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간증: 목장을 통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신 주님.

By December 15, 2016e참빛

prayer2몇 주 전 이수관 목사님으로부터 깜짝 놀랄 감사절 간증을 부탁받고, 일단 순종해 보자는 생각으로 ‘감사’에 관한 것을 묵상하다가, 최근 작년 초 제가 목자가 된 이후부터 제 삶을 통해 주님이 주신 감사에 대하여 간증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최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목자를 오래 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 잘해나갈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스스로 본인이 변한 모습을 이야기한다는 자체도 쑥스럽습니다. 특히나,  감사라는 주제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지금 제가 받은 축복을 자랑처럼 이야기 할 수도 있는데, 행여나 ‘와 저 사람 진짜 자랑이 심하다? 재수 없다’ 이럴까 봐 더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을 받은 사람의 부류에 포함되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이 간증을 통해 저 스스로도 책임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는 저 자신을 향한 응원도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간증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에게 감사의 첫 번째는, 저에게 생긴, 비록 아이 걸음마 같은 수준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일 년 반전쯤 목장을 시작하면서 많은 선배 목자님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목장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많은 분이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저는 바로 그렇게 대꾸했습니다. ‘아 그건 기본이고 좀 더 구체적인 노하우요!’. 사실 저는 그때 노하우가 긴박했습니다. 저는 꽤 오랜 기간 부부 목장에서 목원으로 있다가, 갑자기 목장으로 인도된 두 명의 싱글들과 함께 싱글 목장으로 분가를 하였고, 그나마 같이 분가한 한 형제는 언어문제로 바로 NLF로 옮겼기에 목장 식구를 늘려야 하는 갈급함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몇 명의 목장 식구가 조금 늘고, VIP도 섬기는 기회가 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목장 식구는 하나님이 보내 주시다 보니, 그 구성원에 대한 제 개인 선택이 없는 모임이었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 거기다 학생 또는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싱글들에게, 제가 목장에 와달라고, 삶 공부 들으라고, 영접하고 침례 받으라고 강요하는 교만한 제 방식이 통할 리도 없고, 저 역시 지치기 일쑤였습니다. 또 그들이 쉐어와 자신의 문제를 나눌 때도 속으로는 ‘니들이 인생을 알아? 겨우 그게 고민이냐’ 라고 비웃으며 남을 무시하는 저인데, 어떤 목원이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지겠습니까?

목장 시작 후 몇 달 만에 바로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한가지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 한계의 시작은 제가 목장 식구들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음이란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내 노력으로 절대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미련한 저이지만 알고는 있었기에, 노하우만 부르짖던 제가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라는 기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도 제목은 간단했습니다 ‘제가 목원 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 주세요’

그런데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저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인 가식도 일종의 섬김과 순종이란 생각으로, 처음에는 연기에 가까운 서툰 사랑을 목장 식구들과 시작했습니다. 목장 식구들에게도 하루 5초씩이라도 좋으니 그냥 목원 이름을 부르며, 각자의 기도 제목을 위해 읽는 한이 있어도 기도하라고 적극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빠른 속도로 변하는 목장 식구와의 관계에 저 스스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저와 앙숙이었던 목장 식구와 껴안고 기도하다가 방언이 터지는 역사도 있었으며, 관계가 변화하고 서로에게 믿음이 생기다 보니, 보다 깊이 있는 쉐어가 나왔고, 그에 따른 숨겨둔 개인 기도 제목 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기도 제목을 놓고 같이 기도하다 보니, 목장 식구들은 피는 안 섞였지만 점차 형제 자매가 되어갔고, 어려울 때 같이 슬퍼하고, 기도 제목이 이루어졌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사랑으로 준비가 되자, 더 많은 인원을 하나님이 보내주셨고 목장 식구들도 서서히 목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절대 목장의 열매가 숫자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 앞에서, 부족하고 어린아이 같은 목장에 부어주신 하나님 역사의 증거라 생각하시고, 제가 언급하는 숫자들을 용서하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저희 목장에 한 명의 목장 식구로 출발하여, 일 년간 목장과 교회 고정 출석하는 목원 12명과 2명의 VIP, 8명의 침례, 목장 식구 전원 삶 공부 수강 (그중에는 생명의 삶 2회 연속 수석자 배출도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8명의 목장 식구들과 함께 7박 8일의 단기선교를 다녀오게 하셨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목장 식구는 하나님이 보내 주실 것이고, 그분이 필요하시다면 목장 식구를 하루아침에도 다른 곳으로 데려 가실것이기에, 제 마음속에는 인원수에 따른 숫자의 자랑이나 아쉬움이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원 한분 한분을 통해 보여주시고 변화시켜주신 그 순간의 기쁜 은혜만이 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에게 감사의 두 번째는, 역시 아이 걸음마 같은 수준이지만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제가 기도를 통해 사랑이 조금 생긴 사람으로 한 발짝 나아가자, 하나님은 저를 목장에서 높은 자리가 아닌, 목장 식구들을 의지하고 그들에게 기도의 빚진 자로 만들어 주시고, 또한 인간의 의지와 계획이 얼마나 값없는지 일깨워 주심으로, 저를 낮추어 주셨습니다.

올해 여름, 저는 8살인 제 둘째 딸 아이가 교회에서 반신마비 증상이 와서, 911을 타고 응급실로 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 아이들 중 저를 가장 닮은 그 아이가 몸의 반쪽과 눈동자가 풀린 상태에서, 간신히 움직이는 한쪽 팔을 들어 겁에 질려 안아다 달라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은, 제 평생 가장 큰 충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잘난 줄 알았던 제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말 사랑하는 한 존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스로 놀라웠던 것은 제가 한때 무시하고, 제가 도움을 주면 줬지 나에게 도움은 안될 거라고 취급했던 목장 식구들에게 간절히 기도를 요청하고, 아이와 병원에 함께 입원해야 하니 집의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각종 부탁을 하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부터 역사를 시작하셨는지, 구급차를 막 타고 떠나려는 저희에게 한 분이 막 큰소리로 우리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휴스턴 텍사스 칠드런 호스피탈로 가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구급차 운전사가 ‘여기서 좀 먼 거리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트래픽이 없으니 그리로 가겠다 하였습니다. 바로 병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하여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모든 장비로 아이의 뇌를 스캔하고 엑스레이 찍고 뇌파검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병명이 밝혀졌는데, 모야 모야 라는 특이한 뇌질환이었습니다. 그 병은 아시아 여자아이들에게 발생하는 일종의 어린아이 뇌졸증을 유발하는 혈관 질환입니다. 희귀병이다 보니 정확한 치료 방법과 임상 결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수술만이 방법인데 작은 아이의 두개골을 절개하는 대수술을 두 번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텍사스 칠드런 호스피탈 소속의 한 의사가 아침 일찍 입원실로 들어왔습니다. 본인을 소개하는데 ‘나는 모야 모야 병의 수술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다. 내가 집도하겠다.’라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왜 동양 아이들에게 발생하는 병을 수술하는 세계 최고의 의사가 그 병원에 있다는 자체도 놀라웠지만, 만약 그분이 시카고나 펜실베이니아에 있었다면 직장도 장기휴가를 내고 그곳으로 갔었어야 하는데, 제가 사는 같은 도시에 있음에 더욱 놀랐습니다. 아시다시피 텍사스 칠드런 호스피탈은 세계 최고의 의료기관이라 전 세계에서 희귀하고 심각한 병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들기에,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이때 목장 식구와 함께한 기도 제목은 어린아이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그 수술을 빨리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은 이루어졌습니다. 집도의는 무덤덤하게 다음 주에 하자며 당장 수술날짜를 잡아 완벽히 해냈습니다. 두 번째 수술 역시, 일반적으로 어린아이의 경우 뇌압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첫 수술 후 1달 이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갑자기 의사가 전화를 하더니 며칠 후 할 수 있겠다며 또 바로 집도해 주었습니다. 이때 입원부터 수술을 거쳐, 퇴원까지의 기간 동안 목장 식구들은 단 한 끼도 빠지지 않고 릴레이 금식기도를 해 주었고, 십여 명의 대부대가 병실로 위문을 와서 병실이 떠나가라 통성기도로 아이를 안수해주고, 싱글이지만 목장 역시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서로서로 돌아가며 집을 오픈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목장을 이어가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웃고 있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술한 제 아이가 지금은 걱정 없이 지내고 있음을  뜻합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모야 모야 전문의는 지난달 은퇴했습니다. 만약 제 딸아이의 증상이 오늘 일어났다면, 그분께 수술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전에 ‘낮은 자의 하나님’이란 뜻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낮은 자란, 세상이 볼 때 낮아 보이는 불쌍한 분들을 돕거나, 하나님을 신으로 받들며 그냥 바닥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게 된 낮은 자란, 우리 짐을 벗기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자신이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란 미련한 마음으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길을 다시 밟지 않는 것이란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감사의 세 번째는, ‘자유’입니다.

‘포기하면 편하다’ 라고 하지요? 이전에는 오늘은 목장 전에, 어떤 개그를 하면서 목장 식구들을 재미있게 해줄까, 무슨 음식으로 VIP를 꼬셔볼까, 저 인간은 왜 영접을 안 할까 뭐가 문제인가 등등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는 목장에는 know-how는 없고, 단지 하나님을 목장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저 자신은 포기하면서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포기했습니다.

방만과 무책임이 아니라, 목장의 주인이신 하나님 길에 동참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그 포기 안에서 큰 자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목장을 통해 경험한 이 자유는, 직장과 사회생활에도 적용이 되어, 선택의 갈등에서 오는 걱정, 잘못되면 어쩔까 걱정, 또 남은 되는데 왜 나는 안되는지 등 걱정을 벗어나,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2014년부터 오늘까지도, 오일 가격하락으로 인해 제가 일하고 있는 오일 가스 인더스트리는 아주 힘든 상황이고, 특히 제가 다니는 회사는 두 번의 합병 시도를 통해 전 직원 68,000명에서 단 30,000명만 남는, 정말 어려운 고비를 넘고 있습니다. 제가 나중에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 물어볼 질문 중 하나가, ‘그때 제가 짤린 이유가 목자가 돼서 그런 거지요?’ 라고 물어볼 것 같습니다. 사실 목장 식구들이 열렬한 기도 후원이 지금까지 있었는데, 아마도 싱글들이다 보니 한주 한번 먹는 푸짐한 한국 음식이 있는 저희 목장에서, 혹시라도 제가 잘못돼 앞으론 라면만 먹을지 모른다는 저의 협박 아닌 협박 덕에 기도를 열심히 해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생각에, 어수선하지만 불만 없이 하루하루를 감사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회사 내에서 몇 되지 않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있었고, 하루하루 일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올 초 제 보스가 불확실한 오일 업계를 떠나 다른 인더스트리로 이직하게 될 때, 그래서인지 저는 그 자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계가 걸린 커리어는 선택의 상황이 많습니다. 합병이 될 테니 이직을 준비해야 하나, 어떤 사람과 관계를 더 쌓아야 하나, 어떤 주류로 들어서고, 무엇을 버려야 하나라는 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저는 역설적으로 자유로웠습니다. 야구로 치자면, 투 아웃 만루 상황에서 어떤 공을 던져야 하는지 선택에 고민하는 투수가 이전의 저였다면, 그 이닝에서 역전을 당하면 다음 회에 만회의 기회를 노리고, 그 경기를 설령 지더라도 다음 경기에 이기면 된다는 자유로운 마음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은 저에게 잦은 등판기회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실력을 쌓고, 감독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행동의 처신 역시 저절로 목장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 ‘남의 의견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나이만 많을 뿐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비호감’인데, 생각해 보니 저도 나이가 들면서, 저도 모르게 스스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목장을 통해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훈련을 저절로 하게 되니, 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목장에서 배운 제 태도는 교회를 나가 세상에서도 정확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올해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부족한 제가 5번 이상 각종 프로페셔널 관련 강연에 초대강사로 초빙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 입시 실패를 시작으로, 미국 대학원에 유학 와서도 중요한 과목에서 C를 두 개 받아 학교를 떠나라는 경고도 받았고, 해고도 당해 실직자 신세도 거쳤었던 저이기에, 이제 조금 승진하여 매니저가 되었다고 그런 자리에 초대되는 자체가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남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입장이 되면 바로 교만이 찾아와서, 안 해도 될 잔소리와 과시를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강연의 자리가 목장 쉐어라 생각하며 저의 경험을 솔직히 나누고, 질문을 받을 때는 확신의 삶 때 목원에게 답을 해주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이야기는 아무리 커리어 관련이라 해도 거의 간증에 가깝다 보니, 믿지 않는 분들이 모인 자리라도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마다 성경 구절을 넣어 선한 영향을 주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했습니다. 강연이 마치고 난 후 감사의 표시를 전하는 분들에게는, 이수관 목사님이 몇 년 전 설교에서 보여주신 ‘데빌스 에드보켓’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며, 튀어나오는 교만을 억지로 누르고 ‘저 역시 지금까지 도움받은 사람에 불과합니다’라고 겸손의 대답이 제 입에서 나와 제 저 자신이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지났을지 모릅니다. 즉 이제까지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 이 나이를 터닝 포인트로 저는 앞으로 저보다 나이 어린 분들과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고, 점점 더 그럴 것입니다. 이분들과 사역의 팁을, 싱글 목장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매주 금요일, 그리고 삶 속에서 주님의 하드 트레이닝을 무료로 받다 보니, 요즘은 주변에서 제가 변했다라는 피드백도 조금씩 들리는 것 같습니다.

축복의 지름길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로, 그리고 피 안 섞인 형제 자매님들과 목장을 통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초대장이었던, 목자 헌신에 저는 그냥 손만 내밀었는데, 하나님은 제 뻘쭘하고 자신 없이 뻗은 손길마저 기뻐하셔서, 이전의 제가 몰랐던 천국의 비밀과 그분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삶을 목장을 허락하심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구절 하나를 여러분과 남기며 이 간증을 마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8절.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카테카스 / 유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