여기가 미국인지 의심할 정도로 쉽지 않은 직장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직장에서 저를 목장으로 인도해준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직장에서 삶의 기반과 신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힘든 직장 생활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감사해야 할 직장이었습니다. 그 직장이 아니었으면 제가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 생활 가운데 목장, 사역, 단기선교, 세겹줄 기도 등을 통해 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그분들을 통해 섬김을 배우고 믿지 않는 한 영혼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예수님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세겹줄 기도를 통해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게 하셨고 기도 응답에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보게 해주셨습니다.

믿음의 배우자를 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소중한 두 아들을 주셔서 아이들을 통해서 부모로서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케 해주셨습니다. 제가 장기 출장으로 호주에 나가 있을 때도 주님의 보호 아래에 잘 지내게 하여주시고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를 통해서 기도와 사랑의 힘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잠깐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5년 정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불교 신자셨고 크리스천에 대한 반감이 있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6년 전에 백혈병 진단을 받으시고 입원하셨는데 생명이 위독하시다고 하셔서 제가 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제가 결혼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때까지 저희 부부는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고 주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께 전화로 전하였었습니다.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께서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누워계셨습니다. 그 곁에 큰누나가 있었는데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머니가 1년 전부터 우리 가족이 교회를 다니고 큰누나는 성당을 다니니까 이제 절에는 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가지 않기로 하셨다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천천히 어머니의 마음을 만지시고 움직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어머님께서 영접하였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는 항암치료 후 1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저는 아직도 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기 두 달 전쯤 잠깐 하루 한국에 들렀다가 갈 기회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아프신 몸을 이끌고 아들을 위해 손수 시장을 보시고 저녁을 준비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점심때쯤 공항을 가기 위해 나섰을 때 어머니께서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한 달 후 어머니께서는 급성 간염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가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기도의 힘을 알게 해주시고 힘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신 어머니의 사랑, 이것이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닐까요.

이렇게 신앙생활 하면서 저에게 있었던 하나하나의 일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시려는 훈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 후서 1장 5절~7절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상호 우애를 더하고, 상호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요.”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여덟 가지, 믿음 (faith), 덕 (Goodness), 지식 (Knowledge), 절제 (self-control), 인내 (Perseverance), 경건 (Godliness), 상호우애 (Kindness), 사랑 (Love)입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목자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사역과 삶공부와 새겹줄 기도와 단기선교를 통해 만났던 많은 형제님과 자매님들이 있지만 그중에 주님께서 목장 생활 가운데 저에게 네 명 목자님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한분 한분 저에게 믿음 생활의 시작부터 목자로서 여기에 있기까지 신앙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셨던 분들입니다. 한분 한분에게 이 시간을 통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튤랠립 / 정영안

목자 간증: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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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회 와서 등록 선물 받으러 올라온 날이 기억납니다.

최영기 목사님께서 저를 소개해 주실 때 같은 학부형이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저의 큰 딸 아이와 목사님 따님이 같은 학교에 다녀서 그리 소개 하셨나 봐요. 딱히 내 세울 것이 없던 저는 참 쑥스럽고 부끄러웠는데 목사님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셔서 참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제야 목사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그렇게 시작된 교회 생활은 더없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누가 알든 모르든 교회와 목장이 쉼이 되고 마음에 안정도 찾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큰딸이 목자가 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했는지요.

더 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작은딸 아이는 결혼을 해서 남편이 다니는 교회로 옮겨 갔지만 작은딸도 목자가 되길 참 바랐습니다.

한편으론 나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늘 없었지만 나도 목자 하면 우리 삼 모녀 다 목자네 생각할 땐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쓰임 받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에 부족한 모습이 자신이 없기에 스스로 상처가 되곤 했습니다.

때론 변명처럼 그냥 목자님을 돕는 목원으로 잘 하면 되지 그렇게 목장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는 나이 들고 목자의 자격이 상실돼가고 있는 때에

목자님의 목자 권유는 난감하고 무엇보다 목자는 할 수 없다고

마음으로 결정을 해 버린 지 오래되었고

그냥 이대로 좋으니 목원자리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는 미룰 수 없게 상황이 되어갔고

나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 참 죄송스러웠어요.

 

93년에 이민 와서 많은 시간 참 모질기도 하고, 고단했던 시간…, 그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을 얼마나 잘 해 주셨는지를, 좋은 교회의 만남, 훌륭한 목사님들,

진정으로 섬겨주신 여러 목자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섬김만 받고 살고 있는 사람, 염치없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평신도 세미나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 연세 드신 목자, 목녀님을 뵈면서 마음을 정하고 헌신하게 됐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나님께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었고 나이 들어 녹슬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힘들었습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이대로일 수는 없고, 변화 되어야 하고, 아버지께서 나를 만드실 때 기뻐하셨던 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목자라는 이름을 지니기엔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순종도 기뻐하시는 일도 잘 하지 못하고 한 일이 없으니까요.

이제 다시 새롭게 되고 싶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그 준엄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죽기까지 충성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지만, 저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갑니다.

저에 목자님으로 때로는 큰 언니처럼 기도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목자님,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힘이 되어주고 따라주는 목장 식구들 사랑하고 얼마나 감사한지요. 고맙습니다.

한 식구로 의지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기에 힘쓰고, 아름다운 믿음에 여인들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기쁨 되길 기도하며 바랍니다.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께 항상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쥬즘바그 / 윤송

선교 간증: 가장 많은 위로를 주고 보람 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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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선교잔치에 C국에 있는 선교사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외과 의사였던 선교사님은 C국의 선교사 되는 과정에 대한 말씀을 듣던 중 전 저의 대학생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 대학교에는 동아리라고 특정 활동이나 취미 생활을 같이하는 모임이나 클럽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신입생환영회 때 한 선배가 자신은 무료 의료 봉사 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아리따운 이화여대 여학생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유혹에 넘어가 동아리에 가입했고 많은 대학 생활을 동아리 활동으로 보냈기에 학창시절을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옛 추억을 하면서 선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던 중에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팔꿈치로 저를 톡톡 치면서 ‘안 가?’ 하고 묻습니다. 당시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많은 사람이 미국에 다시 입국거절 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으며, J-1 비자로 미국에 머물고 있던 전 선교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못 들어올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체육관에서 만난 이선근 목자님은 ‘선교 같이 가셔야죠?’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걱정하지 말고 실행에 옮기면 부족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라는 말씀이 생각도 나고 선교에 가고 싶은 저의 간절한 마음에 두 번이나 옆에서 가라고 하니 하나님의 뜻인가 싶기로 하고 해서 이번 로카블랑카 단기선교 봉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로카블랑카 미션 베이스는 멋진 태평양 바다와 하얀 백사장 옆에 있었으며 우리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웬만한 리조트보다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첫날은 우리가 선교 봉사를 왔는지 휴가를 왔는지 혼동이 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두 마을에서 선교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미션 베이스에서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던 Chayuo와 4~5시간 거리에 있던 El Moscow에서 선교 봉사를 했습니다. 두 마을 다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진료를 위해서는 원주민어를 스페인어로, 다시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을 하면서 진료를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진료 후 목사님을 만나서 면담을 하고 기도를 받은 후 약을 받아 떠났습니다. 두 마을 다 의료진료를 쉽게 받을 수 없는 곳이었으며 특히 El Moscow는 가는 길에 상당수가 비포장도로로 주민들이 의료시설 접근하기에 매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기억나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개미같이 생긴 벌레를 마치 과자 먹듯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렇게 벌레 먹는 일은 일상적으로 흔히 있는 일처럼 보여 위생에 대한 개념에 이곳 주민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젊은 여자는 개구리가 자신의 뒷목으로 뛰는 꿈을 꾼 후부터 뒷목에 통증이 시작했다고 왔으며 도저히 의학적으로 도움 줄 수 부분이 없기에 목사님의 기도를 위해 목사님께 냉큼 보냈습니다. 이 얘기를 로라 선교사님께 했더니 이러한 미신적인 생각이 이곳 원주민에게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현대의학의 도움의 아닌 주님의 기도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El Moscow에서는 옴 환자를 처음 보게 됩니다. 저보다 10년 이상 선배 의사들은 80년 초만 해도 시골에 가면 여러 명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전 책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 환자는 생후 5개월 된 어린 아기였습니다.

일주일 넘게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도 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도 여러 명 있었으며 그런 아이 중 기생충이나 아메바가 많다고 합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 많다고 했지만, 요즘은 매우 보기 드문 질환이 이곳에는 흔하면서도 제대로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이나 위생이 이뤄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젊은 남자 학생이 일 년 동안 턱밑이 아프다고 왔습니다. 세 명의 의사가 그 학생을 보면서 고개만 기우뚱거리면서 결론을 못 내렸습니다만 그 학생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난 후 아픈 증상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과정만 학교에 다녔으며 그 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놀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지내는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선교 간 우리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생명의 삶 시간에 목사님께서 은사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혜로운 선물이라는 은사에 대해 말씀을 하시고 나중에 여러분의 은사를 적는 것을 시험문제로 나온다고 하십니다. 시험문제에 나온다고 하니 제 은사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저의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당시 교회를 다니던 저는 시험문제를 풀기 전에 항상 시험문제를 책상 앞에 두고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노력이 부족하다는 담임선생님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서울에 있는 한 기독교 학교의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니 지금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교병원에서 레지던트과정을 하고 임상강사 과정까지 수료 후 전 부산에 있는 한 대학병원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의로 불리는 교수님들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받은 후 직장을 옮긴 터라 전 자신감을 가지고 진료를 했습니다. 점차 주위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가면 갈수록 자신감은 자만심과 오만함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시련이 찾아옵니다. 치료한 환자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전 그 시련을 잊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술입니다. 힘든 날은 기억이 끊어질 때 까지 마시지만 제 마음속에 힘든 시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전 환자를 위한 진료보다는 저를 위한 진료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환자의 병을 위한 진료보다는 저를 법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우선으로 선택하게 되고 또한 대학병원 교수인 전 연구에도 소홀 할 수 없기에 이 환자를 이 방식으로 치료하면 나중에 논문발표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처음 의사가 되어 가진 사명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고 환자를 위한 저의 순수한 맘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누적되어 의사라는 직업이 저에게 맞는 일인가는 하는 회의감도 들고 10대에도 없었던 사춘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휴식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전 약 3년 전부터 연수 갈 준비를 했습니다. 연수 와서 의학 공부를 하기보다는 쉬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도 자주 다니고 골프 핸디도 낮추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전 연수계획에 전혀 없었던 교회를 다시 나오게 되었고 이곳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예수 영접, 침례, 삶 공부, 허그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에 와서 지난 1여 년 동안 한 것 중 저에게 가장 많은 위로를 주고 보람 된 일은 단언컨대 이번 선교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전 얼마 전 이주교육에서 좋은 성경 구절을 들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이 구절은 많은 고민을 하던 중 의사로서 제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전 최근 2가지 기도 제목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는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신앙생활 변치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앞으로 저의 의료진료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같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메께오 / 권영민

선교 파송 간증: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로 주님의 일을 하러 가게 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국의 침례교단 소속 세계선교훈련원에서 훈련을 갓 마친 예비 선교사 박정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아름다운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변화 받게 하시고 선교사로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라는 제목으로 저의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예수님 만나기 전 늘 마음에 뭔가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놀아도 보고, 한국에 이 산 저 산에도 다녀보고, 스킨 스쿠버로 바닷속도 들어가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녀도 보고 공부도 해 보고…. 이것을 해 보아도 저것을 해 보아도 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텅 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과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를 고민하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성공이 가치 있는 삶일까? 하면서 저는 미국 휴스턴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먼저 주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 주시고 예수님을 그냥 믿기만 하였는데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It’s good News! 바로 복음이죠, 할렐루야~~

6년 전인 2011년도 한국에서 늦은 나이로 면역학으로 박사를 마친 저는 암 치료에 관한 연구를 더 공부하고 싶어 암 치료 연구 분야에서는 다소 유명한 휴스턴에 있는 MD Anderson cancer center로 박사후 과정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원 당시 영어가 많이 부족하였고 실력도 부족했던 제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 믿기 전부터 저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 은혜입니다. 저는 사실 미국에 가야겠다는 결심하고 난 후,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1~10까지 적은 후 매일 자기 직전에 내 기도를 들어 줄 막연한 어떤 존재에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근데 정말 미국에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미국에 오면 교회에 나가 보리라’하고 미국에 온 그 주에 휴스턴 서울 교회를 소개받고 목장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 후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예수 영접을 하고자 하는 결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계속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과연 믿을 만한 존재인가에 확신이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영기 목사님께서 인도하신 예수 영접모임에 참석하였지만 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울음만 터트렸습니다. 그날 전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을 거다’ 결단하고 지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근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다음 날 일어났는데 영접을 해야겠다 생각이 번뜩 들며 주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겠었어 옆 연구실에 있던 크리스천 선배에게 부탁하여 예수님 영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교회에서 영접확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믿겠다가 아니라 믿지 않겠다고 결단한 저였지만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지금은 예수님 없으면, 하나님 떠나서는 내 삶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기 전엔 제가 죄인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나름 착하게 살아서 영접모임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했어요. 어이없죠~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제가 마음의 생각이 악하고 늘 죄 가운데 있다는 것과 죽어 마땅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내가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아가고 믿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제 모습을 볼 때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날 예배시간 찬송 중에 ‘나를 살리신 예수님 ~ ‘이란 가사가 크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를 살리셨음을 다시 깨닫게 하셨고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나이기에 오늘도 더욱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나를 살리셨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죠? 여러분 한분 한분 누가 살리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첫 번째로 주님께서는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해 주시고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알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배드리면서 저는 정말 엉망진창인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실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이리 사랑하여 주시는데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부푼 꿈을 안고 왔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해서 좋은 논문 쓰고 내가 꼭 교수가 되어 돌아가리라…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 창조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욕심만 클 뿐이었죠.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저는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주말도 없이 일하였습니다. 영어도 많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연구 결과로 뭔가 보여 주리라…하면서 저를 잠도 못 자게 하고 너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해 하며 저를 정죄하며 날마다 죽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내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세상의 성공이 내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에 대해 조금씩 너그러워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매달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삶을 조금씩 더 주님께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친 마음과 몸이 회복되어 갔고 나 자신이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연구할때도 주님께 하나하나 기도하면서 진행하니 내 뜻대로 끙끙거리며 할 때보다 3/2 정도의 노력으로 더 좋은 연구 결과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구하였던 것이 특허, 논문도 나오고 곧 암 환자 치료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하시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는 목장 식구, 교회 공동체를 통해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법을 단련시키셨습니다.

교회 다니는 날이 더해지면서 목장 식구들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교회에 다른 분들도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들을 보면서 나보다 신앙생활 한지도 더 오래되었는데도 헌신하기는커녕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고, 어떤 부분에서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분들을 정죄하고 왜 저럴 수 밖에 없는가? 판단하였습니다.
근데 로마서 14:4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의 서거나 넘어짐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은 즉 참으로 그가 세워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를 서게 하실 수 있느니라”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면 당장에 변화 받을 수 있구나, 그리고 저들이 어떠한 모습이든 간에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거늘 내가 감히 그들을 판단할 수 없구나.’

주님께서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있으시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에 마음을 쏟기를 원하신다는 것,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는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판단하고 정죄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여야 하는 존재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두 번째 계명 마태복음 12:31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요한일서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감정적인 느낌으로 하트 뿅뿅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3:4 “ 사랑은 오래~ 참고~ 13:7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 이제 형제자매를 판단하기보다 참아주고 그들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는 것처럼 저도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그들을 끝까지 사랑할 것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리 결단하고 바로 짠~ 변화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음날 여전히 똑같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 하겠다고 순종하는 것으로 스위치를 온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리 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저를 보게 됩니다. 아직도 멀긴 했지만요….

다음 단계의 사랑 훈련은 조금 더 강도가 높은 것이었습니다.

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2013년도 연구실을 옮기게 되었는데 교수님과 디스커션 시간에 교수님은 좋은 연구 결과는 아랑 곳 않고 늘 꼬투리를 잡고 당신이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내시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입곤 하였습니다.
전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위로해 주시고 말씀 주셔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에 대한 저의 미움은 점점 커졌고 교수님을 미워하는 제 모습 또한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제 작년 말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과 함께 그 사람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보게 하시고 그분의 영혼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 교수님도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45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 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바로 그 일을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교수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점점 교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졌고 교수님을 사랑하겠다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결단만 하였는데 그 후 하나님께서 교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이전처럼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저를 존중해 주시며 긍정적으로 반응하셨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 갑니다 ~

예수님 만난 후 변화의 두 번째는 세상의 것들을 놓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삶을 바라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세상에 성공, 부, 명예 등이 내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인도 하심과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것을 영원토록 누릴 특권과 하늘의 상급에 대한 약속을 알고 또 믿으니 삶의 가치를 자연히 하늘의 것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전 부족함투성이예요. 나이 50에 남편도 없고 토끼 같은 자식도 없고 경제적 능력이 없으신 노 부모님, 모아둔 재산도 없고 노후는…. 등등.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가득 들어와 계시니 저는 부족함이 없어요.
시편 23편 1절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저의 능력 되시고 저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안에 평강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니 이제 텅 빈 제 마음이 주님으로 가득 차 세상의 어떤 것을 줘도 안 바꿉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신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 조금씩 주님의 눈으로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주님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고 주님의 일에 나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선교잔치에 몽골 국제 대학교 총장이신 권오문 선교사님께서 방문하시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올 때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어 면역학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고 예수님 믿고 나서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권오문 선교사님으로부터 나흘 동안 간증과 함께 말씀 듣는 동안 그 학교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근데 그 학교에 가서는 영어로 모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저는 미국에 있은 지 5년이 넘었지만,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여전히 큰 부담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마귀가 제 귀에 대고 ‘넌 영어도 못 하는데 어딜 가?’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사실이였으므로 낙담한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다음날 말씀은 참 신기하게 총장님도 영어를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국제 대학까지 세우게 하셨다는 간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는 듯이 말입니다.
선교사님 말씀 중 시편 18편 32절 “이 하나님은 곧 능력으로 내게 띠를 두르시고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맞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이지. 주님이 숟가락이 되라 하시면 숟가락이 되고 젓가락이 되라 하시면 젓가락이 되고 주님께 순종하면 되는 것이지.’ 이 말씀으로 용기를 내어 주일예배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헌신한 후부터 주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총장님 사모님 만나게 하셔서 당장 지원하게 하시고 얼마 뒤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몽골국제대학에 면역학은 커리큘럼에 있는데 그 과목을 전공한 교수는 그동안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헌신할 줄도 이미 아시고 그 학교에 그 과목을 이미 마련해 두신 것이었습니다. 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신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93년에 석사를 면역학을 전공한 후 10년 신경과학 분야에서 일하였는데 면역학을 더 공부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38살 늦은 나이에 박사를 시작하였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미리 계획하시고 미국으로 부르시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헌신하게 하시고 ~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작년 12월 말 연구실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2/27~6/2 까지 14주의 대전 세계 선교 훈련원에서 선교 훈련을 마쳤습니다.

훈련기간 첫 주는 그릇의 구석구석 낀 때를 씻어내듯 제가 잊고 있던 죄들까지 기억나게 하시어 눈물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선교 훈련 초반에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있었는데 저는 자원하여 헌신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일꾼으로 부르셨는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시므로 그 선교사님의 말씀에 자매님이 반응하여 헌신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맞다고 훈련 동기생 목사님께서 이야기해 주었지만 전 여전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 훈련 수업시간에 이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주님께서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나의 일꾼, 선교사로 불렀도다. 주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제 마음을 아시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선교훈련 동안 새벽기도시간은 주님을 음성에 귀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기도하기 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기도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여쭙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전에 이종길 목사님 말씀에서 새벽기도때 한 시간 회개기도 하시고 1시간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1시간 주님의 음성 듣고 시키시는 일을 받아 적는다 하셨는데 그때 어떻게 기도시간에 음성을 들려주실까 하면서 무척 부러워하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자 구하는 것들을 엄청 빨리 응답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을 할 때 건 주님이 기뻐하실까 점점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잘 때 침대에 누워 내가 오늘은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종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지 하는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은 말씀에 쓰여있는 있고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날 지켜 주신다는 것은 종일 나를 바라보시고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인데 , ‘그럼 나는 그때 뭘 보고 있는 거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하고 내가 보고 싶은 거 보며 하나님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일 나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나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문뜩 너무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연애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는 온종일 그 사람 생각하고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미소가 싹 ~ 지어면서 행복해졌지요.
그 사람 생각하면 가슴도 콩닥콩닥 뛰고 ~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그랬다니까요 ~ 젊은이들은 지금 그런 사람도 있겠네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구나 …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한가? 그러던 중 프랭크 루박의 편지라는 책을 선물 받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15년 동안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선교하셨고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것을 시도하셨던 분입니다. 이분은 매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고 하나님을 종일 느끼기기를 성공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의지적으로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하는 일은 매우 힘든데 그러나 이로 인해 다른 모든 일이 힘이 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주신 첫 번째 계명, 마태복음 22: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 하여 주 너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말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이제야 이게 무슨 말씀인지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 내 혼, 내 생각을 다 하여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구나. 요즘 부지런히 애쓰고 있습니다만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일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아직은 그렇지만 저도 주님과 매 순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주님이 아시기에 그리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하게 하시고 다른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나를 핍박하는 자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제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요한 일서 4:12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해지게 됩니다. 우리의 사랑의 없이는 그분의 사랑이 완전해 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사랑을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제 저는 내일 한국으로 가고 침례교단 시취를 마친 후 7/31 몽골로 떠납니다.
선교사로서 제가 몽골에 가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23 “그가 이르되 나는 대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 같이 ‘주의 길을 곧게하라’하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침례 요한이 주님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던 것처럼 저는 주님의 통로,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일은 주님이 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선교사,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크신 사랑, 그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 되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

제가 사랑하는 말씀 중 하나인 요한일서 4:16 말씀 읽으며 부족한 간증 마치겠습니다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니라”

박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