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삶 첫 시간,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이전의 생명의 삶과 새로운 삶과는 다른, 소그룹 형태의 삶 공부임을 알게 되었고, 대부분 잘 모르는 분들이어서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분위기는 이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때나 가장 마음 아팠던 때”를 서로 나누면서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도하시는 집사님의 연륜이 깃든 말씀으로 저희 7명 형제의 마음은 쉽게 동화되었습니다.
삶 공부의 꽃이라는 “경건의 삶”을 들으면서, 직장을 마치고 7시까지 다시 교회로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차가 아주 많이 막혀서 발을 굴렀던 일로 인해, 11월은 생명의 삶이 있는 화요일에는 휴가를 내어, 집에서 차분히 준비하고 아내와 함께 교회로 갔습니다. 그러던 중 섬김의 훈련 단원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라’는 말씀에 마음이 많이 찔렸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서 교회의 삶 공부와 비슷하게 12주 과정의 교육이 있었는데, 이 교육에 임하는 제 마음과 삶 공부에 임하는 제 마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삶 공부를 듣는 시기에 여러 가지 많은 회사 프로젝트로 틈이 나지않는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경건의 삶은 꼭 듣고 싶은 영적 갈망이 있었습니다. 이 삶 공부와 회사 교육을 업무 시간 외에, 시간을 따로 내어서 해야 하므로, 회사 교육은 늘 뒷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주님께 하듯이 하라’는 그 말씀에 마음이 찔려, 그 날부터 밀렸던 숙제도 열심히 하고, 매주 과제도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매 과의 퀴즈도 패스하고, 마지막 주 발표도 잘 마쳐서 지난주에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 마음 중심에는, 13주 동안 삶 공부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 하자’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매주 3일 이상 큐티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시간대에 큐티를 하게 되면 +5의 가산점으로 인해 아침에 같은 시간대에 말씀을 묵상하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13주의 훈련 덕분에 아침에 말씀 보는 습관이 잘 자리 잡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4번씩 남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과제가 있는데, 늘 집-회사-교회만 왔다가는 일상생활에서는 과제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아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한다든지, 쇼핑몰에서 문을 잡아 준다든지 등 불특정한 사람에게 일시적인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런 일회적인 친절과 함께, 매일 만나는 오피스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친절한 말을 하고 관심을 보이는 연습을 통해서, 제 자신의 성격이 조금씩 변화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매주 기도의 훈련, 예배의 훈련, 섬김의 훈련 등 다른 주제로 심도 있게 과제를 수행하며 세족식, 소각식, 24시간 이상 금식, 2시간 이상 홀로 있기 등의 구체적인 훈련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3주 동안 늘 제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은, 이 경건의 삶 훈련을 통한 “영적 과제”였습니다. 저의 영적 과제는 ‘아내를 더 잘 이해해 주기’였습니다. 내가 힘들어할 때, 친절한 말과 진심으로 그 마음을 이해하는 말을 하는 것을, 실천 계획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을 영적 과제로 삼았던 이유는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이 온전히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7년 전 어느 봄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좋아 7년을 연애하고 서로 첫사랑으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으면 되겠지 막연히 생각하던 저에게 아내는 영국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학교에서는 admission이 오지 않아, 합격한 대학 중 미국 지도를 보면서 가장 가까운 4시간 거리에 있는 두 대학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4시간 거리가 쉬운 거리는 아니여서 아내는 첫 학기도 끝나기 전에 포기하고 제가 있는 학교로 와서, 그다음 해에 공부를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희는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 아내는 아이가 태어남에 따라 공부하다가 쉬었고, 제가 먼저 졸업하고 박사후 과정으로 다른 대학에 갔을 때도 그곳에 와 논문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졸업하여 직장을 구해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제 직업의 특성상, 제가 연구비를 따와야 하는데, 연구비 신청이 자주 거절되고, 연구소 상황이 어려워지던 중에, 휴스턴의 오일&가스 쪽 회사에 자리가 나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Job position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일과는 전혀 달라서, 경험 삼아 지원했고, 인터뷰 오라고 하는 것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휴스턴은 이전에 평신도 세미나 때 참석한 곳이기에 편한 마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인터뷰에서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오일&가스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는데, 2개월 후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도 관심이 있느냐고요. 저는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말했고 오퍼를 수락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고, 아내는 가르치던 학기를 마치고 또다시 저를 따라 휴스턴으로 내려왔습니다.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주위 사람들이 아내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휴스턴은 큰 도시이니 가르칠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휴스턴에는 서울 교회가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휴스턴에서의 정착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내는 상실감으로 마음의 힘듬을 나눌 때, 저는 진정으로 그 마음을 헤아리고 동감해 주기보다는 현실적인 말과 단편적인 정답만 이야기하다가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을 되돌아보면, 장남으로 알아서 잘 하는 아이로 칭찬받으며자라온 저는, 아내가 힘들어하면서 하는 말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기보다는 저를 변호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삶 공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에 이웃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아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말씀이 불편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나 중심적인 사랑이었고, 이기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내 몸을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문제를 깨닫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말씀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지속적으로 노력하려고 합니다. 저희 부부의 인생에, 언제나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의지하여,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그 걸어온 길이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임을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배의 훈련 단원에 나온, 윌리엄 템플의 예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삶이 이와 같은 예배자의 삶이 되기를 바라며 간증을 마치고자 합니다.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아, 인간의 양심을 살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인간 지성의 양분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인간의 상상을 정화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인간의 마음을 여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 인간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다.”
인도/운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