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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간증: 가장 많은 위로를 주고 보람 된 일.

By | e참빛

지난 2월 선교잔치에 C국에 있는 선교사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외과 의사였던 선교사님은 C국의 선교사 되는 과정에 대한 말씀을 듣던 중 전 저의 대학생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 대학교에는 동아리라고 특정 활동이나 취미 생활을 같이하는 모임이나 클럽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신입생환영회 때 한 선배가 자신은 무료 의료 봉사 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아리따운 이화여대 여학생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유혹에 넘어가 동아리에 가입했고 많은 대학 생활을 동아리 활동으로 보냈기에 학창시절을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옛 추억을 하면서 선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던 중에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팔꿈치로 저를 톡톡 치면서 ‘안 가?’ 하고 묻습니다. 당시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많은 사람이 미국에 다시 입국거절 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으며, J-1 비자로 미국에 머물고 있던 전 선교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못 들어올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체육관에서 만난 이선근 목자님은 ‘선교 같이 가셔야죠?’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걱정하지 말고 실행에 옮기면 부족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거라는 말씀이 생각도 나고 선교에 가고 싶은 저의 간절한 마음에 두 번이나 옆에서 가라고 하니 하나님의 뜻인가 싶기로 하고 해서 이번 로카블랑카 단기선교 봉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로카블랑카 미션 베이스는 멋진 태평양 바다와 하얀 백사장 옆에 있었으며 우리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웬만한 리조트보다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첫날은 우리가 선교 봉사를 왔는지 휴가를 왔는지 혼동이 될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두 마을에서 선교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미션 베이스에서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던 Chayuo와 4~5시간 거리에 있던 El Moscow에서 선교 봉사를 했습니다. 두 마을 다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진료를 위해서는 원주민어를 스페인어로, 다시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을 하면서 진료를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진료 후 목사님을 만나서 면담을 하고 기도를 받은 후 약을 받아 떠났습니다. 두 마을 다 의료진료를 쉽게 받을 수 없는 곳이었으며 특히 El Moscow는 가는 길에 상당수가 비포장도로로 주민들이 의료시설 접근하기에 매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기억나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개미같이 생긴 벌레를 마치 과자 먹듯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렇게 벌레 먹는 일은 일상적으로 흔히 있는 일처럼 보여 위생에 대한 개념에 이곳 주민들에게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젊은 여자는 개구리가 자신의 뒷목으로 뛰는 꿈을 꾼 후부터 뒷목에 통증이 시작했다고 왔으며 도저히 의학적으로 도움 줄 수 부분이 없기에 목사님의 기도를 위해 목사님께 냉큼 보냈습니다. 이 얘기를 로라 선교사님께 했더니 이러한 미신적인 생각이 이곳 원주민에게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현대의학의 도움의 아닌 주님의 기도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El Moscow에서는 옴 환자를 처음 보게 됩니다. 저보다 10년 이상 선배 의사들은 80년 초만 해도 시골에 가면 여러 명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전 책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 환자는 생후 5개월 된 어린 아기였습니다.

일주일 넘게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도 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도 여러 명 있었으며 그런 아이 중 기생충이나 아메바가 많다고 합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 많다고 했지만, 요즘은 매우 보기 드문 질환이 이곳에는 흔하면서도 제대로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이나 위생이 이뤄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젊은 남자 학생이 일 년 동안 턱밑이 아프다고 왔습니다. 세 명의 의사가 그 학생을 보면서 고개만 기우뚱거리면서 결론을 못 내렸습니다만 그 학생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난 후 아픈 증상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과정만 학교에 다녔으며 그 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놀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지내는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선교 간 우리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생명의 삶 시간에 목사님께서 은사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혜로운 선물이라는 은사에 대해 말씀을 하시고 나중에 여러분의 은사를 적는 것을 시험문제로 나온다고 하십니다. 시험문제에 나온다고 하니 제 은사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저의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초등학생 때 당시 교회를 다니던 저는 시험문제를 풀기 전에 항상 시험문제를 책상 앞에 두고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노력이 부족하다는 담임선생님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서울에 있는 한 기독교 학교의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니 지금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교병원에서 레지던트과정을 하고 임상강사 과정까지 수료 후 전 부산에 있는 한 대학병원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의로 불리는 교수님들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받은 후 직장을 옮긴 터라 전 자신감을 가지고 진료를 했습니다. 점차 주위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가면 갈수록 자신감은 자만심과 오만함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시련이 찾아옵니다. 치료한 환자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전 그 시련을 잊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술입니다. 힘든 날은 기억이 끊어질 때 까지 마시지만 제 마음속에 힘든 시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전 환자를 위한 진료보다는 저를 위한 진료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환자의 병을 위한 진료보다는 저를 법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우선으로 선택하게 되고 또한 대학병원 교수인 전 연구에도 소홀 할 수 없기에 이 환자를 이 방식으로 치료하면 나중에 논문발표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처음 의사가 되어 가진 사명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고 환자를 위한 저의 순수한 맘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누적되어 의사라는 직업이 저에게 맞는 일인가는 하는 회의감도 들고 10대에도 없었던 사춘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휴식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전 약 3년 전부터 연수 갈 준비를 했습니다. 연수 와서 의학 공부를 하기보다는 쉬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도 자주 다니고 골프 핸디도 낮추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전 연수계획에 전혀 없었던 교회를 다시 나오게 되었고 이곳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예수 영접, 침례, 삶 공부, 허그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에 와서 지난 1여 년 동안 한 것 중 저에게 가장 많은 위로를 주고 보람 된 일은 단언컨대 이번 선교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전 얼마 전 이주교육에서 좋은 성경 구절을 들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이 구절은 많은 고민을 하던 중 의사로서 제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전 최근 2가지 기도 제목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는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신앙생활 변치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앞으로 저의 의료진료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같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메께오 / 권영민

선교 간증: 하나님이 주시는 휴식과 감동을 선물.

By | e참빛

저는 이번에 니카라구아로 가족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주 사역은 우물과 학생 사역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농활도 한번 가본 적이 없는 제게 선교는 늘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초대형 사건이었습니다. 니카라구아 목장에서 목장 식구로 수년이 지나도록, 분가하고 목녀가 된 지 3년 이 지나도록 선교를 가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이 커져가고있었습니다. 그렇게 은혜의 빚을 갚는 기분으로 남편과 아들을 따라나선 니카라구아는 신기하게도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별다른 은사가 없는 내가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계획하고, 노심초사하던 저의 생각은 첫날 선교센터 앞 동네를 청소년 팀과 프레이어 웤을 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가장  먼저 제게 든 생각은 “아 … 여기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여기에 무언가를 해주러 온 것이 아니구나.” 였습니다 돌고 있는 우리의 앞길을 막고, 굳이 자신의 집으로 가서 기도해달라는 작은 체구의 중년의 남자를 반신반의하며 따라간 곳에서, 흙 바닥에 의자 몇 개 간신히 누일만한 판자로 만든 침대 사이에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자신의 딱한 사정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우리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남자와,  몸이 불편한 그의 노모를 보며, 내가 과연 그분보다 큰 믿음이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우리들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고 자신의 집으로 이끌어가는 맑고 검은 눈동자의 아이들을 보며 내가 그들보다 큰 사랑을 갖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나의 무능함을 깨닫고 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저 이곳의 아이들과 사람들과 함께 교감하면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서 사랑하시는 그 땅에 사는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간의 니카라구아 선교는 정말로 재미있었고, 너무나 밝은 표정의 순수한 아이들과 함박웃음이 아름다운 이 땅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복주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과정에 짧은 시간이나마 가족과 교회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다른 모든 팀원이 그랬던 것처럼 저 또한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가야 할 이유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다녀온 것이 참 기쁩니다.

저는 늘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그것을 개발해서 맡겨진 사역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니카라구아 선교를 통해서 그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약한 부분을 치고 갈고 닦아서, 하나님 일에 동참하는 것 또한 매우 기뻐하실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는 스페인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팀원들의 대부분은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완전 까막눈이고요, 우물을 파면서, 그저 미친 듯이 일만 하지 말고 현지인들에게 우리가 왜 왔는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총 다섯 곡의 스페인어 찬양을 입에 달고 흥얼거릴 정도로 연습을 하고, 우물을 파고 피곤한 와중에도 한국말로 토시를 달아가며 복음전달 멘트를 연습해서, 사역의 마지막 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물이 나오는 우물의 성공을 기뻐하며 함께 찬양하고, 최선을 다해서 어눌한 스페인어로 복음을 전하는 형제님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사랑스러우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있었으면 깨워야 일어나고 해주는 밥을 먹고 더위를 불평하며 있었을 십 대들이 , 스스로 일어나고,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자원해서 하고, 부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움직이고, 더위를 먹어가며 무더위에 밖에서 몇 시간을 현지 아이들과 하나되어 즐겁게 놀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특하게 보셨을까요. 계시던 사역지와 180도 다른 날씨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 그만 전에 계시던 곳에서보다 반 토막으로 야위어 버리신 선교사님을 보며, 그런데도 늘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며 그곳에서의 일을 감당하시는 그분을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또한, 성격이 급해서 남들보다 두 발 앞서서 움직여야 하지만 꾹 참고 다른 사람보다 늦게 움직이며, 평소 부엌 근처에 가지도 않는 분이, 선교 몇 주 전부터 선교지에서의 메뉴를 찾고 연습하고 결국엔 팀원들을 선교 전보다 살을 찌워서 돌려보내고, 문제가 생기면 늘 자기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매뉴얼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경험이 주는 유익에 귀를 기울이며, 너무나도 약한 동시에 너무나도 강한 우리가 각자를 죽여가며 우리의 약한 부분을 사용하여 함께 하나님 일에 동참했으니, 하나님이 수고 했다 하시겠지요.

목사님께서도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 남을 섬길 때 감동을 준다는 말씀과도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있던 기간에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와 친정 오빠를 키워주신 분이기에 각별한 할머니셨고, 믿지 않으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이제는 땅에서도 뵐 수 없고, 천국에서도 뵐수없고, 어디에도 안계시는, 이것이 진짜 그냥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신 선교사님께서 그런 마음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품는 것이 선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

저는 이렇게 처음으로 갔던 선교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휴식과 감동을 선물로 받고 왔습니다. 귀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팀원들께 감사합니다.

스리랑카 /  박미정

선교 파송 간증: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로 주님의 일을 하러 가게 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한국의 침례교단 소속 세계선교훈련원에서 훈련을 갓 마친 예비 선교사 박정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아름다운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변화 받게 하시고 선교사로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라는 제목으로 저의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예수님 만나기 전 늘 마음에 뭔가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놀아도 보고, 한국에 이 산 저 산에도 다녀보고, 스킨 스쿠버로 바닷속도 들어가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녀도 보고 공부도 해 보고…. 이것을 해 보아도 저것을 해 보아도 늘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텅 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과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를 고민하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성공이 가치 있는 삶일까? 하면서 저는 미국 휴스턴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먼저 주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 주시고 예수님을 그냥 믿기만 하였는데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It’s good News! 바로 복음이죠, 할렐루야~~

6년 전인 2011년도 한국에서 늦은 나이로 면역학으로 박사를 마친 저는 암 치료에 관한 연구를 더 공부하고 싶어 암 치료 연구 분야에서는 다소 유명한 휴스턴에 있는 MD Anderson cancer center로 박사후 과정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원 당시 영어가 많이 부족하였고 실력도 부족했던 제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 믿기 전부터 저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 은혜입니다. 저는 사실 미국에 가야겠다는 결심하고 난 후,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1~10까지 적은 후 매일 자기 직전에 내 기도를 들어 줄 막연한 어떤 존재에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근데 정말 미국에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미국에 오면 교회에 나가 보리라’하고 미국에 온 그 주에 휴스턴 서울 교회를 소개받고 목장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 후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예수 영접을 하고자 하는 결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계속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과연 믿을 만한 존재인가에 확신이 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영기 목사님께서 인도하신 예수 영접모임에 참석하였지만 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울음만 터트렸습니다. 그날 전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을 거다’ 결단하고 지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근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다음 날 일어났는데 영접을 해야겠다 생각이 번뜩 들며 주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겠었어 옆 연구실에 있던 크리스천 선배에게 부탁하여 예수님 영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교회에서 영접확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 믿겠다가 아니라 믿지 않겠다고 결단한 저였지만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지금은 예수님 없으면, 하나님 떠나서는 내 삶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기 전엔 제가 죄인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나름 착하게 살아서 영접모임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했어요. 어이없죠~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제가 마음의 생각이 악하고 늘 죄 가운데 있다는 것과 죽어 마땅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내가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아가고 믿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제 모습을 볼 때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날 예배시간 찬송 중에 ‘나를 살리신 예수님 ~ ‘이란 가사가 크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를 살리셨음을 다시 깨닫게 하셨고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나이기에 오늘도 더욱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나를 살리셨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죠? 여러분 한분 한분 누가 살리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첫 번째로 주님께서는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해 주시고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는 약속을 알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배드리면서 저는 정말 엉망진창인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실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이리 사랑하여 주시는데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부푼 꿈을 안고 왔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해서 좋은 논문 쓰고 내가 꼭 교수가 되어 돌아가리라…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 창조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욕심만 클 뿐이었죠.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저는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주말도 없이 일하였습니다. 영어도 많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연구 결과로 뭔가 보여 주리라…하면서 저를 잠도 못 자게 하고 너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해 하며 저를 정죄하며 날마다 죽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내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세상의 성공이 내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에 대해 조금씩 너그러워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매달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삶을 조금씩 더 주님께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친 마음과 몸이 회복되어 갔고 나 자신이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연구할때도 주님께 하나하나 기도하면서 진행하니 내 뜻대로 끙끙거리며 할 때보다 3/2 정도의 노력으로 더 좋은 연구 결과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구하였던 것이 특허, 논문도 나오고 곧 암 환자 치료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하시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는 목장 식구, 교회 공동체를 통해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법을 단련시키셨습니다.

교회 다니는 날이 더해지면서 목장 식구들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교회에 다른 분들도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들을 보면서 나보다 신앙생활 한지도 더 오래되었는데도 헌신하기는커녕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고, 어떤 부분에서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분들을 정죄하고 왜 저럴 수 밖에 없는가? 판단하였습니다.
근데 로마서 14:4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의 서거나 넘어짐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은 즉 참으로 그가 세워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를 서게 하실 수 있느니라”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시면 당장에 변화 받을 수 있구나, 그리고 저들이 어떠한 모습이든 간에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거늘 내가 감히 그들을 판단할 수 없구나.’

주님께서는 그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있으시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에 마음을 쏟기를 원하신다는 것,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는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판단하고 정죄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여야 하는 존재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두 번째 계명 마태복음 12:31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요한일서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감정적인 느낌으로 하트 뿅뿅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3:4 “ 사랑은 오래~ 참고~ 13:7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 이제 형제자매를 판단하기보다 참아주고 그들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는 것처럼 저도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그들을 끝까지 사랑할 것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리 결단하고 바로 짠~ 변화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음날 여전히 똑같은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 하겠다고 순종하는 것으로 스위치를 온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리 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저를 보게 됩니다. 아직도 멀긴 했지만요….

다음 단계의 사랑 훈련은 조금 더 강도가 높은 것이었습니다.

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2013년도 연구실을 옮기게 되었는데 교수님과 디스커션 시간에 교수님은 좋은 연구 결과는 아랑 곳 않고 늘 꼬투리를 잡고 당신이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내시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입곤 하였습니다.
전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모든 걸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위로해 주시고 말씀 주셔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에 대한 저의 미움은 점점 커졌고 교수님을 미워하는 제 모습 또한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제 작년 말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과 함께 그 사람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보게 하시고 그분의 영혼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 교수님도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45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 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바로 그 일을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교수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점점 교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졌고 교수님을 사랑하겠다 결단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결단만 하였는데 그 후 하나님께서 교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이전처럼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저를 존중해 주시며 긍정적으로 반응하셨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 갑니다 ~

예수님 만난 후 변화의 두 번째는 세상의 것들을 놓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삶을 바라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세상에 성공, 부, 명예 등이 내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인도 하심과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것을 영원토록 누릴 특권과 하늘의 상급에 대한 약속을 알고 또 믿으니 삶의 가치를 자연히 하늘의 것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전 부족함투성이예요. 나이 50에 남편도 없고 토끼 같은 자식도 없고 경제적 능력이 없으신 노 부모님, 모아둔 재산도 없고 노후는…. 등등.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가득 들어와 계시니 저는 부족함이 없어요.
시편 23편 1절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저의 능력 되시고 저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안에 평강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니 이제 텅 빈 제 마음이 주님으로 가득 차 세상의 어떤 것을 줘도 안 바꿉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신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 조금씩 주님의 눈으로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주님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고 주님의 일에 나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선교잔치에 몽골 국제 대학교 총장이신 권오문 선교사님께서 방문하시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저는 미국에 올 때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어 면역학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고 예수님 믿고 나서는 대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권오문 선교사님으로부터 나흘 동안 간증과 함께 말씀 듣는 동안 그 학교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근데 그 학교에 가서는 영어로 모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저는 미국에 있은 지 5년이 넘었지만,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여전히 큰 부담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마귀가 제 귀에 대고 ‘넌 영어도 못 하는데 어딜 가?’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사실이였으므로 낙담한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다음날 말씀은 참 신기하게 총장님도 영어를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국제 대학까지 세우게 하셨다는 간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는 듯이 말입니다.
선교사님 말씀 중 시편 18편 32절 “이 하나님은 곧 능력으로 내게 띠를 두르시고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맞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이지. 주님이 숟가락이 되라 하시면 숟가락이 되고 젓가락이 되라 하시면 젓가락이 되고 주님께 순종하면 되는 것이지.’ 이 말씀으로 용기를 내어 주일예배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헌신한 후부터 주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총장님 사모님 만나게 하셔서 당장 지원하게 하시고 얼마 뒤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몽골국제대학에 면역학은 커리큘럼에 있는데 그 과목을 전공한 교수는 그동안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헌신할 줄도 이미 아시고 그 학교에 그 과목을 이미 마련해 두신 것이었습니다. 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신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93년에 석사를 면역학을 전공한 후 10년 신경과학 분야에서 일하였는데 면역학을 더 공부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38살 늦은 나이에 박사를 시작하였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미리 계획하시고 미국으로 부르시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하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헌신하게 하시고 ~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작년 12월 말 연구실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2/27~6/2 까지 14주의 대전 세계 선교 훈련원에서 선교 훈련을 마쳤습니다.

훈련기간 첫 주는 그릇의 구석구석 낀 때를 씻어내듯 제가 잊고 있던 죄들까지 기억나게 하시어 눈물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선교 훈련 초반에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있었는데 저는 자원하여 헌신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일꾼으로 부르셨는가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시므로 그 선교사님의 말씀에 자매님이 반응하여 헌신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맞다고 훈련 동기생 목사님께서 이야기해 주었지만 전 여전히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 훈련 수업시간에 이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주님께서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나의 일꾼, 선교사로 불렀도다. 주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제 마음을 아시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선교훈련 동안 새벽기도시간은 주님을 음성에 귀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기도하기 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기도하시기를 원하시는지 여쭙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전에 이종길 목사님 말씀에서 새벽기도때 한 시간 회개기도 하시고 1시간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1시간 주님의 음성 듣고 시키시는 일을 받아 적는다 하셨는데 그때 어떻게 기도시간에 음성을 들려주실까 하면서 무척 부러워하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자 구하는 것들을 엄청 빨리 응답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을 할 때 건 주님이 기뻐하실까 점점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잘 때 침대에 누워 내가 오늘은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종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지 하는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은 말씀에 쓰여있는 있고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날 지켜 주신다는 것은 종일 나를 바라보시고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인데 , ‘그럼 나는 그때 뭘 보고 있는 거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하고 내가 보고 싶은 거 보며 하나님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일 나와 함께 계시는 것처럼 나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문뜩 너무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연애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는 온종일 그 사람 생각하고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미소가 싹 ~ 지어면서 행복해졌지요.
그 사람 생각하면 가슴도 콩닥콩닥 뛰고 ~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그랬다니까요 ~ 젊은이들은 지금 그런 사람도 있겠네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매 순간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구나 …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한가? 그러던 중 프랭크 루박의 편지라는 책을 선물 받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15년 동안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선교하셨고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것을 시도하셨던 분입니다. 이분은 매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고 하나님을 종일 느끼기기를 성공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의지적으로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하는 일은 매우 힘든데 그러나 이로 인해 다른 모든 일이 힘이 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주신 첫 번째 계명, 마태복음 22: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 하여 주 너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말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 이제야 이게 무슨 말씀인지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 내 혼, 내 생각을 다 하여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구나. 요즘 부지런히 애쓰고 있습니다만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일에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아직은 그렇지만 저도 주님과 매 순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주님이 아시기에 그리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사랑하게 하시고 다른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나를 핍박하는 자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제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요한 일서 4:12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해지게 됩니다. 우리의 사랑의 없이는 그분의 사랑이 완전해 질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사랑을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제 저는 내일 한국으로 가고 침례교단 시취를 마친 후 7/31 몽골로 떠납니다.
선교사로서 제가 몽골에 가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23 “그가 이르되 나는 대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 같이 ‘주의 길을 곧게하라’하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침례 요한이 주님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던 것처럼 저는 주님의 통로,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일은 주님이 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선교사,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크신 사랑, 그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 되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

제가 사랑하는 말씀 중 하나인 요한일서 4:16 말씀 읽으며 부족한 간증 마치겠습니다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니라”

박정선

선교 파송 간증: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By | e참빛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사 43:7)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잠 3:5-6)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지금 우리가 앉아 숨 쉬는 일 같은 우리의 크고 작은 삶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1. 저희는 MIU, 몽골 국제 대학에서 사역자와 학생들을 섬기는 전문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2. MIU는 2002년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학생 600여 명, 교수 60의 종합대학 입니다 교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고, 작은 수의 미국, 캐나다, 독일인 헌신자들도 있습니다.
3. 총 학생의 30여 퍼센트가 되는 외국 학생들의 대부분이 주위의 모슬렘 국가에서 왔습니다.
4. 몽골은 서방에 펼쳐진 모슬렘 세계를 향한 교두보 적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는 몽골 땅의 세계를 향한 복음 사역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5. 저희는 가정교회 목장 사역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사역을 시작하려 합니다.
– 교수 사역자들을 영적으로 충전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여 MIU가 효과적인 선교사역의 터전이 되게 돕는다.
– 사역자들을 가정교회 목장의 목자로 준비되게 도와 학생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다.
– MIU 학생들을 복음화하여 제자 삼아 파송한다.
– 불신자 교수들을 복음화하여 사역자로 만든다
– 몽골인들을 복음화한다

저희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오클라호마에서 섬기던 Vision Oklahoma라는 청년 집회를 통해 알게 된 몽골 국제대학(MIU, Mongol International University)의 권오문 선교사님으로부터 MIU에서 동역할 것을 제안받고, 아내와 같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고 생각되어 작년 6월에 선교 헌신을 했습니다. 그후 이수관 목사님의 권유에 순종하여 이번 2월 계획에 없던 대전 침례교단 세계 선교 훈련원에서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시작하면서 곧바로 우리에게 이 훈련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심과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중 있었던 만남과 훈련 과정의 여러 활동을 통해서 그간 내가 가져왔던 선교에 대한 태도를 돌아볼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한 것은 훈련 중 한 훈련 동기생 목사님과 가졌던 대화였습니다. 몽골과 인도에서 5년 넘게 선교 사역을 하다가 훈련받기 위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미국에서 40년이 넘게 살아온 나는 재작년 오래 일해 오던 직장에서 은퇴한 후, 짧게 말해 “휴스턴에서 살던 것을 몽골로 이사해 사는 것…” 이라 하는 마음으로 몽골에 가서 MIU를 선교 기지로 하여 복음 사역을 하겠다고 선교 헌신을 했던 터였습니다. 대화 중 지나가는 말처럼 선교지에 있을 때 죽는 것이 무서웠다 하는 이분의 말이 내게 충격으로 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선교 헌신하며, 막연하게, 내 건강이 악화하여 MIU에 부담이 된다 하면 그때가 몽골을 떠나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훈련받고 있던 나는, 그때까지 선교와 순교라는 것을 내 사역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후 부터 이 땅에 처음으로 복음을 들고 오셨다가 순교하여 이 땅에 묻힌 외국 선교사님들의 선교 사역과 같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선교를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주와 강경의 초대 침례 교회를 세우려 헌신하신 선교사님들의 유적지를 순방하여,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셔서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드리고 이 땅에 묻힌 선교사님들의 흔적에 접하면서, 내가 가서 사역하려는 땅과 그 백성들을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저는 어떤 선교사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네가 휴스턴에서 살든 몽골에서 살든, 나는 너를 창세 전에 내 아들 예수의 제자로, 선교사로 택하여, 내 영광을 위해 창조했다. 어디에서 살던 너는 내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기 전까지는 그저 종교인들의 입에 발린 말처럼 내게 들리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말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된 후, 지적으로 동의는 했지만, 실제적인 삶에 그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분명치 않았고, 감정적인 힘도 없이 애매하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 뜻에 순종하려 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살려 노력해 왔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희생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말을 글자 그대로 믿고 받아드려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지 않는 한, 너의 내 뜻에 순종하며 선한 삶을 살려 애쓰는 것은 나를 향한 너의 선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너의 선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영광을 위해 살라고 나는 너를 창조했다. 내가 너를 향해 오래 참고,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고, 네 삶을 인도하고 축복해 주는 것은 너의 나를 향한 선심 때문이 아니라, 내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너를 살리려는 너를 향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라. 내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너는 너의 지혜와 능력을 무분별하게 포기하고, 내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네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나를 인정해야 한다.’ 하십니다.

말씀하시는 이 일에 관한 나 자신의 지금까지 삶을 돌아봅니다 오래 직장에서 해왔던 일들은 정확성과 확실성을 요구했습니다. 뭐가 하나 잘못되면, 원자로나 정유소나 큰 해양 구조물 같은 위험한 장비와 시설들이 깨져, 큰 재난을 초래할 수 있기에 모든 일에 정확한 계산과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내 성품도 그랬습니다. 무엇 하나 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에 맞지 않는 것은 따를 수 없었습니다. 모든것이 바르고 확실해 졌을 때 결정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이런 생활 방식 뒤에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와 아내가 하려는 것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큰 변화를 의미합니다 시작하는 이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체적으로 살려 합니다. 다른 삶의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드려 믿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일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은 물론, 자연인으로서 내 본질적인 경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 일에 교회의 중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교회가 선교사로 파송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영광입니다. 이 하나님의 큰일에 교회와 동역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비록 휴스턴을 떠나 몽골에 가서 산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세우시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교회의 지체인 것이 감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 힘을 잃고 있는 이때 하나님의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세상에 제시하고, 리드하고 있는 휴스턴 서울 교회의 지체가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희종

 

선교에 대한 저의 마음은 아마도 미국에 온 후 3년째 되는 해에 오클라호마로 이사 갈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편은 늘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디라도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말을 종종 했고, 아들이 선교 헌신을 한다면 가장 기쁠 것이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본인도 선교에 대한 마음이 깊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클라호마에서는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의 학생들을 섬기며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남편은 한시간여 걸리는 회사를 출퇴근하며 청년들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2003년 학생 사역에 도움을 얻기 위해 미주지역 코스타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해마다 코스타에서 학생 멘토 사역을 5년간 하게 되었습니다. 코스타에 참석한 남편은 특별한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1, 2시간 거리의 오클라호마의 세 개의 도시, Tulsa, Stillwater와 Oklahoma City에 있는 7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소수의 한국 유학생들이 19개의 자그마한 교회들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교회들이 작아 청년들을 영적으로 잘 돌볼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삶에 지쳐있는 이민자들 사이에서 젊음의 열정을 발산하지 못한 채 영적으로 시들어 가고 있는 청년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코스타에서는 리더들을 훈련할 목적으로 각주를 순회하며 훈련시키는 GP KOSTA (기드온 프로젝트코스타)를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그 팀을 유치하기 위해 합심해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오클라호마에서 2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각 교회의 목사님들은 이런 예배는 처음이라며 기뻐하셨습니다.

그 후 VISION OK라는 이름으로 매년 방학 기간인 1월 초에 집회를 가졌습니다. 처음엔 1박 2일 나중엔 2박 3일의 일정으로 7년간을 섬기고 2010년 Houston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MIU의 권오문 총장님이 VISION OK의 강사로 섬겨 주셨고 부총장이셨던 이 용교 선교사님이 스틸워터 한인 침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여 주신 결과 청년들이 중, 단기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7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공급하시는 하나님, 채워 주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 하나님, 힘이 되신 하나님,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몇 명이 모이든 청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가겠습니다.” 하시고 한국에서 자비로 와 주신 김형민 목사님. 그분은 청년들에게 많은 영적 각성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여러 교회의 청년들이 하나로 연합되는 집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며 흔쾌히 와 주신 오 대원 목사님과 엘렌 사모님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여기시면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배낭 하나 메시고 오시는 것을 보며 나도 외지고 열악한 곳,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내가 가진 것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 이기도 합니다. 일본을 떠날 때, 유학생 생활 중 교회의 성도님들로부터 받은 깊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기회가 있을 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갚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드렸었습니다.

2015년 4월에 남편이 퇴직하고 난 이후 앞으로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 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해 10월, 지인의 권유로 인터콥에서 주관하는 8주간 과정의 Vision School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IS로 중동지역의 정세가 위급한 상태에 있을 때 그 지역의 현장에서 사역하시다가 오신 선교사님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증하며 도전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 라고 하는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생생한 현장 소식이었습니다. 우리에게 Comfort Zone에서 나오라는 도전이셨습니다. 마음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4월 초에 권오문 선교사님으로부터 정식 초대가 있었습니다. 4년 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몽골을 다녀온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마음에 확신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주님께 작정 기도로 다시금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 드린 후 뜻이 있으심을 느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그곳의 필요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정말로 제게는 아무런 힘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의지가 약한 저에게 미국에서의 안락한 생활보다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을 수 있는 몽골의 광야로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2009년 MIU 학생들이 VISION TRIP으로 스틸워터에 왔습니다. 함께온 선교사님들 중 두 분이 우리 집에 묵으셨습니다. 낮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다니다 지쳐 집에 들어오면 된장찌개에 밥 먹고 커피 한잔 나누며 잠깐 이야기 들어 주고 아침에 따뜻한 먹거리 해준 것 밖에 없는데, 두 분 중의 한 젊은 자매님이 떠날 때 많은 치유를 받았다 말하며 밝은 모습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떠난 후 남아계신 선교사님의 말이 어려서 부모가 헤어진 아픔이 있는 자매라는 말을 듣고 딸을 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저의 작은 섬김으로 힘을 얻고 도움이 되어 그들의 사역에 더 열심을 내어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MIU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은퇴해서 돌아오는 이 나이에 가서 짐만 되면 어쩌나? 염려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기관지가 약하고, 남편도 건강이 좋은 편은 못 됩니다. 위염, 녹내장, 당뇨에, 추위도 엄청 탑니다. 몽골은 영하 40~50도의 추운 날씨에 연탄으로 난방을 해결하기 때문에 매연으로 공기가 무척 안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비록 허약해서 다시 돌아와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사랑의 빚을 안고 떠나려 합니다.

지난 14주간의 선교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MIU에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어 힘이 되어 주고 그들의 사역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결단했던 길이었는데, 선교훈련의 첫 과정을 통해 선교사의 삶은 ‘복음을 살아내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기독교의 본질로의 이끄심이었습니다. 복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영적 무장으로서 자기관리와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Case Study와 현지 선교사님들의 사역 경험들을 통해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한 나라와 민족의 세계관과 문화속에 복음이 전파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지요? 우리도 이곳에서 한사람이 믿음의 길로 나아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주님의 자녀로 서기까지 주님의 손길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선교훈련 때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교사는 총대를 들고 전선으로 나가지만 총알의 공급은 후방에서의 기도의 후원으로 공급된다 하시며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약함을 아시는 성도님들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기를 간청드리며 이만 마치려 합니다.

이옥순

 

 

 

 

 

 

북미원주민 선교 간증: 꼭 필요한 분들과 함께하게 해주신 하나님.

By | e참빛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저 일요일 엄마를 따라가는 곳 이였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냥 무조건 가야 된다고 해서 시간만 보내다 왔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저희집은 사정이 어렵게 되고 미국행을 택하였습니다. 저의 미국생활은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제 방도 없이 거실에서 자며 학교가 끝난 후 저녁에는 부모님을 도와 청소일을 다니고 주말에는 장사를 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은 이 교회에 오게 되었고 저도 따라 나오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은 저의 마음에 없고, 사춘기에 힘든 생활들은 저의 마음을 더욱 더 메말라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저는 제 앞길을 제가 알아서 책임져야겠다는 마음으로 미군에 입대하였고 매일 고된 훈련과 퇴근 후 음주는 계속 되었고 교회와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의 사망과 자살 등 오랜 파병 기간은 저의 마음을 더욱 메마르게 하였고 제대 후 저는 세상에 제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집사님을 만났고, 자의 반 강요 반으로 교회에 다시 오게 되었고 저는 일 년 반 다녀보고 좋으면 계속 다니고 아니면 안 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저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화가 가득했고 누구든 건들면 물어뜯을 기세였고 얼굴은 늘 굳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목장식구들은 저를 무서워하면서도 너무 잘해주었고 친형, 친오빠처럼 대하여 주었고 목자목녀님도 언제나 저를 응원하여주시고 기도하여주셨습니다.

저희 목장은 참 특이한 목장입니다. 목자님이 말을 안 해도 목원들이 알아서 선교를 가겠다고 하는 목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가기가 싫었고 별의별 핑계를 대며 못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이번 선교잔치에서 저는 자발적으로 선교에 가겠다고 헌신을 하였고 선교 모임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초기에만 해도 포기할까 하였지만 제 믿음의 상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있기나 한 것일까 의문이 들었고 가보고 싶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수요 중보기도 모임 선교미팅에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한때 비싼 선교비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교비를 낸 후 ‘이제는 못 빠져나가는구나’ 마음을 먹고 난 후 몇 주 후 간 선교지는 미국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척박하였습니다. VBS사역을 시작한 첫날 저는 ‘아이들과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는 저에게 이상하리만큼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별것도 없는 놀이터에서 너무 신나게 놀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에게 더욱더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잘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오후 장년 예배에는 선교팀에서 예상한 것보다 너무 적은 인원이 참석을 하였고 소그룹을 같이하게 된 원주민분들과의 어색한 식사로 ‘장년 예배는 망했구나! 그냥 시간이나 때우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그룹모임이 시작된 후 저의 자만은 깨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꼭 필요한 분들과 함께하게 해주셨습니다.

원주민분들의 솔직한 쉐어와 저도 마음 문을 열고 한 쉐어에 저는 마음이 너무 편하여졌습니다. 그후 예배를 마치는 찬송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생각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던 그날 저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밀어내고 있던 하나님을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에게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원주민 엄마가 생겼습니다.

그 후 며칠간 선교팀에는 참 많은 공격이 있었습니다. 특히 목요일에는 VBS가 끝나고 마지막 장년 예배를 위해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많이 온 비에 온통 진흙탕이 된 길에 차가 빠지고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생겼지만, 팀원 한 명 한 명 힘을 합쳐 그 상황을 이겨내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망가진 것 없이 기적적으로 마지막 예배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의 상태는 너무 안 좋았습니다. 비와 진흙에 범벅이 된 옷 가짐에 신발도 다 벗고 맨 날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만, 그날 많은 원주민도 참석하여 주시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팀원이 은혜를 받는 너무 좋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기대치 않고 간 선교에서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나고 너무 좋은 선교팀원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선교를 통해 내년에는 더욱더 밝고 좋은 사람이 되어 내년에도 선교를 가기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영혼 구원을 위해 많은 분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그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려 노력할 것이며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선교팀원 한 분도 빠짐없이 너무 감사드리며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중국청소년미션 / 안규식

단기봉사 선교 필수교육

By | News

휴스턴 서울교회에서는 단기 봉사 선교가 시작되는 5월부터 거의 매주 선교팀의 파송식이 11월까지 이어집니다. 목장에서 선교사님을 섬기는 것 외에 직접 선교지로 가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1년에 한번 일주일에서 열흘이지만 선교를 가기 전 오랜 기간 기도로 준비하고, 또 다녀온 후에는 선교지에서 경험한 것들을 기억하며 일상 생활 속에서 선교정신을 간직하며 살기 위 함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단기’와 ‘선교’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아무리 중간에 ‘봉사’라는 말을 더하여 연결 지으려 하여도 ‘단기’와 ‘선교’가 만났을 때 주는 그 억지스러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선교에 기간을 정해 놓는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도 일주일 남짓의 시간을 두고 선교라 하는 것이 너무나 민망하다 생각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단기봉사 선교라 이야기 하며 다녀오는 까닭에 대하여 교육을 주관하시는 정창욱 형제님은 잠시동안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선교사님, 그리고 현지인들 사이에 우리의 관계를 형성하고, 다녀온 후에도 그 관계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지내고자 함이라 하셨습니다.

정창욱 형제님은 단기봉사선교에 임해야 하는 우리의 첫번째 자세는 말 그대로 ‘단기’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한계가 있으며, 우리는 짧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상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생각하고 우리보다 길게 보시는 현지 선교사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같은 지역에 여러 번 다녀오신 분들이 조금 안다고 생각 될 때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종종 있으시다고 하는데, 여러 번 다녀오신 분들 일수록 이 부분에 대하여 더 조심하 셔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떠나기 전 선교를 통하여 우리가 현지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의료봉사, 생명의 물 등 많은 일을 하며 마음속으로 라도 우리가 현지인들에게 베푼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의 생각만큼 우리가 그 분들에게 주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선교를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는 없지만 굳이 그 부분을 드려 다 보더라도 우리가 쓰는 비용의 90% 이상은 우리의 항공티켓과 숙박비, 우리가 먹을 것을 위한 비용이며 정작 현지인들 입장에서 받는 것은 작은 선물과 봉사의 결과물, 그리고 일주일 정도 약간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느낌 정도 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과거에 작업해 주었던 우물이 막혀서 방치되어 있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면 심지어 우리가 봉사기간 주고 갔다 생각하며 기뻐했던 그 작은 부분 마저도 현지인들 입장에서 보면 온전히 받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단봉선’ 시즌을 맞아 떠나기 전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전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기본 내용을 정리하여 교육을 받으시기 전, 또한 교육을 받으신 후에도 다시 한번 보시고 보다 더 은혜롭고 아름다운 봉사 선교활동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단기봉사 선교 사이클

“단기 봉사선교는 일주일 여행이 아니라 일년을 두고 결단, 헌신, 기도, 그리고 행하는 것”

 

단기봉사 선교의 목적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함께 참여하도록”

 

현지인을 위한 우리의 역할

 “뿌리기, 물주기, 거두기”

어떤 분들은 10년을 뿌리기만 하기도 하며,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떤 분들은 처음 가신 선교지에서 일주일만에 거두기도 합니다. 누가 더 헌신해서도 또 누가 더 영적으로 탁월해서도 아닙니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크신 뜻 안에서 뿌리고, 물 주고, 거두는 사역을 그저 잘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단기 봉사 선교에서 얻는 유익

단기 봉사 선교 팀 구성

“팀 빌딩 기본원칙”

  1. 하나님이 일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따름이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맞게 될 어려움이나 장애물보다 훨씬 크시고, 그분은 그들을 다 해결하실 수 있다.
  3. 공동목표를 기자고 일 하지만 결과보다 과정, 그리고 일보다 사람관계가 항상 우선한다.
  4. 팀원은 다 다르지만 설교를 통해 하나님안에서 하나가 된다.
  5. 각자 다른 성격, 은사, 열정과 특기를 가지고 함께 일해 상승효과를 갖는다.
  6. 팀리더의 지도에 절대 순종한다.
  7. 현지 선교사가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현지에서는 절대로 고치려 들지 않는다.
  8. 실제 수혜자는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들이다.

 

선교 가기 전, 선교지에서, 다녀온 후

결론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신다. 단기봉사선교는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곳에 가서 그분 하시는 일을 잠깐 보고 느끼고 오는 것이다.

단기선교 잘하는 분은 가서 하는 1~2주일이 아니고, 여기 있는 50주에서 잘 하는 분이다. 따라서 가기전부터 그리고 돌아온 후에 살고 있는 곳이 선교지 인 것 같이 산다

선교지에 출장 갔다 온 것 같이 돌아와서는 인생은 출장 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산다

가기는 혼자 가지만 많은 사람이 나를 보내서 간다. 그들을 기어가고 여기서 그들을 섬기는 것도,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 섬기는 것만큼 중요하다. 성의 있는 선교보고는 그들에 대한 감사 표시다

거의 모든 장기 선교 헌신자는 단기 선교를 다녀오신 분들이다. 장기 선교사로 가거나 그들을 본격적을 지원하는 거룩한 꿈을 꾸기 시작하라

새로운 삶 간증: 13주 동안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

By | e참빛

새로운 삶 공부 13주 동안 저와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을 그분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재원으로 휴스턴에 와 있던 저희 가족은 주재원 계약이 끝나가던 작년부터 회사의 문제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는 로컬계약으로 바꾸고 본사인 애크런으로 오라고 요구했고, 저희 부부는 이제 막 시작해서 자라기 시작한 교회에서의 믿음 생활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독일로 돌아가는 승진의 기회도, 본사로의 이동도 거부했습니다.

회사는 남편의 지위를 내리고 지금껏 해오던 중요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으로 결정을 냈고, 그렇게 저희는 휴스턴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없던 자리가 만들어지고 복잡한 회사문제에서 벗어나 좀 여유로운 회사 일을 맡게 되는 등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을 다 내려놓아야 했던 남편은 그저 감사만 할 수 있던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이 힘들 거라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잘 이겨내겠지,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며…

확신의 삶 공부 이후 조금씩 성경 읽기와 기도 그리고 영적 서적 등을 통해 하나님 알아가기에 푹 빠져있던 저는 그렇게 남편에게는 무관심했습니다. 그저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 없이 휴스턴에 살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내적 혼란과 씨름하던 남편은 점점 사사건건 시비와 짜증과 불만을 나타냈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저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 같은 싸움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상황을 겪게 하시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게 박살 난 것 같은 황폐함으로 너무 힘들던 때에 이미 신청해 놓았던 새로운 삶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3년을 해왔던 그렇게 좋아했던 목장도, 설교 말씀이 좋아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했던 그 좋던 예배도… 모두 그만두고 싶은 심각한 상황에서의 삶 공부는 그저 취소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자리만 지키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삶 공부는 첫 시간부터 시간이 거듭될수록 누군가 나의 한주의 생활과 마음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콕 집어내게 하는 말들이었고, 저는 애써 지우고 살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몇 주에 삶 공부가 지나고 목장 나눔 시간에 꼭꼭 숨기고 있던 마음의 상처들을 꺼내놓고, 많이 울고, 그러면서 남편과 화해를 하고…그 길게만 느껴지던 전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열어 보인 제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셨던 일들을 해나가시고 보여주기 시작하신 때가…

한 달에 3주를 출장 다녔던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조금씩 체중 감량이 돼가고 있었는데, 수난절 기간에 함께했던 다니엘 금식 이후, 고혈압이었던 혈압이 정상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먹고 있던 혈압약도 다시 처방받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반년 전부터는 먹지도 않고 있던 터라, 처음 보는 남편의 정상 혈압수치는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문뜩 작년 세 겹줄 기도 제목들이 생각나 찾아보던 저는 그때 남편을 위해 적었던, 회사 상황과 건강을 위한 기도 제목 세 개가 모두 응답받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너무나 좋았던 부활절 예배를 마친 다음 날 저희 부부는 그간의 일들과 부활 예배의 은혜로움 등을 얘기하며 시작했던 대화를 3시간이 넘는, 목장 나눔 같은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태어나 자란 환경이 다른 저희 부부는 10분의 대화도 다툼없이 이어가지 못하는 관계였기에, 그날의 시간은 저에게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보다 더 크고 놀라운 기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삶 공부 중 견고한 진을 다루는 시간을 통해 준비하는 기도시간을 통해, 지나온 시간과 사건들의 관점들을 남이 아닌 나에게로 돌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부부의 문제들과 모든 관계에서 내가 잘못한 것들과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을 통해 알려 주셨고 달라져야 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과정들 덕분에 그날의 대화 시간 틈틈이 들었던 닫아버리고 싶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열심히 하던 제게 성경 읽기도, 기도도 숙제도…. 그 무엇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 아님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삶 공부 시작 전 겪었던 일들에 그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고 동시에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던 부부간의 소통을 진정한 대화의 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2년 후 회사와의 계약이 달라질 것에 대비해서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경제활동 준비를 해보라는 남편의 말에… 제 생각엔 이 모든 여유 있는 생활과 시간의 허락 하심이 우리를 위해 주신 게 아닐텐데라는 생각에 뭐든 하나님의 일을 해보겠다고 헌신을 했던 터라 그건 아닌데 했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다음 날 은행 계좌를 확인하던 저는 알지도 못하는 돈이 회사로부터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물으니 본인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지도 못했던 큰 보너스를 회사에서 보낸 것입니다. 맡고 있는 회사의 큰 소송 건 때문에 격려 차원에서 줬겠지만, 무엇을 해야 하나 망설이던 저희 부부에게 이 시간이 하나님의 일을 찾아 해야 하는 시간이 맞다고 하시는 그분의 음성이라고 저희는 처음으로 한마음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방법들로 하나님은 저희에게 그분의 놀라운 계획과 일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삶 공부를 하는 중에 저에게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천국을 생각해보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삶 공부 중반쯤에 전해진 한국에 계신 친정아버지의 폐암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친정 식구들이 늘 부담이었던 저는 언젠가 내가 그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가 하긴 해야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건 그저 언젠가 내가 좀 준비가 되고 할만한 사람이 된 후…. 말 그대로 언젠가 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그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때 되면 절에 가는 정도를 넘어서는 열심한 불교 신자인 친정엄마….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5분 이상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아빠와의 관계….

이런 상황 속에 내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동안 보여주신 그 큰 은혜와 함께하심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냥 딱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 였습니다. 그런데 문뜩 내가 이대로 회피하며 살면, 그 좋다는 천국에 가도 우리 친정 가족들은 아무도 그곳에 없을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에 너무 슬퍼서 하염없이 눈물만 났습니다. 그런 제게 하나님의 일을 해보겠노라 결심하며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남들을 위해 시간을 쓰겠노라 했던 일들에서, 못할 것 같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며 해냈던 목장 발표를 통해서 할 수 있음을 도와주심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한국에 가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면서 두렵고, 무섭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간증문을 준비하며 어지러운 복잡한 마음과 싸우고 있던 제게 하나님은 제 마음속에서 꼭 필요한 한 가지를 꺼내서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거창하게 하나님을 알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180도 변한 훌륭한 크리스천의 모습도 아니고… 그저 언젠가 내가 갈 그 천국에 아빠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 그 진심… 그거면 족하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경험한 하나님….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지 않으시는 분, 혼자 하라고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분, 내 곁의 것을 나보다 더 많이 준비하시고,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의지하며 용기를 내서 다녀오려고 합니다.

13주 동안 새로운 삶이 있음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를,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히 순종하는 하나님 일꾼의 모습을 보여주신 집사님의 헌신으로 이 모든 것들을 해내고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맡은 수업에 첫 제자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저희를 엄청 사랑하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며 수업해주신 집사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희 부부가 이만큼 오기까지 쉼 없이 이끌어 주시고 사랑해주신 집사님과 목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삶 공부 내내 저 대신 아이를 챙겨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쓰레기를 치워주고, 밤늦게 돌아오는 저를 위해 주차장 불 켜놓는 것까지 잊지 않고 챙겨준 남편의 사랑과 후원 덕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음을 다시 한번 남편에게 감사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할빈학원 / 박은경

경건의 삶 간증: 마음에 평안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

By | e참빛

하나님을 믿게 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못 하는 것은 없는지, 아니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것인지… 그런 의문 때문에 작년 말엔 영접 모임에 다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7-8년 전쯤 처음 영접모임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군대에서 영접했고, 영접은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한번 태어나는 것처럼 영접도 한 번만 하는 것이라는 교회로 이끌어 주신 친구 어머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영접 확인한다고 손들었었습니다. 그래서 확신의 삶을 마치고도 허그식을 못 한 것이 아쉽기도 했고, 영접하면 뭔가 변해야 하는데 내가 변하긴 했나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 있어, 확인하기 위해 영접모임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번 영접 모임에는 ‘영접을 다시 해야겠다’ 생각도 했었는데…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러면 안 되겠다는 마음의 불편함이 있었고, 또 영접 확인한다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도 의심이 들어 이수관 목사님께 여쭈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영접한 사람같이 보이시나요?” 그렇다는 말씀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경건의 삶을 들으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런 궁금증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때는 하루에 한 번씩 해야 하는 경건의 시간 숙제를 하루에 두 번을 한 적도 있고 교과서를 정독하고 나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속독으로 답만 찾은 적도 몇 번 있어서 삶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간증하라고 하신 말씀은 시험 보고 성적을 잘 받은 학생의 마음 같은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아! 내가 뭔가 제대로 한 게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간증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뭘 더 잘하고 실제로 학생이 시험 점수를 잘 받아서 등수가 좋은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증하는 것이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자랑하러 나왔는데, 저 자신에 대한 자랑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솜씨가 부족해서 자랑처럼 들리시더라도 그렇게 듣지 마시고, 너무나 부족한 저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으로 들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인격이나 성품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이 없는 분 중에서도 인격과 성품이 좋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믿음이 생기시면 더 성품이 좋아지셔서 신앙적으로도 존경을 받으시고 교회 안에서도 아주 쓰임을 많이 받으십니다.

반면에 전 세상의 시각으로 봐도 인격이나 성품으로 아주 낮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생기고 많이 좋아져도 별로 인격이 좋다든지 성품이 좋아 보이진 않는 거 같습니다. 워낙에 바닥에 있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 공부나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믿음이 자랐고 많이 성장해서 나눌 수 있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증자로 선택된 거 같습니다.

평소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하며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진 저는 아내에게 짜증을 많이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이 싸웠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저는 그런 일들을 잘 이겨내지 못하고 자책감으로 금방 우울해 지고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제 생각에 지옥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건의 삶을 통해 이런 악순환을 끊고자 영적 과제를 아내에게 짜증 내지 않고 부드러운 말씨로 대하기로 정하였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어느 정도 성공한 거 같습니다. 아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좀 거룩해 진 거 같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왜 나는 항상 짜증이 충만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걱정과 염려였습니다. 신중형에 안정형인 성격에 의심이 많다 보니 항상 불안하고 그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항상 짜증 충만하고 화가 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제 생각에 경건의 삶은 여러 가지 하나님께 가까워지는 훈련들을 통하여 나를 하나님께 내려놓고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삶 공부 인 거 같습니다. 경건의 삶 숙제인 매주 세 번의 경건의 시간 갖기와 말씀 묵상과 함께 기도하면서 저도 모르게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걱정과 염려가 줄어들었습니다. 또 의식적으로 걱정이나 염려가 생길 때마다 큰 숨을 한번 쉬고 짧게 기도하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좋아지고 있음을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선 항상 시간 안에 마무리 못 할 거 같은 불안감에 쫓기면서 일하기 때문에 동료의 부탁들을 퉁명스럽게 거절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부드럽게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겼고, 그렇게 걱정과 염려하는 횟수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짜증 내는 횟수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시시때때로 걱정과 염려가 찾아오고 불안해 질 때가 아직도 많습니다. 그럴 때 마다 큰 숨을 한번 쉬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내려놓습니다.

꼭 무릎 꿇고 눈 감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독백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기도합니다. 그럴때마다 마음에 평안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영적 과제 이외에 저 혼자만의 마음의 과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2012년쯤 새로운 삶 수강 이후로 경건의 삶 수강을 지금까지 미뤄왔습니다. 마음의 불편함 때문에 경건의 삶 공부를 수강할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4년도 넘은 일이지만 마음속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응어리로 남아있었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이 다투고 사이가 나빠져 오랫동안 좋지 않은 사이로 살게 되면 마음이 아프듯이 하나님도 교회 안에서 미워하고 용서 못 하는 저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신다는 말씀을 주일 설교 말씀 중에 목사님께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람 마음이 이기적인 것이, 감사하고 죄송한 일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한가지 서운함 때문에 화가 나고 용서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번에 경건의 삶을 계기로 마음속으로 용서하고, 그 마음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꼭 전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벌려놓은 일이 많아 시간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생각처럼 편지가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삶 공부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서 쓸 수 있었고, 편지를 주보함을 통해 전달해 드렸습니다. 온전히 제 입장에서 저의 마음을 전했기 때문에 받은 분들은 저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 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 딴엔 기대가 컸었기 때문에 실망도 컸었습니다. 이제는 다 용서하였습니다. 그 보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제가 실수 한 것들, 실망 시켜드린 것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각식을 준비하면서는 무엇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무엇을 태워버려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과거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이후 새어머니가 들어오시고 그런 과정 중에 부모님께, 특히 아버지께 상처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믿음이 생기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를 용서하고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에 충실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야겠다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화가 나고 일이 안 될 때면 어김없이 부모님이 원망이 되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잘 사그라지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 소각식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태움으로써 과거를 청산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편지를 쓰고 소각식에 임했습니다. 제 차례를 기다리면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화가 조절하기 힘들 정도로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저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누구도 저와 동생에게 왜 엄마가 집에 오지 않는지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동생과 이유 없이 울었던 모습도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한테 전화했다고 아버지께 아주 많이 심하게 맞았던 일들도 생각이 났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새 어머니께 들은 대로 집 전화번호가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는 말이 안 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말했다가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담임선생님께 뺨을 맞고 호되게 혼난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도대체 왜 맞아야 하고 아들이 엄마 보고 싶어 전화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는 그냥 그렇게 일련의 일들을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억울하다는 것이 뭔지도 몰랐던 거 같습니다. 그런 기억들이 밀려오며 화가 났고 그 분노 때문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소각식 날은 왜 그런 것들을 생각나게 하셨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목장에서 나눔 시간에 소각식 날의 일들을 나누면서 왜 그런 것들이 생각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련의 일들을 기억나게 하심으로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억울함과 밑도 끝도 없는 분노의 이유를 소각식 날 알게 하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저보다도 먼저 그 이유를 알고 계셨고 같이 아파하셨다는 걸 알려주시려고 하신 거 같단 생각도 듭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 하심이 있었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고 난 지금은 화를 조절하는 것이 조금은 쉬워진 것을 느낍니다. 이전엔 화가 나는지도 짜증이 나는지도 모르고 화내고 짜증 내 놓고 나중에 후회했었는데, 이제는 화가 나는지 짜증이 나는지 압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염려가 될 때마다 하듯이 큰 숨을 쉬고 기도합니다. 예전보단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소각식을 통해 억울함의 이유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심으로써 분노를 다스릴 수 있게 하신 것 같습니다.

경건의 삶 9주차 때쯤 몇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생기면서 아주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산 지 2년밖에 안된 차의 앞 유리가 깨졌고, 앞 유리를 교체하기 위해 구글 리뷰를 보고 고용한 사람이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 너무 엉망으로 수리하였고, 사소한 일로 아내와 다투는 일도 생겼고, 토요일 밤 영화를 너무 오래 보다 주일 사역과 예배를 빠지는 일이 생기면서 예전처럼 우울함에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같이 사역하시는 삶 공부 동기의 기도로 겨우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차가 저에게 우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믿음의 동역자들의 기도 능력을 체험하면서 그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동안 안 보여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저의 나쁜 세상의 습성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기도, 예배, 묵상 등의 훈련을 통해 제 안에 깊숙이 눌려 있으면서 언제든지 나올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방심하면 언제든지 저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 하나님이 원망이 되기도 했지만, 말씀 드린 거처럼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죄성 많은 저 자신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예배의 훈련을 공부하던 주에는 평소보다 사역에 일찍 나가서 기도로 준비하면서 평소에 기도가 부족함을 반성하였고, 예배에도 좀 일찍 들어와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기도로 준비한 것이 효과가 있어 예배 때 목사님의 말씀은 저에게 정말 위로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날 말씀은 흉내 내는 것이 시작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잘 몰라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목사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려 노력하고 믿음의 선배들을 보고 따라 하고 흉내 내며 살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주변에서 그렇게 따라 한다고 흉내 낸다고 예수님의 옷을 입는다고 그 더러운 죄가 감춰지냐고 없어지냐고 말합니다. 그럴 때 마다 포기하고 싶고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주일 목사님의 말씀은 저에게 마른 땅에 단비와 같이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경건의 삶을 수강하면서 흉내 내는 방법들을 훈련하고 연습하였습니다. 벌써 많이 까먹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이란 것 하나는 확실히 기억합니다.

또 제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일밖에 없다는 것도 기억합니다.

이번 경건의 삶을 통해서 전 많은 것을 경험하였고 배웠고 얻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큰 수확은 기도발 좋고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얻은 것입니다. 말이 많은 저의 말을 들어주다 집에 늦게 들어가 아내에게 잔소리 듣고도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는 기도 짝을 포함한 48기 동기 여러분들과 꾸준한 묵상과 기도 생활을 몸소 보여주신 집사님 고맙습니다.

쿠아너쉬 / 이경태

어머니날 특별간증: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

By | e참빛

저는 곧 Memorial High School에서 졸업할 12학년입니다. 오늘 제가 지난 2년 동안 청소년 목자로 사역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전에 저에 대해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울 차병원에서 저희 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때 당시엔,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직장을 다니셔서 전 광주에 계신 친할머니와 2년을 살았습니다. 저의 어릴 적 기억은 3~4살 정도였을 때 짜장면과 같이 나온 양파를 춘장에다가 찍어 먹는 기억과 엄마랑 한국에 있는 박물관이라는 박물관은 모조리 가고 또 간 기억과 매일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늦게까지 축구 경기를 해서 엄마나 이모가 운동장으로 뛰어오시는 기억이 납니다. 이 기억들 사이에, 교회를 매주 간 기억이 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가는 덕분에, 그때부터 저와 제 동생은 예수님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엄마는 제 동생이 뒤늦게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해서 다니시게 되었고, 저희 아빠는 한국에선 교회를 아주 안 다니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서, 8년 전, 저희 가족은 아빠가 주재원으로 발령 나신 휴스턴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저는 휴스턴이 텍사스에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제부터 풀밭과 말들과 사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휴스턴에 도착 한지 며칠 후에 목장을 방문하자고 했을 때,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하나님은 한 목자님과 목녀님을 저희한테 보내주셔서 이 교회를 나오게 됐고, 제가 이 자리에서 간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그렇게 말이 많고 행동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하게 하게 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나 가족들 옆에서나 조금 까불고 장난치는 아이였습니다. 6학년 때 어린이 목자를 처음 했을 때, 역시나 제 성격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랑 같은 학년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같은 나이인 제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게 싫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말을 귓등으로 듣고 제가 목장을 하려 할 때 방해를 하곤 했습니다. 이 기억 때문에 9학년 때 그 당시 저의 목자들이었던 형 누나가 저를 보고 목자를 하자 했을 때 조금 꺼려했습니다. 제가 말수가 많이 없고,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곧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런 큰일을 시작하는 게 학업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형 누나들은 저 대신 우리 찬양팀 리더를 목자로 선택하고, 2년이 지났습니다. 저희 목장은 또 분가를 하게 됐고, 이번에도 목자인 제 친구는 제가 목자가 되면 좋겠다고 추천을 하였습니다. 제 성격은 많이 바뀌지 않았고, 제 믿음도 그렇게 굳세지 않았습니다. 곧 모든 사람이 어려워한다는 11학년으로 올라가게 돼서, 9학년 때 보다 나은 케이스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저와 제 부모님은 2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면, 하나님이 저를 쓰기 원하신다고 판단을 하고, 목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목장은 오랜 시간의 나눔과 친교를 통해서 가깝고 나이를 떠나서 다 친구 같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학교를 다니고, 토요일 저녁에 있는 목장을 매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목자가 된 목장은, 처음 몇 달에는 그렇게 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목장의 흐름을 컨트롤한다는게 말이 많이 없는 저한테는 어려웠습니다. 기도시간을 인도 할 때는 제가 기도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게임이나 activity를 할 때는 목장 아이들이 재미를 없어 한다고 느꼈습니다. 뭐든지 할 때마다 제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성경 말씀 정리 할 때는, 너무 진지하고,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 잡지 못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습니다. 그리고 이맘때쯤에는 학교 성적과 SAT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목장에서부터 받았던 스트레스는 배가 되었습니다.

돌아봤을 때 제가 이 자리에 목자로 아직까지 있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옆에 같이 있었던 감사한 사람들 때문이였던 것 같습니다.

집에선 언제나 하나님 일을 중요시하시고 먼저 하시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특히 저희 엄마가 하나님 일을 먼저 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VIP분들에게 목장 나오시라고 물어보시는 끈질김과 목장에 계신 형제·자매분들에게 부으시는 사랑을 집안에서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멘토들이신 샘 오 전 목사님과 교회에 계신 많은 어른 리더분들부터 넘치는 사랑, 걱정, 조언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하나님을 위한 뜨거운 사랑과 섬기는 마음은 저를 언제나 놀랍게 했고, 저도 그래야 되겠다는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론 제 친구들… 서로가 어려울 땐 같이 격려해주고, 서로가 기쁠 때는 같이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제가 아직도 목자를 할수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 덕분에 저만의 목장을 리드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뱉는 말마다 빵빵 터지진 않았지만, 유머와 재치를 사용해서 목장의 흐름을 조금 더 밝게, 조금 덜 어색하게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전에 제가 걱정한 저의 진지한 목원들한테 준 조언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의 말이 목원들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썽을 자주 피우는 아이들도 충분히 목장에 안 나오고 친구들과 놀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매주 목장에 나오곤 했습니다. 찬양시간 때는 말은 제가 작게 하지만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확신 있고 크게 찬양을 하였습니다. 목장 밖에서는 저의 목원들중에서 한 명이라도 큰 형, 오빠, 그리고 선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서, 매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목장에선 이거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목장 밖에선 위선자로 보이는 게 저는 싫어서 말도 더 조심하고 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목장 애들 과 몇 주 안 남았습니다. 돌아봤을 때, 얼마나 좋은 목자였냐고 누가 물어보시면 저는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 목원들한테 물어보면 저는 아직도 많이 어색하고 이상한 형, 오빠라고 대답을 할 겁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하나님이 “수고했다. 네 아들” 하시는 게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답을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목장을 통해서 제가 더 많이 크고, 배우고, 또 배웠다는 것,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것과, 그 누구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낀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목원들한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So apparently, it’s a thing for all the shepherds to say something to their members at the end of the testimony, but since I was the first one to go, I didn’t have the chance to say anything. I just wanted to thank you guys and girls for sticking around with me. I know I was lacking in many ways but you guys still showed up for house church every week and entrusted the leadership role in me. Just know that I will always be there for you guys

메모리얼 /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