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간증: 사랑의 원리로 돌아가는 하나님 나라.

By November 16, 2016e참빛

아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 괜히 하나님이랑 엮여서 내 인생 개털 되는 거 아냐….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나면 하나님이 날 대놓고 쓸 수도 있어…. 침례받기 십 분 전 제 생각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자를 했습니다. 나 침례 안 받을래 요근래 하나님이 크리스천에게 더 심한 고난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이 깊은 분 중엔 병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가난에 찌든 자들도 많은 것 같고……. 나도 하나님 믿으면 그렇게 될 것 같은…. 물론 이런 생각들이 최근에 생긴 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 어머니께선 하나님은 돈 없고 능력 없는 자나 믿는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주변을 보면 사실인 거 같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살지 않고 믿음으로 쇼부를 보려는 자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그래서 크리스천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교회를 나가게 되었지만, 교회는 저에게 데이트 코스에 불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휴스턴에 오면서도 그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배 중 저는 에이치마트에서 장 볼 리스트를 생각했고 예배 끝나고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계획을 세우다 보면 어느새 예배는 목사님의 축도로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그런 저에게 침례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침례는 다음 달, 내년, 10년 후, 죽기 하루 전날 받고 싶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침례 받기 십 분 전, 안 되겠다 도망가자 하려던 순간 누군가 달려와 제 옆에 바짝 붙어 앉았습니다. 목녀님이었습니다. 아 꼼짝없이 붙잡혔구나…. 전 예배당 뒤쪽 대기실로 들어가 옷을 뉘적뉘적 갈아입었습니다. 침례식 거행을 알리는 찬양이 시작되었고 아 이렇게 침례를 받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제 차례가 되기까지 침례 장면을 관찰하였습니다. 침례 찬양곡이 바닥에 써 붙여져 있었습니다. 목사님…. 가사를 외우신 줄 알았는데 보고 부르시네…. 목사님은 물속에 들어가도 옷이 안 젖으시나? 평소 궁금했었는데 그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바지 위에 생선가게 아저씨들이 입는 그런 방수 바지를 입고 들어가시는 거였습니다. 또 물속에 굴절되어 짧아 보이는 목사님 다리에 웃프기도 했습니다. 이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옆에 있는 봉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저에게 뭐라 뭐라 물어보셨습니다. 침례식 때 항상 물어보시던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저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웬만한 일로는 눈물이 나지 않는 저로서 너무 쪽팔렸고 의식적으로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시는데 저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울어댔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왜 울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면 침례식 때 목사님께서 던지시던 질문들이 그 날은 하나님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는 것. 그동안 지은 저의 죄 무게가 제가 생각한 이상으로 무겁게 느껴졌다는 것. 그럼에도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시 한 번 새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영접을 하게 되면 성령이 제 몸 안으로 들어온다 하셨습니다. 처음엔 제가 굿하는 무당이라도 될까 봐 그 말이 무서웠는데 영접 후 제 안의 성령님은 제가 새로운 인간이 되도록 매 순간 일하셨습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지을 때마다 그것이 죄임을 알려주시고 지금은 죄짓기 전에 마음속에 경보음도 울려주십니다. 저에겐 어렸을 때부터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지어온 죄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쉽게 미워하고 쉽게 무시하며 마음속에 살인도 저지르며 그것을 또 즐겼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돈과 사회적인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셨고 그것을 위해선 어떠한 것도 희생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공부를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흐트러지지 않게 생활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저보다 못난 사람은 무시하고 저보다 잘난 사람은 시기 질투하며…. 친구가 잘되면 입으로만 축하해줄 뿐 속으로는 배 아파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은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선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 교사가 된 것은 더 문제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영혼 없는 소리만 하기 일쑤였습니다. 다른 친구가 잘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어야지…. 너보다 부족한 친구는 도와줘야 하는 거야. 돈이 최고가 아니란다…. 이런 말을 한 뒤엔 헛헛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런 이중적인 제 모습이 싫었으며 이 직업을 더 이상 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맘때쯤 또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었고 전 저 자신이 자기 목숨을 버리고 희생된 교사보다는 혼자 살아보겠다고 뛰쳐나온 선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욕먹을까 봐 누구에게도 이를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얘기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교사로서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거 같았고, 그런 하나님을 제 목숨을 앗아가려는 분으로 오해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는 항상 유지했으며 하나님이 그 선을 넘어오시지 못할 정도로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영접과 침례 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오해가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죽음이 아닌 생명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제 안에 성령님은 제가 쉽게 걸려 넘어졌던 죄로부터 멀어지도록, 죄에 좀 더 민감해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붙잡고 누구 흉이라도 볼라. 그러면, 제 안에 성령님이 “너 또 입이 근질근질하지, 그 입 다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침례 후 하나님께선 그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처음 보게 된 것은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옛날엔 누가 저를 섬겨줘도 그것을 당연시한다거나, 의심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지, 나중에 사기 치려고 이러나.’

그러나 지금은 그 섬김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휴스턴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목장에 들어가게 되었고 임신 막달에 다다른 저로서는 많은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산후에는 그 필요가 더 커져 더 이상 목장에 말씀드리기도 죄송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목자님, 목녀님, 목원 들은 모든 일을 제치고 저의 필요를 일 순위로 여겨주셨습니다. 그 덕에 저는 출산 전 아기가 미끄러져 잘 나오도록 도와준다는 삼겹살을 원 없이 먹고 그 다음 주에 순산할 수 있었으며, 출산한 날 따뜻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을 수 있었고 그날 밤 모든 목원들의 방문으로 축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출산 후엔 호박죽, 족발, 갖가지 밑반찬 등으로 산후 건강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또 목녀님은 틈틈이 투어가이드도 해주셨습니다. 운전을 못 해 매일 집에서 육아만 해야 하는 저를 위해 하루씩 시간을 비우시고 무거운 카시트를 뒤에 실은 뒤 휴스턴 명소나 맛집을 데리고 가주셨습니다. 한 달 전 제가 아가를 내려놓다가 허리를 다쳐 온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도, 본인 사망 외엔 취소할 수 없다는 골프 약속을 취소하시고 한 큐에 달려와 주셨고 소개해주신 한의원에서 저는 침을 맞고 빨리 회복되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목장에서 나눈 기도 제목이 응답된 것이기도 합니다. 저 같으면 기도만 하고 땡 쳤을 텐데 기도도 까먹고 안 했을 텐데 기도 제목이 응답되길 바라는 맘으로 직접 몸으로 여기저기 뛰시며 애써주시는 목장 식구들이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했습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드나. 삶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가. 물론 저희 목녀님 목자님, 여유가 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나름 비즈니스도 잘 되시는 것 같고, 차도 좋은 차가 몇 대 있으시고, 가끔씩 여행도 다니시고 골프도 치시고. 그러나 여유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섬김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그 여유를 더 즐기고 싶은 마음도 생길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섬김은 뒷전으로 밀릴 테니깐요. 그러나 목녀님은 그 어떤 즐거움보다 저의 기도 제목, 저의 어려움을 우선으로 생각해주셨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투자는 자식에게 하는 것이 가장 수익률이 높다, 기부도 핏줄에게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란 저로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할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혈육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받아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목장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고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다른 목원들을 위해 처음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저 자신을 위해 하는 거 이외엔 해본 적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을 저의 기도 제목처럼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남이 잘되는 거에 배 아파 하던 저로서는 이런 선한 마음을 주신 게 너무 신기하였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액션을 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전 우리 집을 목장에 오픈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몇 주 전 비빔밥과 함께 집을 오픈했습니다. 목원들이 각자 맡은 비빔밥 재료를 준비해왔고 전 밥 국 계란후라이만 하면 되었기에 별 부담 없이 목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날 저희 아기 백일잔치도 함께 하는 풍성함도 누렸습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휴스턴 땅에서 남편과 셋이 했을 백일인데 이렇게 목장 식구들 모두와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세상은 경쟁의 원리에 의한 곳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를 잘하거나 그보다 잘나갈 때 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었고 그곳은 사랑의 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제가 기도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저 자신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시고 새로운 결심도 하게 해주시고 사람도 보내주시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다는 걸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화이안 / 서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