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이 많은 저를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끄신 하나님 은혜에 영광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을 여러분 앞에 자랑하려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시절까지 태권도를 해 왔던 태권도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수님 추천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미국 생활은 한국 생활과는 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땀을 흘리고 노력하면 그 땀은 거짓이 없이 보답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열심히 해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지칠 무렵 친구가 연극 보러 가자고 해서 ‘Why not?’ 하면서 갔던 곳이 송년 잔치였습니다. 그땐 정말 연극배우들을 초청해서 하는 연극인 줄 알았습니다. 그 후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간 곳이 이수관, 이은주 두 분이 섬기시는 그루터기 목장이었습니다. 너무 맛있는 음식이 무한 리필되는 그곳은 저에게는 꿈의 식당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후 나눔의 시간을 가졌을 땐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꼭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 같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지내왔던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과 말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 범사에 감사’라는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말을 하고 삶에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소리 지르는 행동, 무슨 결혼 정보업체도 아니고 매주 20여 명이 넘는 처녀, 총각들이 모여서 빙빙 돌아가며 “사랑합니다” 하면서 하는 허그는 우리가 하는 허그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은주 사모님의 맛있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에 매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목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목장을 나가던 어느 날 제가 불법 체류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할지 몰라서 전 무작정 기도를 해보자 하고 매주 토요일 새벽기도를 2년 넘게 다닌 것 같습니다. 그 후 가르친 학생이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었고 저는 십일 세겹줄 기도 제목으로 등수 안에만 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은메달을 땄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후 저는 변호사에 이 사실을 알렸고 변호사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2년 후에 노동허가서가 나오고 그 후 3년 후에는 영주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해서 영주권 신청을 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한번 불체자로 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2년이 걸린다는 노동허가서는 2개월 만에, 3년이 걸린다는 영주권은 3개월 안에 주셨습니다. 불체자에서 영주권이 나오는데 총 6개월이 걸렸습니다. 제 변호사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전 목장도 빠지지 않고 사역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싱글이었던 저는 배우자를 위해 40일 새벽기도를 하였고 기도응답으로 지금의 목녀를 만났고 그 후 자녀를 갖고 싶어 10일 세겹줄 기도 제목으로 내놓고 기도해서 그 다음 해 10일 세겹줄 기도 첫쨋 날 지금의 하은이가 태어났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기도를 통해 들어주셨습니다.
교회 생활 17년 4개월 만에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은주 사모님께서 싱글 때 말씀해 주신 것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라. 그럼 열매가 맺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동안 제가 특별히 교회나 목장을 위해 한 일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교회와 목장에 붙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던 저에게 그 작은 일들까지 많은 크레딧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 목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이수관 목사님, 이은주 사모님, 네 분의 목자님, 세 분의 목녀님의 섬김과 헌신을 본받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장을 하다 보면 어려움도 있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신앙생활은 즐겁게 해야 한다는 이수관 목사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즐거운 목장과 교회 생활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목녀로 헌신한 아내, 섬김을 받기보다는 목자, 목녀를 섬기는 목장 식구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분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7년 4개월 이란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처럼 기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많은 눈물 흘리신 이은주 사모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김석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