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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모 김

선교간증 : 어려운 가운데도 천국의 소망을 품은 사람들

By | e참빛

벧엘 목장 이경희입니다. 부족함 없이 너무도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는 달리,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과 가난, 그저 자유를 얻기 위해 힘들고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마음 한곳이 늘 불편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가운데 선교잔치에서 독일 난민선교라는 글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더구나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과 같이 갈 수 있는 선교라는 것에 이런 날이 드디어 왔구나 하며 가슴이 벅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인 사정으로 인해  조인했던 유스아이들은 다 drop하고 저희 아들만 남아 괜히 같이 가는 팀분들께 폐나 끼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같이 가는 기쁨조차 잊은 체 준비 모임 때마다 제 모든 신경과 시선은 온통 아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거슬릴 때마다 지적하고 집에 가는 차 속에서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가 늘어갔습니다. 이젠 하다 하다 떠나는 당일 새벽까지 떠날 준비를 하면서 또 아들과 싸우고 야단치고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아들과 처음 가는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다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며 가도 영적 방해와 공격이 있는데 내 마음과 시선은 주님이 아닌 아들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들 또한 첫선교가 엄마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되기보단 부담으로 다가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내려놓고 주위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독일. 오랜 역사와 너무 이쁜 건물들과 성당들. 영화 속에서나 보아왔던, 자유롭게 푸른 잔디 밭에 누워 햇볕을 쬐는 연인들… 하지만 그 찬란한 모습 뒤에 보이는 공허함을 보았습니다. 웅장한 예배당 안에서는 그저 엄숙과 고요함만 남은 텅 빈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유럽에 있는 교회는 점점 젊은 세대가 없어진다는 말이 실감이 되며 성경 구절 신명기 6장 7절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학교에 학생이 없으면 그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가 없기에 교회가 그저 멋있고 웅장한 건물로만 남아 있는 유럽 교회의 현주소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이쁜 유럽풍경을 뒤로하고 도착한 페르시아 교회의 분위기는 정말 뜨거웠습니다. 페르시아교회는 모두가 난민들이며 작은 카페를 빌려서 예배 드리는 교회였습니다. 십자가 하나 달려있지 않은 좁고 작은 교회지만 한분 한분이 산증인이요 복음으로 인해 삶이 변화된 주님의 귀한 자녀임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독일 난민선교는 저에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었습니다. 페르시아 교인들과는 달리 다음날 만난 무슬림 난민분들은 잘 웃지도 않고 사진 찍는 걸 너무도 싫어하고 경직되어 있고 경계하고 있음이 눈에 보였습니다. 가족사진을 찍어준다는 이야기하고 접근을 해도 선뜻 찍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머리를 자르는 일도, 마사지를 받는 일도, 절대 남자 앞에선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 작은 자유하나 누리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도 뒤늦게서야 크래프트와 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경직됐던 얼굴들이 풀어져 갔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와 기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난민자들과 이민자들의 삶이 참 많이도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낯설고 외로운 이국 땅에서 외국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민자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민자는 나를 위한 성공과 나를 위한 자유를 위해 욕망을 위해 내 나라를 두고 외국에 가는 것이고 난민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나의 성공과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내 나라 내 땅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난민선교는 우리 이민자들이 그들을 더 잘 위로할 수 있고 공감하며 보듬어 줄 수 있는 선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독일선교는 작은 거인 같습니다. 제가 만난 난민 한분 한분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내 목숨이 위험함에도, 번듯한 교회건물 하나 없어도, 천막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용기와 담대함이 저를 너무도 작게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가정교회를 하고 목장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한 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는 말이 실감 나게 하는 선교였습니다. 벽돌 하나 얹고 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인내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메마르고 외롭고 슬프지만 우리들의 본향은 아프간도, 파키스탄도, 이란도 아닌 나의 집 저 천국이 있음에 독일에서의 난민분들의 삶이 고달프지 않도록 한 영혼이 또 주님께 돌아오는 그 모습을 함께 보기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선교지를 떠난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큐티시간 개인 간증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간증을 들으시고 선교사님께서 한 노래가사가 딱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 같다며 주신 노래가 저에게 참 많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번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데 이 가사가 많은 성도님들께 위로가 되길 바라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때론 축복을 받기 위해, 때론 평화를 위해, 가족의 평안을 위해, 또 우리가 자는 동안 지켜달라고 기도하지요. 우리는 치료해 달라고, 부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우리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지요. 언제나 하나님은 모든 우리의 필요를 들으시지요. 그러나 때론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사소한 것들을 들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축복이 빗방울을 통해 내려진다면 하나님의 치료가 우리의 고통스러운 눈물을 통해 오는 것이라면, 잠 못 이루는 고통스러운 밤이, 하나님의 곁에 있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인생의 시험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다른 모습일 수 있겠네요.

우리는 지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도해요. 하나님이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화가 나서 울지요. 때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죠.

하나님의 약속의 말이 충분하지 않을 것처럼요. 그 동안에도, 하나님은 모든 절박한 간구를 들으시죠. 그리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기를 기다리시지요.

친구들이 나를 등지고, 어둠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고통이 우리를 일깨워주지요.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니라고 만약 우리의 큰 실망과 인생의 아픔이 이 세상에서 만족할 수 없는 큰 갈증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리고 인생의 시험들이, 비바람이, 폭풍우가, 그리고 가장 힘든 밤들이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벧엘 / 이경희

선교간증 :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저는 북경목장 김순섭입니다. 독일 난민선교를 다녀온 후 어떻게 은혜를 나누어야 할지 생각도 정리할 겨를없이 휴스턴에 홍수가 있었습니다.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 흔들려도 이렇게 정신을 차리기가 힘든데 살던 곳을 떠나 생사를 드나들며 독일에 도착한 난민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힘들어하는 제가 간증 자로 뽑혔을 때 마음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제가 간증을 하게된 이유는 이번 여행을 통해 저의 불완전한 모습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과 그분의 은혜를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예배자이며, 언제든 그분을 전해야 하는 전도자임을 깨달았기에 부족하지만, 그곳 선교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나누려 합니다. 저는 이번 선교를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입니다. 저희는 독일선교 첫날 아주 특별한 형제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형제의 이름은 레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마라고 하는 종교 지도자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 이슬람 전도를 위해 그리스로 포교 활동을 가서 하나님을 만난 분이었습니다. 4살부터 코란을 외우기 시작했고, 17살 때부터는 사람들에게 코란을 설교하는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에서 만난 크리스천의 사랑을 통해, 이슬람 신에 대한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신을 찾다가 예수님밖에는 구원이 없음을 알게 되고 그의 삶을 드린 분이었습니다.

일신상의 어려움이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전하는 전도자로, 담대하게 서 있는 그 형제를 보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 있는 구원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둘째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첫날 이란과 아프간 난민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교회를 방문해서 주일예배를 함께했습니다. 함께 손을 들고 할렐루야를 찬송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우리 선교팀이 그곳에 간 이유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전하러 간 것임을 그분들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 셋째 날에는 국제교회를 빌려, 준비해간 사역을 하였습니다. Welcome, New neighbors! 라는 슬로건으로 모슬렘 난민분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아이들을 위한 만들기도 하고, 자매들을 위한 마사지 팩, 모두를 위한 미용, 말씀이 담긴 인형극, 그리고 저녁도 함께 먹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첫날은 생각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왔지만 그마저도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는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예배당에 들어오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날 저녁 팀원들이 모여  사역하였을 때 아쉬웠던 부분과 개선점들을 논의 하였습니다. 그분들이  난생처음으로 교회를 찾은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인데, 그들이 편하게 여길 수 있도록 예배당으로 초청하지 않고 다음 날은 로비에서 모든 것을 하기로 지혜를 모았습니다. 다음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민분들을 기다리는데 시작시각을 몇 시간 앞두고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팀원들은 3인 1조로 예배당에 들어가 비가 멎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정말 기적같이 비가 그치고 첫 가족이 교회 마당에 들어설 때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환호 하였습니다. 이후로 많은 가족이 그날 찾아왔고 우리 팀이 마련한 모든 것들을 함께하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간 교회는 이란분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난민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도 연극과 인형극, 아이들과 만들기, 어른들을 위한 이, 미용,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 그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교제 가운데 알게 된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조국을 떠나 떠돌고 있는 그분들의 형편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인터뷰가 통과되어 다시는 떠돌지 않고 안정되게 살기를 희망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바람대로 독일에 잘 정착하고 믿음 생활 하실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셋째는 중보 기도의 중요함입니다. 우리 선교팀이 한마음으로 그곳에서 섬길 수 있었던 것도 기도로 마음을 모으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며 함께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선교사님들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다가, 독일 현지에 가서 선교의 현장을 보다 보니 이곳에서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럽 이슬람 난민선교는 그분들이 정착하기전  2년에서  5년사이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들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믿음으로 세워진 형제자매를 양육해서 같은 난민 처지의 그분들이 복음을 전할 강력하게 무슬림 전도가 됨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들은 선교사님이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실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야 됨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선교를 통해 건강한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에 대해 안타까움을 잃지 않고 주님이 명하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공동체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저희가 사는 휴스턴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목장으로 모이기를 힘쓰며, 그 목장에 연결된 선교사님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우리가 막힘없이 서로 중보하고 돕기를 힘쓸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까이 보고 증거할 수 있음을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팀을 하나 되게 잘 이끌어 주신 이상현 팀장님과 각자 맡겨진 일들을 너무도 열심히 즐겁게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한 독일선교 팀원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북경 / 김순섭

목자간증:하나님을 찾는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우선, 임명 소감을 발표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철 초원, 세완 목장에서 분가하여 대행 목자로 섬기게 된 여수현 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던 저는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막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을 저의 믿음이라 자랑처럼 여기며 그냥 가만히 앉아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나길 소원하던 저는, 제 삶을 스스로 정체되고 비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었고, 하나님 주변을 서성이며 한탄하고 원망만 하였습니다. 그러한 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주도하셔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인도하셨는지 제가 경험한 하나님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게 된 사업을 통해서입니다. 2011년 다른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신 분에게 사업을 인수 하였습니다. 사업은 3개월 만에 여러 조건이 사실과는 조금씩 다르게 현실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급기야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텅 빈 예배당을 찾아와 하나님께 원망하고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사업은 점차 납입하지 못하는 물건값에 빚이 쌓여만 갔고, 가족들에게는 매일매일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남편과 아빠의 모습으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현실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로 기나긴 시간을 채워 나가던 어느 날, 늦은 밤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강단 뒤편 교회 주차장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찬양 한 곡을 통해서 위로를 주셨습니다.

결국, 첫 사업은 실패했지만 또 다른 사업으로 생업을 열어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사람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목자님께서 강권하시던 삶 공부를 통해서입니다. 신분과 생업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대면하면서 일상생활 중 믿지 않는 악한 마음으로 툭툭 던지는 말들이 하나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저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나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많을 시기에 목자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희에게 삶 공부를 안내해 주셨고, 당시 감정적으로 하는 회개와 반복적인 후회의 삶을 삶 공부를 통해 바꿔보고자 했던 첫 결단이, 되풀이되는 죄에서 벗어나 전환점이 되는 변화의 첫걸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삶 공부를 통해 삶 속에서 진정한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을 경험하였고, 자녀와 배우자의 관계는 점차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선교를 통해서입니다. 어려웠던 시간은 거짓말처럼 지나갔고, 가족과 함께 드리기 소원했던 주일 예배가 일상으로 자연스러워질 무렵에 북미 원주민 선교 장년팀이 생겨났습니다. 목장에서 선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마음속으로만 원해오다가 목자님과 목녀님의 동참으로 용기를 얻어 세 번의 북미선교를 해마다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받는 은혜는 참으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선교에 동참한 팀원들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첫해는 기도의 좌절감 그리고 거절당하는 기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 주신 모미진 목녀님, 둘째 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오창석 집사님, 셋째 해는 경건의 능력이 곧 예수님의 공감 능력이라며 권면해주신 이재동 전도사님을 통하여 해마다 선교지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저에게 필요한 말씀들을 꼭 함께 한 팀원들을 통해서 들려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도전이 되었던 주방사역을 통하여 만난 하나님을 나누고 간증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 바뀌지 않은 상황과 환경을 보며 답답해하던 저에게 친교사역부 김영철/선자 목녀님께서 주방장 사역을 권하여 주셨습니다. 물론, 단칼에 할 수 없다며 사역을 거절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로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합니다. 미각도 둔감하여 음식을 하는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시간입니다. 사역하지 않더라도 이미 주일 예배를 참석하고자 주일 새벽잠을 깨우던 참이라 사역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역에 부적합한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세 번 거듭 질문하는 김선자 목녀님의 권고가 마음속에서 울렸고, 결국 사역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새벽은 토요일 밤잠을 줄여서 새벽 2시 반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새벽에 가게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1부 예배를 참석하고,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주방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로의식이다.’ ‘잘못된 믿음 생활이다.’ 정말 소화하기 힘든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방에서 사역하는 시간 동안에는 많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전까지 라면 이외에는 음식을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이렇듯 아무런 방법이나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매주 주방사역 가운데 부엌 봉사로 참여하신 성도님 한분 한분을 통하여 모든 일을 가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협력해서 이루어 내는 주방을 보면서

형편과 처지로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하셨고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 알도록 하셨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에 온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많은 목자/목녀님, 집사님/목사님,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해주신 초원식구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목자가 되길 소망하며 간증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여수현

목녀임명: 너무나도 놀라운 남편의 변화를 있게 하신 주님의 은혜

By | e참빛

우여곡절 끝에 목장이 분가되면서 남편은 어렵사리 목자가 되었고 저는 저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목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분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 년에 반은 세 아이가 있는 캐나다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계속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우리가 목자, 목녀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섬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면서 저를 계속 설득을 하였고 저는 언제든지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저의 캐나다행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남편과 하고, 결국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가끔, 지금의 남편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분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기적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십 년을 훨씬 넘게 저와 제 가족들이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때론, 절실하다기보다 그저 형식적으로 입술로만 기도할 때도 솔직히 가끔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마저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오늘날의 남편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는 부모님들과 형제들 그리고 지금은 엘에이에서 사역하는 동생까지 둔 그리고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은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반면, 남편은 비록 본인은 무교이지만 시부모님 모두 절에 다니시고 또 절에서 제사도 지내는 그런 환경에서 나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믿음은 이제 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가끔은 간첩인가 아니 외계인인가 할 생각이 들 정도로, 흔히 아는 아주 유명한 연예인 이름조차도 모르면서 오직 정치와 하늘에 떠 있는 별에만 관심을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남편의 휴대전화와 아이패드에는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각종 앱이 깔려 있는데, 늘 그것들을 들고 다니면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제게 이것저것 설명하기도 하고 또 물어보기도 합니다. 지금도 가끔은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도 그 앱을 켜고, ! 지금 내 머리 위에는 이 별이 떠 있고 저기에는 저 별이 떠 있고 그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기독교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그런 남편이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목장 예배를 인도하고제가 이곳 휴스턴에서 산 지 겨우 3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너무나도 변해버린 남편의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도 때때로 어안이 벙벙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저는 남편에게 있었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인도하심을 나누고자 합니다. 88 올림픽이 한창이던 그해 가을, 남편이 업무차 휴스턴에 근무하면서, 우연히 만난 두 분 자매님으로부터 남편이 언젠가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그런 방언 기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남편은 그 내용을 잊은 채 생활을 하였고, 신앙이 있는 저를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저희는 태국지사 발령을 받아 방콕에서 생활하였는데 남편은 그곳에서 지내는 내내 늘 교회 앞까지 저를 데려다주기만 하고 단 한 번도 같이 예배를 드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캐나다 토론토에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부터 알던 지인의 소개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날 바로 등록을 하고 매주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세례도 받고 그렇게 지냈지요. 그러나, 그저 저희는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무늬만 크리스천인 그런 부부로 참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은 일 관계로 이곳 휴스턴엘 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바로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침례도 받고 삶공부도 하면서 조금씩 바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선 확신을 가진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 때문에 처음 3년은 떨어져 살았는데 그때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좀 보여주시라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믿으려 하는데 잘 안 믿어 진다고. 그러나, 믿으려 노력은 한다고.

그러던 어느 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는데,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빛들이 방안에 가득했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88년 그해 가을, 어느 한국 분들의 기도가 이십 몇 년만에 이곳 휴스턴에서 응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또 얼마 전 그렇게 찾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던 남편이 다녔다던 그 회사와 아파트를 교회 근처에서 찾아 방문도 했습니다.

지금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여러 복음 성가곡들이 다운로드 돼 있어 운전하면서 그 곡들을 듣고 또 때때로 그 성가곡들을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고 늘 기도하는 남편의 모습에 놀랍기도 하면서 저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우리가 천국에서 다 같이 만나려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어야 한다는 남편의 그 한마디에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저희 시부모님들께서도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사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그렇게 변한 남편의 모습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목녀 자리를 피했던 제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식으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당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방콕, 서울, 토론토 그리고 이곳 휴스턴까지

단 한 번도 제 손 놓지 않고 함께 와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또 깊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 제 옆에 있는 남편을 최선을 다해 도우려고 합니다.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의 눈높이에 맞출 수가 없습니다. 키가 큰 사람이 그 몸을 낮추고 키가 작은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야만 합니다. 또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그 눈높이를 맞추며, 많이 가진 자는 또 적게 가진 자에게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 높고 높으신 영광의 자리에서 낮고 낮은 우리에게 그분의 눈높이를 맞추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지요. 그런 마음과 눈높이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희를 섬겨 주신 목자, 목녀님, 그리고 이사말 목장의 언니들과 형제님께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하늘복 많이 받으세요.

채화정 

목자임명: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은 계속 됩니다

By | e참빛

목자 임명 소감을 준비하면서, 캐나다에서 살 때 가깝게 지냈던 친구의 한 마디가 생각났습니다. ‘휴스턴에 가면, 서울 교회라고 있는데, 그 교회가 좀 특별나다고 말이죠. 서울 교회를 가보라고 권유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잘 몰랐지만, 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목장 식구들에 둘러싸여, 다른 곳엔 눈을 돌릴 틈이 없었으니,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목장과 교회를 통한 저의 삶과 주님의 인도하심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의 22녀중 셋째로 태어나, 교회라곤 아주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갔다가 연필 한 자루 받아 온 기억 이외에는, 교회를 다녀본 적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평범한 학교생활과 직장 생활, 그리고 결혼을 하여 세 아이를 가진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밀레니엄을 몇 달 앞둔 1999,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 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캐나다에 정착하게 되었고, 2011년에 휴스턴으로 근무지를 따라오게 되었고, 오늘 여러분 앞에서 목자 서약과 소감을 나누게 되었으니, 제게는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섬세하신 하나님은 오랜 시간 동안 계획하신 대로 저를 인도 하셨고, 제가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 주신 것은 물론, 구원받고 제자 되게 하셨는데, 그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저는 휴스턴에 본사가 있는 미국계 한국 회사에 엔지니어로 일을 하면서, 몇 개월의 연수차, 휴스턴을 방문했습니다. 처음 미국에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총각에 혈기 왕성했던 저는 그야말로 아쉬운 게 별로 없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생활하던 중, 교회에 다니신다는 두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믿음에 관심이나 필요도 느끼지 못하던 저는, 찾아와 주신 성의에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분들은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도대체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하시고, 다른 한 분은 그걸 제게 해석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어색한 시간이 흘러갔는데, 그중 기억나는 것은,

제가 언젠가는 휴스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될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그 말에 별 관심이 없었고,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연수 후 한국으로 돌아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작은 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옮기고 나서 석 달 후, 늦게까지 일을 한 후 저녁 식사 및 이어지는 술자리가 끝나고 같이 동석했던 여직원을 늦은 시간에 집에 바래다주면서, 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여직원을 집 근처 전봇대 뒤에 세워놓고, 앞뒤 생각 없이 그냥 결혼하자고, 구혼했습니다. 저야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 여직원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데이트 신청도 아니고, 그냥 결혼을 하자고 하니 말입니다. 그 후 그 여직원은 지금까지 26년 동안 저를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하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우연일까요? 그 당시, 늦게까지 근무를 하다가 저녁 자리를 만들었던 직장 선배는 저보다 1년 먼저 캐나다로 와서, 저를 교회로 인도하였고, 이를 통하여 2000년에 예수 영접과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저를 목장과 서울 교회로 인도하여 주신 목자님과의 만남입니다. 캐나다에서 석유, 가스업계 일을 하였던 저는, 당시 캘거리에서 일하고 계신 목자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이 먼저 휴스턴으로 오시면서 목자가 되셨고, 제가 휴스턴으로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목장과 서울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접과 세례는 받았었지만, 무늬만 크리스천이었던 저를 변화시켜 주셨으며, 서울 교회를 통하여 새로이 예수님을 다시 영접하게 하시고 침례 받게 하셨습니다. 이러게 각각의 상황과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섬세하고 세밀하게 저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셨으며, 지금 이 자리도 인도하심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실지 잘 모르지만,

과거에는 제가 인지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어느 정도 그 과정 하나하나를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순종하면서 나아가고자 합니다.

 

현재 저의 믿음의 깊이는, 아직 믿음은 결단이다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부정할 만한 근거나 논리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방향은 바로 잡힌 듯합니다. 이런 가운데,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더 늦기 전에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를 구원코자 하였으나, 휴스턴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급한 마음에 두 분께 예수 영접을 권했습니다. 언젠가는 두 분이 하늘나라에 가시고, 그리고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다시 만날 방법이 있다고 말문을 여니, 그렇기만 하면 오죽 좋겠냐고 하시며 반신반의하셨습니다. 그래서 4영리를 설명해 드렸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강권하였더니, 영접하시겠다 하시며, 제 기도를 따라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제 주변의 가족들을 조금씩 변하게 하셨는데, 지난 6월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온 가족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뜻밖에도 식사 기도를 해달라고 형님이 요청했습니다. 아무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그 자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저희 집안에 주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온 가족의 구원을 간구하게 하셨습니다. 기도 후 아멘으로 화답하며 변화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저를 조금씩 변화시켜 주시더니, 이제 저희 가족을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제게 주어진 믿음과 은사의 분량대로 주님의 능력 안에서 순종을 다짐해 봅니다.

 

끝으로, 많은 사랑과 섬김으로 인도하여 주신 목자, 목녀님, 초원 집사님과 목녀님, 그리고, 부족한 저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는 믿음의 선배들이신 목장 형제님,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박찬규

대행목자 임명: 목자로서의 늦은 출발, 죽기까지 충성하는 마음으로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쥬즘바그 목장의 윤 송입니다.

서울교회 와서 등록 선물 받으러 올라온 날이 기억납니다. 최영기 목사님께서 저를 소개해 주실 때 같은 학부형이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저의 큰딸 아이와 목사님 따님이 같은 학교에 다녀서 그리 소개하셨나 봐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던 저는 참 쑥스럽고 부끄러웠는데, 목사님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셔서 참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제야 목사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 생활은 더없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누가 알든 모르든 교회와 목장이 쉼이 되고 마음에 안정도 찾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큰딸이 목자가 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했는지요. 더 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작은딸 아이는 결혼을 해서 남편이 다니는 교회로 옮겨 갔지만, 작은딸도 목자가 되길 참 바랐습니다. 한편으론 나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늘 없었지만 ‘나도 목자 하면 우리 삼 모녀 다 목자네?’라고 생각할 땐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쓰임 받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상처가 되곤 했습니다. 때론 변명처럼 ‘그냥 목자님을 돕는 목원으로 잘 하면 되지’라고 하며 목장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목자의 자격이 점점 사라져가는 때에 목자님의 목자 권유는 난감했고, 무엇보다

목자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이미 마음으로 결정을 해 버린 지 오래되어서 ‘그냥 이대로 좋으니목원 자리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는 미룰 수 없게 상황이 되어갔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 참 죄송스러웠어요. 93년에 이민 와서 그 많은 시간… 참 모질기도 하고, 고단했던 시간…, 그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을 얼마나 잘 해 주셨는지를, 좋은 교회와의 만남, 훌륭한 목사님들, 진정으로 섬겨주신 여러 목자님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섬김만 받고 사는 사람이더라구요. 염치없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평신도 세미나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 연세 드신 목자, 목녀님을 뵈면서 마음을 정하고 헌신하게 됐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나님께 충성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었고, 나이 들어 녹슬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습니다. 어떤 모습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이대로일 수는 없고, 변화되어야 하고, 아버지께서 나를 만드실 때 기뻐하셨던 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목자라는 이름을 지니기엔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도 기뻐하시는 일도 잘 하지 못하고, 한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다시 새롭게 되고 싶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그 준엄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죽기까지 충성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저 혼자는 감당할 수 없지만, 저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갑니다.

목자님으로, 때로는 큰 언니처럼 기도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저희 목장 목자님,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힘이 되어주고 따라주는 목장 식구들, 사랑하고 얼마나 감사한지요. 고맙습니다. 한 식구로 의지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기에 힘쓰고, 아름다운 믿음의 여인들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기쁨 되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목사님과 사모님께도 항상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쥬즘바그 / 윤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