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곧 Memorial High School에서 졸업할 12학년입니다. 오늘 제가 지난 2년 동안 청소년 목자로 사역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전에 저에 대해서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울 차병원에서 저희 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때 당시엔,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직장을 다니셔서 전 광주에 계신 친할머니와 2년을 살았습니다. 저의 어릴 적 기억은 3~4살 정도였을 때 짜장면과 같이 나온 양파를 춘장에다가 찍어 먹는 기억과 엄마랑 한국에 있는 박물관이라는 박물관은 모조리 가고 또 간 기억과 매일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늦게까지 축구 경기를 해서 엄마나 이모가 운동장으로 뛰어오시는 기억이 납니다. 이 기억들 사이에, 교회를 매주 간 기억이 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가는 덕분에, 그때부터 저와 제 동생은 예수님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엄마는 제 동생이 뒤늦게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해서 다니시게 되었고, 저희 아빠는 한국에선 교회를 아주 안 다니셨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서, 8년 전, 저희 가족은 아빠가 주재원으로 발령 나신 휴스턴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저는 휴스턴이 텍사스에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제부터 풀밭과 말들과 사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휴스턴에 도착 한지 며칠 후에 목장을 방문하자고 했을 때, 저는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하나님은 한 목자님과 목녀님을 저희한테 보내주셔서 이 교회를 나오게 됐고, 제가 이 자리에서 간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그렇게 말이 많고 행동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하게 하게 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나 가족들 옆에서나 조금 까불고 장난치는 아이였습니다. 6학년 때 어린이 목자를 처음 했을 때, 역시나 제 성격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랑 같은 학년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는 같은 나이인 제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게 싫었던 것 같습니다. 제 말을 귓등으로 듣고 제가 목장을 하려 할 때 방해를 하곤 했습니다. 이 기억 때문에 9학년 때 그 당시 저의 목자들이었던 형 누나가 저를 보고 목자를 하자 했을 때 조금 꺼려했습니다. 제가 말수가 많이 없고, 하나님이나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곧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런 큰일을 시작하는 게 학업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형 누나들은 저 대신 우리 찬양팀 리더를 목자로 선택하고, 2년이 지났습니다. 저희 목장은 또 분가를 하게 됐고, 이번에도 목자인 제 친구는 제가 목자가 되면 좋겠다고 추천을 하였습니다. 제 성격은 많이 바뀌지 않았고, 제 믿음도 그렇게 굳세지 않았습니다. 곧 모든 사람이 어려워한다는 11학년으로 올라가게 돼서, 9학년 때 보다 나은 케이스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저와 제 부모님은 2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면, 하나님이 저를 쓰기 원하신다고 판단을 하고, 목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목장은 오랜 시간의 나눔과 친교를 통해서 가깝고 나이를 떠나서 다 친구 같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학교를 다니고, 토요일 저녁에 있는 목장을 매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목자가 된 목장은, 처음 몇 달에는 그렇게 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목장의 흐름을 컨트롤한다는게 말이 많이 없는 저한테는 어려웠습니다. 기도시간을 인도 할 때는 제가 기도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게임이나 activity를 할 때는 목장 아이들이 재미를 없어 한다고 느꼈습니다. 뭐든지 할 때마다 제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성경 말씀 정리 할 때는, 너무 진지하고,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 잡지 못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습니다. 그리고 이맘때쯤에는 학교 성적과 SAT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목장에서부터 받았던 스트레스는 배가 되었습니다.
돌아봤을 때 제가 이 자리에 목자로 아직까지 있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옆에 같이 있었던 감사한 사람들 때문이였던 것 같습니다.
집에선 언제나 하나님 일을 중요시하시고 먼저 하시는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특히 저희 엄마가 하나님 일을 먼저 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VIP분들에게 목장 나오시라고 물어보시는 끈질김과 목장에 계신 형제·자매분들에게 부으시는 사랑을 집안에서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멘토들이신 샘 오 전 목사님과 교회에 계신 많은 어른 리더분들부터 넘치는 사랑, 걱정, 조언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하나님을 위한 뜨거운 사랑과 섬기는 마음은 저를 언제나 놀랍게 했고, 저도 그래야 되겠다는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론 제 친구들… 서로가 어려울 땐 같이 격려해주고, 서로가 기쁠 때는 같이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제가 아직도 목자를 할수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 덕분에 저만의 목장을 리드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뱉는 말마다 빵빵 터지진 않았지만, 유머와 재치를 사용해서 목장의 흐름을 조금 더 밝게, 조금 덜 어색하게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전에 제가 걱정한 저의 진지한 목원들한테 준 조언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의 말이 목원들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썽을 자주 피우는 아이들도 충분히 목장에 안 나오고 친구들과 놀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매주 목장에 나오곤 했습니다. 찬양시간 때는 말은 제가 작게 하지만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확신 있고 크게 찬양을 하였습니다. 목장 밖에서는 저의 목원들중에서 한 명이라도 큰 형, 오빠, 그리고 선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서, 매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목장에선 이거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목장 밖에선 위선자로 보이는 게 저는 싫어서 말도 더 조심하고 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목장 애들 과 몇 주 안 남았습니다. 돌아봤을 때, 얼마나 좋은 목자였냐고 누가 물어보시면 저는 잘 모르겠다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 목원들한테 물어보면 저는 아직도 많이 어색하고 이상한 형, 오빠라고 대답을 할 겁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하나님이 “수고했다. 네 아들” 하시는 게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답을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목장을 통해서 제가 더 많이 크고, 배우고, 또 배웠다는 것,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것과, 그 누구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낀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목원들한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So apparently, it’s a thing for all the shepherds to say something to their members at the end of the testimony, but since I was the first one to go, I didn’t have the chance to say anything. I just wanted to thank you guys and girls for sticking around with me. I know I was lacking in many ways but you guys still showed up for house church every week and entrusted the leadership role in me. Just know that I will always be there for you guys
메모리얼 /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