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수해 극복 간증: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이다

By March 19, 2018e참빛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수해 극복을 주제로 한 간증문을 모집한다는 교회 광고가 있었지만, 워낙 많은 분이 피해를 보았고 또 저보다 다른 분들이 훨씬 많은 간증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아예 응모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달에 있었던 수요 목장 발표 때에 제가 간증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 했던 간증 내용을 토대로 별 특별할 것은 없으나 믿음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수요 목장 발표날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레 목녀님이 원래 내정되어 있던 형제가 사정상 간증을 못 하게 되었으니 대신 간증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왔을 때,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는 덥석 “네”라고 대답해버렸습니다. 일단 대답은 명쾌하게 했지만, 특별한 간증 거리가 떠 오르지 않아 참 난감했습니다. ‘무슨 간증을 해야 하지? 2년 전에 얼떨결에 간증을 한 뒤로 꽤~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내게 간증할만한 신앙의 변화가 있었나?’라고 생각해보니 그다지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듯하였습니다. 이렇게 간증 거리를 찾지도 못한 채 그냥 며칠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목장 하는 날이 되었고, 부지런히 일을 마무리하고 목장으로 향하는 중에 문득 2년 전, 전 목장 발표 때 했던 제 간증 내용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막 VIP(초신자를 칭하는 말)를 벗어난 뒤라서 의리 때문에 파트타임 목원에서 풀타임 목원으로 전환하며 의무감에 시작하게 된 금요 목장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갈등들을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비록 작지만, 저에게도 지난 2년 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내면의 변화가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크게 두 가지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어도, 2년 전과는 다르게 매주 목장과 교회에 나오는 것이 더는 의리 때문이 아닌 자연스러운 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별로 대단할 게 없는 것 같은 변화지만, 항상 시간이 모자란 듯 사는 저로서는 일주일에 이틀이란 시간을 최우선순위에 올려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둘째는, 언제부턴가 어떤 문제나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예전에 비교하면 조금은 더 담담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휴스턴에 큰 피해를 주었던 하비가 그 좋은 예인 듯합니다. 저도 그 홍수 피해자 중의 하나였는데, 모두가 그랬듯이 아무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고 별다른 대책도, 해결할 방법도 없는 상태였기에, 우선은 목장 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뒤에 교회 수해복구팀의 도움을 받아 잔여물을 거둬내는 작업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수리를 시작하여 지난달 말에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되었습니다.

모든 게 끝나고 뒤돌아보니, ‘내가 어떻게 거의 매일 두 달 동안을 직장과 집수리 공사 두 가지를 병행하며 버텼을까? 휴우, 드디어 끝을 봤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며

‘아하, 그 시간을 버틴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쓰러지지 않게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거의 날마다 밤 11시 정도까지 자잘한 일거리들을 처리하다 보면 몸이 지쳐가고 때때로 혼자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도 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혼자서 흥얼거리는 ‘나의 등 뒤에서’라는 찬송을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나를 지켜보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과는 좀 달라진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지금과 똑같은 일이 생기면, 맨 먼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원망도 하고, 그저 인생을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은 멀쩡한데, 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기나 한 것인지’라며 투덜대기도 하며, 믿지도 않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에는 정말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었음에도 단 한 번도 그런 불평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고, 원망의 말도 내뱉은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 엄청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극복하는지 시험하시나?’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별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겨놓고 나는 그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 한번 부딪혀보지 뭐~. 길이 안 보이면 하지 말라는 것이고…’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덤벼들었습니다.

제가 집을 수리하겠다고 결정하고도 공사를 시작할 돈이 마련되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는 시점에, 몇 년 전에 저와 일 관계로 알고 지내던 미국인 공사책임자 ‘에드가’라는 사람에게 제 사정을 얘기하고 견적이라도 받을 수 있냐고 전화를 했더니, 너무 큰 공사를 맡아서 견적이며 공사는 한두 달 뒤에나 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홍수 보험을 안 들었고, 제가 거주하는 집이 아니어서 FEMA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알게 되고 나니, 이건 하나님이 집을 고치지 말라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덤핑으로라도 집을 넘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서류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에 에드가에게서 연락이 와서 그다음 날, 우리 집 동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릴 일이 있는데 시간이 되면 견적은 내줄 수 있노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수리할 능력이 안 되는 걸 알았지만, 집을 처분하려 해도 고치는 비용을 알면 도움이 될 듯싶어 만날 약속을 하고 견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얘기를 나누던 중에, 제가 이번 일로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해결할 능력도 안 돼서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더 많은 금전적 피해가 올 것 같아 서둘러 집을 처분하려 한다고 했더니, 아무 수리도 하지 않은 상태로 집을 팔게 되면 집을 헐값에 넘겨야 하고 잘못하다간 돈도 더 물어내게 될 수도 있다며, 어떻게든 수리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고칠 돈이 없어서 처분하려고 하는데 돈까지 물어낼 수도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머리가 멍한 상태로 있는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에드가는 제게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한두 달 정도면 집수리비용의 반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의 시간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가 시간을 쪼개서 가능한 한 최소의 비용으로 일을 시작해 볼 테니, 공사대금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반드시 지급한다고 약속하면 자기가 도와주겠노라고 선뜻 제의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 귀를 의심할 정도로 믿기 힘든 제의였습니다. 지금같이 공사업자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시기에 그것도 1000가구나 되는 아파트 공사를 하는 중인 사람이 당장 공사 대금도 없는 나를 위해, 본인이 직접 재료를 사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집수리를 하는 과정은 나의 계속되는 간증 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믿기 힘들 정도로 그때그때, 사람들을 연결해주셨고 제 마음속의 소원까지 들으시는 것처럼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타이밍도 기가 막힌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이번 일을 통해, 저는 ‘저에 대한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을 돕는 것에는 전혀 주저하거나 망설임이 없는 데 반해,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무척이나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성향은 ‘어차피 모든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상대방까지 같이 힘들게 할 필요가 무엇이냐’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고, 난 남의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오만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제 성격이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데도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었고,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믿음을 갖게 하였고, 그 후에도 예수님께 기대는 일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힘이 들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생명의 삶 공부를 수강한 뒤로는 예수님께 기대는 것은 훨씬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 같은 사람처럼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해를 당하고, 혼자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보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목자님의 말씀에 반자동으로 SOS를 치고, 목장 식구들과 교인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그 힘든 잔해물 처리하는 일을 하시고, 작업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편에서는 김밥과 커피를 준비하여는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고맙고 가슴이 먹먹해 오는 감동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어색한 저를 대신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게 해주려고 여기저기 동분서주하는 목녀님과 다행스럽게도 교회에서 2차 성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일인 양 기뻐해 주던 목장 식구들, 시간 없어 끼니를 못 챙길까 걱정되어 음식들을 챙겨다 주시는 아파트에 입주해 계신 교우님들…

정말 필요할 때에, 그리고 지쳐있을 때 진심 어린 도움을 받으면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하는 정말 새롭고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남을 돕던 것은 그저 선행이었을 뿐, 예수님께서 제게 바라는 진정한 사랑의 섬김이 아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남을 도울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가슴으로 느끼고 경험할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수해는 저에게 물질적인 피해는 주었지만, 그 반면에 내가 놓치고 있던 나 자신을 알게 해 주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나마 믿음의 씨앗이 한알 한알 제 마음 주머니에 채워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 믿음이 예수님 옷자락을 붙들고 많은 우리 교인들이 그러하듯이 힘든 시간을 아무 일도 없는 듯 밝은 모습으로 감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또한 많은 감사 거리도 덤으로 얻었습니다. 버틸 수 있는 정도의 피해만 주신 것, 다행히 직장에는 큰 피해가 없어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해주신 것, 너무 고마운 공사업자를 보내주신 것, 수해를 당한 사람의 마음을 같이 공유할 수 있게 하신 것, 좋은 교회에 속하게 하신 것, 그리고 힘든 시간을 같이 걱정하며, 의지가 되어 주고, 수리가 거의 끝날 즈음에는 앉을 자리도 없는 곳에 임시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아직도 페인트 냄새가 가득한 곳에 함께 모여서 찬송과 축복의 기도를 드려주는 참 좋은 목장 식구들이 있는 목장에 속하게 하신 것, 등등.

‘장미꽃 가시에 감사한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고난도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포장지에 싸인 축복의 선물임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노이 목장/윤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