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안수 소감: 주님이 원하시는 완벽한 사랑공동체를 꿈꾸며

By May 13, 2018e참빛

집사로 부름을 받고, 제가 교회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떤영향을 받았는지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기억 속에 첫 교회 경험은 초등학교 때 성탄절, 친구 따라 교회에 가 본 것입니다. 그 날 제가 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아기 예수, 동방에서 온 손님 등등’은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꿈 같은 얘기, 부잣집 아이들이나 받는 혜택으로 들렸고, 저는 주변에서 거지 취급당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교회는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날은 안돼, 내일은 교회에 가야 해, 술-담배는 안 해….’ 등 이들은 이유가 참 많았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이들이 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교회를 배척하였지요.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입니다. 헤어지면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미 좋아져 버렸거든요. 그래서 그녀를 포기하기보다는 교묘하게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기까지는 10년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되는 세상 속에 빠져, 투쟁과 좌절을 반복하며, 30대 중반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제야 제 삶과 가족을 뒤돌아보며, 의미 없는 것을 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교회를 찾았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교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 광고가 문제였습니다 어디엔가 사 놓은 땅에 무슨 건물을 짓는다며, 각 가정당 은행 계좌를 개설하라고 합니다. 제 반응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이었습니다. ‘역시 교회와 목사는 순진한 사람을 꾀어내는 곳이야!’이었습니다.

시작한 김에 한 번 더 다른 교회를 시도했습니다. 다 좋았습니다. 광고 시간에 돈 얘기도 없었고, 무슨 거룩한 말만 듣고 본당을 나오는 데 문 앞에 목사님이 서 계시면서 떠나는 성도들 하나하나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흠, 목사가 저 정도는 공손해야지’하는 데, 그 건너편에서 목사 아내라고 하는 사람도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평생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저는, ‘아낙네가 왜 나서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거의 없고, 여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교회로 보였지요. 당연히 뱃속이 뒤틀려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자매님들! 저 참 한심했죠! 믿지 않던 시절의 예를 들은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에서 지금은 여러분 사랑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향한 VIP들의 태도와 반응은 당연합니다. 평생의 가치관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데, 방어하게 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교회 쇼핑을 포기하고 있던 차에, 어떤 목사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분이 얘기하는 교회의 모습은 제가 아는 교회와 전혀 달랐습니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참으로 신선하고 근사해 보였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당시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렇게 저는 교회를 무슨 사회개혁 운동가, 세련된 전문가이라 생각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근사하고 세련된 신앙인인 줄 알았던 저는, 우리 교회를 오면서 박살이 났습니다. 바로 목장 때문이지요.

내가 가진 영향력을 행사하여 세상이 우리를 쫓아 오는 하는, 그런 거대한 꿈보다는,… 이번 주에는 부부가 어떻게 갈등했고, 직장에서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고, 아이들의 시험 결과 등등 사소한 얘기가 내 삶의 전부라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섬세하게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 그래서 다음 주도 목장 식구의 기도로 잘 지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 내가 서서히 변화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러나 이때부터 새로운 내적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옛속성이지요. 여러분 아세요? ‘아메리칸 드림’
시카고 불스의 구단주가 그랬다고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전혀 안 해도 되는 것”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 거라고요. 어떤 이유에서건 미국에 온 것은 더 편하고 풍요로움을 쫓은 것이었는데, 잘 먹고 잘사는 이곳에서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낄 때, 삶이 힘들어집니다. 저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 쉽게 좌절하고 분노하며, 나의 환경과 상황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옛속성이 새로운 속사람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늘 쉬워 보이고, 편하며, 열매도 빨리 맺을 수 있어 보였지만,
예수님의 방법은 시간이 걸리고, 자존심 상하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 이 ‘고통의 자리로 나 자신을 옮길 준비가 되었느냐?’ 라는 질문은 늘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실했습니다.

철저히 성령님에 의지하지 않으면 실수투성이였고, 사랑이 없는 충고는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목장 사역이었습니다. ‘지저분한’ 영적 상태를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쓰레기는 그 자체가 더러운 것도 있지만, 제자리에 있지 않아서 쓰레기가 되어 버릴 수 있듯이, 영적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영적 게으름’에서 오는 것도 경험합니다. 주어진 말씀을 따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타협하려 들 때, 이 쓰레기가 쌓여 갑니다.
힘들어서, 기분 나빠서, 시간이 없어서,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시작되는 그 어떤 노력도 관계를 깨뜨리게 됩니다.

제가 방문했던 교회들을 다시 뒤돌아봅니다.
초등학교 때 방문했던 그 날,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시키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눈을 감고 있다가 1분이 지났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라고 하시었데, 결과는 90% 이상의 아이들이 30초도 되기 전에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속에 속해 있었고요. 그러시면서 1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니 소중히 생각하라 하시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저는 ‘아! 교회에서는 이런 것도 가르치는구나!…’ 마음속에 각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니던 시절, 아내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조용히 저를 따라왔습니다. 절대자에게 이미 남편이 붙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파트 단지 상가의 그 허름한 교회에서는, 선교관/ 교육관을 지어 선교사님이나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또 다른 교회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내들이 나서서 섬김을 실천함으로써, 가정이 변하기를 꿈꾸었던 그런 공동체는 아니었을까요!

지난 1월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아내가 다녔던 모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연수 오셨던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알아보시고 성도들에게 인사해 달라고 하시어, 강단에 올라가서 ‘음…저는 이 교회를 잘 다니던 한 성도를 꾀어내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장본인입니다’라고 사죄하였습니다.
아내는 자신보다 남편이 먼저 모교회에 방문한 것이 감동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많은 교회가 우리 교회를 닮으려 합니다.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내며, 선배 목자님/ 집사님들이 쌓아 놓은 대로 따라 하면 된다. 그래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된다……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할 건 뻔합니다. 저의 자아를 쳐서 죽이지 않으면, 옛속성이 다시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최선의’ 교회가 아닌, ‘완벽한’ 교회를 꿈꾸어 봅니다.

주님이 그렇게도 원하시는 완벽한 사랑 공동체를 꿈꾸며,
철저히 성령님에 의지하여, 교회 리더십을 도와, 소외받은 자/ 어둠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포근한 자리를 내어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깜뽀지아/유윤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