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 이 자리까지 저의 삶을, 여기 한분 한분의 인생길을, 추적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동으로 말씀해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는 2015년 1월에 남편과 함께 목회자 연수를 오게 된 후, 그해 10월부터 서울교회에서 인턴 목사로 섬기고 있는 백성지 목사의 아내, 뜨미아르 목장 최유리 목녀입니다. 오늘, 이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부활의 아침에 제가 드리는 간증은. 철없는 사모의 간증도, 2년차 새내기 목녀의 간증도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위해 빈 무덤으로 달려갔던, 그리고는 부활의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한 여인의 간증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몇 년 전 겨울날, 친정엄마와의 전화 통화 중에 이름도 잘 모르는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때 저는 서른여섯, 5년 전이었나 봅니다. 한국에서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학업과 사역을 병행하던 남편과 함께 9살, 6살, 4살 꼬마 아이들과 하루하루 씨름하며 지내던 때였습니다. 저의 외할머니의 이름은 ‘남궁분순’이라 했습니다. 저는 외할머니를 본 적도 없고, 초등학교 즈음에 외할머니를 여의고 일찍 가족을 떠나 독립했던 친정어머니는, 외가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 아주 가끔 친정어머니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리야… 외할머니가 노아 방주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단다.” 하고 추억하곤 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악해서 하나님이 심판을 했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신단다’ 하고 할머니가 말하면, ‘방에 들어가서 꼭꼭 숨으면 되지.’ 하고 엄마가 대답했지… 그러면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꼭꼭 숨어도 다 볼 수 있으시단다.’”
전라도 광주 어디쯤 양반집 종가며느리로 살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며 6남매를 낳아 기르시던 외할머니는 마당에서 일하다, 아이들과 놀아주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집안사람들과 동네 람들은 ‘야수교’를 믿는다고 외할머니를 싫어했다고 했습니다. “아따. 쟈가 야수만 안 믿으면 참 좋은 아인디.” 교회를 다녀오다 외할아버지가 던진 삽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가던 외할머니의 뒷모습. 방 안으로 피해 들어가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밖에서 문을 열려고 휘두른 할아버지의 낫에 손가락이 잘린 외할머니. 그 잘린 손가락을 동생들과 함께 묻어주던 일. 너무 많이 맞아서 나중엔 혼자 하늘을 보며 히죽히죽 웃곤 하던 그 외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전화기 너머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하던 울보 엄마. 너무 견디기 힘들어 서울로 도망간 외할머니가 새벽기도를 갔다가 “너의 어린 자녀들이 울고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몇 년을 더 살다, 외할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아 누운 지 며칠 만에 돌아가셨을 때, 외할머니 나이가 서른여덟이라 했습니다. 돌아가실 만큼 맞기 전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집 밖으로 쫓겨났던 외할머니가, 긴 담벼락 겹쳐진 틈 사이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는 친정엄마. 어린 엄마의 손을 잡고 담을 넘어 새벽기도를 가면서, “영순아(친정엄마 이름), 성령님이 오신단다… 하늘에서 내리는 촉촉한 단비처럼 오신단다” 하고 어린 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시곤 했다는, 내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돌아가시던 날. 그냥 예수 안 믿으면 됐을터라며 그렇게 많이 울었다는 친정엄마. 그리고 엄마는 지금 예수님 전하는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손녀딸조차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38년 이 땅에서 예수님 믿고 눈물과 은혜로 조용히 살다간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믿었던, 모든 것을 잃어도, 잃을 수 없었던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믿어서 그래서 믿음도 겸손도 헌신도 그리고 뜨거운 마음까지도 너무 가벼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50여 년 전의 평범한 여인은 제가 아직은 모르는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땅의 것을 마지막이라, 이 땅을 종착역이라 여기지 않고, 늘 천국 집을 바라며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과 자신을 핍박하는 가족들을 품고 살았던 그 여인의 삶이 오늘 저의 삶을 파고듭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머니가 늘 부르시던 찬송이라 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쯤, 저는 교회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가면서 매 주일, 오늘이 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부목사로 섬기고 있지만, 사모가 시험에 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사모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힘든 걸 속일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저는 서른여덟 살 할머니가 목숨 바꿔 소중히 여겼던 예수님의 이름이, 그 하늘나라의 비밀이 별로 소중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지신 희생의 십자가. 참 마음은 아프지만 무의미하다. 나와는 상관이 없구나. 그리고 문득문득 멈추어 서서 제 나이를 계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서른여섯, 서른일곱, 서른여덟… 그리고 마흔하나. 그 이후로도 제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그렇게 2015년 1월에 서울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3년 전 오늘, 부활의 아침에, 마음에 고인 눈물을 쏟아내며, 침례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비둘기를 만났네요.
오늘 이 제한된 시간 안에 제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한 간증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서울교회로 와서 목원으로 지내는 1년간 저는 목장에서 사랑을 회복하고, 예배에서 마음을 쏟고, 삶공부에서 여전히 저를 불편하게 했던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초대교회를 회복해가기를 소원하는 이곳에서 목녀로 여러 목원들을 섬기는 지난 2년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더 가슴 깊이 새겨지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교육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건축업을 하시다가 40의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신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25살에 전도사 사모로 시작해서 목회를 하는 남편과 함께 사모로 15년간 여러 교회를 섬겼습니다. 부모님이 개척하셨으니 개척교회에서부터, 200명 성도에서 4000명 성도의 교회까지 두루 다니며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지금 목녀하며 행복합니다. 남편도 저도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녹록지 않지만, 그 행복의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저 성경을 통해 제가 평생 들어왔고, 배워왔던, 꿈꾸던 그 교회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기쁨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좀 더 건강한, 좀 더 좋은 교회는 가능하다 여깁니다. 서울교회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내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해내고, 구원을 돕는 이도, 구원을 받은 이도 함께 제자가 되어가도록 하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함께 지어지고,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의 생명력이 있습니다.
저는 무대 울렁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섬기는 사역부서인 가정 사역부에서, 앞에 나서는 안내방송을 합니다. 저는 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영어를 잘 못 합니다. 그런데 석 달 모자라는 지난 3년간 영어와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병원에서 일하였습니다. 순종하면서도 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제가 잘 못하는 것만 시키시나요?” 그러면 주님은 별말 없이 “그래야 말을 잘 듣지….”하고 미소를 보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별다른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또 하루하루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지난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는 중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마지막 날 간증자로 세워졌는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열망이 생겨, 무례를 무릅쓰고 담임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고, 목사님과 남편의 배려로 시간을 쪼개어 두 사람이 함께 간증자로 섰습니다(그 덕분에 남편은 20분짜리 간증을 딱따구리처럼 13분 안에 끝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짧은 간증이었지만 목회자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소원하는 마음이 연결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간증을 모티브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피 값으로 세우셨습니다. 음부의 권세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꿈. 부활의 기쁨을 함께 소유한 예배 공동체. 저와 여러분이 함께 모여 한 성령으로 예배하는 이 영광스러운 한 몸 공동체. 서울 교회 공동체에서 받은 은혜와 제가 붙든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기쁨을 조금 더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메콩강 목장에서 목원으로 지내던 2015년, 할머니의 희생의 십자가가 다시 내 안에서 상관되고, 내삶에 교회의 소중함이 다시 선명해지면서 제가 붙든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이전 교회에서 받은 여러 가지 상처로 단단해지고 굳어져 버린 마음을 십자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신 하나님.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그 사랑에 반응하여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용서하기로 하고, 내 맘의 상처를 인정하며 주님 앞에 나의 속사람을 내어놓았을때, 크신 주님은 저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얻게 되는 구원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자, 목녀 임명을 받고 뜨미아르 목장을 섬기기 시작한 2016년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순종의 십자가 입니다.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그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늘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그리고 마음의 소원함을 통해 순종하면서, 어리석어 보이고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사를 하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영혼구원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목장에 식구들이 넘쳐나는 사역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이 무렵, 하나님은 저희에게 사역의 열매뿐만 아니라 순종을 통한 삶의 열매도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드러나는 사역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도 철저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인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정직하게 발견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더욱 크리스천답게 살아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그 사역 가운데,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생업의 일을 경험하며 순종을 통한 은혜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남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대로를 기대하던 우리에게 시험의 대로를 화끈하게 열어주셨구나. 사랑한다고 하셔놓고 또 이러시는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있겠구나. 하실 말씀이 있으시구나. 그러면서 그 길을 걸으며 주님과의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때로 시온의 대로는 시험의 대로가 되기도 하고, 또는 시험의 대로가 시온의 대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 치열했던 순종의 시간을 통해 순간순간 저는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조그맣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크~은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몸부림치며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했어도 버티고 서서 물살을 쪼개는 경험은 한 것 같습니다.” 많은 싱글 청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고 삶이 변하여 제자가 되어가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순종을 통해 얻게 된 생명들. 그 믿음의 간증들은 더할 수 없는 저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목녀 2년 차에 제가 붙든 십자가는 헌신의 십자가입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세상은 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으신다’고 말합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저는 헌신과 낭비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사랑하는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경우가 생기는가? 어떤 경우에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게 여겨지는가? 답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헌신의 대상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하지만 그 헌신의 때와 헌신의 이유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주님이건, 목원이건, VIP건 혹은 그 누구건 간에, 사랑하지 않는 건 일단 다른 차원의 문제이고, 사랑해도 헌신의 때와 이유가 바르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냉소와 거친 자아만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목녀로 섬기기 이전의 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날 위해 지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헌신의 십자가를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남는 시간에, 내 삶의 여러 개 중의 하나를 내가 원할 때 주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베푸는 자선보다도 못한 것이구나…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시간에, 내 삶의 최고의 것을 원하신다면, 그것을 내 소중한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 이것이 헌신이구나
그것이 비록 세상적인 계산과 맞지 않고, 결과를 바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헌신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 헌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삶에 절제가 이루어지고 내가 해야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구별되는 것을 배우면서, 열심과 방향도 중요하지만, 헌신 만큼은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 담에 주님 앞에 서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무게를 달아보실 텐데, 중요하지 않은 일에 힘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말씀에서 배운 대로 중요한 일에 자신을 소모하게 하는 일은 닳아 없어져도 결코 손해이지 않은 아름답고 힘 있는 가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난절에 저는 사명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지만, 사명 때문에 그러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났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완수하신 예수님. 아 사명이 그런 것이지… 처절한 죽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시고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의 그 사명의 자리. 고통과 유혹이 사명을 흔들었지만 모두 이겨내시고 지켜낸 자리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저희 할머니가 안전한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핍박의 자리. 주님의 부탁이라 여기고 지켰던 침묵의 자리. 그래서 예수님의 흔적을 자녀들에게 남기고 죽어간 자리. 저는 언젠가 서울교회를 떠날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르심을 알게 되는 것이 소명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사명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모보다 목녀가 좋지만, 남편과 함께 또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소명의 자리로 가게 되겠지요. 그 선한 로테이션을 두고 기도하면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자리, 하나님의 일을 완수해 낼 사명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사명의 자리에서, 또다시 겹겹의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많은 샘과 이른 비의 은혜를 누리고, 그 길에 수많은 기적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압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그 기적을 일으키셨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기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보이시는 주님’을 보는 것임을, 그래서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사명자의 태도임을 되새겨 봅니다.
이제 저는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순간이 은혜의 순간이며, 그 자리에서 참된 부활의 기쁨이 시작됨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아름다운 교회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은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살면서, 그 매력적인 삶의 증거로 믿지 않는 영혼을 믿게 하고 이웃을 섬기며 더 신실한 제자가 되어가는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카디널 수핸드는 ‘증인이 된다는 것은 선전에 몰두하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부활의 소식을 듣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기억합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무딘가?”하고 예수님께 핀잔을 들은 두 제자. 예수님을 따르다 흩어져버린 허다한 무리와 다를 바가 없었던 그들은, 말씀에 자신을 비추지 않고, 자신에게 말씀을 비추었기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으며 주님이 말씀을 열어주셨을 때 가슴이 뜨거워져서 비로소 증인이 되었던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이곳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서,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행복한 증인들이 넘쳐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28:18~20)
우리 모두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중보하실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 살아있는 신비함이 되어서, 약할 때 강력한 십자가의 신비와 온 땅에 충만한 부활의 영광을 믿음의 능력으로 나타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뜨미아르/최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