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부는 삶 공부 직전에 우리가 죽자살자 싸웠던 것도 아니요, 삶 공부 과정에 싸우거나 부딪힌 것도 아니요, 삶 공부 끝에 눈에 하트가 뿅뿅 나오며 서로 죽고 못 사는 관계가 된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뭘 간증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조선희 목녀님께서 마지막 수업 때 나눴던 제 남편의 소감을 들으시고 그것을 간증으로 나눠보라 하신 말씀에 따라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혼자가 아닌 부부가 같이 하나님께 한 발짝 가까워진 경험을 나눠보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예비부부의 삶 공부를 통해 서로의 성향과 사랑의 언어 등을 알면서 시작했던 터라 결혼 후 크게 부딪히거나 실망, 포기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100% 서로 맘에 들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 서로의 다른 성향을 알고 이해하며 거기에 맞춰주면서 살려고 노력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겪는 여러 가지 고민과 부부로서 겪을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따른 어려움을 겪어나가며 둘만 있을 때와는 차원이 틀린 경험들에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힘든 나머지 각자 해나가던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관계가 점점 메마르고 거칠어져 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으리라, 지금 겪는 이 문제가 해결되면 괜찮으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는 끊임없이 찾아왔고 아이 양육에 관한 서로의 생각의 틈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치관이 달라진 데다가 남편의 바쁜 일정 탓에 대화는 부족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부족한 시간의 틈에 우리는 서로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피곤함에 가시가 돋친 반응을 하기 일쑤였고 저는 아이와 시간도 많이 안 보내는 사람이 왜 내 양육방식에 사사건건 간섭이냐고 남편의 조언을 그냥 넘기기도 하는 등의 문제를 겪었고, 그 와중에 서로의 합의점을 하나 찾은 것이 있다면 “우리 이대로 가다간 사이가 나빠지겠다.” 였습니다. 막연히 하나님이 해결해주시리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리라 생각하던 중 마침 신랑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함께 삶 공부를 수강할 수 있었고 부부의 삶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부의 삶을 수강하면서 배운 것과 느낀 것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첫 번째는 부부의 삶 공부는 상대방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를 위한 수업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 가장 저에게 와 닿았던 부분은 ‘나의 갈망을 목표로’라는 문구였습니다.
상대방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되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섬김의 훈련이 필요하단 것입니다.
나의 변화에 대한 노력이 상대방의 마음을 돌리고 변화하게 한다는 말이 저에겐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언제나 남편의 단점을 먼저 보고 잔소리하며 그것이 남편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핑계를 대던 전 부끄러웠습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에 있는 시간에 뒹굴길 좋아하고 시간을 많이 못 보내준단 이유로 아이에게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남편을 항상 못마땅해 했는데 항상 말로 잔소리만 했지 먼저 활동적으로 움직이려 한 적 없었고 남편이 집에 있으면 저 또한 남편한테만 모든 집안일을 미루곤 하던 제 모습이 결코 남편의 마음이나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에 반해 최대한으로 제 요구를 포용해주고 이해하려 노력했던 남편의 모습을 그리며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또한 그렇게 행동하며 잔소리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신랑은 삶 공부 후 약속한 대로 집안일을 제가 원하는 방법으로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고 저는 제가 직접 어떤 식으로 도와주길 원하는지 먼저 행동하고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가 있지만, 지금의 노력이 습관이 될 때까지 계속 참으며 위의 방법을 실천하려 합니다.
두 번째는 서로의 기질과 사랑의 언어에 따른 사랑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예비부부의 삶과 여러 가지 정보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서로의 기질과 사랑의 언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나 필요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고 다름 때문에 불편하다고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난 것이 하나님의 divine conspiracy이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드시고 서로 만나게 하신 이유가 우리를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기에 알맞게 만드시기 위함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가 서로의 기질을 이해하면서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로 사랑해줘야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살다 보니 “아, 내가 왜 저 사람에 맞춰줘야 하는 건데?!” 라며 가끔 불쑥불쑥 불평이 나왔는데 그런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리 부부는 사랑의 언어가 극과 극입니다. 남편은 터치가 1순위지만 그 부분에서 저는 점수가 0일 정도로 사랑의 언어가 틀립니다. 그전에 제 사랑의 언어였던 행동과 선물 부분에서 신랑은 계속 노력을 했지만 저는 제가 약한 부분에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남편도 제대로 사랑 못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남편을 그의 사랑의 언어로 사랑해 주려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노력하다 보니 덤으로 제 딸에게까지 그 사랑의 언어가 미쳐 덩달아 아이의 사랑의 탱크까지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제가 조금이라도 사랑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신중형인 저와 안정형인 신랑의 기질 차이로 인해 아이 양육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는데 삶 공부 숙제인 대화의 시간을 통해서 기질의 차이로 인해서 우리가 부딪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서로 다른 기질로 서로를 도와가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게 되니 서로의 대화가 언쟁이 아니라 합의의 과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느낀 것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세상 어떤 문제든지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바로 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 공부가 그렇겠지만, 부부의 삶은 흔히 생각하는 부부의 행복, 평안추구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변화하는 것, 즉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부부의 삶 공부를 시작할 때 신랑과 저, 우리 부부의 관계에 거의 모든 초점을 두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첫 수업부터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좋아야 이웃,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배우자와의 관계가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또 실질적인 묵상 과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둘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삶 공부를 통하여 그동안만이라도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려 노력하였는데 이번 시간엔 부부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어서 더 은혜가 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올바른 부부관계를 맺길 원한다는 소망과 더불어 바쁘고 힘든 신랑이 하나님과 좀 더 가깝고 친하게 지내실 바라던 제 숨겨놓았던 기도제목이 120% 이뤄졌고 또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더 감사함이 넘칩니다.
평온하던 일상에 여러 가지 분주한 일들이 많이 생겨 마음이 바빠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극적인 변화가 있던 게 아니라서 간증준비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저에게 하나님이 기도 중 들려주신 잠잠하게 삶에서 은혜를 경험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간증문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한번 또 경험한 것은 분주하고 빠듯한 과정에서 평소 같으면 신랑과 으레 신경전 몇 편을 하고 ‘그냥 내가 참자 아우…’ 하며 원망 반 미안함 반 복잡한 심경으로 문제를 피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나 서로 신경전이 있었으나 제 마음에 실망이나 원망이 아니라 ‘저 사람이 힘들고 피곤하니 저렇게 표현하는 거구나’ 라고 이해가 되었고 이해가 되니 남편에 대한 원망이 어느새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이것이 저의 간증입니다.
문제가 있지만 문제가 없듯이 조금은 게으르게 조금은 무관심하게 지내온 저희 부부가 부부의 삶을 통해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서로 노력하려는 의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까쇼에이라 / 심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