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수해 극복 간증: 그 날…

By March 19, 2018e참빛

<그 날>

“우리 집에 물 들어와!!”

2017년 8월 27일 주일 새벽. 낮고 다급한 남편의 목소리가 집 안에 퍼지던 그 순간, 평화롭던 우리 세 식구의 삶은 완전히 깨어졌다.

창 밖은 어스름했고 현관과 뒷뜰로 나가는 문 사이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숨을 멈추고 이불을 꺼내 물을 막기 시작했다. 두꺼운 이불들이 바닥에 닿자마자 흥건해졌다. 잠에서 깨어 두리번거리는 아이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쥐어주며 크립에 가두고, 나는 바스켓으로 남편은 펌프로 물을 퍼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우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집 안의 적막감은 깨어지지 않았다. 간혹 아이가 내뱉는 “엄마! 물! 배!”만 울려 퍼질 뿐 우리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남편이 다시 한번 선언했다. “자기, 물 퍼지마. 소용없어”

물은 참으로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카펫을 겨우 적시던 물은 사방에서 밀어닥치며 순식간에 발등을 덮었고, 어느새 발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창밖의 도로, 길 건너편 집과의 사이의 도로, 잔디밭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동네를 잠식한 흙탕물과 보트를 꺼내는 몇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

<집을 떠나던 날 아침. 이 길 끝에서 이경태 형제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남편이 아이를 안고 우산을 쓰고 걸어오고 있다.

‘도로가 다 물에 잠겼나보다. 우리 집이 고립이 되었나보다. 집 안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오늘 밤은 지붕에 매달려서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25개월 된 아들이 배고픔과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만이라도 내보내야 했다.

이경태/김소형 가정에 구조 요청을 했다. 다행히 잠기지 않은 길을 찾아 와주시겠다 했고, 혼자 남아 집과 운명을 같이 하겠노라는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나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는 뒷문 앞에 섰다. 문밖은 어떤 모습일까, 이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그야말로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것은 아닐까.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하고 뒤돌아 집을 바라보았다.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우리의 삶을 이어가게 했던 그 공간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너무나 찹찹했지만 설마 물이 천장까지 차지는 않겠지. 이 비만 그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빈집을 노리고 도둑이 들지만 않는다면 아주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은 아들을 등에 업고, 나는 배낭 하나 멘 채로 집을 나섰다. 물에 잠겨가는 집과 차를 등 뒤에 둔 채, 우산을 바치고 저 멀리 마른 도로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이 점점 얕아지는 길 끝에 이경태 형제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집, 책>

우리가 두고 떠난 그 집은 아이가 태어나 평생(25개월)을 보낸 곳이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났으며, 온종일 활개를 치며 구석구석 뒤엎고 다녔다. 집안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아빠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온통 ‘하민이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아이에게는 자신이 목을 가누고, 앉고, 서고, 처음으로 엄마를 불렀던 아주 익숙한 그곳만이 자신의 집이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이는 물이 들어 온 그 집을 ‘하민이 집’, 현재 임시로 거주하는 곳을 ‘새 집’이라 부른다.)

많은 사람에게 그렇듯이 우리 부부에게도 그 집은 ‘평생’ 혹은 ‘전부’를 의미했다. 우리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일종의 결과물이었으며, 우리의 남은 여생 대부분을 그 집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 집에는 많은 추억이 있었으며, 많은 물건이 있었다. 큰 돈을 지불했던 물건부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장품들이 있었다. 그 어떤 작은 것도 우리의 과거와 연결되어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홍수 후, 무너져 내린 책장

홍수 전, 우리가 특별히 사랑했던 책들

특별히 그 집에는 대략 1,500권 정도의 책이 있었다. 나는 성경과 더불어 그 책들을 통해 구원의 깊은 은혜를 깨달았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생겼고, 나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 책들에는 하나님 앞에서 내 머리가 뚫리고 가슴이 울렸던 뜨거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책 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남편의 책을 바라보는 것이 잔잔한 행복이었는데, 남편의 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만나기 전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그려졌다. 우리는 그 책들을 평생 곁에 두고 싶었고, 우리 아이에게도 이 책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집은 지붕과 뼈대만 남았고,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물건이 내버려 졌다.

<어려움>

텅 빈 집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과 허탈함을 몰고 왔다. 남편은 지금까지 직장 생활해온 것이 다 날아간 것 같다고 했다. 왜 아닐까.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던 책을 다 잃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줄을 이었다. 차 두대를 새로 사고, 임시 거처 렌트비를 내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새로 마련하고, 집을 치우고 수리하는 이 모든 것이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차치하고서라도,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들의 반복이었으며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의 규칙적이던 일상은 사라졌고 하루하루가 다른 불안정한 생활이 이어졌다. 종일 엄마한테만 매달리는 두 살배기를 데리고 이사를 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러 다니고, 정보를 알아보고 신청하는 일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산적했고, 세 식구가 오붓이 보내는 시간이 사라지며 우리의 마음도 말라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회사 일과 복구 일을 병행해야 했고, 나는 집안의 필요와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고, 사랑스럽기만 했던 아이는 계속되는 환경의 변화에 힘들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비’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단 하루도 ‘하비’로부터 파생된 일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상황이 답답했다.

집에 물이 차오르던 그 순간, 나는 살려달라고 기도했었다. 가족 모두 안전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지만, 살아남은 이후의 생활은 버거웠다.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감사 할 것이 많지만, 그것이 온전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피한 더 큰 어려움을 누군가는 직면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감사의 이유로 삼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절대적인 감사가 필요했다.

<감사의 이유>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한 지 딱 일주일 되던 날, 주일예배 시간이었다.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히 12:27)” 설교 본문 말씀을 읽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와르르 무너진 우리 집 책장이 떠오르고, 그 위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영광스럽게 겹쳐졌다.

나의 진짜 소유는 홍수에 쓸린 이 땅의 집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께서 거하시는 그곳이라는 사실이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 예배는 내가 휴스턴에 살면서 드린 최고의 예배였고, 그 이후, 내 몸은 비록 이 거대 도시를 휩쓴 풍파 가운데 있지만 내 영혼은 안전하다는 안정감이 나를 지배했다. 비록 나의 책들은 사라졌지만, 그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던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하심과 견고하심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강한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셨다.

서울침례교회 복구팀.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틀에 걸쳐 청소와 demolition을 해주셨다

교회와 목장에서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제공해주었다. 피난을 준비하던 그 순간부터 목장과 초원을 통한 현황 파악이 이어졌고, 설교와 기도에 힘이 더해졌고, 음식과 옷가지 등 급하게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주셨다. 마치 온 교회가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처럼, 그 어느 국가의 재난 컨트럴 타워보다도 더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교회가 없었다면 우리 세 식구는 ‘그 날’ 어디로 가야했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하러 와 주시고, 임시 거처를 찾을 때까지 집을 오픈하여 섬겨주시고, 자동차를 빌려주시고,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챙겨주시고, 얼굴도 몰랐던 분들이 시간을 내어 집 복구를 해주시고, 갖가지 물건을 기부받아 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특별 헌금으로까지 지원해주시고.. 온교회가 하나가 되어 자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서 준 것은 감사를 넘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함께 아파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손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이 계셔 우리는 큰 일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끊임없는 도움과 위로 받게 하심으로 주저앉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한 번의 친절은 선의만 있다면 베풀 수 있지만, 이렇게 지속적이고 한계를 뛰어넘는 섬김은 오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해 직후 시작 되었던 삶 공부(부모 세미나)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말씀을 붙들고 대화와 기도를 할 수 있었고, 당황스러웠던 아이와의 관계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복구 작업 후 집 내부

복구 작업 후 집 외부

내 평생 이런 일을 당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지만, 그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있음 또한 감사하다. 결혼 전 나의 이상형은 ‘위기대처능력이 뛰어난 남자’였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위기대처능력이란 순발력이 뛰어나고 뻔뻔한 구석도 좀 있는 그런 이미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꾀는 부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는 남편과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단 한번도 의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이 위기를 잘 대처해가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환경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짜 나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 그럴 수 있을까 했는데,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 그 중에서도 나에게도 나눌 것이 있게 하시고, 그것을 기꺼이 나눌 때 내 안에 새로운 힘과 기쁨이 생기는 신비를 알게하심 역시 감사하는 부분이다.

<현재>

‘그 날’ 이후로 3개월이 넘게 지났다. 주변의 도움과 기도로 재난 중에 감사했던 첫번째 달이 지나고, 힘들어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보냈던 두번째 달이 지나고, 지친 몸과 마음이 극에 달했던 세번째 달도 지나갔다. 집 복구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고, 공사가 겨우 시작되기는 했지만 제거작업에서 머물러 있고 언제쯤 끝이 날지 기약도 없다. 이제 피난민의 생활은 익숙해졌지만, 원래 보금자리로 돌아가 삶이 안정되기까지는 아직 긴 여정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쁠 때 웃고, 힘들 때 울며 한 사이클을 보내고 보니, 그 어떤 굴곡에도 사라지지 않는,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한 분이 보인다.

비록 육신은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내 영혼에 햇빛 되어주시는 나의 예수님, 어두움 속에서 더욱 환하게 빛나는 그 빛은, 미풍에도 쉽게 요동치는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바얀아울 목장/이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