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수해 극복 간증: 하비는 현재 진행 중

By April 22, 2018e참빛

9월에 가족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었습니다. 집 떠나는 여행이 달갑지만은 않은 연세의 부모님께도 떼쓰듯이 하여 승낙을 받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9월이면 날씨도 좋아질 테니까요. 하지만 12월이 된 지금까지도 가족 여행을 못 가고 있습니다. 여행은 고사하고 일 년의 4분의 1 이상을 집 복구 작업에 매달려 있습니다. 집이 예전과 비슷하게라도 되려면 앞으로도 한참 더 걸릴 것 같습니다.

-Beltway 8 & Boheme- Beltway 8 턱 밑까지 차오른 물

지난 8월 25일 금요일,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온종일 끊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우지끈거리며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휴스턴에서 폭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별일 없을 거죠?”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날 밤새 기상 채널을 켜 놓고 자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26일 토요일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근처 Creek과 Bayou에서 넘친 엄청난 양의 물이 동네 길을 수로 삼아 빠르게 흘렀습니다. 자고 나니 물이 무릎까지 차 있더라는 집, 뒷마당에 물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는 집 등 무거운 소식들이 들려왔습니다. 오후가 되자 몇몇 이웃들이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엄마와 아이들만 빠져나가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우비를 입고, 물 덜 찬 곳을 골라 밟으며 한 줄로 걸어가는 낯선 광경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중요한 서류며 아끼던 물건들 몇 가지를 선반 위로 올려놓았습니다. 27일, 동네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호수로 변했습니다. 집에는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길이 막혔으니 갇힐 수도 있겠다 싶어 가까이 사는 자매들 집으로 피했습니다. 짐은 간단하게 쌌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 물이 빠지면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집에 물 안 들어오게 해 주세요.”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비가 그치고 수위가 안정되자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게다가 연이틀 저수지를 개방했는데도 집이 괜찮았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날 밤 며칠 만에 처음 편안한 마음으로 단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이웃들에게서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습니다. 막바지까지 잘 버티고 있던 집들인데 결국 물이 들었답니다. 우리 집 역시 문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온 물이 순식간에 집안을 꽉 채웠습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젯밤 감사 기도도 드렸는데…”

9월이 되었습니다. 비도 그쳤고 저수지 문도 더는 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네는 아직도 호수인 채로 고립되어 있었고 16피트가 넘는 Beltway 8에는 턱 밑까지 올라온 물이 출렁거렸습니다. 집에 들어왔던 물은 하루 만에 빠져나갔지만, 곰팡이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가 동네에 못 들어오니 곰팡이가 피기 전에 물건들을 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쓰레기 봉지에 물건을 넣고 양손에 들었더니 봉지가 물에 닿았습니다. 어깨에 메었더니 더 무거웠습니다. 머리에 이니 좀 나았습니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첨벙거리며 물을 건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동생들과 배가 당기도록 웃었습니다. “울지 않고 웃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밤이면 몸살로 끙끙 앓았습니다. 주일날 저희 목장 박덕규 목자님과 원광우 형제님이 가슴까지 wader를 입고 물을 건너 들어오셨습니다. 참으로 든든하고 반가운 지원군이었습니다. 곧이어 홍성제 목자님이 오셔서 큰 짐들을 번쩍 들어 옮겨 주셨고, 석태인 집사님과 석영이 목녀님께서 짐 옮길 가방을 바람의 속도로 가져다주셨습니다. 대충 짐을 옮긴 후 호수 한가운데에 빈집을 덩그러니 놓고 오는 마음이 매우 쓸쓸했습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이분들이 오늘 흘린 땀과 수고 꼭 기억해 주세요.” 코가 석 자인 제가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휴스턴서울교회 Harvey 수해복구팀-

대망의 9월 9일 오전 9시, 목장 식구들, 초원 식구들, 분가 전 목장 식구들, 다른 목장 식구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마스크, 장갑, 커터는 물론이고 화려한 장비들이 마구 등장했습니다. 벽 뜯기 달인들과 뒤처리 달인들의 환상적인 조합, 먼지를 함빡 쓰시고도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주시던 하호부 집사님, 하인덕 목녀님과 김희숙 목자님, 엊그제 무거운 짐 옮기면서 허리에 무리가 갔는데도 꿋꿋이 짐을 나르시던 박덕규 목자님, 매처럼 정확한 눈으로 벽 제거 작업을 이끄신 원광우 형제님, drywall cutting 솜씨가 프로의 경지에 이른 집사님들과 형제님들, 꼬맹이 막내를 업고라도 오겠다는 유다운 목녀님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달려와 준 황길동 목자님, 30인분 점심 식사를 정갈하게 만들어 보내준 조혜승 목녀님,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싱긋 웃던 중학생 김원희, 제일 일찍 도착해서 땀범벅으로 묵묵히 일하시던 박찬규 목자님, 채화정 목녀님. 회사 출근하는 날 외에는 매일 피해 가구 순회 서비스를 하신 소준영 목자님, 오승민 목녀님. 얼굴도 모르는 사람 집에 와서 노동 제대로 하고 가신 장미숙 자매님, 이신 형제님 등 VIP분들, 목자님들, 목녀님들, 형제, 자매님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분의 도움으로 벽과 바닥을 일사천리로 뜯어내고 젖은 가구와 물건들을 집 밖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4피트 높이로 벽을 뜯어낸 집은 날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시원하게 뻥 뚫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감사와 미안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집 앞마당에는 물에 젖어 색이 번지고 찢어진 사진들, 낡았지만 익숙한 물건들, 고마운 사람들이 준 선물들, 아껴서 장만하고 행복해하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쓰레기 수거 차의 커다란 집게 끝에 매달려 가족의 품을 떠나는 물건들을 보면서 마치 지나온 세월과 추억이 깨지고 던져지는 듯한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필 같은 날 에어컨까지 고장이 났습니다. 수리하러 오신 분이 요즘 수해 입은 집들 에어컨 수리를 많이 하는데 본인 집은 괜찮다고, 그래서 “I feel guilty.”라고 말했습니다. 그 한 마디에 꾹 참아온 눈물이 이때라며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 만난 분이지만 고마웠습니다. 힘든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을 실감한 날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잘 안다.” 하시면 아마 저는 엉엉 울 것 같습니다. 슬퍼서가 아니라 알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허리케인 하비가 다녀간 지 석 달이 훌쩍 넘어 어느새 12월이 되었습니다. 그간 벽과 바닥 공사를 끝냈습니다. Astros의 승리에 환호도 했고, 높아진 하늘도 가끔 올려다봅니다. 그렇다고 낯설고 불편한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에게 허리케인 하비는 현재 진행 중이고 아직도 그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은 줄을 이었고, 떠올리면 마음 아픈 기억들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고 신기한 일은 하비가 저에게는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통로를 통해 매일 현재 진행으로 느끼는 감사함이 녹록지 않은 상황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이제는 하비 때문에 속상하다고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수해로 잃은 것보다 남겨주신 것이 훨씬 많고, 새로 주시는 것은 더 많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시간과 물질을 잃었지만, 그보다 무한대로 더 중요한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남겨 주셨고, 예배 때마다 빠지지 않는 하비 피해자를 위한 기도와 격려, 소중한 목장 식구들의 사랑, 복구팀을 비롯한 성도님들의 헌신을 거저 받게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감사 거리를 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산로렌조/구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