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목녀 간증: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By September 3, 2017e참빛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 자리에서 대행 목자 임명 간증을 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1986년 한강에 제 이름으로 다리 하나를 설계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야무진 꿈도 잠깐,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아 장삿길로 저의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간판도 달지 않고 1만 불의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장사는 4년후에는 그 분야에서는 잘 나간다는 소릴 들을 정도를 재미를 보았습니다.
미국이 좁다 할 정도로 잦은 출장과, 남자는 집보단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로 가진 저에게, 찾아온 것은 가정의 불씨였습니다
엄마 없는 어린 두 딸과의 생활은 자신감만큼 잘되어가지 않았습니다.
다행한 것은 할머니와 두 딸이 함께 휴스턴 서울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아이들은 믿음 안에서 잘 자라 주었고, 자녀교육에 힘쓰는 휴스턴 서울교회가 엄마 없이 크는 우리 두 딸을 목장 안에서 잘 키워 주셔서 너무 감사했었습니다.
저 역시 우연히 큰 누나 목장을 방문하게 되면서, 1999년부터 교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삶이 너무 힘든 저에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 하나님은 너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는 말씀을 가슴으로 듣게 해 주셔서, 바로 등록, 영접, 침례까지 받았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미션스쿨을 다녔지만,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저에게, 그때 당시 매주 주일 말씀과 찬양으로 많은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믿음에 뿌리가 약한 저는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어서, 목장을 다섯 번이나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9년 현재 목장에 조인하면서 다시 삶 공부를 듣고, 목사님과 목장 식구들의 도움으로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와 재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 빌어 다시 한번 이수관 목사님과 이은주 사모님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음식과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마련해 주신 목장 식구분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독할 정도의 목자 목녀님의 강한 카리스마에 자신을 조금씩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고, 주방장의 사역에 순종하면서. 힘들었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사역을 하면서, 지체로서의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이 될 것이라는 예비 목자의 임명이, 저에게는 방광암이라는 가슴이 철렁하는 어려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쉴 틈을 주지 않는 저희 목장의 특성상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 생업과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고, 6개월 후에는 암에서 free 하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항상 함께하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분에게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하비 허리케인으로 목자 임명을 앞두고 먼저 목원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물에 잠긴 도로를 위험하지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목원들 가게를 다녀야 했고, 함께 우리 집에 모여야 안전할 것 같아서 사흘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면서 하나님께 엎드린 저 자신을 보면서 놀라웠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양들을 돌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준비하면서 또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어른이 그러면 그런 줄 알고 시키면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목자사역에 헌신과 순종하겠습니다
저를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이수관 목사님, 목장 식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을 사모하게 해 주신 최영기 목사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자신이지만 집사님과 목녀님의 삶을 보고 배운 대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목적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고구려 / 오진구

 

어린 시절 저에게는 두 가지의 큰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신유의 은사가 있으신 할머니가 계셔서 두 분이 같이 전국을 다니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 저는 늘 엄마의 사랑이 그립기만 했었습니다. 어느 날 잠결에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엄마가 나를 붙잡고 기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옆에 늘 안 계셔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너무나 포근하게 안아주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엄마가 곁에 없어도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친구 집에서 늘 숙제를 하곤 했는데 친구 아버지는 암에 걸려 많이 아프셨고, 어느 날 숙제하는 제 옆에서, 친구 아버지는 너무나 무서워하시면서 소리소리 지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친구 아버지의 얼굴은 어린 제가 보기에도 두려움과 무서움이 가득한 얼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평소 할머니를 돕겠다며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시던 암으로 만삭이 되신 아줌마가 같은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또 한 번의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데 이 아주머니는 친구 아버지와는 너무 다른 정말 천사의 모습처럼 평온해 보였습니다.
하루 사이에 천국에 간 얼굴과 지옥의 간 얼굴들을 보게 된 저는 그때부터 임종하신 분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84년에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와서 30년을 넘게 사는 동안, 한국 기업과 파트너 쉽으로 체인 사업을 하던 것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휴스톤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12년에 휴스턴 서울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듣는 말씀이 제 가슴을 두드렸고, 다시금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결단이 설 때면 저는 헌신대에 나가서 기도 받고 싶었지만, 목장에 나가질 않는 상태여서 헌신대에서 목사님에게 기도 한번 받아 보질 못했습니다.
목장이 매주 모인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기에 차라리 다른 교회를 옮기려고 해 보았지만, 교회와 목장을 절대 옮길 수 없다는 지금 남편의 고집과 제가 목장에 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는 배려 아닌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좋다는 남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믿음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만났는데, 그 꿈은 금방 깨어지고 어떤 종교를 믿어도 다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이상한 이론을 가진 것에 너무 놀라서 목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목자님,
그럼 그 위는 누구냐고 하니 초원 지기가 있다고 해서 누구냐고 하니, 같은 목자님,
그럼 그 위는 누구냐고 하니 목사님,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하니, 자신있게 이수관 목사님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 설득을 하여도 남편의 잘못된 믿음은 변화지 않기에, 제가 어디 가서 서울교회 다닌다는 소리와 이수관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사님 저 잘 했지요.!!! 휴스턴 서울 교회는 VIP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신자들을 위한 삶공부가 있었고, 이런 삶공부를 하려면 목장에 나가야 해서 결국은 제가 3년의 도둑 예배를 마치고 목장에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간 목장은 목자님, 목녀님 그리고 목장식구들의 사랑과 섬김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삶 공부를 남편과 함께 들으며, 남편의 신앙관이 바로 세워지게 되었고, 목장에서는 평생을 두고도 갚을 수 없는 저희의 결혼식을 위한 귀한 섬김을 받게 되었고, 눈물의 축복송을 들으며 이수관 목사님의 주례로 재작년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저는 목녀로서 너무나 부족하고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 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저에게 가르쳐 주신 순종, 그것은 교회와 목사님에게 무조건 순종하면,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순종하려 합니다. 

목자님 목녀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가득 담은 헌신의 모습을 뒤따라 가겠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떤 시기에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해 본 적 없었고 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늘 제 안에 계신 분이시고, 제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늘 이끌어 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사랑과 헌신을 몸소 보여주신 집사님, 목녀님, 부족한 저희를 믿고 함께 분가하는 목장 식구,
그리고 늘 기도로 후원해 주시는 엄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고구려 / 오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