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파송 간증: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By July 2, 2017e참빛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사 43:7)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잠 3:5-6)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지금 우리가 앉아 숨 쉬는 일 같은 우리의 크고 작은 삶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1. 저희는 MIU, 몽골 국제 대학에서 사역자와 학생들을 섬기는 전문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2. MIU는 2002년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학생 600여 명, 교수 60의 종합대학 입니다 교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고, 작은 수의 미국, 캐나다, 독일인 헌신자들도 있습니다.
3. 총 학생의 30여 퍼센트가 되는 외국 학생들의 대부분이 주위의 모슬렘 국가에서 왔습니다.
4. 몽골은 서방에 펼쳐진 모슬렘 세계를 향한 교두보 적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는 몽골 땅의 세계를 향한 복음 사역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5. 저희는 가정교회 목장 사역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사역을 시작하려 합니다.
– 교수 사역자들을 영적으로 충전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여 MIU가 효과적인 선교사역의 터전이 되게 돕는다.
– 사역자들을 가정교회 목장의 목자로 준비되게 도와 학생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다.
– MIU 학생들을 복음화하여 제자 삼아 파송한다.
– 불신자 교수들을 복음화하여 사역자로 만든다
– 몽골인들을 복음화한다

저희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오클라호마에서 섬기던 Vision Oklahoma라는 청년 집회를 통해 알게 된 몽골 국제대학(MIU, Mongol International University)의 권오문 선교사님으로부터 MIU에서 동역할 것을 제안받고, 아내와 같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고 생각되어 작년 6월에 선교 헌신을 했습니다. 그후 이수관 목사님의 권유에 순종하여 이번 2월 계획에 없던 대전 침례교단 세계 선교 훈련원에서 선교훈련을 받았습니다.  시작하면서 곧바로 우리에게 이 훈련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심과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중 있었던 만남과 훈련 과정의 여러 활동을 통해서 그간 내가 가져왔던 선교에 대한 태도를 돌아볼 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한 것은 훈련 중 한 훈련 동기생 목사님과 가졌던 대화였습니다. 몽골과 인도에서 5년 넘게 선교 사역을 하다가 훈련받기 위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미국에서 40년이 넘게 살아온 나는 재작년 오래 일해 오던 직장에서 은퇴한 후, 짧게 말해 “휴스턴에서 살던 것을 몽골로 이사해 사는 것…” 이라 하는 마음으로 몽골에 가서 MIU를 선교 기지로 하여 복음 사역을 하겠다고 선교 헌신을 했던 터였습니다. 대화 중 지나가는 말처럼 선교지에 있을 때 죽는 것이 무서웠다 하는 이분의 말이 내게 충격으로 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선교 헌신하며, 막연하게, 내 건강이 악화하여 MIU에 부담이 된다 하면 그때가 몽골을 떠나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훈련받고 있던 나는, 그때까지 선교와 순교라는 것을 내 사역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후 부터 이 땅에 처음으로 복음을 들고 오셨다가 순교하여 이 땅에 묻힌 외국 선교사님들의 선교 사역과 같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선교를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주와 강경의 초대 침례 교회를 세우려 헌신하신 선교사님들의 유적지를 순방하여,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셔서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드리고 이 땅에 묻힌 선교사님들의 흔적에 접하면서, 내가 가서 사역하려는 땅과 그 백성들을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저는 어떤 선교사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네가 휴스턴에서 살든 몽골에서 살든, 나는 너를 창세 전에 내 아들 예수의 제자로, 선교사로 택하여, 내 영광을 위해 창조했다. 어디에서 살던 너는 내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기 전까지는 그저 종교인들의 입에 발린 말처럼 내게 들리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말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된 후, 지적으로 동의는 했지만, 실제적인 삶에 그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분명치 않았고, 감정적인 힘도 없이 애매하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 뜻에 순종하려 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 정직하고 선한 삶을 살려 노력해 왔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희생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말을 글자 그대로 믿고 받아드려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지 않는 한, 너의 내 뜻에 순종하며 선한 삶을 살려 애쓰는 것은 나를 향한 너의 선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너의 선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영광을 위해 살라고 나는 너를 창조했다. 내가 너를 향해 오래 참고,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고, 네 삶을 인도하고 축복해 주는 것은 너의 나를 향한 선심 때문이 아니라, 내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너를 살리려는 너를 향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라. 내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너는 너의 지혜와 능력을 무분별하게 포기하고, 내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네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나를 인정해야 한다.’ 하십니다.

말씀하시는 이 일에 관한 나 자신의 지금까지 삶을 돌아봅니다 오래 직장에서 해왔던 일들은 정확성과 확실성을 요구했습니다. 뭐가 하나 잘못되면, 원자로나 정유소나 큰 해양 구조물 같은 위험한 장비와 시설들이 깨져, 큰 재난을 초래할 수 있기에 모든 일에 정확한 계산과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내 성품도 그랬습니다. 무엇 하나 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에 맞지 않는 것은 따를 수 없었습니다. 모든것이 바르고 확실해 졌을 때 결정하고 행동해 왔습니다. 이런 생활 방식 뒤에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와 아내가 하려는 것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큰 변화를 의미합니다 시작하는 이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체적으로 살려 합니다. 다른 삶의 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드려 믿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일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은 물론, 자연인으로서 내 본질적인 경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이 일에 교회의 중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교회가 선교사로 파송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영광입니다. 이 하나님의 큰일에 교회와 동역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비록 휴스턴을 떠나 몽골에 가서 산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셔서 세우시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교회의 지체인 것이 감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 힘을 잃고 있는 이때 하나님의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세상에 제시하고, 리드하고 있는 휴스턴 서울 교회의 지체가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희종

 

선교에 대한 저의 마음은 아마도 미국에 온 후 3년째 되는 해에 오클라호마로 이사 갈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편은 늘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디라도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말을 종종 했고, 아들이 선교 헌신을 한다면 가장 기쁠 것이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본인도 선교에 대한 마음이 깊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클라호마에서는 오클라호마 주립 대학의 학생들을 섬기며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남편은 한시간여 걸리는 회사를 출퇴근하며 청년들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2003년 학생 사역에 도움을 얻기 위해 미주지역 코스타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해마다 코스타에서 학생 멘토 사역을 5년간 하게 되었습니다. 코스타에 참석한 남편은 특별한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1, 2시간 거리의 오클라호마의 세 개의 도시, Tulsa, Stillwater와 Oklahoma City에 있는 7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소수의 한국 유학생들이 19개의 자그마한 교회들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교회들이 작아 청년들을 영적으로 잘 돌볼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삶에 지쳐있는 이민자들 사이에서 젊음의 열정을 발산하지 못한 채 영적으로 시들어 가고 있는 청년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코스타에서는 리더들을 훈련할 목적으로 각주를 순회하며 훈련시키는 GP KOSTA (기드온 프로젝트코스타)를 소개해 주었고, 우리는 그 팀을 유치하기 위해 합심해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오클라호마에서 2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각 교회의 목사님들은 이런 예배는 처음이라며 기뻐하셨습니다.

그 후 VISION OK라는 이름으로 매년 방학 기간인 1월 초에 집회를 가졌습니다. 처음엔 1박 2일 나중엔 2박 3일의 일정으로 7년간을 섬기고 2010년 Houston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MIU의 권오문 총장님이 VISION OK의 강사로 섬겨 주셨고 부총장이셨던 이 용교 선교사님이 스틸워터 한인 침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여 주신 결과 청년들이 중, 단기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7년 동안의 사역을 통해 공급하시는 하나님, 채워 주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 하나님, 힘이 되신 하나님,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몇 명이 모이든 청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가겠습니다.” 하시고 한국에서 자비로 와 주신 김형민 목사님. 그분은 청년들에게 많은 영적 각성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여러 교회의 청년들이 하나로 연합되는 집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며 흔쾌히 와 주신 오 대원 목사님과 엘렌 사모님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여기시면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배낭 하나 메시고 오시는 것을 보며 나도 외지고 열악한 곳,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내가 가진 것으로 섬기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 이기도 합니다. 일본을 떠날 때, 유학생 생활 중 교회의 성도님들로부터 받은 깊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을 기회가 있을 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갚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드렸었습니다.

2015년 4월에 남편이 퇴직하고 난 이후 앞으로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 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해 10월, 지인의 권유로 인터콥에서 주관하는 8주간 과정의 Vision School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IS로 중동지역의 정세가 위급한 상태에 있을 때 그 지역의 현장에서 사역하시다가 오신 선교사님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증하며 도전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 라고 하는 지금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는 생생한 현장 소식이었습니다. 우리에게 Comfort Zone에서 나오라는 도전이셨습니다. 마음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4월 초에 권오문 선교사님으로부터 정식 초대가 있었습니다. 4년 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몽골을 다녀온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마음에 확신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주님께 작정 기도로 다시금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 드린 후 뜻이 있으심을 느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으로 그곳의 필요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정말로 제게는 아무런 힘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의지가 약한 저에게 미국에서의 안락한 생활보다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을 수 있는 몽골의 광야로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2009년 MIU 학생들이 VISION TRIP으로 스틸워터에 왔습니다. 함께온 선교사님들 중 두 분이 우리 집에 묵으셨습니다. 낮에 학생들을 인솔하고 다니다 지쳐 집에 들어오면 된장찌개에 밥 먹고 커피 한잔 나누며 잠깐 이야기 들어 주고 아침에 따뜻한 먹거리 해준 것 밖에 없는데, 두 분 중의 한 젊은 자매님이 떠날 때 많은 치유를 받았다 말하며 밝은 모습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떠난 후 남아계신 선교사님의 말이 어려서 부모가 헤어진 아픔이 있는 자매라는 말을 듣고 딸을 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저의 작은 섬김으로 힘을 얻고 도움이 되어 그들의 사역에 더 열심을 내어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MIU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은퇴해서 돌아오는 이 나이에 가서 짐만 되면 어쩌나? 염려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기관지가 약하고, 남편도 건강이 좋은 편은 못 됩니다. 위염, 녹내장, 당뇨에, 추위도 엄청 탑니다. 몽골은 영하 40~50도의 추운 날씨에 연탄으로 난방을 해결하기 때문에 매연으로 공기가 무척 안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비록 허약해서 다시 돌아와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사랑의 빚을 안고 떠나려 합니다.

지난 14주간의 선교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MIU에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함께 있어 힘이 되어 주고 그들의 사역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결단했던 길이었는데, 선교훈련의 첫 과정을 통해 선교사의 삶은 ‘복음을 살아내는 삶이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붙들어 주셨습니다. 기독교의 본질로의 이끄심이었습니다. 복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영적 무장으로서 자기관리와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을 Case Study와 현지 선교사님들의 사역 경험들을 통해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한 나라와 민족의 세계관과 문화속에 복음이 전파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지요? 우리도 이곳에서 한사람이 믿음의 길로 나아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두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주님의 자녀로 서기까지 주님의 손길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선교훈련 때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교사는 총대를 들고 전선으로 나가지만 총알의 공급은 후방에서의 기도의 후원으로 공급된다 하시며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약함을 아시는 성도님들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기를 간청드리며 이만 마치려 합니다.

이옥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