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간증: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겠습니다.

By September 6, 2016e참빛

황부성 형제전 모태신앙으로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때까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억지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전 교회에 가지 않을 좋은 핑계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야간자율 학습으로 학교에 저녁까지 남아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핑계로 전 교회에 가지 않았고, 제 방황도 시작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전 3년 내내 야간자율학습을 했던 적이 없습니다) 기계공업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계 학교에 가게 되었고, 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보낸 중학교 시절은 쉬는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종이 울리면 친구들하고 장난치기 바빴으나 인문계 학교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갔고, 쉬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한 반 분위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 펜을 놓게 되었고, 소위 말하는 불량서클에 가입도 하게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의 길을 달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자마자 제 방황은 시작되었던 거 같습니다.

약 6년 전 저의 친형인 황오성 목자가 휴스턴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약 3년 전 부모님과 형의 권유로 방탕한 삶을 살고 있던 저도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도착한 휴스턴 저에겐 지옥과 같았습니다. 너무 평화롭다 못해 지루한 동네, 조명 없는 밤, 너무 조용한 휴스턴은 한국의 밤 문화에 적응이 탁월했던 저에겐 너무나도 따분한 하루하루였습니다. 유학을 오게 된 것도 저의 의지가 아닌 부모님과 형의 강력한 반강제였기 때문에 더욱더 전 여기가 싫었고 오랫동안 같이 살지 않았던 형과 같이 지내려니 부딪히는 것도 너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였던 저는 3개월 만에 유학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과거와 다를 거 없이 지냈던 저는 6월 말쯤에 형을 보러 휴스턴으로 2달간 여행을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형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장과 주일날 교회는 꼭 가야 한다고. 사실 3년 전에 휴스턴에서 생활을 할 때 억지로 목장을 나갔고 교회에 끌려갔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와 닿는 건 전혀 없었지요. 전 휴스턴 모든 것이 싫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의 목자 목녀님은 3년 전 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셨던 분이기에 그냥 형 누나 만나러 간다는 생각으로 목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3년 만에 저를 본 목자 목녀님은 어색함 없이 진심으로 저를 반겨주셨고 그 모습에 또 한번 감동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 목장과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금방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삶공부 한번 해보지 않을래? 그것이 뭐냐고 전 물었고 형은 그냥 목자님이랑 이런저런 대화하고 제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나 오해들을 풀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전 아무 생각 없이 삶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휴스턴에 남아있는 기간이 짧았던 저에게 특별히 요점만 알려주시는 일명 족집게 삶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자님의 첫 질문은 넌 하나님을 믿니? 라는 질문이셨습니다. 그 질문에 저는 하나님은 믿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고 지킬 자신이 없어서 교회를 안 나간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대답에 대한 답변은 넌 그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전 다시 물어봤습니다. 꼭 교회를 간다고 하나님을 믿는 건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그걸 믿는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 할 말을 잃었습니다. 더는 반론할 대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종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봤을 때 당당하게” 기독교입니다” 라고 대답한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한심했습니다. 하지만 전 당장 하나님을 믿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너무 익숙한 술, 담배, 유흥은 한 번에 끊기엔 너무나 힘든 유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한 번에 변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의지로는 절대 끊을 수 없다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의 힘으로 변하는 거라는 대답을 들은 저는 영접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영접을 받기 전 목자목녀님께 성경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성경책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좋다. 형과 함께 지난 3년 동안 우리 목장 식구들 기도에 항상 너의 기도가 있었던 거 같아 오랜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도 만나고 돌아가길 기도한다.’ 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본 저는 너무 당황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 자신이 우선이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저를 위해 또 전혀 모르는 저를 위해 3년 이상의 시간을 기도해 준 형과 목장식구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헌신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겪어온 환경은 치열하고 이기적이고 남을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환경에 이런 행동은 오지랖이라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섬김이라는 것을… 영접을 하고 침례를 받기까지 2달이 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서둘러 받은 영향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저를 침례까지 받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다면 전 영접과 침례 둘 다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 이제 다음 주 화요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3년 전에는 그렇게 싫었던 휴스턴이 지금은 너무나 아쉽고 평화롭습니다. 일주일 뒤면 전 다시 치열하고 바쁜 일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형 그리고 목장식구들을 더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울컥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았던 휴스턴 생활은 너무나 저에겐 지옥이었으나 하나님과 함께한 휴스턴 생활은 정말 지상낙원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만약 3년 전 제가 유학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여기서 지냈다면 전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한국과 다를 거 없는 삶 오히려 하나님을 더 부정하고 비판했겠지요. 그때 제 마음속엔 하나님이 들어오실 바늘구멍조차 없었으니깐요

그래서인가 전 벌써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과연 한국에 가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익숙한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나 자신을 얼마나 보호하고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는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제 마음에 항상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매주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도 나가고 기도도 하여 꾸준히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할 것입니다. 이제는 제 판단이 아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그 길이 원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헌신과 섬김이 먼지 알려주신 목장식구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루터기 / 황부성