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서 이번 수해를 겪은 사람들의 수기를 모은다고 하실 때 ‘감사할 일이 넘치는 내가 당연히 수기를 써야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 때문에 선뜻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받은 도움이 너무 많았기에 힘들었다고 하소연할 것이 없었고,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기에 마음에 남은 큰 상처가 없어서 쓸 내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랑으로 들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그러나 오늘 (11월의 마지막 날) 새벽 큐티중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받은 은혜와 경험들을 겸손함을 핑계로 나누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교만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용기를 얻어 이번 수해로 얻은 은혜를 나누어 내가 경험한 하나님과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당당하게 자랑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그 계획 가운데 우리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그 옛 습성에 빠져 의심하는 마음이 불쑥 나올 때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잠히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된 것은 그간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일하심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작년과 올해 9월은 저희 가정은 그것을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작년 9월 한국으로 영주권 인터뷰를 보러 나간 신랑이 거절 레터를 받았다는 전화에 저는 어찌할 줄 몰라 하는데 정작 신랑은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주 만에 다시 승인 도장을 받고 휴스턴에 계획된 3주보다 딱 2주 늦은 5주 만에 돌아온 신랑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맘을 졸이며 괴롭게 기다리던 그 5주의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마음 써주던 목장, 초원, 교회 식구들의 존재의 귀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써주며 용기를 주고 도와주는 교회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때 저희 부부는 넘치게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어찌할까 고민하다 매주 감사헌금을 드리기로 결단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결심이 쉽진 않았지만 한번 헌신한 후엔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감사한 한 해를 보내고 ‘2017년은 평탄히 지나가는구나’ 하던 찰나 9월의 첫 주일날 아침 영화와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찍 일어나 평소와 같이 교회 갈 준비를 하려던 중 비가 많이 와서 교회 예배가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놀라 집 뒤 주차장을 확인하니 벌써 물이 꽤 올라와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타운 홈은 메모리얼 중간에 가장 피해가 컸던 타운 중 하나로 저희가 주차장을 확인하는 그 시간,단지 안쪽의 집들은 벌써 집 안에 물이 들어오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큰 길 바로 옆쪽 건물이라 물이 늦게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설마 하면서 혹시 모르니 짐이나 싸놓자고 옷가지 몇 개를 챙기기도 하고 아침을 챙겨 먹기도 하며 여유를 부렸습니다. 그때 급작스럽게 현관을 통해 물이 들어오고, 목장 식구와 부모님이 번갈아 전화를 하며 당장 집에서 나오라고 하기에 당장 다음날 아이의 등교를 위한 책가방과 옷만 챙겨 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다행히 길가에 위치한 집이라 물이 많이 차지 않아 걸어 나갈 수 있었고 친정아버지가 큰 트럭으로 데리러 와주셔서 별 어려움 없이 친정집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닥만 젖겠지…설마 더 차진 않겠지…하며 큰 걱정을 하진 않았습니다. 살던 집이 단층집이라 중요한 것들을 2층으로 옮길 수도 없었기에 물이 들어오면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상황이었기에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다음날 비가 그치고 물이 조금 빠졌을 때 들어간 집은 물이 들어왔다 빠진 상태로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지만 집을 치우려면 동네에 물이 다 빠져야 하니까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휴스턴시에서 댐을 방류하는 일이 생겼고, 빗물이 빠졌던 동네가 그 전보다 더 깊은 물 속에 잠겼습니다. 중간중간 집을 확인하러 가서 보니 물에 완전히 잠겼고 방류된 물이 고인 메모리얼의 참혹한 상태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남은 짐이라도 챙겨야 하는 상황에 처음엔 맨몸으로 물살을 이겨내며 들어간 집의 상태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억지로 쌓아 올린 짐들은 다 무너져 내려있었고 무거운 냉장고 2대도 쓰러져있었습니다. 담담하게 집 상태를 확인하다가 딸아이가 새 학기라고 직접 고른 런치백이 더러운 빗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고 갑자기 울음이 터졌습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며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그저 하찮은 런치백일 뿐인데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지도 모르게 울며 돌아 나오던 그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런치백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저는 물질에 참 많은 뜻을 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땐 그저 아이의 물건이라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이에게 믿음의 유산보다는 물질적인 유산을 먼저 물려주려 했던 저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던 순간이었습니다. 저와 신랑은 무슨 일에서든 아이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신앙생활, 부부 생활 등에서 가장 시험에 들게하는 문제가 아이의 문제인 것을 느끼고 그것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신랑은 신랑대로 그 동안 아이에게 사랑의 표현으로 수없이 해주었던 선물들이 물 위에 떠다니는 모습에 조용히 마음 아파했고 저는 저대로 열심히 일한 신랑의 피와 땀이 섞인 세간살이들이 망가진 모습에 쓰린 가슴을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워낙에 염려가 많은 성격의 저에게 당연히 밀려와야 할 앞날의 문제에 대한 압박감이 들이 않았습니다. 처음엔 너무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할 정도로 염려가 되질 않았습니다. 어디 모아둔 돈이나 살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생활 10년 이상의 살림살이는 아직도 물속에 잠겨있는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오히려 목장 식구들에게 큰 수해가 없음을 감사하며 신랑과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바쁜 일상과 여러 개인적인 문제를 핑계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친정 부모님과 마음의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가까이 사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끼게 되었고 그 이후로 더욱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편안하면서도 위태로운 며칠이 지나고 물이 빠져서 복구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지만,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저희는 복구팀에 도움 요청하는 것도 괴로워 미루다 주변의 강권으로 막판에 겨우 복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물이 빠지고 난 집은 곰팡이와 악취로 가득하였기에 냄새나는 것이라도 먼저 버리려고 신랑과 둘이 치워보았지만, 하루 봉일 하여도 일은 진척되지 않았고 목장 식구의 도움으로 챙길 수 있는 짐만 간신히 챙겨서 복구팀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복구 팀의 빡빡하고 바쁜 일정 가운데 늦게 신청한 탓에 많이 오시지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놀랐습니다. 복구 당일 익숙한 우리 교회 식구분들과 낯선 형제님들이 오셔서 재빠른 손길로 청소를 해주셨습니다. 처음엔 마스크에 가려 잘 알아보지 못해 잘 모르는 교회분인가 했던 여러 명의 장정분은 알고 보니 그날 새벽 휴스턴에 도착하여 바로 달려와 주신 달라스 뉴송 교회 식구분들이었습니다.그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도우러 오셔서 우리보다 더 안타까워 해주신 그분들의 마음과 손길에 감사했고, 이런 손길의 통로가 되어 준 우리 교회에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또 채워주시는 손길에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어찌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도우러 오신 목녀님들은 세밀한 손길로 깨끗한 짐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하셨고 또 여기저기서 음식으로 도와주신 덕에 나중엔 온 이웃 집의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가지고 있던 세간살이 거의 모두를 버리느라 집 앞에 쌓아가는데 그 일을 돕던 형제님이 버릴 수밖에 없는 짐들을 보며 안타까워하실 때 저도 모르게
“ 괜찮아요! 이제 하늘에 쌓으면 되는데요 뭘!” 하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고백할 수 있던 것이 제가 자랑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후에도 교회를 통한 도움과 이웃들의 도움은 끊임이 없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같이 피해를 본 이웃들과 서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왔던 것은 순간 ‘천국이 여기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감동과 기쁨이 넘치는 경험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휴스턴에 오지 않았더라면, 서울 교회에 다니지 않았더라면…이런 경험들은 쉽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일들을 자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는다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교만임이 분명함을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저희 가정은 아직 여러 면에서 수해에서 회복되는 중이지만 저는 더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도와주시는 이웃과 교회가 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서 일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믿음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함을 잊지 않고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쌓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주시는 상이고 그곳을 쌓을 곳은 하늘나라임을 이젠 잊지 않겠습니다
이포목장 / 심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