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기오 목장 류성진입니다. 서울교회에 대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간증 거리가 많은 교회이다”였습니다. 이 말을 들었던 저는 교인이 일이백 명도 아니고 천 명이 넘는 교회에서 내가 간증을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간증을 하게 되었네요. 간증을 요청하신 목사님의 이메일을 받고 “어떡하지? 확인 못 한 척 할까?” 라고 제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목자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성진 형제 이메일 봤어요?”라는 목자님의 한마디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유교 집안의 아버지와 기독교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교회를 가신 것을 본 적은 없었지만, 추석이나 설날에 큰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외가에 가면 목사님이셨던 큰외삼촌과 가족 예배를 드렸는데 어머니도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모시고 사시던 크리스천이던 외할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아버지 또한 제가 교회를 다니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갈 무렵 어머니의 영향인지 친가 쪽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친가쪽에서도 제사나 차례 대신 가족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릴적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던 저는 이 무렵 반대로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고 대학진학 후 집에서 나와 자취 생활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놀면서 교회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같이 놀던 그 친구 중 한 명이 서울교회에 온 이후 새사람이 되어 저를 목장으로 인도하였고, 그 친구는 저희 목장 내에서는 예비 목자로 내정 되어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어학 연수차 캘리포니아에 있는 누나 가족과 1년 정도 지내기 위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누나도 교회를 잘 다니고 있었고 매형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교회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part time 전도사로 있었기에 저는 매주 누나와 매형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갔었지만, 신앙심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와이프 또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크게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 저에게 한가지가 매우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었을 때 자신은 천국으로 가는데 지옥으로 떨어지는 저를 볼까봐 두렵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릴 적에 교회를 다닌 적이 있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았기에 이때 마음이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쩌다 교회를 가지 않을 기회만 생기면 좋아하곤 했습니다.
가족 손에 이끌려 교회에 그냥 나가기만 하는 생활을 하던 중 4년 전에 대학 친구 소개로 직장을 휴스턴으로 옮기게 되면서 친구가 다니고 있던 휴스턴 서울교회에 오게 되었고 지금의 목자/목녀님을 만났습니다. VIP로 지낸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예수 영접 모임을 들어갔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분은 손을 들으라고 하는 목사님의 말씀에도 결국 손을 들지 않고 나왔습니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예수 영접을 하고 나온지 알고 웃으면서 저를 맞이하던 목장 식구들에게 영접하지 않았다고 하니 잠깐의 정적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목자님께서는 “아직 잘 몰라서 그러니 생명의삶 공부를 들어보고 다시 생각해보자”하시며 생명의 삶 공부를 권유하셨고, 목녀님은 VIP인 저에게 주일 설교 요약을 시키셨고 매주 목장에서 전 주에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목장 식구들에게 다시 들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교회는 여러 사람의 손에 이끌려 나와서 졸다 가거나 그냥 앉아있다 가는 곳이었는데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시작은 억지로였지만 생명의 삶과 설교 요약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영접은 웬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시절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잘때마다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을 끓여주시던 친구 어머니께서 2015년도에 휴스턴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셨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내가 언젠가 다시 휴스턴에 왔는데 그때까지 네가 예수 영접을 하지 않았으면 너는 나랑 같이 예수 영접에 들어갈 줄 알아”라는 말을 남기시고 떠나셨습니다. 그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러갔고 그때까지 저는 침례는커녕 예수 영접도 하지 않은 장기 VIP로 지내고 있었는데 목자님이 목사님께서 12월에 저희 목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예수 영접을 하지 않은 저에게는 마치 교장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러 교실로 찾아오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목사님이 목장을 방문하기 두 달 전인 10월에 친구 어머니가 휴스턴에 다시 오시게 되었고 저를 처음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잘 지냈냐는 인사대신 “너 아직도 예수영접 안했다며? 넌 나랑 같이 들어가자” 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12월에 예수 영접을 다시 들어가게 되어, 재수 끝에 예수 영접을 했고 목장의 모든 식구들이 축하해주며 기뻐하셨습니다. 특히 목녀님은 이때 많이 아프셨음에도 손수 집밥을 해주셨습니다. 목장 식구가 이 정도로 기뻐하시는데 예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에 저에게 이상하게 들렸던 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나쁜일이 있어도 잘 된 일이 있어도 하나같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였는데 저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일어난 일인데 이런 의미를 붙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작지만 이런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일이 생겼습니다. 때는 침례를 받으러 교회에 오는 날 아침, 저는 미국 생활11년동안 단 한번도 걸리지 않았던 속도위반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경찰에게 잡히지 않았기에 습관적으로 규정 속도보다는 빨리 운전을 해왔었습니다. 이전에도 충분히 경찰에 잡힐 수도 있었겠지만 절묘하게도 다른 날도 아닌 새 사람이 되겠다고 침례를 받으러 오는 날 아침에 속도위반 티켓을 받게 하여 미국생활에선 일상적이여서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운전에 대해 나쁜 습관을 고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침례 이 후 새 사람이 되라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이후 부터는 지금까지도 절대로 속도위반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침례를 받고 과거를 돌이켜 봤는데 제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지 저를 미국으로 오게 하시고 캘리포니아에 있던 저를 휴스턴으로 옮겨와 서울교회에서 지금의 목장 식구를 만나게 하신 것, 그리고 허리케인 하비 전 후의 상황을 절묘하게 조절하여서 홍수 피해를 전혀 입지 않게 하신 일 등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었지 않았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는데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저를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한명 한명 제 옆으로 보내주셨던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신 외할머니, 매일같이 한가지의 성경구절을 보내주시는 지금은 권사님이신 어머니, 제가 지옥에 갈까 걱정해주는 와이프, 저를 서울 교회로 인도한 대학 친구, 그리고 4년이라는 대학도 졸업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고 기도해주신 목자님과 목녀님 그리고 목장 식구들, 긴 시간 동안 VIP이던 제 사진을 보시고 이름을 불러 기도하시다 보니 가끔씩 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던 이수관 목사님 , 그리고 예수 영접 모임에 같이 들어가주신 친구 어머니 특히 이분은 교회의 집사님이나 권사님도 아니시고 권사님을 친구로 두신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분입니다.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어머님께서도 이은주 사모님이 알려주신 가정 교회에 나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한국으로 가시기 전에 한마디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내가 다음번에 오면 너는 나랑 세겹줄 기도에 갈 줄 알아!”
바기오/류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