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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최

목자 임명 간증: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

By | e참빛

안녕하세요. 지난 2년간 뜨미아르 목장에서 목장 오빠로 지내다가, 이번에 살라띠가 목장으로 분가해서 목장 아빠로 섬기게 된 문재만 입니다. 많이 부족하고 이기적인 저에게 위로의 빛으로 찾아와 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지금 이 자리에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6장 9절 말씀입니다. 저는 계획하는 걸 좋아합니다. 준비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순서대로 계획했던 일들을 이루어 나가면서 짜릿한 행복을 느끼지만, 반대로 단 하나라도 잘 풀리지 않으면 수많은 근심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서 있는 것 입니다. 저는 못하는 게 많습니다. 어렸을 때 유치원을 다녀와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 “재만이 오늘 유치원 어땠니?” 하루에 일과에 관해서 물으시면, 저는 “괜찮았어요.” 그 대답을 듣고 당황하셨는지 어머니께서 그때 제가 맛있게 먹고 있던 된장찌개가 어떤지 물으시면, 저는 “괜찮은 거 같아요.” 어렸을 때 저는 감정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드라마를 봐도, 다들 ‘송중기, 송혜교’ 주인공이 된 거처럼 눈물을 훌쩍일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목장 나눔 시간에는 다들 공감해주며 기도해줄 때 저는 ‘영혼 없는 리엑션’으로 국어책 읽는 거처럼 응원해주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눈에 땀’을 주셨습니다.

목장 식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했을 때 ‘기쁨의 눈물’을, 목장 식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간다고 느껴질 때 ‘아픔의 눈물’을 주셨습니다.

저는 음악을 못 합니다. 악보도 읽지 못하고, 고음불가, 박치인 제가 목장에서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천천히4/4 박자, 기타 치면서 가장 처음으로 배운다는 G 코드, 그리고 그 두 개로 할 수 있었던 ‘옛날 찬양들,’ 그런 저만 아는 찬양을 하면서 매주 목장 시간에 혼자 땀을 흘리며 독창을 했었고. 그나마 그 찬양들이 익숙해질 때 어떤 목장 동생이 그러더군요, “오빠… 우리 새로운 찬양 하면 안 돼요?” 매주 목요일 밤 찬양 준비하는 게 부담이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찬양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매주 목장 식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찬양이 많아서 고민입니다. 저는 요리를 못합니다. 항상 라면을 요리라고 생각하던 저는, 요리재료가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습니다. 마트에 가보니 간장이 하나가 아니에요…. ‘양조간장, 진간장, 국간장, 조선간장…’ 또 고추장 더 많아요…. ‘태양초 고추장, 찹쌀고추장, 현미 고추장, 순창 고추장…’ 그리고 ‘순한 맛, 보통 매운맛, 매운맛, 매우 매운 맛 많이 안 해본 저는 매주 금요일 목장을 준비하면서 요리 공부를 합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어주는 배고픈 목장 식구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가장 못하는 건 순종이였습니다. 누군가 하라 하면, 절대 안 하고, 하지 마라 하면 한번 해볼까? 고민하는 이런 뺀질거리는 성격 때문에 그동안 목자 목녀님께 큰 근심을 드렸었고. 또 그런 고집과 욕심 때문에 바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멀리 돌아와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막 분가한 4개월 차 새내기 싱글 목자입니다. 지금 앞에 계신 여러분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목자님’이라는 호칭은 저에게는 많이 부담이고 도전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저의 능력과 계획이 아닌 항상 부족하지만, 그때마다 능력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연출에 목장 드라마를 기대해봅니다.

드라마 제목: “부르신 곳에서”

연출: 하나님

출연: 문재만과 살라띠가 목장 식구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

내용: 목자로 헌신하면서 기대 반 걱정이 많아진 나, 매주 도전이지만 내 삶을 이끌어 주시는 따스한 성령님을 만나서, 달콤 반전 있는 아름다운 목장에 모습을, 코미디 풍으로 그린 드라마.

살라띠가/문재만

부부의 삶 간증: 삶공부를 통해 생긴 부부의 소망

By | e참빛

저희 부부는 가정교회를 하는 울산의 다운공동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2017년 8월부터 이번 달까지 남편의 연구년으로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가족입니다. 이곳에서 생명의 삶을 들은 뒤 다음 삶 공부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부부의 삶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저희 교회에는 아직 부부의 삶이 없으니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우리끼리 싸운 뒤 해결이 안 되어 목장 모임에서 오픈하여 도움받고 수습을 했던 것도 생각이 나면서, 앞으로 목자 목녀의 길을 가게 될 수 있는데 이 곳에서 우리 부부 사이를 말씀 앞에서 점검받아보면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 수강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13주 동안 진행된 부부의 삶은 마치 또 하나의 특화된 목장 모임과 같았습니다. 부부 관계에 기틀이 되는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 매일 큐티와 기도가 숙제로 주어지고 수업시간에 만나면 매주 감사한 내용 및 큐티 묵상을 나누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매주 주제와 관련된 말씀과 질문들에 대한 각자 부부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배워가고 점검하는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부부의 삶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숙제 중 하나는 카우치 타임이라고 있는데 일주일에 5번, 30분씩 카우치에게 앉아서 다른 모든 이야기를 배제하고 오롯이 두 사람의 이야기만 해야 하는 숙제입니다. 우리 부부가 주로 하는 아이들 이야기마저도 하면 안 되는 이 숙제가 있음을 보고 남편은 당황해했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참 기뻤습니다. 늘 결혼 뒤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귀결되어 버리는 듯한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던 터라 이 카우치 타임을 통해 나의 갈증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카우치 타임에 대한 인식 차이는 결국 첫날부터 투덕거리며 우리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저는 혼자 울면서 이야기하고 남편은 듣고 있는 카우치 타임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카우치 타임을 마치고 나니 뭔가 남편에게 불만이 생기면 부풀어 오르는 불만 주머니에 바람을 빼내어 버린 듯한 편안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일 년에 한두 번 이 불만 주머니가 꽉 차오를 때 어떠한 일이 계기가 되어 빵하고 터져 싸우고 맘이 상하게 되는데 그 에너지를 미리 맘 상하지 않고 빼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남편과 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들과 좋았던 것들을 적절히 조합한 저의 이야기를 남편이 주로 들어주며 그야말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좋은 시기도 몇 주…. 용서의 훈련이라는 과를 배우며 제 안에 이미 그때 일은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용서하지 못한 제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남편의 필요를 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사는 제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불편한 마음은 그때 그 정도 한 것도 충분한 것 아니냐는 마음속 항변이 되어 결국 카우치 타임 때 불평으로 튀어 나와버렸고 몇 주간 꾸준히 저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실천하였던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부부의 삶을 하는 동안 부부의 싸움을 평상시보다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별일도 없는데 매일같이 30분씩 붙어 앉아 오롯이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소하게 투닥거리는 시간을 반복하면서 결국 우리가 싸움에 이르는 패턴을 벗어나는 지혜를 배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듣는데 얼마나 느리고 무딘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 멋대로 화내는 데에는 어찌나 빠른지 보게 하셨습니다.

삶 공부 기간 동안 참 좋았던 것은 이렇게 투닥거리다 삶 공부로 만나면 

매주 주제에 맞추어 관련된 말씀들을 묵상하며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법을 부부가 같이 동의하며 배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임에도 이기적인지라 혼자만 그런 말씀 배웠으면 억울하다고 나만 이렇게 해야 하냐며 항변하며 흘려버렸을 말씀들을 부부가 같이 배우니 서로 부족한 존재임을 보며 이제 같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도 불특정 다수에게 두루뭉술하게 적용하여 대충 주님 뜻대로 살고 있는 착각이 들었던 말씀들을 정확하게 내 배우자를 가리키며 “너 이렇게 하고 있니?”라고 물으시는데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기에 결국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저와 남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정확하게 지칭하며 아내 된 이들에게 향하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마저도 페미니즘적이 생각이 강하였던 저는 사도 바울이 결혼을 안 해 보셔서 저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고“남편이 주님 뜻과 다른 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어쩌란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스~을쩍 비껴가려고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제게 부부의 삶을 하면서 주님께 하듯 하라고 말씀이 제 수준에서 이해가 되는 일은 정말 감사하였고 우리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해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여러 가지 경험들을 통해 제 삶에 원치 않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결국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이끄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제 남편이 간혹 실수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정을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는 믿음과 신뢰를 버리지 않는 것, 남편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나와 아이들의 유익과 행복을 정말 원한다는 믿음과 신뢰를 지키며 그때를 기다리는 것. 이것이 제 수준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삶에서 적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돌아보니 부부의 삶을 하는 동안 둘이서 작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합니다. 좋다가 힘들다가 또다시 애틋해지는 짧은 기간을 돌아보니 가장 좋았던 시기는 남편이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삶에서 실천해 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시기는 뭔가 갈등이 있는데 그 갈등의 뿌리 깊은 나의 원인이 보이질 않고 상대방이 부족함만 보였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가장 애틋했던 시기는 내가 나의 부족함을 보게 되었는데 그 부족함은 이미 남편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 허물을 덮어주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결혼 10년 차에서 15년 차에 권태기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런 권태기가 오기 전에 우리의 애정을 지켜가는 지혜를 부부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음이 참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부부의 삶을 하면서 필수적으로 암송해야 하는 구절이 6구절 있는데 이 구절들을 외우기도 하였고 이를 삶 공부 동안 계속 묵상하며 적용하는 훈련을 해서인지 적절한 시기에 생각이 나서 우리 삶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고 있음도 참 감사합니다. 부부의 삶을 마치고 나니 부부 생활의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늘 불편하다고만 느꼈던 상대방의 모난 부분과 나의 모난 부분이 서로를 다듬어 주는 다듬잇돌이 되어서 살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흘러 세상 그 누구도 공유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귀한 시절을 함께 한 반려자로서 남게 되리라는 소망…. 이 귀한 소망을 주님과 함께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저의 남편과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마그레브/송정선

부부의 삶 간증: 삶공부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지난 13주의 부부의 삶 과정은 지난 12년간의 부부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 보다 더 낫은 부부의 삶을 그려갈 수 있었던,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제가 35세, 그리고 아내가 30세 되던 2006년에 결혼하여 올해 12년 차 된 부부입니다. 아내를 만날 당시, 저의 나이는 34세, 직장은 울산에 있었고, 아내는 전주에 직장이 있어 전화로 주로 대화하고 주말과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데이트하고, 만난 지 1년 정도 교제 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아내가 울산으로 발령을 받아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울산에 정착하게 되었고, 울산다운 공동체교회에 출석하여 목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가정, 직장 그리고 믿음 생활에 균형을 이루며 아내와 저 모두 주어진 생활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것 같습니다. 2017년에는 두 번째 연구년을 휴스턴으로 오게 되어, 가정교회의 본산인 휴스턴 서울 교회에서 많은 섬김과 은혜로운 예배, 좋으신 분들과의 교제 등 많은 것을 누리고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12년의 부부의 삶을 되돌아보면, 매년 1년에 한두 번 정도, 작은 부부 싸움을 했던 것 같고,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싸움도 두 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부의 싸움 패턴은 이렇습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및 대화 기술의 부족으로 오는 의사전달의 미숙으로 말다툼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한계가 이르면, “알았으니 이제 그만해….”, “시끄러워“, 라며 화를 내며 대화를 중단시켜 버립니다. 한 번은 싸움 중 제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난폭한 행동을 표출하여 싸움 상황을 종료시킨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일단 물러섰다가 상황이 진정되면 다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저는 화를 낸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조금 누그러져, 다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한 후, 서로 사과하고 부부 싸움은 정리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거치지 않아도 될 한 단계가 항상 있었고, 이번 부부의 삶 과정은 이 단계의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카우치(Couch) 타임을 통해, 나는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아내는 단지 덮어 두었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것들이 아내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쓴 뿌리로 자리 잡아서 지금의 우리 부부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카우치 time은 매일 20~30분 정도 카우치나 테이블에 편안하게 앉아 오직 부부만의 얘기를 하는 시간으로 “부부의 삶” 내내 해야 하는 제일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묵혀두었던 얘기를 꺼내어 정리하고, 나중에는 일상의 일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 등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말씀처럼,

카우치타임을 통해 부부만의 대화를 함으로써, 서로의 생각을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후, “4과 용서의 훈련”과를 통해, 지난날 서로 상처를 준 것들에 대해 다시 짚어보고, 사과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가져, 과거의 일들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되었고, 저희 부부가 더 친밀하게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큰 숙제 중의 하나는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욱하는 성질 때문에 잘 참다가도 어느 한계치에 도달하면, 격하게 화를 분출하기 때문입니다. 

“감정 다스리기”와 “분노 다스리기”과를 통해, 자기에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화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성경적인가를 배웠습니다.

특히 잠언 29장 11절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 “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분노에 휩쓸러 분노 때문에 난폭한 행동이나 심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갑질 및 분노를 잘못 다스려 망신을 당하는 사례가 많은데, 나 또한 가정에서 ”가끔“ 갑질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회계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부부의 삶 강사이신 김은미 목녀님의 말씀처럼 화를 알람처럼 활용하여, 화가 났음을 인정하고 나의 감정을 주변 사람에게 솔직하게 표현해야 하지만, 분노의 노예가 되어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특히 요쯤은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저의 반응이 나의 상한 감정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아닌, 자녀들의 잘못을 효율적으로 지적하고 향후 그 행동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지혜롭게 지도하는 것이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이주 전, “부부의 삶” 강사이신 김은미 목녀님의 집에 모여 부부간 사랑의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의 반성문 같은 편지를 아내에게 읽어 주며, 쉽지는 않았지만 유익했던 부부의 삶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젠 “부부의 삶” 과정은 끝났지만, 하나님이 부쳐준 한 팀으로, 한 몸이 되어 서로서로 이해하고, 같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부부의 삶”과 정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과제로 남습니다. 기억의 남은 실천 과제는 카우치 시간의 지속적 활용, 대화식 기도법 활용, 아이들을 독립시키는 연습, “12과 만족스러운 부부생활”에서 약속했던 아내가 원하는 3가지 과제 실천 그리고 주요 기념일 챙기기 등입니다.

마그레브/구인수

집사 안수 소감 간증: 라몰리나 최성규

By | e참빛

이번 간증소감문을 준비하면서 제가 휴스턴 서울교회를 다닌 지 벌써 17년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강산도 변한다 하는데 변화된 저의 삶을 돌아보며 저와 동행하시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저는 휴스턴 서울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 저의 삶의 목표와 방향이 정해지면서, 저의 인생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저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알게 되면서, 이젠 저의 삶이 조금은 단순해져 가고, 조금은 여유로워져 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생명의 삶 공부를 들었던 그 첫 수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삶 공부 첫 시간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온 우주에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사랑이 나와는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은 그 하나님의사랑이 뜨겁게 제 마음속 깊이 다가왔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던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잔잔히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저는 안 믿는 가정의 권위적이고도 엄하신 부모님 밑에서 제법 말 잘 듣는 모범적인 둘째 딸로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자는 남편 잘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것이 제일이라 늘 말씀하셨고,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저에게는 특별한 미래에 대한 꿈도, 별다른 목표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생활 기록부에 장래의 희망을 적는 란에는 그 흔한 선생님, 간호사 대신에 저는 늘 ‘현모양처’라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 후에도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소극적인 성격에 걸맞게 특별히 뭘 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남편이 돈 잘 벌어 올 수 있도록 뒷바라지 잘하고, 딸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고이고, 삶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왔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별 관심도 없었고, 저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목녀의 자리로 불러 주셨고, 목장 식구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게 하셨습니다.

VIP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망도 생기게 하시고, 섬김에서 오는 기쁨도 알게 하셨으며, 기대를 가지고 기도했을 때, 절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변하고, 아슬아슬하여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았던 위기의 가정이 극적으로 회복이 되는, 크고 작은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게 하셨습니다. 항상 평탄한 장미꽃 길만은 아니었지만, 어렵고 힘든 일, 갈등과 좌절을 겪을 때에도 인내하며 하나님을 믿고, 더욱 신뢰해야 함을 깨닫게 하셨고 부족하고, 제 삶 속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목녀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특권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집사 아내라는 새로운 사역으로 불러주시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처음 남편이 집사 후보로 선출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거운 부담감으로 인해 잠시 망설이며 갈등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실 때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순종하기로 결정하였고

저희를 어떻게 다듬어가시며 사용하실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도 있습니다.사실 집사 아내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보고 배울 수 있는 훌륭하신 목녀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따라 하고, 하나씩 배워가며,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몰리나/최성규

집사 안수 소감 간증: 라몰리나 목장 최철호

By | e참빛

어릴 적에 곱게 색칠된 부활절 달걀 두 개를 양손에 받아들고, 조심스레 집으로 가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마 그때부터 교회라는 곳은 참 좋은 곳, 풍요로운 곳이라는 인식이 제 어린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어 왔던 것 같습니다. 그 달걀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날부터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으리라 생각하니, 오늘 이렇게, 안수집사가 되는 자리에서 제 마음이 벅찬 감동과 감사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먼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작년 10월 중순, 이수관목사님으로 부터 집사 후보 축하 이메일을 받고, 시취식, 교인투표를 거쳐 오늘 안수식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경험하고 느꼈던 부분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취식은 저에게 참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우선 시취식라는 낯선 단어가 주는 짐작할 수 없는 생소함과 난해함. 시취인지 숙취인지 어감상으로 모호하여 난처한 생각도 해보았고, 어찌 보면 무슨 중국 무술영화의 뜻모를 한자 제목 같기도 하여 결코 친근해질 수 없는 이만저만 불편한 단어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시취란 “시험을 보아 인재를 뽑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무과를 위한 시험과정이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시취식이 마치 무슨 장원급제과정은 아니더라도 입사할 때 면접시험 보는 과정은 되겠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신선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뿐. 시취식이라는 것이 강단에 올라가 눈부신 조명 아래 성도님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목사님들과 집사님들의 구두 질문에 바로 대답해야 하는 방식이고, 게다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예상문제도 전혀 없다 보니 무엇을 질문하는지 짐작할 수도 없고, 혹시라도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쩔쩔매게 되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시취식 3주 전 시험 준비를 위한 책 한 권을 목사님께서 선물로 주셨는데, “영적리더쉽”라는 신앙 서적이었습니다. 최근에 내용이 보충되어 더욱 두툼해진 개정판이라 조금은 더 부담스러웠지만, 시취식날에 대한 그 염려나 두려움에는 비길 바가 못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가며 만나는 집사님들이 넌지시 건네오는 인사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준비 잘 되어 가십니까?”라고 점잖게 물어봐 주시던 집사님. “아직 한 번도 다 못 보셨어요. 한 세 번은 반복해서 그 책을 읽으셔야 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시질 모르겠네요.” 하며 걱정까지 해주시던 집사님.

“여태껏 시취식에서 떨어진 집사 후보는 한 분도 없었습니다. ”라며 위로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멘트로 저를 더 긴장하게 만드셨던 집사님.

“작년에 되신 분들은 다 백 점 맞았는데……. 더욱 분발하세요”라며 응원해주시던 집사님 내외분.

“번역본보다 원본이 정리하기도 쉽고 이해가 빨리 되니, 영문본을 구해서 공부해보세요”라고 조언해주시던 학구적인 집사님.

“아니 지금 이 시간에 공부 안 하시고 결혼 축하파티에 와계시면 어떻하세요?” 얼굴은 심각한데, 목소리에는 장난기 가득하던 집사님도 계셨습니다.

집사님들의 여러 가지 말씀과 팁들이 앞으로 동고동락할 식구를 맞아주기 위한 환영의 인사로 제게는 들려왔습니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관심 가져주시고 웃음으로 대해주신 집사님들의 친근함이 제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와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특히 시취식에서 보여주신 목사님들의 배려 깊은 마음과 집사님들과의 질의응답과정을 통해, 함께 웃기도 하고 어떤 질문에서는 진지하게 소통하는 가운데, 우리 서울교회 리더들의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만 해도, 사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영적리더쉽과 관련한 주옥같은 내용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기 시작하였고, “ 리더의 준비”라는 3장에 이르러서는 제 마음에 뭔가가 쿵 하고 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영적 리더쉽이란 인간 쪽에서 지원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시고 맡기실 일을 정하시며, 하나님께서 영적 리더를 손수 키우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부담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었던 것을 회개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자세를 낮추어 다시 읽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가볍게 책을 읽으려 했던 마음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다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히 집사 시취식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말씀을 기대하며 바르게 듣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시취식 준비과정이 저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사로서 순종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며,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선임 집사님들을 따라, 보고 배운 대로 겸손하게 실천하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라몰리나/최철호

 

청소년 부모의 삶 간증: 쥬빌레 목장 김미영

By | e참빛

유치부 부모의 삶을 졸업하고 이 자리에서 간증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년이 지나 다시 청소년 부모의 삶을 졸업하며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 7학년인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때랑은 달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어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마음에 삶공부를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만 제대로 태어나게 해주세요’했던 아이였는데 아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제 욕심도 같이 키웠습니다. 공부도 잘하면 좋겠고 운동도 잘하면 좋겠고 하나님도 누구보다 잘 믿었으면 좋겠고 성격도 쿨하고 예의 바르며 외모도 멋지게 커가기를 계속 욕심을 부렸습니다. 40년을 살아도 매일 실수투성이에 하나님 앞에 크고 작은 죄들로 회개를 하는 제가 고작 13살한테 참 바라는 게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엄마로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지만 아이는 어쩌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저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 한숨 쉬고 야단치고 잔소리하고 질책했던 것도 저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테지요. 저의 감정만 중요하고 아이 감정은 헤아리지 못한 적이 많았고 제 감정대로 아이를 대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같은 실수를 해도 제가 기분 좋은 날에는 그냥 넘어가고 별일 아닌데도 제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피곤하면 아이한테 함부로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운동을 좋아해서 많이 다치는 편입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저희 집에는 발가락부터 손가락까지 온몸에 보호대가 종류별로 있습니다. 학교 농구팀에 소속되어 있어 결승전을 앞둔 어느 날 농구 연습을 하다가 아이가 손가락을 다쳤다며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데리고 왔습니다. 집 근처 Urgent Care를 갔고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손가락 중간 마디가 부러진 거 같다며 어쩌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다음날 전문의를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순간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실 결승전을 앞두고 누구보다 우승하고 싶었을텐데, 그래서 더 속상한 건 저보다는 아이일 텐데 그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하고 조심 좀 하지 왜 너만 맨날 다치냐며 언쟁을 하다가 아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고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지만, 엄마한테 함부로 말한 아이가 미워서 사과도 안 했습니다. 다음 날 사과는 했지만 이번 삶공부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그때 일이 생각이 났고 아이한테 다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아니라고 자기가 말을 너무 밉게 했다고 오히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미안합니다. 아마도 손가락 다친것보다 엄마 때문에 더 속상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제 마음속에 평생 상처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세상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우리 아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고 세상에 너무 험한 일이 많다 보니 혹시라도 친구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는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질까 걱정이 돼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아이를 놓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자라서 나중에도 그 사랑이 주변 사람한테 흘러넘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때문인지 7학년인데 벌써 여자친구가 6번째입니다. 솔직히 아이가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근데 여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상대방 부모랑 인사도 해야 하고 어떤 아이인지도 살펴봐야 하고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물론 따로 둘이 만나고 하는 건 아니지만, 문자 하는걸 보면 내 아들이 맞나 싶게 가관입니다. 이 문제로 아이와 많이 다투었고 아이는 그냥 친구일 뿐이라며 오히려 걱정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아빠한테 상담했습니다. “아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벌써 여자 친구가 있다”라고 누굴 닮았나 모른다며 속상하다고 했더니 아빠가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첫 아이랑 똑같은 나이에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서 아빠가 밖에서 자물쇠로 문 잠근 거 기억 안 나냐고 하셨습니다. 그 때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니 그냥 친구일 뿐이라는 아이의 말이 이해가 되었고 사춘기 아이들이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는 삶공부 강의를 들은 후 이제는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자친구의 첫 번째 조건은 크리스천이어야 한다고 말해주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아이 나이에 어땠는지 생각해보니 과거의 저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더 이해가 가고 그 나이가 얼마나 좋은 나이인지 아이에게 종종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공부보다는 운동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기에 운동 쪽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후원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운동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그래서 학교 공부 따라가기 버거운 우리 아이를 삶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돈 관리, 시간 관리, 인간관계 관리, 책임감, 성적 관리,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아이와 얘기를 하고 같이 계획을 짜고 그동안의 가족 규칙들을 수정했습니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를 더는 애가 아닌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바로 서 나갈 수 있도록 후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되 부모의 권위 안에서 자율권을 줘야 한다는 것도 잘 적용해서 아이와 같이 세운 계획들을 실천해 갈 생각입니다.

삶공부를 하면서 아이와 성적인 것과 마약, 알코올 등의 문제도 함께 이야기하며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아이는 “엄마,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걱정 안 해도 돼”라고 얘기해 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저희 아이는 핸드폰 비밀번호를 저에게 알려 주기 때문에 제가 가끔 체크를 합니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렇게 하기로 아이와 동의한 사항입니다. 어느 날 아이 친구들과 한 문자를 봤는데 그중 한 아이가 제 아이에게 다 같은 나이인데 왜 아이들이 너를 ‘Respect’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라구요. 아이는 고맙다고 하면서 자기가 크리스천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제 눈에는 아직 아이 같고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 보였지만 아이도 나름대로 이 세상에 적응해가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삶공부에서 아이를 바라볼 때 나의 욕심인지 하나님 기준의 욕심인지를 살펴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의 욕심을 뺀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 이쁜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참 축복받은 아이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나가고 하나님을 믿게 된 후 처음으로 내놓은 기도 제목이 임신이었고, 그 기도 응답으로 받은 아이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축복받은 이 아이를 제 욕심 때문에 상처 주거나 다치지 않도록 삻공부에서 배운 대로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삶공부 교재에 지하실 사람들과 발코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한테 나쁜 영향만 주는 사람이 지하실 사람들이고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발코니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는 수없이 많은 발코니 사람들을 봅니다. 저희 아이도 멋진 발코니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삶공부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기도라고 배웠습니다.

이제 겨우 13년째 살고 있는 아이한테 세상은 앞으로도 참 많은 걸 알려 줄 겁니다. 그때마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랑하고 기도해 주려고 합니다.

멀리 미국에 와서 살면서 항상 든든한 건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기도를 하고 계시는 시어머님이 계셔서라는걸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어머님께 기도 부탁을 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런 엄마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저의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죄송한 생각이 들어 더 자주 연락 드리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쥬빌레/김미영

 

청소년 부모의 삶 간증: 쥬빌레 목장 김경선

By | e참빛

청소년 부모의 삶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7학년과 3학년,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때에 따라 헌아식, 유치부 부모의 삶, 그리고 초등부 부모 세미나를 수강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워 볼까 고민하던 때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큰 아이가 Teenager가 되어서 청소년 부모의 삶을 수강하게 되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이를 양육하며 얼마나 잘해주었고 못 해주었나를 떠나서 이제까지 함께 해왔던 시간보다 엄마, 아빠 품을 떠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애틋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큰 아이가 Junior High School에 들어가고 7학년에 올라 갈 즈음, 질풍노도의 시기, 즉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은 뭐 놀랄만한 질풍노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사춘기가 지속하는 나이가 아이마다 차이가 있고, 대개 12세에서 16세까지 간다고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은 지극히 낙천적인 성격으로, 남자아이지만 엄마 아빠에게 사랑표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끔 한 번씩 이유 없이 짜증도 내고 혼자 말없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나 당황도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저도 사춘기를 경험하고 지나는 봤지만, 사춘기 자녀를 키워본 적이 없고, 자칫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다 상처만 주기 쉬운 이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모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성경적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지 배워서 적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소년 부모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삶공부를 통해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이 삶공부가 부모의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부부의 삶과도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부부관계 또한 중요하며, 자녀교육의 궁극적 책임은 하나님께서 가정의 대표, 아버지 된 저에게 부여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불편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부부는 서로를 많이 사랑합니다. 17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변치 않고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주려 노력합니다. 아이들도 저희 부부의 애틋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결혼 상대자로 “엄마 같은 사람이면 무조건 오케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아이들도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평소에 엄마, 아빠의 관계가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며 존중해주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좋은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삶공부 첫 수업에서 배우고 제가 생각해왔던 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삶공부가 끝난 지금도 저와 아이를 연결해주는 사랑의 파이프 라인 중에 혹시 새거나 막힌 곳이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많은 대화를 통해, 그리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면서 관계 유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삶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자녀 교육 삶공부에서 늘 강조하는 것, 아이들의 감정 탱크를 가득 채워 주는 것입니다. 감정 탱크를 채우려면 아이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 아이의 사랑의 언어는 칭찬과 함께 시간 보내기입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저희 속이 터지는 횟수도 함께 많아졌습니다. 지극히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인 제 아들에게 성적이 좀 떨어지면 제가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아들, 양심상 공부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빠 나 학교에서 공부 많이 하고 왔는데”라고 시크하게 대답합니다. “그래도 공부 좀 하지?” 그러면 지금 당장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이어지며 결국 아들 녀석의 승리로 끝나곤 합니다. 사실, 공부 많이 하고 왔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아이와 다른 집 아이를 비교하는 것이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인 줄 알지만 동기 부여와 자존심을 좀 건드릴 요량으로 “다른 집 누구는 이번에 All A 받았다더라.”라고 하면 답은 늘 “Good for him.” 하며 진심으로 그 아이를 축하해 줍니다. 그리고 좀 제대로 규칙적인 공부를 시켜 봐야겠다고 매일 방과 후 집에서 아빠와 함께 몇 시간씩 공부하자고 하면 “You have Asian parent’s mind.”라고 하며 자기 친구 중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다고 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해묵은 한 옵션으로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뭐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도 아이가 제 말에 왜 고무공처럼 튀어 반발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보다 더 나이가 들면 머리가 컸다고 제 말은 듣지도 않으려고 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반항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어찌 저렇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톡톡 말대꾸할까?

저의 답은 아이의 관심사를 아이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공감해주며 아이가 진심으로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주고 잘한 것은 잘했고 못 한 것은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저 사랑한다는 막연한 말만 많이 해주면 감정 탱크가 항상 충만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일상의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이것 좀 해라, 앞으로는 내 계획대로 이렇게 하라며 일방통행식 명령보다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율성을 인정해 주고 해야 할 일을 함께 계획하고 일정을 세워 아이가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아이도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지 전과 비교해서 본인의 주장만을 내세워 말대꾸하는 일이 많이 줄었고 엄마, 아빠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잘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청소년 아이들은 잔소리보다는 격려와 훈련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지는 않으려고 해도, 매일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뒤로 미루는 것을 보면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많은 부분 잘해왔고, 잘했을 것인데도 저는 잔소리로 아이 감정을 상하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것 같습니다. 농구를 좋아해서 클럽팀과 학교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제 아이의 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NBA 프로 농구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올 시즌 아이가 정말 열심히 매 게임에 임했고 학교 농구팀이 Katy ISD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요즘은 Track에도 재미를 붙여서 프로 농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바뀌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농구 시즌이 끝나고 처음으로 시작한 Track, 300미터 허들 종목에서 District 최고 기록을 깨고 신기록 보유자가 되었고, 2주 전 끝난 Katy ISD Final Track Meet에서 같은 종목 7학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저는 두고 보면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에게 예선 게임들을 할 때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았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는 등 아이를 가르치는 코치 선생님들도 하지 않았을 잔소리를 퍼부어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잔소리지만, 잔소리보다 격려가 아이의 실력 향상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감정대로 했던 것에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운동에 타고난 신체적 조건의 타 인종의 아이들 사이에서 열세를 극복해가며 최선을 다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아이에게 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실수 하나에 격려와 훈련보다는 잔소리로 사기를 꺾었던 점이 많이 미안했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지금은 아이가 연습할 때도 실전 게임을 할 때도 실수가 나와도 질책보다는 격려의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멋진 플레이에는 전에보다 더 환호를 해주어 아이가 자신감을 느끼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가 굴렁쇠를 굴리는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주어진 넓은 들판을 힘차게 굴러가는 굴렁쇠이며 우리 부모들은 그 굴렁쇠를 일정한 방향으로 잘 굴러가게 잡아주고 유지해 주는 굴렁쇠 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굴렁쇠가 굴렁쇠 채에 의해 조정되고 굴러가는 것 같지만, 그 두 가지를 조정하는 사람의 조정 능력이 없다면 굴렁쇠는 제 기능대로 굴러가지도 못하고 고철로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조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이신 것 같습니다. 굴렁쇠 채인 우리 부모는 굴렁쇠인 아이에게 그저 팔 하나 걸치고 잡아주고 있을 뿐 모든 방향으로의 나아감은 조정자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조정자 하나님께 아이의 아빠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늘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아이를 위한 축복을 간구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굴렁쇠를 잘 잡아주는 역할을 제게 부여해 주셨음을 잊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저에게 잠시 맡겨주신 저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잘 성장하도록 양육하고 돕겠다는 다짐을 하며 간증을 마치려고 합니다.

쥬빌레/김경선

생명의 삶 간증: 나에게 구원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

By | e참빛

지난주 생명의 삶 강의를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하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저에게 간증을 하라고 하셔서 티는 안냈지만 너무 놀라 없던 심장병이 다 생겼습니다. 걱정되고 떨리는 중에 목사님이 목회하시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 했는데 목회자가 되고 처음 강단에 올라갔는데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기억났습니다. 저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위안하며 간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인생에서 간증할 만한 일이 없는데…. 왜 저를 지목하셨을까, 혹시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서없고 드라마틱한 내용도 없지만 저처럼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항상 함께하심을 고백하며 제 신앙생활 첫 번째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12월 27일 저희 가족은 휴스턴에 도착하였습니다. 남편의 연구년을 계기로 휴스턴에 오기로 결정되고 여기서 ‘결정하고’ 가 아니라 ‘결정되고’라고 한 이유는 저희가 자발적으로 휴스턴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저희가 보내졌다는 말입니다. 남편은 연구년을 보낼 장소를 물색하며 여러 학교와 컨택하였고, 뉴멕시코주의 로스알라모스 연구소로 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로스알라모스는 마트도 중, 고등학교도 하나씩밖에 없는 작은 고산 도시라고 했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좀 걱정도 되었지만, 그곳 아이들의 가장 큰 일탈이 벽에 낙서하는 것이라는 말에 아이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어 위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로스알라모스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아보고 준비하던 중 남편을 초청해 준 박사님이 휴스턴 라이스 대학으로 옮기게 되면서 저희도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생각지도 않던 휴스턴으로 오고 또 이렇게 서울교회로 온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렌트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정숙 목녀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서울교회와 르완다 목장을 소개받았습니다. 휴스턴 서울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체계적인 삶 공부와 자녀교육을 책임진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세 딸의 신앙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고 둘째는 몇 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저희의 신앙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신앙이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미국으로 오는 준비 과정 중에 목녀님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착한 날에는 감사하게도 목장 식구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중을 나와 주셔서 편하게 렌트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 집에는 목자, 목녀님이 준비해 주신 일주일은 넉넉히 먹을 음식과 여러 생필품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여행으로 저희를 마중 나오지 못한 목자, 목녀님은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셨지만, 준비해 주신 물건들을 보니 그분들의 수고와 사랑이 보여 정말 감사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목자 목녀님이 너무 심하게 섬겨 주시는 바람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생명의 삶 강의를 듣고 왜 그분들이 그렇게 하시는지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첫 시간에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면 이웃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면 그 사랑이 넘쳐서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같다고 하신 말씀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이렇게 이웃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공부가 아니라 삶 공부라는 말도 좋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삶 공부는 성경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격려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너무 의심이 많고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나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었습니다. 막연히 지옥은 가기 싫으니 천국에 가면 좋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고 제가 아는 만큼 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하나님이 저를 구원해주실지, 천국에 불러주실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평상시에도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도하려면 왠지 쑥스럽고 하나님이 왜 너는 나를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기도하니 할 것 같아 기도하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는데 저는 너무도 부족하고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강의 중에 목사님이 ‘예수님을 닮아 거룩해지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물어보셨는데 저는 당연히 ‘어렵지요.’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답은 ‘쉽다’ 였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마음을 주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우리를 의롭게 보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위안이 되고 저에게 하나님께 다가가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해 보려는 시도도 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고 아침마다 가족과 목장 식구들, 한국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생명의 삶 강의는 늘 재밌었고 목사님 말씀 하나하나가 너무 동의하고 감동도 받고 기분 좋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남편도 너무 좋다고 하였고 함께 은혜받고 이야기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몇 주간은 함께 집에 오는 차 안에서는 정말 그 은혜가 무색하게도 항상 싸웠습니다. 남편은 네가 말만 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였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별것 아닌 한두 마디에 기분이 상해 큰 싸움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싸웠는지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화요일 밤마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안 목녀님은 생명의 삶 공부 중에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사단의 방해라고 하시면서 기도해 주셨고 저희도 기도하며 화요일만은 서로 좀 더 조심하였습니다. 모두의 기도 덕분인지 삶 공부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저희 부부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삶은 남편에게도 많은 은혜를 부어주었습니다. 성령체험을 앞둔 강의에서 목사님은 여러 체험사례를 얘기해 주셨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저는 어떤 은사를 구할까 고민도 하며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꼭 체험해야만 아냐며 체험을 시큰둥하게 생각하던 남편은 제 부푼 기대를 조금씩 바람 빼는 말들을 해서 실상 마음을 다해 성령체험 준비를 못 하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약간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물론이고 참석하고 있는 모든 분이 각자 바라고 기도하는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한분 한분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고 저에게는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근심을 다 없애주시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님과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제 마음속을 이렇게 잘 아시는지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남편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다고요. 아마도 성령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신 것 일 겁니다. 목사님이 이야기해 주신 것처럼 뒤로 넘어져서 오열하며 바닥을 닦는다든지, 병이 낫고, 방언한다든지 하는 드라마틱한 체험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저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금식과 기도로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저를 탓하며 아쉬워하고 남편도 당연히 저처럼 큰 체험을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폭풍 눈물을 흘렸고 성령님이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것을 체험했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얄미웠지만 그렇게 성령님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는 것에 그리고 절대 울지 않는 남편이 폭풍 오열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도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항상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남편은 제가 좀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안 좋은 점을 꼬집어 말하며 저의 은혜를 반감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렇게 말하고 나중에 보면 자기는 은혜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이번 성령체험처럼요. 그런 비판적인 남편도 이렇게 은혜를 받고 남편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또 은혜가 됩니다.

기대하던 생명의 삶 공부에서 죄, 회개, 구원, 믿음,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교회, 등 당연히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 내내, 

아~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 공부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온 우주에서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저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저는 구원의 확신과 천국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다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길 것이고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리 없다는 것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이 가기에 너무 먼 당신 이었던 하나님이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제가 뛰어가서 안겨도 되는 하나님이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 또 출장에서 돌아오시자마자 힘드실 텐데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인 남편과 함께 생명의 삶을 졸업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짧지 않은 강의 기간 동안 늘 함께 기도해 주신 르완다 목장의 목자, 목녀님, 목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르완다/조홍철

생명의 삶 간증: 알마티 목장 사호석

By | e참빛

저를 자녀 삼아주시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에서 종합병원 의사로 근무하다가 7개월 전 휴스턴에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연수를 왔습니다. 목장에서 VIP로 지극한 섬김을 받던 중 생명의 삶을 수강하게 되었고, 생명의 삶을 들었던 지난 12주는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과 교회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삶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과 크리스천으로서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느끼고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신앙이 없이 살아온 제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내가 인생의 주인이고 내가 곧 법이라는 마음이 얼마나 교만하고 죄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원하던 곳에서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에는 비록 시청률은 0이지만 각자 인생 드라마의 주연으로 열연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선배 교수님들과 어울려 노래방에라도 가면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 중 한 분이 일어나셔서 Frank Sinatra의 ‘My way’를 부르시거나 약간 덜 지긋하신 분은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듣는 다른 선생님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15도씩 들어서 각자 걸어온 화려한 인생을 묵상하고는 합니다. 물론 그분들이 자기 인생에서 피땀 흘려 일구어온 노력을 부정하거나 왜곡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 또한 교수가 되고 지난 7년간 평일이면 거의 날마다 병원에서 14시간~15시간씩 일하고 연구해왔는데, 그 마음 한가운데는 나도 언젠가 주변의 존경과 높임을 받고 내 인생을 성공되게 만들겠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이력서를 쓰면서 저 자신을 잘 포장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해온 연구, 논문, 상, 강의 등등 영혼까지 긁어서 써 보았지만, 정리가 끝난 이력서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만족감과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허무함이었습니다. 내가 고작 이런 성공을 위해 그 많은 좋은 것들을 희생해왔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요한계시록 3:17)’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성공시키겠다는 교만한 마음이 나중에 어떤 결말을 맞을 수 있는지는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실 겁니다. 자기의 성공신화에 도취하여 주변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하고 또는 작은 시련이라도 닥치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아니면 그런 눈에 드러나는 파국까지는 아니어도 겉으로는 겸손해하면서도 속으로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열등감을 놓지 못하는 이중성에 평생 괴로워하는 삶.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하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이고, 나는 그저 하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 역할만 신실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서 마음의 자유를 느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부르셨다.”라고 하셨다는 목사님 말씀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곳에서 암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 논문을 어떻게 하면 유명 저널에 실을까 통계분석을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까 고민했을 텐데 이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암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건강해진 눈과 몸으로 하나님을 좀 더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에 좀 더 집중하고, 내가 성실하게 연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 제가 귀국하여 다시 환자들을 돌보게 될 때는 저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주님의 뜻에 맞게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곳 휴스턴에 와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내와 아이와의 관계를 많이 회복했습니다. 저는 안과 의사고 제 아내는 치과 의사인데, 저는 신혼 초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가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별다른 외부의 시련이 없는 순탄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결혼 생활의 주인이 되고자 서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5년, 10년이 되면서 ‘적’의 성향을 너무 잘 알게 된 탓에 다투는 일은 별로 없어졌지만, 늘 무언가 미안한 가운데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번에 아내와 생명의 삶을 함께 수강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생활을 같이 꿈꾸면서 서로 믿음의 동지로서 어느 때보다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금요일 저녁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목장 나눔이 있다는 것과 제 아내가 ‘Too much talking’의 은사를 받아 ‘Too much’ 진솔한 나눔의 선봉에 있다는 점이 제 인생에 건강한 CCTV 역할을 해주고 있음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생명의 삶 공부를 통해 주변의 이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섬겨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 주변의 이웃들도 누구나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주님의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사랑하신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실제 눈동자와 그 홍채를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굴곡과 제각기 다른 색깔, 그리고 시시각각 움직이고 변화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도 제각기 다를 것이지만, 마치 눈동자와 홍채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여 알아보시고 우리에게서 눈을 못 떼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에 대해 모를 때, 저는 비록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편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적극적인 섬김이었다기 보다 나의 평판을 유지하고 내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고백합니다.

환자들을 측은지심으로 돌보고자 하였지만 제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서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질 때는 남을 불쌍하게 여길 여력도 이유도 잃고는 하였습니다. 저는 제 가족들을 저라는 사람의 연장선으로 여겼고, 사회적인 책임이나 약속에 대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까닭에 가족들의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나가서는 엄청나게 잘하면서 집에 오면 안 그렇다고, 오죽하면 아내가 제발 자기와 애들을 남이라고 생각해달라는 농담을 자주 했을까요? 하지만 삶공부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는 다른 이웃의 인생에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과 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에 하나님의 성공을 위해 주변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제가 교회 나온 지 3주째에 평신도 세미나에서 사역을 한다고 집을 비운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VIP답지 않은 오지라‘핑’이라며 놀렸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큰 아이가 이마를 크게 부딪혀서 혈종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한 혹처럼 흉을 남겼습니다. 5개월 전부터 저는 매일 아침 아이의 이마를 마사지해주고 있습니다. 힘든 시련 있으신 분들께서는 참 팔자 좋은 고민이다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가 다치던 그 시간에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아이의 흉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이 제 큰 기도 제목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의사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이마의 혹이 확연히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제 시간적으로도 더는 마사지가 큰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마사지를 하면서 제 눈에 아이의 혹이 아니라,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길 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의 하나님께서 제게 그 마음을 만져주라고 하시는 한 저는 계속 아이의 이마를 만져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 생명의 삶공부를 하면서 특히 좋았던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목장 식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확인하고 또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스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자동차 고장으로 1~2주간 차를 못 쓰는 상황이 있었는데, 선뜻 자기 차를 내어 주셨던 목자님을 보고 그때는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랜 시간 목양을 통해 단련된 크리스천의 모습이었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알마티 목장의 특징은 서로에게 너무 질척거린다고 놀림 받을 만큼 나눔에 열정적이고 한번 앉으면 도무지 일어날 생각들을 안 하는 무거운 마음의 ‘방뎅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해 내 안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목장 식구들께 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밤늦은 시간에도 언제나 열정적으로 생명의 삶을 이끌어주신 이수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삶공부하는 많은 분이 저처럼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비유와 예를 들어 말씀을 잘 이해하게 해주시는 목사님 모습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성도들을 위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목사님 생신 때 케이크도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시고, 또 강의 마지막 날 직접 만드신 정성스러운 도시락으로 저희를 섬겨주셨던 이은주 사모님께서, 이 생명의 삶이 이수관 목사님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삶공부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들려주신 목사님 삶의 간증들이 하나님과의 즐거운 동행을 시작하는 저희 형제 자매들에게 큰 격려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알마티/사호석

부활절 간증: 추적하시는 하나님

By | e참빛

오늘 여기 이 자리까지 저의 삶을, 여기 한분 한분의 인생길을, 추적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동으로 말씀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2015년 1월에 남편과 함께 목회자 연수를 오게 된 후, 그해 10월부터 서울교회에서 인턴 목사로 섬기고 있는 백성지 목사의 아내, 뜨미아르 목장 최유리 목녀입니다. 오늘, 이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부활의 아침에 제가 드리는 간증은. 철없는 사모의 간증도, 2년차 새내기 목녀의 간증도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위해 빈 무덤으로 달려갔던, 그리고는 부활의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한 여인의 간증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몇 년 전 겨울날, 친정엄마와의 전화 통화 중에 이름도 잘 모르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때 저는 서른여섯, 5년 전이었나 봅니다. 한국에서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학업과 사역을 병행하던 남편과 함께 9살, 6살, 4살 꼬마 아이들과 하루하루 씨름하며 지내던 때였습니다. 저의 외할머니의 이름은 ‘남궁분순’이라 했습니다. 저는 외할머니를 본 적도 없고, 초등학교 즈음에 외할머니를 여의고 일찍 가족을 떠나 독립했던 친정어머니는,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아주 가끔 친정어머니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리야… 외할머니가 노아 방주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단다.” 하고 추억하곤 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악해서 하나님이 심판을 했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신단다’ 하고 할머니가 말하면, ‘방에 들어가서 꼭꼭 숨으면 되지.’ 하고 엄마가 대답했지… 그러면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꼭꼭 숨어도 다 볼 수 있으시단다.’”

전라도 광주 어디쯤 양반집 종가며느리로 살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6남매를 낳아 기르시던 외할머니는 마당에서 일하다, 아이들과 놀아주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집안사람들과 동네 람들은 ‘야수교’를 믿는다고 외할머니를 싫어했다고 했습니다. “아따. 쟈가 야수만 안 믿으면 참 좋은 아인디.” 교회를 다녀오다 외할아버지가 던진 삽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가던 외할머니의 뒷모습. 방 안으로 피해 들어가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밖에서 문을 열려고 휘두른 할아버지의 낫에 손가락이 잘린 외할머니. 그 잘린 손가락을 동생들과 함께 묻어주던 일. 너무 많이 맞아서 나중엔 혼자 하늘을 보며 히죽히죽 웃곤 하던 그 외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전화기 너머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하던 울보 엄마. 너무 견디기 힘들어 서울로 도망간 외할머니가 새벽기도를 갔다가 “너의 어린 자녀들이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몇 년을 더 살다, 외할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아 누운 지 며칠 만에 돌아가셨을 때, 외할머니 나이가 서른여덟이라 했습니다. 돌아가실 만큼 맞기 전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집 밖으로 쫓겨났던 외할머니가, 긴 담벼락 겹쳐진 틈 사이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는 친정엄마. 어린 엄마의 손을 잡고 담을 넘어 새벽기도를 가면서, “영순아(친정엄마 이름), 성령님이 오신단다…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단비처럼 오신단다” 하고 어린 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시곤 했다는, 내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돌아가시던 날. 그냥 예수 안 믿으면 됐을터라며 그렇게 많이 울었다는 친정엄마. 그리고 엄마는 지금 예수님 전하는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손녀딸조차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38년 이 땅에서 예수님 믿고 눈물과 은혜로 조용히 살다간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믿었던, 모든 것을 잃어도, 잃을 수 없었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믿어서 그래서 믿음도 겸손도 헌신도 그리고 뜨거운 마음까지도 너무 가벼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50여 년 전의 평범한 여인은 제가 아직은 모르는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땅의 것을 마지막이라, 이 땅을 종착역이라 여기지 않고, 늘 천국 집을 바라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과 자신을 핍박하는 가족들을 품고 살았던 그 여인의 삶이 오늘 저의 삶을 파고듭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머니가 늘 부르시던 찬송이라 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쯤, 저는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가면서 매 주일, 오늘이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부목사로 섬기고 있지만, 사모가 시험에 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사모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힘든 걸 속일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저는 서른여덟 살 할머니가 목숨 바꿔 소중히 여겼던 예수님의 이름이, 그 하늘나라의 비밀이 별로 소중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지신 희생의 십자가. 참 마음은 아프지만 무의미하다. 나와는 상관이 없구나. 그리고 문득문득 멈추어 서서 제 나이를 계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서른여섯, 서른일곱, 서른여덟… 그리고 마흔하나. 그 이후로도 제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그렇게 2015년 1월에 서울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3년 전 오늘, 부활의 아침에, 마음에 고인 눈물을 쏟아내며, 침례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비둘기를 만났네요.
오늘 이 제한된 시간 안에 제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한 간증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서울교회로 와서 목원으로 지내는 1년간 저는 목장에서 사랑을 회복하고, 예배에서 마음을 쏟고, 삶공부에서 여전히 저를 불편하게 했던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초대교회를 회복해가기를 소원하는 이곳에서 목녀로 여러 목원들을 섬기는 지난 2년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더 가슴 깊이 새겨지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교육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건축업을 하시다가 40의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신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25살에 전도사 사모로 시작해서 목회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모로 15년간 여러 교회를 섬겼습니다. 부모님이 개척하셨으니 개척교회에서부터, 200명 성도에서 4000명 성도의 교회까지 두루 다니며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 목녀하며 행복합니다. 남편도 저도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녹록지 않지만, 그 행복의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저 성경을 통해 제가 평생 들어왔고, 배워왔던, 꿈꾸던 그 교회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기쁨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좀 더 건강한, 좀 더 좋은 교회는 가능하다 여깁니다. 서울교회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내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내고, 구원을 돕는 이도, 구원을 받은 이도 함께 제자가 되어가도록 하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함께 지어지고,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저는 무대 울렁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섬기는 사역부서인 가정 사역부에서, 앞에 나서는 안내방송을 합니다. 저는 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어를 잘 못 합니다. 그런데 석 달 모자라는 지난 3년간 영어와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병원에서 일하였습니다. 순종하면서도 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제가 잘 못하는 것만 시키시나요?” 그러면 주님은 별말 없이 “그래야 말을 잘 듣지….”하고 미소를 보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별다른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또 하루하루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지난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는 중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마지막 날 간증자로 세워졌는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열망이 생겨, 무례를 무릅쓰고 담임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고, 목사님과 남편의 배려로 시간을 쪼개어 두 사람이 함께 간증자로 섰습니다(그 덕분에 남편은 20분짜리 간증을 딱따구리처럼 13분 안에 끝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짧은 간증이었지만 목회자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소원하는 마음이 연결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간증을 모티브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세우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꿈. 부활의 기쁨을 함께 소유한 예배 공동체. 저와 여러분이 함께 모여 한 성령으로 예배하는 이 영광스러운 한 몸 공동체. 서울 교회 공동체에서 받은 은혜와 제가 붙든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기쁨을 조금 더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메콩강 목장에서 목원으로 지내던 2015년, 할머니의 희생의 십자가가 다시 내 안에서 상관되고, 내삶에 교회의 소중함이 다시 선명해지면서 제가 붙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이전 교회에서 받은 여러 가지 상처로 단단해지고 굳어져 버린 마음을 십자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신 하나님.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기로 하고, 내 맘의 상처를 인정하며 주님 앞에 나의 속사람을 내어놓았을때, 크신 주님은 저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얻게 되는 구원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자, 목녀 임명을 받고 뜨미아르 목장을 섬기기 시작한 2016년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순종의 십자가 입니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그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늘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그리고 마음의 소원함을 통해 순종하면서, 어리석어 보이고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사를 하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영혼구원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목장에 식구들이 넘쳐나는 사역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하나님은 저희에게 사역의 열매뿐만 아니라 순종을 통한 삶의 열매도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드러나는 사역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도 철저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인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정직하게 발견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더욱 크리스천답게 살아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 사역 가운데,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생업의 일을 경험하며 순종을 통한 은혜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남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를 기대하던 우리에게 시험의 대로를 화끈하게 열어주셨구나. 사랑한다고 하셔놓고 또 이러시는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있겠구나. 하실 말씀이 있으시구나. 그러면서 그 길을 걸으며 주님과의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때로 시온의 대로는 시험의 대로가 되기도 하고, 또는 시험의 대로가 시온의 대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 치열했던 순종의 시간을 통해 순간순간 저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조그맣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크~은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몸부림치며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했어도 버티고 서서 물살을 쪼개는 경험은 한 것 같습니다.” 많은 싱글 청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고 삶이 변하여 제자가 되어가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순종을 통해 얻게 된 생명들. 그 믿음의 간증들은 더할 수 없는 저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목녀 2년 차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헌신의 십자가입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세상은 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으신다’고 말합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저는 헌신과 낭비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사랑하는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경우가 생기는가? 어떤 경우에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게 여겨지는가? 답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헌신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지만 그 헌신의 때와 헌신의 이유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주님이건, 목원이건, VIP건 혹은 그 누구건 간에, 사랑하지 않는 건 일단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사랑해도 헌신의 때와 이유가 바르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냉소와 거친 자아만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목녀로 섬기기 이전의 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날 위해 지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헌신의 십자가를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남는 시간에, 내 삶의 여러 개 중의 하나를 내가 원할 때 주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베푸는 자선보다도 못한 것이구나…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시간에, 내 삶의 최고의 것을 원하신다면, 그것을 내 소중한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 이것이 헌신이구나

그것이 비록 세상적인 계산과 맞지 않고, 결과를 바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헌신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 헌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삶에 절제가 이루어지고 내가 해야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구별되는 것을 배우면서, 열심과 방향도 중요하지만, 헌신 만큼은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 담에 주님 앞에 서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무게를 달아보실 텐데,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말씀에서 배운 대로 중요한 일에 자신을 소모하게 하는 일은 닳아 없어져도 결코 손해이지 않은 아름답고 힘 있는 가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난절에 저는 사명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지만, 사명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완수하신 예수님. 아 사명이 그런 것이지… 처절한 죽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시고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의 그 사명의 자리. 고통과 유혹이 사명을 흔들었지만 모두 이겨내시고 지켜낸 자리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저희 할머니가 안전한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핍박의 자리. 주님의 부탁이라 여기고 지켰던 침묵의 자리. 그래서 예수님의 흔적을 자녀들에게 남기고 죽어간 자리. 저는 언젠가 서울교회를 떠날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알게 되는 것이 소명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사명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모보다 목녀가 좋지만, 남편과 함께 또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소명의 자리로 가게 되겠지요. 그 선한 로테이션을 두고 기도하면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자리, 하나님의 일을 완수해 낼 사명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사명의 자리에서, 또다시 겹겹의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많은 샘과 이른 비의 은혜를 누리고, 그 길에 수많은 기적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압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그 기적을 일으키셨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보이시는 주님’을 보는 것임을, 그래서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명자의 태도임을 되새겨 봅니다.

이제 저는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 은혜의 순간이며, 그 자리에서 참된 부활의 기쁨이 시작됨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살면서, 그 매력적인 삶의 증거로 믿지 않는 영혼을 믿게 하고 이웃을 섬기며 더 신실한 제자가 되어가는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카디널 수핸드는 ‘증인이 된다는 것은 선전에 몰두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부활의 소식을 듣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기억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무딘가?”하고 예수님께 핀잔을 들은 두 제자. 예수님을 따르다 흩어져버린 허다한 무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그들은, 말씀에 자신을 비추지 않고, 자신에게 말씀을 비추었기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으며 주님이 말씀을 열어주셨을 때 가슴이 뜨거워져서 비로소 증인이 되었던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이곳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서,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행복한 증인들이 넘쳐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28:18~20)

우리 모두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중보하실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어서, 약할 때 강력한 십자가의 신비와 온 땅에 충만한 부활의 영광을 믿음의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뜨미아르/최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